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만렙 악마 소환함-250화 (250/389)

제250화

250화

간밤의 소동은 역시나 조용히 넘어갈 리 없었다.

아카데미 내에서도 금악룡의 출현을 목격한 학생들이 어제 목격한 것에 대해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으니.

“어제 그거 봤냐?”

“분명히 드래곤이었지?”

“드래곤이 흑마법 길드를 무너트렸다는데.”

소문이 빨리 퍼지는군.

뭔가 묻고 싶은 시선들을 내가 받아치듯 흘겨보는 것으로 내쫓았다.

지금은 사사로이 떠들 마음은 없다.

기숙사에 곧바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예의 아이템을 꺼내어서 다시 확인했다.

《흑서(1/2)》

《해당 아이템은 파괴할 수 없습니다.》

“칫. 역시 안 되나.”

마법으로 불태워도 단검으로 찍어도 이 반쪽짜리 책은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

(그거 없애고 싶니?)

“이게 제일 확실한 방법인데. 아무래도 어림도 없을 거 같아.”

4장의 메인 아이템.

이게 적의 손에 넘어가면 끝장이기에 차라리 없애 버리고 싶지만 쉽지는 않은 모양이다.

“뭐, 뺏기지 않으면 그만이니까.”

다시 책을 숨기듯 가방에 넣었다. 이것만 볼 시간은 없으니까.

조금 기다리자 기숙사에 손님이 찾아왔다.

황궁에서 보낸 사람.

용건은 어제 에드리올이 말한 것처럼 나를 데리러 온 거겠지.

* * *

어제 일에 대해 황제는 내게 말해둘 것이 있는 모양이다.

인기척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알현실로 들어오니 옥좌 앞을 가린 장막 너머로 황제가 먼저 말을 꺼냈다.

“참으로 기구한 팔자구나. ……설마 이런 일로 네 녀석을 급히 불러야 할 줄이야.”

골치 아프다는 듯 말투에서 웃음기가 사라져 있었다.

다크 엘프들의 봉기. 그리고 금악룡의 출현은 황제가 벌인 수작은 아니라는 것.

참으로 골치 아프시겠지.

“녀석들이 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짐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터져 나오는 것은 조금은 뒤의 일이라고 여겼거늘.”

“역시 저한테 키르실을 시종으로 맡긴 건 그것을 위해서였습니까?”

키르실을 감화시켜서 다크 엘프들을 설득할 기반을 기대했던 것.

뭐, 알고 있던 사실이다.

“일이 꼬였군요.”

“이번만큼은 네 녀석을 나무라지 않을 것이다. ……짐의 판단이 안일했다.”

황제조차도 난처함을 드러낼 정도의 상황.

“금악룡이 그렇게 위험합니까?”

“해치울 수는 있을 것이다. 제국은 그렇게 나약하지 않다. ……하지만.”

“큰 피해를 감수해야겠죠.”

제도의 반절은 궤멸. 그것은 나도 이미 확신하고 있는 바.

거기다 위협 요소는 그들뿐만이 아니기에 금악룡에만 총력을 쏟아붓고 싶진 않겠지.

적은 하나뿐이 아니니까.

“설마 지금 이렇게 저를 부르신 이유가 저더러 그 망할 금악룡을 어떻게 하라는 뜻은 아니시겠죠?”

“할 수 있느냐?”

할 수는 있다.

마음만 먹으면 계획을 세울 수 있다.

그러나 등신이 아니고서야 그걸 먼저 말하겠냐.

물론 회유라면 조건에 따라서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르는 일.

“농담이다. 네 녀석에게 처리를 일임할 생각 따윈 없다.”

그러나 황제는 이리 말한 것이다.

“예?”

“말하지 않았느냐. 짐의 제국은 약하지 않다고.”

그건 그렇겠지.

“그 반대다. 지금부터 네 녀석에게 그것에 관여하지 말라고 명하고자 부른 것이다.”

“오히려 저를 말리겠다고 하신 것입니까?”

“당연하지. ……이미 그 검은 놈이 남긴 것을 반절 확보했으렷다.”

흑서의 존재도 이미 들켰다.

놀랄 일은 아니었다. 어지간한 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파악하는 것은 쉬울 테니.

어쩌면 흑마법 길드 내에도 황제의 끄나풀이 있는지도 모르고.

거기다 애초에 숨길 생각도 없었다.

“흑서라면 이것이군요.”

나는 주저 없이 흑서의 반쪽을 보여 주었다.

“……용케도 찾았구나.”

“어려울 건 없었습니다. 일정 이상의 재주만 있으면 길드 내에서 이게 숨겨진 곳을 찾는 건 일도 아니었으니까요.”

뭐, 정말로 별것 아니었지.

기껏해야 6서클 이상의 재능이 필요한 정도? 그게 아니면 이 책의 존재감을 감지하지도 못했을 테니.

거기다 편집광적으로 느껴질 정도의 지나친 보안을 에밀리가 반칙처럼 뚫어 버렸고.

