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7화
257화
“지혜의 숲이 금악룡의 알을 보관하면서 내내 가만히 있었던 것만은 아니야.”
나름 그 괴물의 실체를 알기 위해서 머리통깨나 굴려야 했다.
물질이나 마법적인 해석.
더 나아가서 아예 깨 보려는 구상까지 한 모양이다.
“해석 쪽을 위주로 진행해 본 모양인데.”
“그렇긴 하겠네. 알을 깼다가 그 드래곤이 숲 상공에 나타나면…….”
“나타나면?”
미셀은 내 물음에 갸웃거리더니.
“재밌겠네?”
“……미쳤냐?”
이러니 숲의 노인들이 뒷목을 잡는 거다, 이 사고 뭉치야.
‘실은 그게 해결법 중 하나이지만.’
막 부활한 금악룡은 허물에서 벗어난 곤충처럼 물렁물렁한 상태라고 하니까.
설정상 그 상태라면 어렵지 않게 없앨 수 있다지.
이미 지나간 이야기에 불과한 일이다.
나야 게임 설정 때문에 답을 알아도 여기 사람들이 그런 미친 짓을 할 리가 없었으니.
“하여튼 지금의 금악룡은 이미 성체고……. 전투력은 과거의 기록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절정기겠지.”
지금의 내겐 드래곤 브레스 한 방을 받아치는 것도 고작이었다.
“시안, 만약 이대로 싸우면 어떻게 될까?”
미셀이 조금은 궁금하다는 듯 묻는다.
“신중하게 싸우면 어떻게든 이기겠지. ……단, 그 과정이 더럽게 힘들겠지만.”
적어도 게임 플레이 경험이나 내가 공략에 참조하기 위해 그 시절 보았던 영상대로라면 약점을 쓰지 않고 때려잡는 플레이도 존재했다.
흔히 말하는 숟가락 살인마 플레이.
‘그 미친 짓을 여기서 시도할 수는 없지. 딱히 하고 싶지도 않고.’
황제가 말한 것처럼 토벌은 불가능하지 않아도 그로 인한 피해와 영향은 각오해야 할 거다.
그런 괴물을 쉬이 잡으라고 있는 게 공략이다.
뭐, 약점 안 찌르고 잡는 뽕에 취한 녀석들은 그런 플레이는 인정 못 한다고 단호하게 말하겠지만.
……알게 뭐냐.
나는 공략을 쓸 거다.
그 외의 것도 쓸 수 있는 건 다 쓸 거고.
“하여튼, 그 지식 덕에 공략 방법은 어렵지 않게 만들어 낼 수 있어.”
정확히는 필요한 것들의 레시피.
“……우선은 아이템부터 만든다.”
“무기야?”
“비슷해.”
정확히는 금악룡에게 통할 특수 아이템.
나는 미셀에게 완성된 도면을 보여 주고 그것을 이해하며 연신 감탄을 터트리는 그녀의 협조를 얻어서 아이템의 제작에 들어갔다.
《봉룡의 말뚝》
《해당 아이템은 금악룡 토벌전에서만 유효한 전용 아이템입니다.》
완성된 말뚝 다섯 개를 공방 벽에 세워 놓았다.
금색의 말뚝.
대충 성인 남성의 키 정도 되는 말뚝.
“이게 무기? 일단 도면은 봤는데……. 역시 실물로 보니까 수수하네.”
“금악룡 전용이야. 다른 몬스터한테 던져 봐야 별 효과는 없겠지.”
그러나 그 금색의 용에게는 놀랄 만큼의 효력을 발휘할 것이다.
“이 말뚝은 간단히 녀석의 비늘을 뚫어. 그리고 힘도 일시적으로 제한하는 효과가 있고.”
“그게 가능한 게……. 흐응~, 역시 이 소재구나.”
미셀이 흥미롭다는 듯 재료 중에서 병에 담긴 금색의 가루를 눈여겨본다.
“금악룡의 알껍데기지? 용케 확보했네.”
“내가 한 거 아니야. 알을 도난당한 후에 숲의 마법사들이 추격해서 어떻게든 버려진 껍데기를 회수한 모양이더라고.”
그건 참으로 다행이었다.
만약 없었다면 짐작 가는 지역을 내가 직접 돌아다니며 찾아야 했으니.
“같은 성질의 소재를 사용해서 비늘의 방어력이 작용하지 않는 거네. 용케도 잘 생각했어.”
“이론은 그런 모양이야.”
뭐, 내 시점에서는 이게 게임 당시의 레시피였으니까 써먹는 거지만.
안다면 만들어 내는 건 어렵지 않다.
“그리고 이게 끝이 아니지.”
완성된 말뚝을 쓰다듬으며 씩 웃는다.
사실 이게 있다고 해서 공략 난이도가 바닥으로 추락하는 정도까지는 되지 않는다.
그저 키보드를 때려 부수고 싶은 괴물이 그나마 키보드를 던지지는 않을 정도는 되는구나 싶은 수준.
