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9화
229화
“착실한 시종을 뒀나 보네, 시안.”
“무슨 뜬금없는 소리야, 아닐라.”
“뭐고 자시고 이미 알거든? 새로 시종을 뒀다면서. 거기다 딱 봐도 티가 나고~.”
여기저기서 정보를 캐고 다니는 아닐라가 내가 시종을 새로 두었다는 소식을 알고 있어도 이상할 건 없었다.
다만 티가 난다는 소린 조금 신경 쓰이네.
내색하고 다녔나.
“딱 차림새만 봐도 알거든?”
“차림새고 뭐고, 여느 때처럼 교복 차림인데?”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아 묻자, 아닐라는 어림도 없다며 혀를 찬다.
“시안 너, 교복 관리를 기숙사 공용 세탁에 맡겼지?”
“……뭐, 그게 가장 나으니까.”
자취에 이골이 난 나도 아카데미의 교복을 관리하는 건 귀찮았다.
단순히 소재도 소재이지만, 아카데미의 교복에는 최소 단위의 방어를 위한 세공이 가해져 있는 모양.
이걸 내가 직접 세탁한다? 망가트릴까 봐 겁나네.
그렇기에 딱히 시종을 두지 않는 이들은 아카데미에 맡기면 일괄적으로 세탁을 해 주지.
“하지만 한계가 있거든. 약간 주름이 진다든가 혹은 옷맵시가 조금 비뚤어진다든가.”
“그게 티가 날 정도인가?”
“의외로 나거든.”
남의 옷차림이나 살피다니, 참 한가한 양반들이군.
“그런데 갑자기 말쑥해졌거든. 누가 제대로 관리해 준다는 의미!”
물론 아닐라의 말은 아마 놀리는 투가 더 강했지만.
“누굴 칠칠맞은 아저씨 취급을 하는 거야?”
“그러고 보면, 은근히 시안한테서는 그런 티도 났었고. ……가끔 아저씨 같아.”
“어? 진짜? 농담이지?”
진짜면 내 안의 아저씨가 운다.
“그냥 새로 온 시종이 멋대로 챙겼을 뿐이야.”
뭐, 아닐라가 이 화제를 꺼낸 건 다른 의도도 있겠지만.
호기심인가.
“꽤 보기 드문 시종을 둔 거 같은데? 어때?”
“글쎄다. 나는 남의 신상에 신경 쓰는 타입은 아니라서. ……성가신 건 묻지 않는 주의야.”
물론 씨알도 안 먹히는 말이겠지만.
“소문에는 ‘다크 엘프’라던데.”
“……다크 엘프라.”
키르실아울리엔을 추천한 건 황제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이들은 적다.
정보의 출처는 황실 쪽인가. 그쪽에 연줄이 있는 모양이군.
“다크 엘프에 대해서 알고 있어? 아닐라?”
“남들 정도는. 뭐, 엘프들에게는 꺼내지 않는 게 좋은 화제라는 것 정도.”
“잘 아나 보군.”
“걱정 마, 시안. 다른 사람에게 떠드는 일은 없을 테니까. 그저 정말로 ‘다크 엘프’가 실존했구나 하고 궁금해서 말이야.”
단순한 호기심이라며 채근한다.
“정말로 궁금하면 선물이라도 사 들고 기숙사에 놀러 오든가.”
“오? 그래도 돼?”
“다만 내 시종이야.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내 귀에 들어오면 나라도 화를 내긴 하겠지.”
요컨대 쓸데없는 소리에 답변해 줄 마음은 없다는 뜻.
뭐, 이런 경고를 하지 않아도 아닐라가 그런 멍청한 짓을 할 인간은 아니라는 것쯤은 안다만.
“쓸데없는 소린 됐고. 그래서 부탁한 건? 준비했냐?”
애초에 내가 지금 아닐라와 이야기하는 목적은 다른 정보의 거래 때문이었다.
“성질 급하긴. 일단 부탁한 건 구해 뒀어. ……참 별난 걸 요구한단 말이야. 마탑 출신 혹은 그쪽 파벌의 교수들 동향이라니.”
“세세한 것까지 캐묻지는 않아. 단지 마탑에 출입한 횟수, 혹은 그쪽 사람과 접촉한 횟수 정도만 궁금할 뿐.”