“반대로 말하자면, 지금까지 그것을 찾아낼 정도의 흑마법사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건 참 슬프군요.”

그리고 흑서를 언급한다는 것은 당연히 황제도 다크 엘프들이 노리는 것이 이것이라는 사실을 안다는 뜻.

“그 책을 어쩌겠느냐?”

“바라신다면 제국에 반납하겠습니다만.”

“흥, 필요 없다. 알지 않느냐? 그 책은 네놈들 외에는 종이 쪼가리 정도의 가치조차 없다.”

“……그렇겠군요.”

“그것에 어떤 지식이 기록되었는지 아느냐?”

“어느 정도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숨김없이 인정했다.

황제는 굳이 상세히 캐묻지 않았다.

“신통한 놈이군. ……좋다. 그렇다면 네놈이 제대로 사수하도록.”

가져도 좋다고 인정받은 셈.

굳이 따지자면 황제는 정말로 이 책에 관심이 없다고 해야 맞는 말이겠지만.

“그 흑서 또한 짐에게는 골칫거리였다. ……본래 짐의 의도는 네놈이 차근차근 그것을 찾도록 만들 셈이었거늘.”

“아하…….”

흑마법사들을 내게 일임하고 그 과정에서 이것의 존재를 눈치채게 해서 이용해 먹을 셈이었을까.

본의 아니게 엿 먹인 셈. 꼴좋군.

“불만이라면 닐버스, 그 다크 엘프에게 말씀하셨으면 합니다.”

“……닐버스. 그래, 기억에 있다. 나름 돼먹은 녀석이라고 여겼거늘.”

“그자가 남은 반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만.”

나도 묻고 싶은 것.

“뭐냐?”

“남은 흑서의 반은 황실에서 관리하던 게 아닐까 하고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흐음.”

황제가 보기 드물게 침묵한다. 놀란 것인가.

“그것을 왜 그 다크 엘프가 들고 다니는 것입니까?”

“짐의 소행이라고 여기느냐?”

“아뇨. 적어도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현시점에서 황제는 무관하다고 확신했다.

그런 남은 건…….

“의심스러운 건 마탑주. 혹은 그 외의 누군가.”

“짐도 비슷한 확신을 갖고 있다.”

그런데도 마탑주를 불러내어 그 사실을 추궁하지 않는다.

자칫하면 다크 엘프와 마탑 혹은 그 외에 무언가까지 껴서 전면전을 치러야 할 테니까.

황제의 행동에는 한 가지 전제가 깔려 있다.

그는 개인을 골리거나 고약한 심보를 드러내긴 하지만, 딱 하나 피하는 것이 있었다.

다수. 그것도 이름 모를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될 수 있는 사태.

“적어도 지금 탑에 대한 질책은 녀석들이 숨기고 있던 이빨을 드러내는 계기가 될 테니.”

이미 탑이 반역 의사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알고 있으니.

“참으로 쉽지 않군. ……특히나 근래 들어 더욱 짐의 뜻대로 되지 않는 자들이 늘었다.”

권력자의 푸념치고는 묘한 뉘앙스로 느껴지는 말.

“시안 알케우스, 확실히 말해 두마. 네 녀석이 대응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면 다크 엘프에 대한 대응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이미 준비에 들어갔다. ……녀석들이 행동하는 것에 맞춰 정리할 것이다.”

황실이 직접 주관하여 다크 엘프들을 토벌할 것이다.

아직 정식으로 토벌령이 떨어진 것은 아니나, 그것 또한 시간문제.

“이미 금악룡을 목격한 이들이 적지 않다. 제국은 행동으로 규율을 세워야겠지.”

“일리가 있습니다. ……그럼 키르실에 대해서는?”

황제는 잠시 침묵한다.

“후환을 남길 수는 없겠지.”

“그건 받아들이고 싶지 않군요.”

“호오? 마음에 든 것이냐, 고것이?”

“제 집에서 일할 깜냥이 있는 인재를 찾는 것이 워낙 힘들어서 말입니다.”

“그렇다면 눈 감아 주겠지만, 과연 동의할까? 고것이?”

“……없겠죠.”

아니라고 말할 순 없었다.

키르실은 다크 엘프들의 계획에 동의하진 않았지만, 그들이 파멸하는 것을 마치 남의 일처럼 방관할 성격은 못 되리라.

“짐이 네 녀석의 행동을 금할 생각은 없다만, 무모한 짓은 삼가는 게 좋지 않겠느냐.”

“생각은 해 보겠습니다.”

“무모한 애송이 같으니…….”

말해 봐야 듣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한 것인지 황제가 그만 혀를 찬다.

“네놈에게 맡기려던 것은 고약한 도마뱀의 처리 따위가 아니다.”

“……그렇다면?”

“보다 중요한 과업을 맡길 그릇이 되는지 그것을 알고 싶었지.”

황제가 화제를 바꾼다.

내 생각을 돌리기 위해 다른 정보를 제공하는 게 좋다고 여긴 것인가.

