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0화
260화
36장. 사악한 용
“고작 드래곤 한 마리. 제국의 힘을 쓸 필요도 없지 않은가!”
아필리온 후작은 그렇게 외치면서 황실의 토벌대보다 먼저 금악룡을 칠 군대를 조직할 것을 지시했다.
“고작 그런 괴물 하나에 폐하의 심려를 끼칠 필요조차 없지.”
실상은 공로를 먼저 가로챌 욕심 때문이다.
“이 정도 소동을 일으킨 괴물과 주범을 처리한다면 우리 가문의 앞날은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겠지.”
거기다 황실 역시 섣부른 대응은 권하지 않는다고만 공표했을 뿐 엄격히 금지하지도 않았다.
“용기 있는 자가 공을 세우라는 뜻이다.”
멋대로 그리 판단한 그는 직접 가신들을 닦달하여 금악룡을 토벌하기 위한 부대를 급히 편성했다.
그가 중용하는 기사들과 마법사 그리고 영지의 사병들을 끌어모으고 그 역시 직접 검을 차고 나섰다.
거기다 고액의 보수를 약조하고 고용한 용병들까지.
약 5천의 규모.
“충분하고도 남지.”
과거에 드래곤은 결코 맞서지 말아야 할 재해와도 같은 취급을 받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그 괴물을 토벌한 사례가 늘어났고, 또한 그 사체를 연구하여 대략적인 공략법을 세우기에 이르렀다.
성체의 드래곤 한 마리를 사냥하는 데 필요한 병력은 약 2천 정도.
개체마다 다르긴 하지만, 흉악한 드래곤이라면 5천 정도면 충분하리라고 여겼다.
위험에 몸을 사리는 용병들도 후작이 내세운 토벌 계획을 듣고는 기꺼이 참전했으니.
“지켜보기나 해라, 겁쟁이 놈들.”
후작은 막 군대가 진군한 시점에서 승리를 확신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승리의 영광과 토벌 후 얻게 될 막대한 이득을 상상하며 그들은 거리낌 없이 금악룡의 모습이 보이는 곳까지 진군했다.
그런 오만한 자신감이 박살 난 것은 그들이 금악룡을 향해 첫 공격을 감행하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토벌대를 맞이한 것은 거대한 금색의 용. 마주치기만 해도 몸이 얼어붙을 것 같은 붉은 눈동자를 보았을 때 소리 없이 비명을 삼키는 자도 있었다.
“겁먹지 마라! 덩치에 겁먹을 필요는 없다!”
알려진 토벌 요령에 따라서 움직였다.
마법사들은 가능한 녀석의 시야를 가리고 또한 기동성을 빼앗기 위해 날개를 노리기 위해 마법을 사용했고.
장궁과 투석 등 마법 외의 수단도 갖추었다.
무엇보다 기사들과 용병들의 오러 역시 나름 대형 몬스터와의 싸움에 익숙한 녀석들로 골랐다.
“이기지 못할 리가 없다!”
겁먹을 필요 없다고 독려하며, 후작은 직접 전투를 지휘했다.
퍼부어지는 마법과 날아드는 바위.
그것이 먼저 금악룡을 향해 마구 쏟아진다.
어째서인지 금악룡은 토벌대의 공격을 피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냥 받아 내고 있었다.
“방심한 건가. ……아니면 멍청한 건가.”
얕잡아 보았다면 운이 좋았다. 후작은 히죽거리며 중얼거렸으나.
그의 입가에서 웃음기가 사라진 건 순식간이었다.
“놈은 얼마나 상처를 입었지?”
“……그, 그게.”
금악룡을 관측하던 마법사의 안색이 새하얗다.
“말해라.”
“사, 상처가 하나도…….”
돌아온 대답은 그의 기대와는 전혀 달랐다.
“비늘 하나, 날개의 피막 하나도 그을리지 않았습니다.”
“……뭐?”
믿기지 않는다.
토벌 계획은 면밀했다.
지금까지 연구된 모든 기록과 전례를 통틀어서 검증된 이론대로만 공략하였을 텐데.
그들의 공격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는 건가.
“마법으로 방어한 건가? 그렇다면 그것을 파훼하기 위한…….”
“놈은 마법을 쓰지 않았습니다.”
방어 마법을 깨기 위한 디스펠 수단을 사용하라고 지시하기도 전에 마법사는 외쳤다.
이해하였기에 더욱 공포에 질린 것이다.
방어할 가치도 없기에 꼼짝도 하지 않은 것이다.
“무슨 헛소리를! 뭔가 수를 쓴 것이겠지.”
후작은 혀를 차며 다른 방식을 지시하고자 하였다.
“그렇다면 녀석의 움직임부터 저해한다. 당장 그것을 위한 마법을…….”
그 순간이었다.
드디어 금악룡이 움직였다.
