제220화
220화
다른 포상에 대해서는 사전에 통보한 대로.
“이자의 공적을 고려하면, 그 이상의 포상으로 치하해야 옳다고 판단하였다.”
그런고로 나, 시안에게 준남작의 작위를 수여한다.
뭐, 귀족의 말석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평민과 차이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뭐…… 라고?”
“……지금 폐하께서는.”
“말도 안 돼.”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희미하게 술렁이는 소리가 들린다.
이 수여식을 지켜보던 귀족들의 동요.
그들에게도 사전에 전해지지 않은 소식이다.
완벽한 황제의 독단.
“짐의 결정에 이의가 있다는 것이냐? 제국의 귀족이라면 당당하게 의견을 피력하도록.”
“그, 그것이…….”
“이 자리가 불만인가?”
하는 수 없이 동요한 귀족들의 대표 격으로 보이는 중년 사내가 허둥거리며 황제에게 의견을 말했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불쾌해하는 거라고 여길 테니 최대한 돌려서라도 말해야겠지.
“아직 이른 것이 아닐까 생각했을 뿐입니다.”
“이르다? 무엇이?”
“저 소년은 제국 아카데미의 학생이긴 하여도 아직 1년을 못 채웠습니다. 하물며 나이를 고려하면 작위의 중압감은…….”
그냥 불만 있다고 말하세요.
“이름뿐인 작위다. 책임도, 중압감도 있을 리가 없지. 그래, 자네의 말은 더 높은 작위가 필요하다는 것이지? 그럼 더욱…….”
“아, 아닙니다!”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추가 진급을 하게 생기자, 그 귀족은 황급히 자신의 의견을 정정했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 내키는 대로 그 이상의 상을 주고도 남을 황제였다.
황제가 제멋대로라는 것은 그들에게는 당연한 상식이었으니까.
“짐이 말하기도 뭣하나 편하게 받아들이도록 시안. 그래 봐야 이름뿐인 작위다.”
“……예.”
보통 주는 쪽은 저리 말하나.
반은 틀리고 반은 맞았다.
분명 작위 중에서는 최하위일지 모르나, 그렇다고 해도 그것으로 귀족의 반열에 발을 걸치게 된다.
뭐, 가난뱅이 귀족은 빛 좋은 개살구라고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름뿐인 작위다. 저들의 말대로 아직 어린 그대에게는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 딱히 강요할 마음은 없지. ……싫다면 거둬들일 수도 있다. 어쩌겠느냐?”
“감사히 받겠습니다.”
거절하는 것 또한 멍청한 소리겠지.
“제게는 절대 그 상이 부담되지 않습니다.”
주는 것을 마다하는 것 또한 상대의 체면에 먹칠하는 일이다.
뭣보다 내 목표가 출세란 사실을 고려하면 언젠가는 받기로 계획하고 있었던 일이었고.
“좋다. 시안. 짐과 제국은 앞으로도 그대의 활약을 기대하고 있겠다. ……잊지 말거라. 그대의 성취와 활약에 늘 걸맞은 대가를 줄 수 있으니.”
황제는 호탕하게 그때를 기다리겠다며 선언하였다.
마치 내가 또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할 것이라는 사실을 전제로.
* * *
“또 잔소리라도 할 셈인가, 재상?”
“이미 아시고 계시는군요. 폐하.”
수여식이 끝나고 곧바로 황제 엘피로크에게 알현을 요청한 재상은 진심으로 난처하다는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농이 지나치십니다.”
“농이라니, 그거야말로 고약한 말이로군. 짐이 작위를 고작 재미 따위를 위해 줬다고 생각하나?”
“…….”
차마 그렇다고 말하고 싶은 충동을 억지로 눌렀다.
“놈들의 반응은 어떤가? 놀라고 있겠지?”
“이대로 제 집무실에 틀어박히고 싶은 심정입니다만.”
머지않아 문의와 불평을 위해 들이닥치겠지.
“하하하, 그래! 그렇군! 그렇다면 억지를 부린 보람이 있군!”
이 폭군은 그의 속도 모르고 그저 호탕하게 웃어넘길 뿐이다.
실제로는 이렇게 웃고 끝날 일이 아니었다.
사전에 통보한 대로였다면, 시안에게 주어지는 것은 훈장과 포상금 정도였을 터.
공로를 전혀 외면할 수 없으니 그 정도면 나름 납득할 범위 내였다.
공로를 치하하는 것은 귀족 사회의 본분. 전혀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면 난처한 일이니.
하지만 지금 황제의 변덕은 지나쳤다.
“준남작이라고 하더라도 귀족의 말석입니다.”