애당초 다섯 개 정도로는 패턴 몇 개를 간신히 넘기는 게 고작이었다.
‘하지만 그건 다섯 개밖에 못 만들 때의 이야기잖아?’
게임에서는 소지 가능한 말뚝은 다섯 개가 끝이었다.
우선은 시간이 부족하다는 핑계.
그리고 게임이기에 어쩔 수 없이 정해 둔 밸런스.
하지만 지금은 그걸 신경 쓸 필요가 없지. 누가 뭐라는 것도 아니고.
“얼마나 양산할 수 있을 거 같아, 미셀?”
“후후……. 이미 시안, 네가 제안한 레시피는 숙지했어. 이론도 완벽하고. 아직 시일이 남았으니까 며칠만 더 있으면 개량도 되지 않을까.”
개량의 관점은 위력을 강화하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효과는 조금 떨어져도 상관없었다.
“시안, 네가 말하는 양산화도 가능할지 몰라.”
“그럼 더할 나위 없네.”
게임이 아니기에 그렇다.
무엇보다 이번에는 기한이 충분했다.
수십, 아니, 수백 개만 만들어 낼 수 있게 되면 승산이 더욱 완벽해지는 법.
“가능한 제작 난이도를 낮춰서 숲의 마법사들의 일손을 빌릴 수 있는 정도까지는 했으면 좋겠어.”
“시안, 네가 만들기 귀찮아서 그런 거지?”
“정답.”
미셀에게서 가능하다는 답이 나왔으니 낙담할 일은 없겠지.
“……그리고 두 번째 수단 말인데.”
“아~, 그거?”
도면을 개량할 구상이 잠시 떠올랐는데, 고개를 끄덕이던 미셀이 갸웃거린다.
아이템은 확보했다.
그다음에는 스킬.
정확히는 대금악룡 마법의 완성.
‘실은 이게 가장 중요한데…….’
아이템 외에도 녀석을 공략하는 데 큰 힘이 될 마법 한 종류가 존재한다.
다만 조건이 워낙 성가시고 그 존재 또한 알아차리기 어려워서 자력으로 밝혀 낸 유저가 거의 없었다지.
“솔직히 시안이 말한 이론은 워낙 추상적이라서 뜬금없다고 생각했어.”
“안 되면 별수 없어. 일단은 가능성만 생각하고 제안한 거야.”
그리고 그 조건 중 하나는 특정 인물의 조력을 받아야 하는 점이 성가셨다.
미셀 위스티닐.
그녀를 아군으로 만들어 지혜의 숲의 입장까지 이뤄 낸 후에 연구를 시켜야 한다.
하물며 그것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미셀 본인의 레벨이나 마법적 소양의 성장이 미비하다면 불가능한 일.
나도 이것만큼은 반쯤은 찔러 보자는 속셈이었다.
“부탁이니 성공해 줘.”
“발상은 흥미로우니까 가능한 해 보겠는데.”
딱 잘라서 아니라고 하지 않는 걸 보면 아마 실현 가능성이 크리라.
“있잖아, 시안. 순조로운데 그냥 준비되는 대로 바로 돌격하면 되는 거 아니야?”
“말했지만, 움직일 날은 정해 뒀어. 설사 미리 준비가 끝나도 어지간하면 때를 바꾸지 않을 거야.”
나는 연구가 시작되기 전에 미셀을 포함하여 일행들에게 미리 이것만은 말해 두었다.
목표는 우리가 움직일 날은 닐버스가 선언한 기한의 최종일.
30일째가 되는 날.
정확히는 토벌대가 움직이기 바로 전에 선수를 쳐서 끝내 버릴 생각을 하고 있다.
“신중하자는 거야? 그래도 지나친데.”
“서두르는 건 내 방식이 아니야.”
……뭐, 기한을 고집할 마음은 없다.
상황이나 다른 조건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방침을 바꿀 것이다.
그리고 시간을 소요하는 또 하나의 이유.
“금악룡 대응 문제는 금방 해결되겠지만, 아마 또 하나는 의외로 시간이 걸릴지도 몰라.”
“또 하나라면? 아~, 시안 네 시종……. 그 다크 엘프 언니에 관한 거네.”
그쪽에 대해서는 미셀에게 대강의 진행 방향만 말해 주었기에 아마 잘 모를 것이다.
또 하나 진행하는 공략 수단.
다크 엘프에 대한 대응 문제.
“애먹는 거야?”
“그 정도까지는 아니야.”
유감스럽게도 그것의 완성 여부는 내가 어떻게 뭐라 할 수가 없었다.
정확히는 방법을 짜 줄 수 있지만, 내가 완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일단은 에밀리랑 그리고…….”
“그리고?”
“아니, 뭐 가능한 조언해 줄 만한 녀석들이 붙어서 봐주는 모양이니 걱정은 없지만.”
다크 엘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들이 안고 있는 육체의 부작용.
그 해결책을 찾지 않으면 봉기한 다크 엘프들을 회유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했다.
