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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악마 소환함-270화 (270/389)

제270화

270화

어떤 작품이든 처음 구상한 대로 제작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어른의 사정이든 변덕이든 혹은 그 외에 다른 이유로든 폐기되는 아이디어는 분명 존재한다.

‘폐기된 설정이나 몬스터 등이 어떻게 되었는지까지 생각해 본 적은 없나.’

그중 몇몇 몬스터의 경우에는 데이터로는 존재하기에 일부 손재주가 좋은 유저들은 그 데이터를 불러내는 영상도 있었지.

당연히 밸런스나 기타 버그 때문에 제대로 플레이할 수 있는 경우는 없었지만.

‘이 경우는 더미 데이터뿐 아니라 개발 과정에서 존재하던 모든 설정까지 포함하는 건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것들은 이미 죽어 있었다는 점.

내가 이것들과 싸우느라 골머리를 썩일 일은 없다는 뜻이다.

‘그게 안심하고 웃을 소리는 아니겠지만.’

왜 이런 곳이 존재하지?

그보다 누가 이곳을 만든 거지?

“에밀리?”

한편 나는 어쩐지 에밀리가 조용하다는 사실을 조금 늦게 알아챘다.

이런 것을 본다면 농담이든 뭐든 떠들어 댈 그녀가 어째서인지 침묵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 녀석 웬일로 화가 나 있는데?’

계약으로 이어져 있기에 사역마의 상태는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극도의 분노.

“시안, 이건 악마로서 조금 불쾌하네.”

지금 본 몬스터들을 가리키며 하는 말은 아니리라.

에밀리의 시선은 이 수조들의 끝에 가 있었다.

대충 이 수조의 배열 순서에는 어느 정도 규칙이 있었다. 몬스터의 경우 짐승형, 언데드, 혹은 광물이나 슬라임 계통.

인간의 경우는 종족별로.

그리고 그다음에는.

“과연…… 악마도 있나.”

악마.

“여긴 뭘까? 이 악마들은 누나도 본 적이 없어. ……마계에도 존재하지 않아. 뭐야 이거?”

실존하지 않은 악마들.

그야 게임에서는 결국 구현되지 않은 것들이니까.

“건방지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딱히 동족애는 별로 없을 텐데도 에밀리는 불쾌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알아챈 것이리라.

이 시설 자체가 품고 있는 기이한 위화감을.

누군가의 장난기와 악의를.

“시안, 알고 있었니?”

“이것만큼은 내가 알고 있는 것 외야.”

그리고 찾지 못하고 넘어갔다면 후회하게 될 종류의 것이겠지.

“안쪽에 통로가 더 있나?”

그 뒤에 들어온 방에 있었던 것은 대부분이 망가진 기자재나 약품.

그리고 자료들.

“대부분 알아보는 게 어려울 거 같은데.”

마치 급히 치우기라도 한 듯 불에 태우거나 부순 흔적이 노골적으로 남아 있었다.

나는 그 잔해를 살펴보다가 겨우 타지 않은 책의 일부를 찾았다.

표지의 잔해.

“연…… 애…… 전기.”

그것에 쓰여 있는 것은 틀림없이 게임의 타이틀.

이후에도 잔해를 뒤져서 나머지 타지 않은 자료를 겨우 찾아내었다.

일부 내용이 손상되었지만 그래도 충분히 읽을 수는 있을 거 같았다.

‘게임 속 몬스터나 악역의 이름……. 그 외에 몇몇 인물의 프로필 같은데. 왜 이런 게 있지?’

훑어보던 중 우연이라고 해야 할지 어떤 이름을 확인한 순간, 내 시선이 멈췄다.

“……시안.”

[시안]

[제국 동부 할디리온령 출신]

[해당 인물의 역할 각성을 위해서는 몇 가지 사전 공작이 필요할 것이다.]

[1. 시안이 8세 겨울을 맞이할 무렵, 할디리온령에…….]

[2. 시안이 15세에 제국 필로스 아카데미에 입학한 이후 ……사건으로 자극…….]

[3. 그에게 검은…….]

그다음 내용은 알아보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그 내용의 뜻을 짐작하는 일은 불가능하지 않았다.

‘혹시 시안을 악역으로 각성시키기 위한 조건인가?’

지금의 내가 아닌 본래의 시안.

그 소년의 인생에 어떤 자극을 가하면 어떤 인물로 성장할지 그 조건을 표기한 게 아닐까 싶었다.

내 생각을 입증하듯 다른 인물에 대한 언급도 간신히 찾아낼 수 있었다.

[셀리디아 밀로닐]

[제국 남부 출신. 10세 때 밀로닐가에 입양됨]

[1. 정령술 과격 일파에게 해당 인물의 정보를 흘려 납치를 유도할 것.]

[2. 납치 이후 36일이 경과한 시점에 밀로닐가의 당주가 개입하여 구출하도록 공작할 필요가 있음.]

