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4화
274화
학장님의 허가에 따라 나는 아카데미의 창고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아카데미 제4종 창고.
통칭 폐기물장.
아카데미에서 가장 처치 곤란한 물품들만을 처박아 놓은 창고.
당연히 이곳에 나 혼자만 가게 할 수는 없으니 해당 교수의 감독하에서 출입하도록 허가가 내려졌다.
“……어느 교수님이 감독하시나 했더니.”
창고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자, 곧 감독할 교수가 도착했다.
어쩐지 낯이 익은 얼굴.
누구시더라~. 뭐, 길게 생각할 것도 없다.
미네이울 멜 델레우로스.
“황녀 전하이셨군요.”
“오래간만입니다. 시안. 아니, 시안 알케우스.”
황족이자 아카데미 교수들 중 한 명.
아카데미의 장식 교수(웃음)라고 불리는 가장 존재감 옅은 교수.
미네이울 교수다.
“미네이울 교수라고 부르세요.”
“설마 미네이울 교수님께서 절 감시하시는 겁니까?”
“이 시기에는 달리 손이 비는 교수가 없으니까요.”
“과연 아카데미의 장식 교수.”
“……지금 뭐라고?”
아픈 부분을 찔렀는지 웃는 얼굴로 압박감을 준다.
(장식 교수?)
‘교수이긴 한데, 존재감이 없거든. 황족 출신이라 좀 대우하기도 까다롭고.’
틀린 소리는 아닐 것이다.
그녀가 교수로 취임한 것은 적성 때문도 있겠지만, 결국은 아카데미를 황제의 감독 아래에 두기 위한 목적일 뿐.
걸어 다니는 감시 카메라 같은 것인데 누가 가까이 둘까.
“그러잖아도 요즘은 더 우울한데…….”
“괜찮습니까?”
“……당신에게 뭐라고 해 봤자 의미는 없으니까요. 용건을 빨리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네. 어차피 창고에만 들어가면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을 거거든요.”
“그건 그렇고, 4종 창고라니 참 이상한 요청을 했네요.”
창고 열쇠를 가져온 미네이울 교수는 창고의 봉인을 해제하는 절차를 밟으며 의아하다는 듯 내게 묻는다.
“그렇게 이상합니까?”
“여기 뭐가 있는지 모르는 건 아니겠죠?”
“잘~ 알죠.”
아카데미의 가장 골치 아픈 물품들.
지금까지 역대 교수들과 졸업생들이 온갖 괴상망측한 작품을 만들고 그것을 처치하기 곤란해 처박아 놓은 창고.
실용성이 떨어지는 작품만이 가득한 곳이다.
“그럼 알 텐데요. 써먹을 만한 보물이 없다는 걸.”
“보시면 압니다. ……일단은 교수님께 설명해 드리라는 것도 학장님이 내거신 조건이니 차차 설명 드리겠습니다.”
철컥.
창고 문이 완전히 개방되고 나는 미네이울 교수를 따라서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폐기물장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곳이지만, 그 이름처럼 불쾌한 장소는 아니었다.
제대로 통풍이나 습도를 조절하기 위한 설비가 마련돼 있었고, 각 작품들도 효율적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나는 이곳에 안치되어 있는 골칫덩이들을 쓱 훑어보며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히죽거렸다.
“쓸 만하네요.”
“……쓸 만하다고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놀란 얼굴로 묻는 교수.
그렇군. 설명부터 해야겠지.
“여기 있는 작품들은 역대 교수님들이나 졸업생들이 발상만으로 만들어 둔 겁니다.”
“성능은 극단적. ……단점이 더 커서 단순히 연구용 정도의 가치밖에 없을 텐데요.”
“네. 일반적으로는요.”
나라도 여기에서 당장 써먹을 아이템은 없었다.
예를 들어 이 지팡이.
“보아하니 이 지팡이는 마법 위력의 증폭 한계를 시험하기 위해 제작된 거 같네요.”
“……알아보는 건가요?”
“네, 뭐, 적당히요.”
《극대력의 지팡이》
《아이템 등급 : F-》
《옵션 1 : 마력의 초집약》
《옵션 2 : 마력 완전 연소 증폭》
《옵션 3 : 혼신의 영창》
장비 자체의 완성도가 크게 떨어지고, 붙어 있는 옵션도 극단적이다.