“그 정도면 알아내는 건 어렵지 않아. 물론 대략적인 것밖에 모르지만.”
“그거면 충분해.”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닐라는 그 기록을 적은 양피지를 내게 넘겨주었다.
그 자리에서 훑어보고 바로 태운다. 내용은 이해했으니 되었다.
“시안, 네가 알고 싶은 건 최근 마탑 파벌의 교수들이 탑에 불려 가는 횟수가 늘었다는 거지?”
“역시 늘었나.”
늘었나 보군.
“유감이지만, 마탑에 방문하는 사유까지는 알아내기 힘들어. 어디까지나 개인적 방문일 테니까.”
노골적으로 수상하지 않는 한, 교수들의 개인적 행동까지 캐물을 수는 없으니.
“상관없어. 늘었는지 줄었는지 그것만 알면 돼.”
어차피 마탑이 무슨 일을 꾸미는지 알기에 조짐만 알아채면 그만.
“일단 수고해 준 답례로 충고 하나 하는데, 마탑에는 이제 얼씬도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흐음, 좋은 충고네.”
이유는 묻지 않아도 가볍게 듣지 않겠다는 듯 아닐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시안, 하나만 더 물어도 될까?”
“뭔데?”
“그래서 시종을 둔 소감이 어때? 역시 남자애들은 시종이 생기면 야한 일부터 시키려나.”
“야! ……너, 그 말 여기서 일하는 녀석들이 들으면 화낼 거다.”
왜 이 정보통은 제국의 동향보다 내가 시종에게 뭘 시키는지에 더 흥미 있어 하는지 몰라.
그런 거 없거든?
응……. 일단은 없다고 생각한다.
양심에 찔리는 건 현재까진 없어.
* * *
뭐, 아닐라의 말대로 내 생활이 말끔해졌다는 건 옳은 말일지도 모른다.
(흐음~. 역시 전부터 생각했는데, 실은 메이드가 취향이지?)
‘그런 거 아니야.’
에밀리의 놀림과 달리 순수하게 나는 새로 온 시종의 유용성에 대해 극찬하는 중이다.
다크 엘프. 키르실아울리엔.
그녀가 온 뒤로 내 생활이 꽤 편리해졌으니까.
‘뭣보다 새삼 깨달았어. 역시 메이드를 두는 건 좋다고.’
(역시 좋아하는 거네.)
‘당연하잖아.’
(……부정도 안 하네.)
에밀리는 다소 꺼림직해하는 반응이지만, 그것은 종족적인 관념의 차이겠지.
아무래도 인간의 생활에 대해 다소 무지한 악마니까 그 유용성을 모르는 거야.
뭐, 다소 그 인선이 독특했다는 것은 사실이나 적어도 시종의 유용성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에밀리에게 그것에 대해서 열심히 열변을 토하며 흑마법 클래스의 기숙사로 돌아오니.
딱 도착하기가 무섭게 현관문이 열리며 키르실아울리엔이 나를 맞이한다.
“다녀오셨습니까. 시안 님.”
“키르실, 딱 맞춰 알아챘네. ……설마 기다리고 있엇던 건 아니지?”
“귀가 시간 정도는 파악하고 있습니다. 조금 늦으셨지만, 예상 범위 내였고요.”
“아, 친구랑 조금 이야기할 게 있어서 말이야.”
“아닐라 스윈 님 말씀이시군요. 예. 알고 있습니다.”
“……응? 걔랑 만난다고 이야기했던가?”
뭐, 아무래도 상관없나.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는 키르실의 뒤를 따라 기숙사 안으로 들어왔다.
“그럼 옷을 갈아입으시는 것을 돕겠습니다.”
“아니, 그러지 않아도 교복쯤은 알아서…….”
“도와드리겠습니다.”
“됐다니까.”
어쩐지 쫄래쫄래 쫓아와서는 묘한 압박감을 발하며 내 옷깃에 손을 댄다.
가까스로 말려서 일단은 내려 보냈다.
“성실하다고 해야 할까. 이상하게 열정적이란 말이지.”
(그런 의미일까. ……이 누나가 보기에는.)
“보기에는?”
(아니, 아무것도 아니란다.)
지적하지 않는 게 즐겁겠다며 에밀리가 시치미를 뗀다.