[3. 이후 어둠의 정령 밀레이토스에게 해당 인물의 정보를 추가로 제공할 것.]

[엘시아 리올레이트]

[리올레이트 공작가 출신]

[1. 해당 인물의 유도에 큰 조작은 필요치 않으나 데올킨 리올레이트의 행동을 유도, 이후 아카데미에 입학한 후 일부 사건에서 충돌을 유도해야 할 필요가 있음.]

…….

[알피네 실레이드닐]

[제국 동부 할디리온령출신. ……이후 ……에 귀의.]

[1. 할디리온령에…… 을 가할 시 ……교의 개입 시기를 조절할 필요가 있음.]

[2. 이후 대성녀를 ……하여 …….]

[다크 엘프 키르실아울리엔, 닐버스]

[해당 인물을 포함하여 다크 엘프 카테고리에 속하는 종족 포함]

[해당 인물들의 존재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금악룡을 탄생시켜야 할 필요가 있음.]

[이후 검은 시조를 통해 다크 엘프의 탄생과 금악룡의 토벌을 유도할 것.]

그 외에도 기타 등등.

다른 인물들의 정보도 읽은 결과, 역시나 각 인물의 행동 유도나 성장 배경을 위한 지침임이 틀림없었다.

‘마치 우리를 누군가가 원하는 인물로 성장시키고 이용하기 위해서.’

만약 위에서 열거한 조건에서 어긋난다면 ‘시안’을 포함하여 다른 인물들도 그 누군가가 원하는 인물이 되지 않기에.

“…….”

이 이상은 찾을 수 있는 자료가 없을 것 같았다.

“왠지 불쾌하군.”

나는 여기에서 언급된 시안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여기에서 말하는 시안이 될 수 없으니까.

하지만 그런 나조차 묘한 광기마저 느껴지는 이 정보를 읽어 보니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무슨 장난이란 말인가.

“대체 사람을…… 이 세상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당장이라도 범인을 찾아내서 묻고 싶지만, 아마 이곳에는 대답할 자가 없으리라.

나는 혀를 차며 다음 단서를 찾기 위해 계속 수색을 했다.

마지막으로 6층.

그 이상은 무너졌기에 현시점에서는 확인할 수 있는 가장 마지막 공간이었다.

“……여기에도 멀쩡한 게 없군.”

그곳에는 다른 몬스터도, 자료도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용도를 알 수 없을 정도로 텅 빈 방.

그리고 그 중앙에 놓인 관 같은 것에는 이미 완전히 백골이 된 시신이 안치되어 있다.

그 관의 아래에는 이 시신의 이름일 것으로 보이는 것이 새겨져 있었다.

“케니실린 샤렐로스.”

틀림없었다.

여신교에서 보관 중인 수기에서 언급된 이름.

역사에는 남지 않았지만, 지금의 시조라 불리는 각 클래스의 현자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는 영웅.

그리고 그 안개 같은 자식으로 추정되는 자.

“본인의 시체인가? ……아니면.”

거기까지 생각할 때였다.

“시안. 이쪽으로 오렴.”

에밀리가 급히 내 팔을 끌어당기며 뒤로 낮게 날아올라 후퇴한다.

동시에 하늘에서 고온의 빛 덩어리가 쏟아지며 조사하려던 그 관과 내용물을 태워 버린다.

“습격?!”

정신이 팔렸다지만, 먼저 공격할 때까지 그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위를 올려다보니 조금 전 공격을 퍼붓던 괴물이 상공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묘한 기시감.

“금악룡? 아니…… 아닌가.”

한순간 얼마 전 금악룡이 기습하였을 때와 이미지가 겹쳐서 놀랐지만, 곧 그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부적인 형상이 다르다.

굳이 말하자면, 만들다가 만 드래곤 같은 느낌.

《……프로토타입 재생룡》

《해당 ????는 ????입니다.》

신체 곳곳이 결손되어 있었고, 무엇보다 생명체로서의 존재감도 없었다.

그렇다고 언데드 같은 망자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도 아니었다.

“관찰할 때가 아니야, 시안. 저 도마뱀 다시 공격하려고 하네?”

“나도 알아!”

에밀리의 재촉에 나는 녀석이 재차 브레스를 토해 내기 전에 시설의 벽을 부수고 탈출하였다.

빠져나오는 것과 동시에 연속으로 퍼부어지는 브레스가 탑을 완전히 박살 내어 무너트린다.

이후 그 무너진 탑의 잔해에 드래곤이 착지하여 직접 짓밟으며 포효했다.

“……목적은 알기 쉽군.”

지금 공격은 나를 노린 게 아니었다.

우선은 저 탑.

증거를 없애기 위해서.

“그리고 급한 불을 짓밟아 껐으니…… 다음에 할 건.”

드래곤의 시선이 당연하게도 내 쪽으로 향한다.

얌전히 돌아갈 마음이 없다는 뜻.

“도망칠래?”