파괴력은 상당히 올라가겠지만…….
“마력 연비 효율이 지나치게 나쁘네요. 고작 파이어볼 하나를 캐스팅해도 5서클 마법사의 마력이 전부 동이 나 버릴 정도로 연비가 최악인데.”
“위력의 증폭 설계는 획기적이었답니다.”
“네. 이론은 인정받았지만, 실용성이 떨어지는 것.”
여러모로 극단적인 작품들.
다른 아이템들도 마찬가지였다.
은신 효과를 지녔는데, 대신에 악취를 풍긴다든가.
어딘가 나사가 빠진 듯한 아이템들.
‘옵션들이 죄다 뒤죽박죽이군.’
내가 봐도 이것들은 쓰레기였다.
여기서 아이템을 골라 장비해 봐야 오히려 약해지겠지. 뭐, 제한 플레이를 좋아하는 놈이라면 환영하겠지만.
“그래서 쓸 만한 겁니다.”
“네에에에에? 이런 게?”
“저는 여기에 있는 아이템의 설계에서 그 고유 옵션만을 참조하여 재설계를 할 생각입니다.”
내 목적을 가르쳐 주었다.
옵션의 이관.
이 쓰레기들 중에서 쓸 만한 옵션만을 골라내서 별개의 아이템으로 모아 만들 수 있다면?
“강력한 효과만을 긁어모은 최상급의 장비가 되는 거죠.”
흔히 말하는 제작 노가다의 꽃.
옵션을 인계하여 더욱 강력한 장비를 노리자는 것이다.
“그런 게 가능할 리가…….”
“가능합니다. ……쉽지는 않아도 방법이 있거든요.”
사실 아이템을 제작하는 게 이골이 나면 그다음 파고드는 것이 바로 옵션작.
더욱 강력한 옵션을 찾아내어 다음 아이템에 이관시키는 것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해 주는 전용 소재는 최근에 암시장에 나돌기 시작한 것을 놓치지 않고 구해 두었다.
‘그리고 여기 처박혀 있는 골칫덩이들을 쓰면 멀리 나가지 않아도 강력한 옵션의 재료를 수급할 수 있어.’
내게 평범하게 값비싼 보물 따위보다 이곳이 더욱 귀중한 보물섬인 셈이다.
“답이 없어 보이는 것도 궁리하면 어떻게든 된다는 거죠.”
“……궁리하면?”
“교수님?”
대충 필요한 것을 고르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남은 것은 반출을 위해 황녀에게 확인을 받는 것뿐.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네.”
어쩐지 생각에 잠겨 있던 그녀는 내가 거듭 부르자 화들짝 놀라며 허둥거린다.
“그, 그거면 되는 건가요, 시안 알케우스?”
“예. 확인은 필요치 않으십니까?”
“괜찮아요. 자! 어서 나가죠.”
정말로 괜찮은 걸까.
나는 구태여 그 이상은 묻지 않았다.
* * *
이제 남은 것은 금악룡의 소재를 활용하는 것.
정식으로 소유권을 인정받고 난 뒤 금악룡의 소재는 내게 무사히 반환되었다.
“비늘과 골격, 눈동자…… 그리고 심장인가.”
“어느 쪽이든 장난 아니네. 봐 봐, 시안. 이 뼈 그냥 놓기만 해도 책상이 녹는걸.”
“야! 잠깐! 거기에다 놓지 마! 책상 아깝잖아!”
에밀리가 소재를 가지고 놀지 않도록 주의를 시키고, 소재를 사용할 방법을 궁리했다.
“용 계통 소재 중에서는 최상급…….”
그리고 흑마법 계통 장비에서도 고성능 장비에 포함되는 재료다.
거기다 4종 창고에서 가져온 각종 최상급 옵션만을 가진 이관용 재료들까지.
“이거면 강력한 무기를 만들 수 있겠어.”
현재 내 주 장비로 쓰이는 지팡이도 59레벨이 되면서 슬슬 구식이 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마침 금악룡의 장비는 55레벨 정도쯤에서 다룰 수 있는 아이템.
딱 적절한 시기다.
“그럼 만들어 보실까.”
손을 풀면서 머릿속에 확립해 둔 레시피를 되새기고 작업에 들어갔다.