맹공에도 상처 하나 없이 버티고 있던 드래곤이 살며시 목을 흔든다.
마치 목청을 푸는 것처럼.
그런 우스울 정도로 실없는 행동에 누군가가 목소리를 내기 전에.
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금악룡은 괴성을 내지른다.
분노와 악의를 담은 듯한 드래곤의 포효가 일대를 쩌렁쩌렁 울리는 게 아닌가.
무기를 든 기사들은 간신히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고, 무심코 무기를 놓고 귀를 막은 자도 있었다.
“무슨 괴성을…….”
그러나 괴성이 전부가 아니었다.
괴성이 울리기가 무섭게 그들을 덮친 것은 기이한 충격파.
마치 심장을 북으로 때리는 것처럼 굉음이 울리면서 광풍이 한순간 무섭게 휘몰아치는 게 아닌가.
“으아아아악?! 거, 검이…….”
“마법이……. 나가지 않아…….”
끔찍한 혼란과 비명 소리.
기사와 용병들의 몸을 감싼 오러가 얼음이 녹듯이 떨어져 나가고.
마법을 캐스팅 중인 마법사들에게서 느껴지는 마나가 산산이 흩어진다.
마나를 다룰 수 없다.
“드래곤…… 피어.”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그 말을 간신히 들은 후작은 말도 안 된다며 부정하려 했다.
“헛소리 마라! 이런 힘일 리가…….”
분명 드래곤의 괴성에는 큰 힘이 담겨 있다고 한다.
전의를 꺾고 마나를 약하게 만든다고 하지.
드래곤의 감정은 인간이 지배하는 마나를 단숨에 빼앗아서 와해시킨다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광역적인 효과, 그것도 목소리가 그친 뒤에도 효과가 지속된다고는 알려지지 않는다.
“노, 놈의 포효는 생물뿐 아니라 일대에 존재하는 마나를 대부분 흩어낸 것 같습니다.”
부들부들 떨며 마법사는 간신히 이해한 현상을 설명했다.
“있을 수 없는 일…… 입니다.”
“기록이 틀렸다는 거냐!”
“분명 증명된 기록입니다! 하지만…… 평범한 드래곤이 아니라면…….”
그건 평범한 드래곤에 해당하는 것.
하물며 금악룡의 토벌 자료는 전해지지 않는다. 과거에 그런 괴물이 있고, 처치했다는 사실만 존재할 뿐.
“…….”
후작이 절망감을 느끼고 그만 입을 다문다.
그도 검을 쥐고 힘을 주지만, 오러를 다룰 때의 고양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나를 다룰 수 없었다.
“저것을 뛰어넘는 정신력……. 혹은 대응 수단이 없다면.”
“그럼 그것을…….”
준비하라고 해도 뭘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니, 할 수 있기나 한가?
그것을 깨달을 때 쿠웅! 발소리가 울린다.
금악룡이 움직인다.
히죽거리며 날아오지도 않은 채 일부러 느릿느릿 걷는다.
괴물이 여유를 부리며 인간을 비웃으면서 다가온다.
싸움이 아니라 그저 갖고 놀면서 짓밟을 수 있기에.
“퇴, 퇴각을……. 아니! 어떻게든 해라!”
도망치려고 해도 저것이 그걸 허용할 리 없었다.
그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이들이 살아남기 위해 허둥거리자 금악룡은 이제 그들을 본격적으로 몰살시키려던 순간이었다.
학살.
이미 그것이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는 순간.
콰아아앙!
폭음이 울렸다.
하지만 그것은 저 사악한 괴물이 인간들을 죽이는 소리가 아니었다.
반대로 저 드래곤의 몸통에서 폭발을 일으킨 소리.
누군가가 공격한 것이다.
“대체 누가?!”
물음에 답하지 않는 대신, 그들은 숨지 않고 차례로 모습을 드러내며 금악룡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아이들?”
아필리온 후작이 허무하다는 듯 말한 것은 의외라고 할 수 있는 자들의 출현 때문이다.
필로스 아카데미의 교복을 입고 있는 아이들.
그리고 용병들과 어디에 속하지 못한 마법사들 수백 명.
“어째서 아카데미의 학생들이?! 아니, 대체 어떻게?!”
뭔가 이상했다.
지금 마법을 저 아이들은 어떻게 발동시킨 것이지?
무엇보다 그게 왜 통하는 거지?
분명 그 생각을 한 사람은 한두 명이 아닐 것이다.
“저기 드래곤이 있어!”
“엄청나게 크지 않아?”
“괜찮아! 통했잖아! 시안 녀석이 말한 대로야.”
가장 기이한 것은 아이들이 전혀 겁먹지 않고 있다는 점.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흉흉한 기백을 발하면서 드래곤을 향해 덤비는 게 아닌가.
“무모한 짓을……. 아니, 그런데…….”
하지만 그 누구도 그 아이들을 말릴 수 없었다.