“아니, 싸워 볼 만할 거 같은데.”

저 드래곤은 아마 금악룡의 초기 콘셉트의 몬스터일 것이다.

이름도 다르고 레벨도 다르다.

더욱이 금악룡 같은 위압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아마 초기 설정에서는 DLC 보스로서의 용도는 상정하지 않았다는 뜻.

메인 시나리오 4장 혹은 그 이전의 몬스터 정도로 여긴 게 아닐까.

“만약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내뺄 테니까 경계하면서 싸워 보자.”

지팡이를 꺼내 들고 시험 삼아 골창 몇 개를 생성하여 날려 보낸다.

푸욱!

간단하게 놈의 비늘을 부수고 박힌다.

“……위협적이지는 않군.”

기껏해야 메인 시나리오 3장 정도 난이도의 몬스터다.

“화풀이 대상 정도로는 쓸 만하겠군.”

놈이 브레스를 토해 내기 위해 아가리를 열었지만.

“아가리부터 다물어라.”

그것은 먼저 터져 나온 흑염에 의해 강제적으로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흑염과, 분출되려던 브레스가 동시에 폭발하며 놈의 아래턱이 그대로 산산조각이 난다.

당황하며 날아오르려는 드래곤.

일단은 공중에서 공격하는 게 더 유리하다고 여긴 건가.

패턴도 단조롭군.

“도망치지 못하게 해.”

“이미 손을 써 뒀어.”

놈의 날개를 묶은 것은 사방에서 쏟아지는 마기의 사슬이다.

“……역시 묘하네. 이렇게 해도 마력을 빼앗을 수 없네.”

에밀리는 녀석의 마력을 빼앗든가 혹은 날려 보내서 힘을 뺄 생각이었지만, 그것이 잘 안 되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에밀리, 네 능력으로 빼앗지 못한다는 뜻이야?”

“그게 아니라 저거 마력이 존재하지 않는걸.”

“……아하~ 과연.”

생명체로서 기척이 느껴지지 않던 이유인가.

“그럼 이대로 태워 버리자.”

마기를 아낌없이 쏟아부으며 마법의 위력을 높인다.

“사라져라.”

지팡이를 까딱이자 놈의 주변에 4개의 마법진이 생성되며 그 안에서 흑염이 쏟아져 놈을 완전히 휘감아 태워 버린다.

《재생룡을 토벌하였습니다.》

《해당 몬스터는 정상적으로 성립한 존재가 아닙니다.》

《경험치를 회수할 수 없습니다.》

《?????를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가 들어오지 않는다.

정상적으로 토벌할 수 없는 존재란 뜻인가. 뭐, 기대하지도 않았다. 충분히 짐작했다.

다만 놈이 소멸하고 무언가가 떨어진다.

조심스레 손을 대지 않고 마력만으로 그것을 띄워 살펴보았다.

“……돌?”

회색의 돌덩어리. 하지만 마치 노이즈가 낀 액정처럼 찌지직거리면서 그 형상이 흔들리는 게 아닌가.

“확보는 해 둘까.”

써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게임식으로 비유하자면, 아마 버그 데이터 같은 것이라고 치면 될까.

만일을 위해 별도의 병을 꺼내서 넣어 놓고는 엄중히 묶은 뒤 가방에 넣어 두었다.

“추가 습격은 없나.”

조금 기다려 보았지만, 별다른 조짐이 없었다.

더 공격할 의미가 없다는 뜻.

이미 탑은 완전히 뭉개졌고, 안에 있는 것도 다 박살이 났을 테니까.

“파 볼래?”

“……됐어. 아마 더 찾을 수 있는 것도 없는 상태였을 거야.”

무엇보다 쓸데없이 삽질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삽만은 쥐기 싫어.

절대 삽만은 싫다.

무엇보다 이 이상의 조사가 의미가 없을 거라고 여긴 이유가 있었다.

《메인 시나리오 4장이 종료됩니다.》

《해당 시나리오의 진행 과정 중 당신은 본래의 운명이라면 발견하지 못했을 것에 접촉하였습니다.》

《이 세상의 뒤틀림의 증거를 목격하였습니다.》

뒤틀림의 증거.

본래는 접근할 리가 없는 구역.

이 시스템의 알림은 언제나처럼 그 상황만을 조용히 알려 주고 있었다.

“……응?”

《지금부터 출력될 메시지는 이것을 보고 있을 당신에게 드리는 충고입니다.》

《뒤틀림을 쫓으십시오.》

《운명을 맹신하는 이기적인 자와 그 악인에 현혹된 자의 뜻을 방해하십시오.》

《실패한다면 당신과 이 세상은 존속하지 못할 것입니다.》

《오로지 이것을 보게 될 당신만이 가능한 일입니다.》

“요약하면 세상을 구하라는 거잖아. ……참나.”

적어도 그 부탁은 주인공이 될 만한 인재한테 해야 하는 거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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