“어려운 걸 고집하네.”
그런 내 설명을 들은 미셀은 꽤 냉정하게 말한다.
“어려운 건가?”
“상세한 건 들은 적은 없지만 아마 시안 너니까 확신하는데, 반대는 가능하지?”
“……맞아.”
다크 엘프의 전멸.
전부 토벌하는 그것이라면 더욱 쉽게 방법을 확보할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맡길 것도 없이 내 손으로도 할 수 있다.
……실은 이미 습득해 두었고.
다만 그 사실을 아는 것은 내게 늘 붙어 있는 에밀리 정도뿐.
“뭐야~ 그럼 그걸 하면 될 텐데.”
“그런 부분에서는 잔혹하게 말하는군. 미셀.”
“마법사에게 중요한 건 가능한지 아닌지, 지금 할 수 있는지 아닌지, 그게 최적인지 아닌지를 가늠하는 사고야.”
정은 필요 없다.
마법사는 냉정하다. 그리고 일류일수록 더욱 잔혹하다.
“아마 나였다면 버리려고 했을 거야.”
“하지만 나라면 버리지 않지.”
나는 주저 없이 대꾸했다.
“내가 지향하는 건 무지막지하게 유능한 삼류 마법사이걸랑. ……그리고 이쪽이 장기적으로 보면 이득일 거야.”
단순한 연민 때문은 아니었다.
“옳은 걸 선택하는 게 맞는 거야.”
내가 다크 엘프에게 그 밖의 선택지를 주도록 만들려고 애쓰는 것은 나름의 안목 때문이다.
길게 생각하면 이게 맞을 거야.
그 생각은 절대 흔들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게임에서도 그렇게 타협해 버린 것은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 장면이었으니까.
* * *
금악룡 공략 수단의 확보 과정은 순조롭기 짝이 없었다.
기한도 여유롭기에 한숨 돌려도 지장은 없을 것이다.
이제 다른 일에 신경 써도 되겠다 싶어서 나는 리치의 지하 공방으로 향했다.
그곳의 진행 상황을 때때로 체크하는 편이 좋을 거라고 여겼으니까.
“어디? 일은 순조롭…… 지는 않은 모양이군.”
지하 공방에 내려오자마자 그곳의 상황을 눈으로 확인한 나는 씁쓸한 듯 중얼거렸다.
마침 딱 한 차례 실험이 끝난 것인지 공방 내에서 이질적인 마기의 흐름이 몰아치다가 잠잠해진다.
“어머? 시안, 궁금해서 내려온 거니?”
“하하핫! 그래, 신경은 쓰이겠지. 유감이군. 아직은 좋은 결과를 말해 주기는 이르다.”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에밀리와 이론서를 몇 개나 허공에 띄운 채 계산 중이던 리치 테를로스가 동시에 내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앞에서 지친 듯이 숨을 몰아쉬고 있던 키르실이 간신히 고개를 들어 내 쪽을 본다.
“……시안 님, 하아……. 면목 없습니다.”
“채근하려고 내려온 건 아니야. 일단은 내가 제안한 거니까 직접 봐야 할 거 아니겠어.”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하며 나는 키르실의 상태를 훑어보았다.
기묘한 마기의 흐름은 멎었다.
정확히는 키르실의 몸에 달라붙어 있다가 떨어져 나가고 있다고 해야 하나.
비슷한 현상을 본 적이 있다.
“……흑괴. 아직 습득하기는 어려운 모양인가.”
“예.”
다크 엘프의 문제점.
산 자도 죽은 자도 아닌 특성을 이용하여 죽지 않는 육체를 주었으나 그 특성이 붕괴되어 괴물이나 다름없는 상태가 되는 현상.
다크 엘프 고유의 폭주 스킬.
흑괴.
“설명은 했지만, 너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 특성을 완성시킨 전례가 필요해.”
정확히는 폭주를 제어 혹은 방지하고.
더 나아가서 그 상태에 빠진 다크 엘프를 치유할 능력이 필요하다.
이론으로는 해답은 존재한다.
하지만 게임에서 그것은 미완성에 그치고 끝이 나야 했다.
“적어도 다크 엘프의 비술의 재구상은 어렵지 않았어.”
“비술의 재시술 역시 틀림없이 성공했다!”
테를로스가 자신 있게 말했다.
그리고 이론을 완성한 비술을 키르실에게 다시 시술한 것.
의외로 그녀는 순순히 동의했고. 지금은 시술이 끝난 뒤에 적응하기 위한 단계를 밟고 있다.
“이젠 성공했다는 증거가 필요해.”
키르실이 제대로 완성된 특성을 습득하는 것.
요컨대, 과거 시조가 미완에 그쳤던 다크 엘프의 완성을 여기서 이루어 냈다는 결과를 원했다.
게임에서는 중도에 포기했기에 다크 엘프들을 몰살하는 것으로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여기서는 반대로 타협하지 않고 성공하게 만들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