꼬박 하루 정도의 과정을 거쳐서 제작한 결과.
“시안 님, 공방에 지나치게 오래 계시는 것도 건강에 좋지 않습니다. 일단 쉬시는…….”
휴식을 권하러 키르실이 공방에 들어오자마자 그녀는 하려던 말을 딱 멈췄다.
마침 내가 새 지팡이를 쥐고 있는 모습을 보았기에.
“그 금악룡의 소재입니까?”
“응. 놈의 뼈와 비늘…… 그리고 눈동자를 이용하여 만든 지팡이.”
금색과 검은색이 어우러진 지팡이.
지팡이의 끝에는 금악룡의 눈동자를 가공하여 만든 수정체가 장식되어 있고.
그 중심에는 마찬가지로 심장을 재료로 만든 핵이 부여되어 있다.
“전율적인 마기로군요. 지팡이 자체에서 발하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응. 사악한 드래곤 본연의 성질을 고스란히 재현하느라 애먹었으니까.”
《악현의 길잡이》
《등급 : S+》
《옵션 1 : 악룡의 증폭》
《옵션 2 : 천성의 마력》
《옵션 3 : 혼신의 영창》
《옵션 4 : 절세의 마나》
《옵션 5 : 마력 대미지 초극대 증폭》
지팡이의 고유의 능력과 4종 창고에서 가져온 아이템에서 옮겨온 강력한 옵션들.
그것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성능을 더욱 끌어올리리라.
리스크 따위는 존재하지 않도록 설계하여 파괴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지팡이.
이게 필요했다.
“봐. 쥐기만 해도 이 정도 마력이 느껴져.”
단순히 쥐기만 해도 강한 마기를 휘감고 있는 지팡이이지만.
“이걸 완전히 개방하면…….”
지팡이의 고유 능력을 이용하게 되면 더욱 강력한 성능을 발휘한다.
철컥.
지팡이 내부에서 무언가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지팡이의 길이가 늘어나며 안쪽에 수납된 뿔이 네 방향으로 개방된다.
추가 전개.
“……이렇게 하면.”
두우우우우웅.
기이한 울림과 함께 급격히 솟아오르는 마기에 대기가 잠식되어 떨린다.
“흑마법의 위력이 한순간 오를 거야.”
아이템 고유의 효과가 발휘되는 순간, 1회에 한해 캐스팅되는 흑마법의 대폭적인 강화.
악룡의 증폭.
“단순한 흑마법도 고위력의 마법과 맞먹게 되거든.”
시험 삼아서 최소 크기의 골창을 하나 만들어 보았다.
지팡이의 능력과 공명하여.
생성되는 골창은 더욱 흉악한 형태를 띠며 강화된다.
“굉장합니다. ……그것이 있다면 높은 수준의 마법을 마음껏 사용하실 수 있는 건가요?”
“뭐, 연속 사용은 어려워.”
한 번 고유 기능을 사용하고는 약 30분 정도는 재사용 불가.
당연한 일이겠지.
“뭣보다 써먹으려면 연습 좀 해야겠는걸.”
고농도의 마기는 이미 일류 흑마법사의 영역에 든 나조차도 쥔 순간 손이 살짝 저릿한 느낌이 들 정도다.
게임에서는 레벨만 되면 척척 쥘 수 있어도.
실제로 써먹으려면 숙달이 필요하다는 뜻.
“자칫하면 몬스터 하나 잡으려다가 다 날려 먹을 거 같으니.”
“훈련이라면 언제든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만.”
“뭐, 그건 피곤하니까 나중에. ……그리고 지금은 저 녀석도 신경 써야 하고.”
내가 말한 뜻을 생각하던 키르실은 한 가지 위화감을 눈치챘다.
어쩐지 조용하다는 것.
“그러고 보니 에밀리 님은?”
“저 녀석도 고생 중. ……내가 겸사겸사 선물해 준 거 써먹느라 말이야.”
에밀리가 조용하다.
이번에 강화하려는 것은 단순히 내 장비뿐만이 아니었다.
금악룡을 토벌함으로써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흑마법 클래스의 어떤 능력.
사역하고 있는 악마의 힘을 대폭 늘려 주는 수단을 획득할 수 있었다.
