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2화
282화
이윽고 외부 참관 행사의 당일이 되었다.
오늘 하루 동안 필로스 아카데미는 외부인 출입을 허용한다.
제국 내의 권력가나 갑부들……. 그리고 아카데미에 순수하게 흥미를 느끼는 이들은 너나없이 이곳에 발을 들인다.
“꽤 손님들이 많군.”
치안이나 경비 문제도 있기에 나름 사전에 거르고 걸러서 손님을 엄선했다지만, 족히 천 명은 들어온 게 아닐까.
제국 내에서의 손님뿐 아니라 타국에서 온 이들도 있으리라.
‘반쯤 관광 상품으로 삼아 버렸군.’
나는 다른 클래스의 상황도 엿볼 겸 잠시 돌아다니기로 하였다.
“역시 다들 신경은 쓰는구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나와는 달리 다른 클래스의 학생들은 제법 바쁜 모양이었다.
생산 계통의 전공 클래스는 주로 자신들의 만든 아이템을 전시하거나 기념품들을 파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모양이고.
오러 클래스같이 무예 계통은 학생들과 교수들의 검술이나 무술의 시범 혹은 대련 등의 방식으로 존재감을 피력하는 모양이고.
마법은…….
뭐, 여전히 시험장에서 폭음이 울리는 걸 보면 어지간히 요란한 방식으로 사람들의 주목을 끌 모양.
(인간은 참 묘하네. ……결국은 다른 인간에게 보여 주려고 이렇게 신경 쓰는 거니?)
‘그게 이득과 연결된다면 당연한 거잖아.’
고작 외부인을 들여서 각 클래스의 장점을 필사적으로 어필하려는 게 에밀리에게는 조금 이해가 되지 않나 보다.
‘외부 손님들 중에는 권력가도 많고, 여러 가지로 귀찮은 영향력을 가진 이들도 적지 않아. 잘 보여서 손해 볼 건 없지.’
특히 듣자 하니 외부 참관 행사의 결과에 따라서 좋은 평판을 얻은 클래스는 내년도 예산 편성 때 유리한 입장이라고 하니.
거기에 손님 중에는 막대한 기부가 가능한 이들도 적지 않다.
평판과 기부금을 위해.
당연히 교수들은 필사적으로 의욕을 보일 수밖에 없었고, 그에 따라 학생들을 채근할 수밖에 없으리라.
일부 예외적인 클래스를 제외하고는 다들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뜻.
(시안도?)
‘난 솔직히 외부 평판은 아무래도 좋은데.’
우리 교수님은 신경 쓰는 모양이지만. 기왕 참견하는 거 제대로 된 성과를 내는 편이 내 성미에 맞다.
기왕이면 뭐든 이기는 편이 발 뻗고 잠들 수 있을 테니까.
‘보아하니 클래스별로 제법 머리를 굴린 모양인데…….’
구경을 하면서 나는 신경이 쓰일 만한 게 없나 훑어보았다.
마침 정령술 클래스의 행사를 살펴볼 차례가 되었다.
아무래도 마법과 마찬가지로 제법 화려한 능력이 주가 되는 클래스답게 관심을 가지는 이들이 많았다.
‘외부 강연 주제는 정령술의 역사인가. ……일부 고위 정령사의 시연도 있나 보군.’
평범하지만, 나름 눈에 띄기 딱 좋은 것들이겠지.
“……응?”
그래도 딱히 볼일은 없겠다 싶어서 다른 클래스 쪽으로 구경을 가려던 즈음.
“…….”
내가 잠시 말없이 발걸음을 멈추는 사이.
네 명의 정령술 클래스의 학생들이 뭔가 사색이 된 낯빛으로 뛰어다니는 게 아닌가.
뭔가 필사적으로 찾아다니는 느낌.
“어디로 간 거야?”
“……역시 제대로 설득해야 했는데.”
“아, 혹시 저 녀석은 알지도.”
왠지 나를 보자마자 이쪽으로 달려오는 게 아닌가.
“뭐야? 방해하러 온 건 아닌데.”
“그런 게 아니라! 시안! 혹시 셀리디아 못 봤어?”
“……셀리디아?”
왜 그 녀석의 행방을 나한테 물을까.
그러고 보니 이번 행사를 준비하는 동안 그 녀석을 보지 못했다.
바쁠 거라고 생각했기에 딱히 이상하게 여기진 않았다만.
“…….”
“못 봤어? 혹시 봤으면…….”
“아니, 모르겠어. ……그 녀석이면 적당히 햇볕 드는 곳에 있지 않을까.”
“무슨 고양이도 아니고.”