아니, 그럴 타이밍을 놓쳤다.
더욱 믿기지 않는 것을 봤기에.
“저놈이 뒷걸음질을 친다고?”
틀림없다.
어째서인지 금악룡은 지금 나타난 이들을 상대로 무엇을 감지한 것인지 뒷걸음질을 쳤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때 날아든 것은 금색의 말뚝들.
어지간한 마법은 죄다 무시하던 괴물이 그 말뚝을 보고는 피하고자 한 것이다.
말뚝은 너무나 허무할 정도로 금악룡의 비늘을 깨부수고 구멍을 뚫어 녀석의 피부에 파고든다.
“무슨 짓을……. 어떻게 저런 일을?!”
당장이라도 묻고 싶지만, 그런 짓을 해선 안 된다는 염치는 있었다.
무엇보다 후작의 가신이 급히 그를 데리고 후퇴를 시작했으므로.
그것만은 명백했다.
“누구의 사주인 것이냐…….”
* * *
나쁜 놈이 할 법한 짓은 참으로 뻔하지.
약속? 선언? 뭐야 그게?
토벌전을 준비하던 중 나는 당연히 닐버스가 모종의 이유로 기한 이전에 행동할 가능성을 떠올렸다.
‘아니, 그럼 대비해야 하는 거 아닌가?’
애초에 약속도 아니잖아.
나는 동의하지 않았다.
때에 따라서는 녀석이 행동하는 순간, 바로 칠 생각을 하자.
“……저들은 누구지?”
“보면 알잖아. 아카데미의 애들이랑 용병들……. 그리고 흑마법사 길드와 지혜의 숲의 마법사들이야.”
의외로 애먹은 것은 토벌전에 협력할 이들을 모으는 일이었다.
결국에는 체면이고 나발이고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간신히 끌어모았지.
용병들에게는 보수를.
지혜의 숲의 마법사들에게는 설득과 반쯤 강요를 해서 협조를 받아 내었다.
“불가능하다.”
닐버스가 절규하듯 부정했다.
녀석은 아마 지금 금악룡의 상황을 어떤 수단이든지 정보를 받아서 확인할 수 있을 터.
그렇기에 저렇듯 생생하게 느끼는 것이다.
나는 보지 않아도 확신할 수 있었다.
“금악룡이 개털리고 있지?”
“…….”
말 못 하는 거보니 순조롭나 보네.
“고작 삼류 용병과 애송이들……. 거기다 하위 마법사들일 터인데.”
싸움이 성립할 수 없겠지.
용병들은 가능한 보수로 끌어모은 이들.
아카데미의 애들도 재능이 있지만 미숙한 햇병아리.
지혜의 숲의 마법사들도 일정 이상의 고위 마법사는 바깥으로 나갈 수 없기에 3~4서클 정도의 녀석들밖에 끌어모으지 못했다.
흑마법 길드의 마법사들도 아직 멀었고.
그런데도 금악룡은 허무하게 패턴도 발동하지 못하고 흠씬 얻어맞고 있겠지.
안다, 알아.
그리고 당연하다.
“설마 내가 빈손으로 보낼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겠지?”
“우리조차도 애를 먹은 괴물이다. 이리도 허무하게.”
“그게 시대의 변화라는 거지. ……그 괴물은 이제는 목숨을 걸고 잡아야 할 놈이 아니라는 거야.”
뭐, 내가 반칙인 거겠지.
“이해합니다. 닐버스. 시안 님을 지켜본 저도 조금은 복잡한 기분이 들었으니까요.”
키르실 역시 그리 말하자, 닐버스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 과거의 괴물은 지금에 와서는 잡몹이나 다름없는 게 시대의 흐름이라는 거야.”
“이해할 수 없군. 그렇다고 해도 저들은 무엇을 믿고 저리 무모하게…….”
“아, 그거?”
무엇에 식겁했나 했더니 공략 수단을 얻었다고 해도 어째서 저들이 겁도 안 먹고 덤비는지 혼란스러웠던 건가.
그 해답 역시 너무나도 간단하기 그지없다.
음, 말해 주는 편이 좋겠군.
“용병들은 보수로 꼬드겼지.”
당연히 돈은 옳으니까. 뭐, 내 수완에 대한 신뢰와 설득도 먹혔고.
“숲의 마법사들은 뭐 어르신들이 잘 당부한 모양이고.”
그들도 체면을 아는 이들이니.
흑마법사들도 내 부탁을 거절할 수 없기에 끌어들이는 건 쉽다.
하지만 아카데미의 아이들은 어떻게? 간단하다.
나와 친분이 있는 애들이 협력했지만, 그 외의 아이들은 왜 저리도 무서운 기세로 싸우는가.
그 비결은.
“학점으로 꼬드겼거든.”
잊지 마라. 학점을 위해서라면 드래곤은 그저 때려 패야 할 도마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