‘금악룡의 존재 자체가 흑마법이나 마기 계통 활용 클래스 그리고 악마 사역 스킬의 대폭 상향 패치 역할을 했으니까.’
다른 DLC와 달리 금악룡 관련 이벤트는 이쪽 계통의 능력에 힘을 실어 주는 목적을 가진 콘텐츠다.
강력한 장비.
그리고 악마 사역 계통 스킬의 강화.
현재 에밀리는 그렇게 획득한 능력을 완전히 얻기 위해 수다도 떨지 않은 채 집중하고 있었다.
“……저것이 에밀리 님입니까?”
“뭐, 그런 셈~.”
내 뒤편에 천장까지 닿을 크기의 순수한 마기로 이루어진 고치가 있었다.
에밀리가 집중을 위해서 그 속에 틀어박힌 것.
“저 안에서 무엇을…….”
“금악룡의 소재 중 어떤 물질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집중이 필요하다나 봐.”
나는 연구용으로 조금 덜어 둔 그것을 담은 병을 보여 주며 가볍게 흔들었다.
금색과 검은색이 섞인 액체.
“희미하지만, 피와 같은 향이 납니다만.”
“맞아. 피야. 그 금악룡의 혈액.”
뭐, 놈도 생물이니 당연히 피 정도는 흘리겠지.
다만 이미 토벌된 지 시일이 꽤 지났고, 놈의 피는 유독 물질에 가까워서 소재로서는 써먹을 수가 없었다.
소재를 추출하는 과정에서 놈의 혈액은 제대로 정화 과정을 거쳐서 처리하였다.
“이건 놈의 심장 대동맥에 고여 있던 물질이야.”
“심장……. 드래곤 하트?!”
마력을 다루는 생물에게 심장은 가치가 꽤 높은 기관이다.
당연히 금악룡의 심장은 내 무기를 만드는 데 메인 소재로도 써먹었을 정도.
“그것에 고인 정화조차도 먹히지 않을 정도로 악의와 사악한 힘이 응축된 혈액.”
“그런 것을 쓸 수 있는 것입니까?”
“인간은 못 써. ……나도 잘못 다루면 위험하고.”
하지만 인간이 아니라면?
귀중한 촉매제가 된다.
“지금 저 녀석이 하려는 건 이 유독 물질을 바탕으로 악마의 능력을 높이는 건가 봐.”
기본적으로 악마의 능력은 계약한 흑마법사의 자질과 비례한다.
흑마법사가 공급하는 마기가 악마의 힘과 육체를 구성하는 재료가 되기 때문.
하지만 추가로 곁들일 재료가 있다면?
“이런 재료는 더욱 강력한 육체와 마력을 구사할 재료가 되거든.”
금악룡의 혈액을 바탕으로 에밀리의 능력을 더욱 끌어올릴 수 있게 된다는 뜻.
《계약 악마 – 에밀리의 능력이 향상됩니다.》
《현 세계에서 구현 가능한 악마의 격이 더욱 높아집니다.》
제대로 하고 있나 보군.
“끝났냐?”
내가 때를 맞춰 묻자, 고치가 깨지면서 그 안에서 다시 육체를 재구성한 에밀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후후후후, 훌륭한걸. 설마 인간 세계에서 이 정도의 재료가 있을 줄이야.”
“잘됐다는 거지?”
“흐음~, 직접 보면 어떨까?”
뭐, 겉보기로도 지금까지 보인 에밀리의 능력의 성장과는 다소 성향이 달라 보였다.
단순히 스테이터스의 상향만이 아니라 외형에도 일부 영향을 줬다.
어두운 반짝임을 휘감은 은발.
더욱 날카롭고 마치 정밀한 세공 같은 문양이 깃든 뿔.
그리고 더욱 위험한 본성을 내포한 듯한 눈동자.
“후후, 더 자세히 차이점을 찾아봐도 되는데?”
“아~ 그건 나중에 겸사겸사.”
시시한 장난에는 넘어가지 않는다.
“……스산할 정도의 악마라는 감상밖에 안 드는군요.”
“그렇지?”
어딘가 식겁한 듯 중얼거리는 키르실과, 그 가치를 알아보자 기쁜 듯 에밀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다 재밌는 재주도 얻었지 뭐니.”