“그래 봐야 말석이다. ……뭐, 남은 건 그 소년이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겠지만.”
마치 황제는 그 이상이 있을 거라고 확신하는 듯 말한다.
“무엇을 기대하고 계신 것입니까?”
“많은 것.”
황제는 둘러대지 않고 말했다.
“변덕 따위가 아니다. 짐 나름의 성의 표시라고도 할 수 있지.”
“성의 표시입니까…….”
“잘도 그 지긋지긋한 요물을 없애 주었다.”
“……전에 말씀하셨던 괴물 말이로군요.”
믿기지는 않으나, 황제에게서 어둠의 정령인가 하는 존재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다.
“참으로 골치 아픈 놈이었지. 짐이 눈치챌 때쯤이면 자취를 감춰 버리니.”
앓던 이를 뺀 기분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제국을 좀먹던 존재를 처리하였다는 소식은 달갑지만.
단지 그런 것치고는 황제의 심기가 기이할 정도로 좋지 않은가.
“항의는 일절 듣지 않겠다. 그 이상의 질문도 불허한다고 전해라.”
“……알겠습니다.”
어차피 황제가 자신이 한 일을 철회할 일은 없다.
“더 할 말이 없으면 돌아가 보도록. 짐은 잠시 그 소년과 할 이야기가 있으니.”
“직접 말씀입니까?”
“그래, 자네가 알 필요는 없는 일이다.”
재상은 신경이 쓰여 미간을 찌푸릴 뻔했지만, 곧바로 시원스레 미련을 버렸다.
그가 알 필요 없다고 한 것은 제국의 국정과는 상관이 없다는 뜻.
무엇보다 어설프게 캐묻는 것은 자신의 신상에도 좋을 게 없으니.
그것이 이 제국 사회에서 살아남은 그의 비결이라도 할 수 있으리라.
* * *
생각지도 못한 포상 덕에 생각할 거리가 늘었다.
(귀족의 작위? 그거 받으면 뭐가 달라지니?)
‘뭐, 황제의 말마따나 준남작은 귀족의 말석에 불과하지.’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도 달라지는 것이 있다.
관직에 오를 수도 있고, 혹은 추후 활동에 따라 다른 일도 가능할지 모르지.
‘뭣보다 명목상이라도 귀족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거야.’
이제 어디의 누군지도 모르는 시안이 아니라 제국의 귀족으로 신분이 높아졌다.
‘거기다 세습제니……. 나름 가문으로서 이름을 얻게 되었다는 뜻이고.’
(흐음……. 인간으로서의 가치이려나.)
악마에게는 그다지 와 닿지 않는 모양.
이름이니 명예니 그런 것은 악마에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으니까.
각 개체가 가진 고유의 힘과 본질에만 의미를 두는 것이 악마.
(가문이라고 하니까 조금 전에 설명해 준 인간이 정하라고 했지?)
‘응.’
수여식이 끝나고 나름의 설명을 위해 내게 별도로 설명을 해 주었다.
작위의 의미와 향후 절차를 위해서 필요한 것.
그중 하나가.
‘……가문명인가.’
성이자 향후 나, 시안의 집안 이름이 될 것을 정하여 제출하라는 것.
(그런 거 적당히 지으면 되잖니?)
‘그래도 되고……. 혹은 다른 방식으로 정해도 된다고는 하는데.’
사실 적당히 짓는다면 편하겠지만 내가 여기서 고개를 갸웃거린 것은 다른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제국 귀족사회의 말석에 발을 걸치게 되었습니다.》
《귀족의 명부에 당신의 이름이 등록될 것입니다.》
《당신의 가문명을 정하십시오.》
《정한 이름에 따라 향후 운명에 일부 변화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대충 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게임에서도 공로를 세우고 작위를 얻는 이벤트는 존재했다.
정확히는 작위가 있고 없음에 따라 행동반경이 넓어지거나 혹은 수행할 수 있는 이벤트가 있었다.
혹은 일부 히로인과의 엔딩 조건 중 하나가 그것일 때도 있었고.
귀족 신분이 있어야 연애도 하는 법이라나 뭐라나.
내게는 딱히 고려할 일이 아니나 게임 외에 현실적인 출세라는 점에서 지금의 일은 바람직한 편.
다만.
‘가문명이 관련된 퀘스트라……. 분명 있었지.’
분명 한창 게임을 할 때, 들은 훈수 중에 있었다.
뭔가 유용한 퀘스트였던가.
‘천천히 생각하자.’
당장 제출하라고 요구한 것도 아니다. 상담할 상대가 없는 것도 아니니 지금은 일단 덮어 둘까.