“놀라지 않는군. 혹여 마탑주 혹은 그 다크 엘프에게서 들었느냐?”

“아뇨. 적어도 황제 폐하에 관한 것은 굳이 캐묻지도 않았습니다.”

“어째서냐? 관심도 없는 것이냐?”

관심이 필요하신가, 이 황제는?

“아뇨. ……대강 짐작은 하고 있습니다.”

그 순간.

알현실의 온도가 내려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물리적인 온도가 내려간 건 아니었다.

섬뜩한 무언가가 기척을 낸 것에 가깝다고 해야겠지.

발원지는 장막 안.

뭐, 나도 조심성 없이 떠벌린 것은 아니다.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했다.

이 시점에서 찔러 보아야 관여하기도 더욱 쉬울 테니.

“언제부터냐?”

“최근입니다.”

“……멋대로 그 흑서까지 발견한 놈이니. 빠르든 늦든 인가.”

의외로 그 섬뜩한 기운이 가라앉는다.

“그렇다면 이것 또한 알고 있느냐? 시안 알케우스?”

“폐하께서 곧 다음 후계에게 옥좌를. ……아니, 그 너머의 것을 물려주실 의향이라는 것 말씀이십니까?”

미리 선수 쳐서 답을 말하는 순간이었다.

쩌적.

공기 중에 들리는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허공에서 투명한 수정의 칼날이 무수히 뻗어 자라며 나를 아슬아슬하게 비껴간다.

이번에는 위험하다 여겼는지 에밀리가 염화로 타박했다.

(시안! 무모하잖니!)

‘상관없어. 어차피 못 찌를 건 알고 있어.’

그 정도로 경솔한 자는 아니다.

하물며 나를 처리하는 게 지금의 제국에 불이익이 될 거라는 생각이 있다면 절대 이것만으로 해하지 않는다.

이미 계산을 해 두고 한 발언이다.

“좋다. 거기까지 추측한 것이냐. 그렇다면 짐도 더는 꺼릴 게 없겠구나.”

“…….”

“좋은 기회다. 영광으로 알아라. 네 녀석의 추측에 대한 답을 보여 주마.”

옥좌를 가리고 있는 장막이 불탄다.

모습을 보여 줄 심산이다.

‘황제의 모습이라…….’

그의 얼굴을 아는 자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제국 내에서도 황제의 모습을 본 자는 대표적으로 재상과 그의 가장 충성적인 기사 에드리올. 그리고 그 외에 몇 명 정도.

아, 황족들도 있군. 황제의 자식들은 틀림없이 알고 있으니까.

그의 얼굴을 보아도 절대 반역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이들에게만 얼굴을 보인다.

그렇다면 나는?

‘아마 내게는 다른 생각으로 보인 것이겠지만.’

한숨을 쉬며 나는 사라진 장막 너머의 옥좌를 응시했다.

(……놀랐네. 직접 보기 전까지 누나도 저거에 대해서는 눈치 못 챘어.)

‘그야 황제 본인이 온 힘을 다해 숨긴 거니까. 아마 마왕이 직접 행차해도 알아차리지 못할 거야.’

물론 세상에 절대적인 비밀은 없기에 다른 경로로 그 정보가 새어 나가는 때가 있긴 하지만.

“…….”

“역시 놀라지 않는군. 쯧, 그것은 조금 마음에 들지 않는구나.”

“다른 분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걸작이었지. 에드리올조차도 눈을 부릅뜨고 식은땀을 흘렸다.”

그럴 수밖에.

최강의 기사의 담력조차도 서늘하게 만드는 것이 황제의 얼굴.

옥좌에 앉은 것은 한 사람의 청년이었다.

외견상의 나이는 아마 20대 후반 정도.

의복과 왕관은 틀림없이 그가 황제임을 증명해 주었다.

다만.

(생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네. 저건 죽은 자야.)

에밀리의 말대로다.

그것은 시신이다.

하지만 그 시신이 지금 웃고 떠들고 있는 게 아닌가.

무엇보다 지금까지 대화한 황제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것 또한 저 시신.

“짐이야말로 제국의 황제다.”

단순히 지금의 황제라는 뜻만은 아니겠지.

제국은 짧지 않은 역사 속에서 숱한 황제가 집권해 왔다.

대외적으로 그 혈통은 끊긴 적이 없었고, 황제의 핏줄은 굳건하다고 알려져 있다.

‘전부 거짓말.’

진실은 하나.

건국 시초부터 현시점까지 제국을 통솔한 것은 오로지 하나의 존재뿐이었다.

제국은 사실 그 역사의 대부분을 단 하나의 독재자가 차지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 시신에 깃든 존재가 폐하인 것이군요.”

“그렇다. 짐만이 제국의 황제였으니.”

고유한 육체를 가지지 않은 존재.

대대로 역대 황제들의 시신에 깃들어서 제국을 통솔해 온 정신적인 존재.

그것이 저 성질 고약한 지배자의 정체.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