그럼 중요한 일은 아니겠지.
갈아입고 나오니, 이미 식사 준비가 다 되었는지 바로 키르실과 다시 마주쳤다.
“식사는 준비되었습니다. 방으로 가져다 드릴까요? 아니면…….”
“식탁에서 먹을게.”
“예.”
바로 준비된 음식을 먹으며 나는 묘한 만족감에 고개를 끄덕였다.
뭐, 평범한 스튜와 빵 그리고 훈제 고기를 조금 썰어 낸 것뿐이다.
그렇지만 수업이 바쁠 때나 아이템을 만드느라 정신이 없을 때는 여기서 밥을 먹기 참 힘들었지.
보통은 바깥에서 먹거나 혹은 미리 챙겨 둔 보존식으로 때우든가.
특히 최근에는 아카데미 생활에 매너리즘이 생기면서 그런 경향이 더욱 강해졌다.
원래 자취란 게 시간이 지날수록 식사는 대충대충 때우는 법이니까.
“어떻습니까?”
“몇 번을 말하지만, 불만은 없어.”
“필요한 게 있으시다면 미리 말씀을 해 주시면 바로 준비할 수 있습니다만.”
“뭐, 이 정도로도 충분해. 애초에 사치 부리는 성격도 아니고.”
빈말은 아니었다.
나 혼자 흑마법 클래스 기숙사에서 지낼 때는 평범하게 챙겨 먹으며 지내는 것도 힘든 일이었으니.
“그것보다 조금 힘을 빼도 상관은 없거든.”
“그럴 수는 없습니다. 우선은 이것이 제 본분이니.”
키르실은 단호하게 말한다.
그녀의 주된 일은 내 뒷바라지. 그리고 현재 내가 지내고 있는 이 기숙사의 관리.
일이 적다고는 말 못 하겠는데.
“시안 님을 돌보는 일이 다소 손이 덜 가 문제는 없습니다.”
“하긴, 굳이 날 따라다니면서 뒷바라지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렇게 하는 편이 낫지 않습니까.”
“그 정도는 아니야.”
뭐, 정말로 자기 옷도 못 갈아입는 도련님, 아가씨가 없는 건 아니겠지만. 나는 귀족 작위를 얻어도 그 흉내는 차마 못 내겠다.
(하긴, 시안이 바라는 건 입혀 주는 쪽은 아니니까. 그 반대지?)
‘또, 또 쓸데없는 소릴.’
악마의 말은 그냥 흘려듣자. 착한 아이가 들으면 안 되는 말이잖아.
“그 외에 시안 님께서 외출하신 동안 몇 분에게서 온 서신이 있습니다만.”
“어디~.”
식사를 하면서 나는 그녀가 맡아 둔 편지들을 확인했다.
대부분이 별 볼 일 없는 용건들.
“읽어 볼 필요도 없겠어.”
나는 코웃음을 치며 그것들을 바로 태워 버렸다.
“그래도 괜찮습니까?”
“어차피 시답잖은 권유겠지.”
이름도 모르는 이들의 용건은 대부분 필요 없었다.
혹여 중요 인물에 관해서는 키르실에게 미리 언질을 주었으니 괜찮다.
“…….”
더는 특이 사항이 없겠다 싶었는데, 어쩐지 키르실의 시선이 내 쪽에 꽂혀 떨어지지 않는다.
“응? 아직 무슨 일 있어?”
“……그건 아닙니다만, 잠시 실례를.”
마치 신경이 쓰여서 더는 못 참겠다는 듯 그녀가 갑자기 다가와서 내 옷매무새를 만져 준다.
“역시 조금 흐트러졌습니다. 제가 도와드리는 편이 나았을 거 같습니다만.”
“……괜찮대도. 뭐, 기숙사 안인데 어때?”
내가 애도 아니고.
“거기다 음식을 흘리시는 것 같으니 필요하시다면 제가 식사를 도와드리는 것도…….”
“그건 정말로 괜찮습니다. 키르실 씨.”
어린애라도 이 정도로 수발을 들지는 않을 것 같은데.
직무에 헌신적인 것은 좋지만, 아무리 그래도 부담스럽지 않을까.
정확히는 내 수치심이.