돌아갈까 싶었지만, 어쩐지 바로 보내 줄 것 같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아직 용건이 있으리라.
‘역시 이야기하려는 건가.’
딱히 묻지 않고 적당히 늘어져 있자니 곧 사람을 보내어 내게 동행하길 요청한다.
“이쪽으로 와 주셨으면 합니다.”
“누가 찾나요?”
“……와 주시길.”
말하지 않는다. 혹은 말해서는 안 되는 누군가.
뻔하군.
나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대로 안내인을 따라 복잡한 황궁 내를 이동했다.
“까닥하면 길 잃겠네.”
“홀로 돌아다니지 마십시오. 자칫 잘못하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황궁에는 침입자를 경계하기 위한 대책이 마련돼 있다.
그게 경비나 기사들이면 괜찮겠지만, 마법 함정 같은 것이라면 딱히 사람을 구분하지 않으니까.
“이쪽입니다.”
안내한 곳은 황궁에서도 꽤 동떨어진 곳에 있는 방.
적어도 일반적인 손님을 맞이하는 장소는 아니리라.
“그럼 용건이 끝나시면 다시 안내하러 오겠습니다.”
하물며 들어가는 것도 혼자.
그렇다면 더더욱 내게 용건이 있는 자가 누군지 알 법하다.
방에 혼자 들어오자 문이 저절로 닫힌다.
방 안의 풍경은 꽤 수수했다.
“일단 기다릴까.”
멋대로 둘러보지 않고 나는 적당히 소파에 앉아서 잠시 기다렸다.
체감상 1분 정도 지났을까.
“왔군.”
정확히는 본인이 왔다고는 할 수 없겠지.
반대편 자리에 놓여 있던 스크롤이 빛나며 그곳에서 푸른 마나가 흘러나온다.
마나는 곧 인간과 비슷한 형상을 취하더니 내 맞은편에 걸터앉는다.
(마나를 이용한 의사 전달 인형이네.)
누군지 물어볼 것도 없으리라.
“우선 이렇게 다시 폐하를 뵙게 된 것에…….”
“됐다. 쓸데없는 가식은 집어치워라.”
내가 침착하게 일어나 무릎을 꿇으려 하자, 황제가 가로막는다.
“조금은 당황하는 꼴을 기대했거늘. 예상한 것이더냐?”
“이런 식으로 저를 부르실 만한 분이 많지 않습니다. 하물며 조금 전 소동 이후라면 더더욱.”
거기다 황제가 나를 찾을 것은 이미 예상했던 일이다.
수여식에서는 용건을 말할 리가 없을 테니.
“본래는 이런 방식이 아닌, 네 녀석과 직접 독대하는 것도 고려했다만.”
“아직은 이르겠지요.”
“호오? 마치 짐에 대해 알고 있다는 투로 말하는구나.”
어떨까. 나는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는다.
“됐다. 본론부터 말하자꾸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리라.
“네놈은 시조의 흔적들을 수집하는 모양이더군.”
“…….”
그는 알고 있었다.
“우연이라고 생각했다만, 틀림없겠지. ……그래, 어디까지 찾아보았느냐? 어둠의 정령을 쓰러트렸다지? 그럼 녹의 시조와 대면하였느냐?”
“그에 대해서 알고 계셨습니까?”
“알다마다.”
그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기록에 남기지 않았더라도 짐은 그들의 행적을 알고 있지.”
“그럼 나머지 시조들의 흔적도…….”
“하핫, 가르쳐 줄 리가 있겠느냐.”
단호하군.
“그렇기에 짐은 네놈과 다시 이야기해 보고 싶었다.”
고작 마나로 만든 인형에 불과한데도 묘한 압박감이 느껴진다.
“무슨 생각이더냐? 누가 시킨 것이냐? ……그들의 묘를 파헤쳐 무엇을 얻을 속셈이지? ……그리고 무엇을 할 셈이냐?”
내 의중을 떠보겠다는 듯한 물음.
또한, 어떤 것을 경계하는 듯한 어조.
“그곳에서 무엇을 알게 되었느냐? 그리고 무엇을 하기로 마음먹었느냐?”
기이하게도 살기마저 느껴지는 질문이다.
아니, 비슷할지도 모르지.
굳이 황궁에서도 격리된 방에 불러서 이야기한다.
대답 여하에 따라선.
곧바로 처리하는 것도 고려한다는 것인가.
당연하겠지.
황제는 시조들을 옹호하지 않는다.
반대로 그는 그들이 남긴 것을 적대시하고 위험하다고 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