“재주?”
뭔가 추가 능력이라도 생긴 걸까.
“악마의 능력 강화인가?”
매료의 강화라든가 마나 드레인 강화. 뭐, 그것도 충분히 강력하겠지.
“좀 더 굉장한 거거든. 음~, 마침 시험해 보고 싶은데.”
“상관없는데. 일단 뭔지나 알고. ……잠깐! 뭐야, 이거?”
당연히 계약된 악마이기에 마음만 먹으면 습득하고 있는 스킬은 파악할 수 있다.
예상대로 악마의 고유 능력은 전반적으로 진화를 이루었고…….
추가된 것을 확인한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놀랐다.
“기대하렴. 분명 놀랄 테니까.”
이미 놀라고 있거든.
* * *
우리는 바로 기숙사 바깥으로 나와서 새로 획득한 능력을 확인해 보고자 했다.
“그럼 잘 보렴. 시안.”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에밀리가 손을 흔들며 신호한다.
에밀리가 오른팔을 뻗는다. 그러고는 자신의 마기로 칼날을 만들어 그 팔을 벤다.
“……!!”
“괜찮아. 악마니까 실제로 팔이 잘린 건 아니야.”
따지자면 멋 부리는 거겠지.
잘린 단면에서 흐르는 것은 피를 연상시키는 것.
액체와도 같은 에너지가 바닥에 떨어지고 번지는 물감처럼 에밀리의 앞에서 퍼져 나간다.
소마룡(小魔龍) 구축.
그것이 에밀리가 새로 획득한 스킬.
“나오렴. 사악한 피에 깃든 아이야.”
그 퍼진 액체에서 무언가가 솟구치며 날아오른다.
“……드래곤.”
“과연 이런 스킬인가.”
에밀리가 불러낸 것은 약 5미터 정도 크기의 드래곤 형상을 한 것.
악마와 드래곤 양쪽의 속성을 지닌 소환수.
“금악룡의 혈액 때문인가?”
“그것에 깃든 걸 이용해서 만들 수 있게 되었지 뭐니.”
“얌전하려나?”
“말은 잘 들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크기는 와이번 정도에 지나지 않았지만, 전투력은 어지간한 드래곤과 맞먹겠지.
“좋네…….”
드래곤계 소환수는 얻기가 까다로우니까.
워낙 제작이 귀찮아서 나도 반쯤은 보류해 두고 있었던 것.
그런 계통의 능력을 습득한 것이다.
“좋네. 이걸로 매번 날아다니는 놈 상대로 애먹을 일은 없겠어.”
“후후, 그렇지?”
몹시도 기분이 좋은지 에밀리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새로운 능력을 얻어서 그런가?
이전에 녀석이 그랬지.
악마들의 비원은 지상의 것을 접하여 그 자극을 토대로 더욱 진화를 이루는 것이라고.
마계에서는 지니지 못했던 진화를 이루어 내는 것.
그리고 마계에서는 탄생하지 못할 새로운 마왕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던가.
미약하더라도 다른 악마들에게는 불가능한 것을 얻은 셈이니.
하지만 그 점을 고려하더라도 상당히 기뻐하는군.
“그거 아니, 시안?”
“음?”
“악마는 기본적으로 자신 외에 다른 존재를 만들 수 없어.”
“그거 무슨 뜻이야?”
“어떤 특수한 악마를 제외하고는 자신 외의 존재를 직접 만들 능력이 없거든.”
묘한 설명.
요컨대 생식이나 증식 같은 게 되지 않는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되나?
그야 생물과는 존재 방식이 다르니 당연한가?
“이 작은 용은 이 누나에게서 비롯된 권속 같은 거라고 할 수 있겠네.”
“과연, 이런 걸 소환하는 것 자체가 악마로서는 이례적인 능력이라는 건가.”
“정답.”
직접 권속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난 악마는 한정되어 있다나.
예를 들면.
‘마왕급인가.’
참 뒷덜미가 서늘해지는 사실이네.
뭐, 내가 손해 볼 일은 없을 것 같으니 일단은 놔두자.
“그럼 힘도 늘었겠다. ……다음 계획을 시작하자.”
감당할 준비가 되었으니 행동해야지.
내가 이제 해야 할 것.
“탑을 만들어 보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