“그 전에 이거 평범한 거냐? 보통 이런 거까지 맡겨?”
“그렇다고 생각합니다만.”
키르실은 한 치의 의문도 없다는 듯 말했다.
“제 본분은 오로지 시안 님의 시중을 드는 것. 그러니 당연한 일입니다.”
“당연해?”
“예, 오로지 시안 님께서 정진하시는 데 집중하도록 돕는 게 제 일이니까요.”
* * *
이럴 줄 알았으면, 엘시아에게 귀족 자제가 시종을 대하는 법이라도 물어 둘 걸 그랬나.
아니, 물을 필요도 없겠지.
적어도 엘시아나 다른 아이들의 수발을 드는 시종들도 저런 느낌은 아니었다.
“명백하게 과한 거 맞지 않아?”
“어머, 싫지 않으면서 그런 말을 하는 거니.”
식사 후 계속 쫓아다니며 무언가 챙겨 주려고 하는 키르실에게서 나는 반쯤 도주하다시피 목욕을 하려고 욕실에 틀어박혔다.
“챙겨 준다기보다는 거의 감시라도 당하는 느낌이었거든?”
그렇게 욕탕 속에서 말하고 있자니 어느새 제멋대로 나온 에밀리가 내게 달라붙은 채로 대꾸한다.
“별일이네. 시안, 네가 사양을 다 하고. 아, 혹시 들이대는 쪽에 약한 거니?”
“그것도 때에 따라서 다릅니다만.”
따지자면, 합의냐 일방적이냐의 차이인가.
사실 어느 쪽도 싫은 건 아닌가.
“내심 즐거운 모양이네. 그럼 이 누나도 앞으로 그런 방향으로 생각해야 할까.”
“넌 이미 차고 넘치니까 지금 그대로 있어 주세요.”
시키지도 않았는데 멋대로 알몸으로 부대끼는 녀석이 뭘 더 막 나간다는 걸까.
하긴, 이제 사람도 늘었으니 이 악마한테도 자중을 시켜야 하는 게 아닌가.
행여나 또 쓸데없는 오해라도 사면…….
“과연, 이쪽은 괜찮으신가 보군요. ……그렇다면 바로 시중을 들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만.”
‘그래, 그래.’라고 멋대로 고개를 끄덕일 뻔한 나는 잠시 멈칫했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부터일까, 왠지 모르겠지만 등 뒤에 키르실이 있었다.
“왜 여기 녀석들은 한눈을 팔면 제멋대로 들어와 있지?”
“시종이니까요.”
“사역마니까.”
사역마는 제쳐 두고 시종은 좀 아니지 않나.
“용건이 있으면 밖에서 전해도 되잖아.”
“아뇨. 이것이 용건이기에. 지금이 아니면 안 됩니다.”
그렇게 말하며 키르실은 뭔가 척척 내려놓는다. 비누라든가 향유라든가 그 외에 여러 가지들.
까놓고 말해 씻겨 주기 위한 것들.
“딱히 필요 없는데.”
“품위 유지를 위해서이니 역시 이 단계부터 돌보아 드리는 게 가장 확실하다고 생각했습니다만.”
“……마음대로 하셔.”
여기서 튀어 봐야 얼간이 소리밖에 듣지 않겠지.
그래, 도량이다.
마음대로 하라는 승낙의 뜻을 받아들인 키르실이 나를 씻기기 시작한다.
“흐응~, 나도 도와줄까?”
“그럼 악마님께서는 시안 님을 잡아 주시지 않겠습니까.”
“……도망 안 간다니까.”
거기다 무슨 재미에서인지 에밀리도 덩달아서 거들고 있고.
욕실에서 시종과 사역마에게 목욕 시중을 받는 나.
그래, 확실히 출세하긴 했네.
뭐, 한 가지 깨달은 점이 있다.
이 지경까지 되면 뭔가 씻겨지는 리트리버가 된 기분에 가깝구나, 하는 걸.
‘……키르실아울리엔.’
……그리고.
그녀의 헌신적인 언행과 달리 그 안에 숨겨진 차가운 시선도.
내가 모를 리가 없다.
‘역시 감시하는 쪽에 가까운가. ……목적은 내가 아는 그대로인가?’
일단 지금은 모르는 척했다.
아직은 때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