비슷한 건 달려 있잖아.
내가 모르겠다고 말하자, 정령술 클래스의 아이들은 시간이 촉박한 듯 자세한 사정 얘기도 하지 않고 뛰어갔다.
(그런 거짓말을 해도 되니?)
“아무렴 어때. 딱히 친한 녀석들도 아닌데. ……그렇지, 셀리디아?”
내가 어깨를 으쓱이고 뒤를 살짝 돌아보며 말하자, 부스럭 발소리가 작게 들렸다.
곧 아지랑이처럼 내가 눈여겨본 방향의 공기가 일렁이더니 셀리디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떻게 알았어?”
“있겠거니 싶었어. 그 은폐 방법 말이야 모습을 감춘 건 좋은데, 마나까지 완전히 감추지는 못해.”
“……참고할게.”
대충 보아하니 정령술을 이용해 빛의 굴절을 바꾸어서 모습을 지운 모양이다.
“언제부터 숨바꼭질에 눈뜬 거야?”
“조금 귀찮아서.”
“대충 이유는 짐작이 간다만.”
자세한 내막은 몰라도 대충 알 것 같긴 하다.
아마 행사 준비와 관련해서 셀리디아의 능력에 기대어서 이것저것 부탁을 했고, 결국 귀찮아진 셀리디아가 튄 거겠지.
“뭘 얼마나 부려 먹었길래?”
“이것저것 판매할 상품 도와주고. ……정령술 시연도 부탁 받아서.”
“알차게 부려 먹는군. ……근데 상품? 뭐 팔아?”
“이거…….”
셀리디아가 손을 내밀자 뭔가 반짝이더니 여러 색상의 작은 새들이 만들어진다.
단순히 장식이 아니라 어느 정도 움직임도 모방한 듯 생생하게 애교까지 부리는군.
“정령의 구현 원리로 동물의 모습을 흉내 낸 건가. 야, 잠깐! 이걸 판다고?”
“예상 이상으로 반응이 좋았어.”
셀리디아가 성가시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정령력을 주입하여 정령의 형상을 그럴듯하게 흉내 낸 장식품 같은 것.
그것을 손님들에게 어필하고 약간의 대여료를 받고 빌려주는 모양이었다.
듣고 나서 잘 보니 손님들 중 몇은 셀리디아가 만든 것과 비슷한 느낌의 것을 안고 다닌다.
‘뭔가 학교 운동회에서 병아리를 파는 느낌인데.’
영악하면서 뭔가 악랄한 느낌.
“어차피 모조품이라 정령력이 소모되면 오래가지 못할 텐데?”
“……응. 일주일 뒤면 사라져.”
“진짜 병아리냐!”
“……병아리?”
딱 정이 들 때쯤이면 눈 녹듯 사라진다고 말하는 셀리디아였다.
……실은 얘네들이 더 악마가 아닌가.
“그래서 그게 도망친 이유냐?”
“……생각 이상으로 주문이 많아.”
내팽개칠 생각은 없으니 다소 잠잠해지면 그때 다시 돌아갈 모양이었다.
“시안도 숨는 중?”
“설마, 나 튄 거 아니거든? 그렇게 기대하듯 봐도 소용없거든?”
“그럼?”
“대부분 일은 다른 녀석들에게 맡겨 놨어. 내가 일할 차례는 아직 안 돼서 남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뿐이야.”
“……일?”
의아한 듯 갸웃거리는 셀리디아.
그야 흑마법 클래스에서 뭘 하는지는 모르기 때문이다.
“누가 돕고 있어?”
“비슷해. ……궁금하면 나중에 보러 와도 돼.”
그렇지 않아도 슬슬 손님들 사이에서도 소문이 들릴 때가 되었다.
어떤 의미로는 눈에 띄게 일을 거하게 벌여 놨으니.
“아마 우리가 가장 치사하게 활동하고 있을 거니까.”
나는 확신하며 말했다.
* * *
외부 참관 행사에는 별도로 예산이 책정되지 않는다.
특별한 지원이 없으니 무엇을 할지 어떻게 할지 각자 알아서 하라는 것.
참으로 더럽게 공평하신 방침에 나는 그만 두 손을 들고 만세를 불렀다.
알아서 하라고?
‘그럼 정말로 알아서 해 주면 되지.’
단, 조건은 하나.
어디까지나 가용 가능한 것은 현재 아카데미에 재적한 학생의 역량.
그야 교수들이 가진 것까지 동원하게 되면 온갖 인맥이며 돈이며 어떤 의미로는 개판이 되기 십상이니까.
하지만 학생의 것이라면 한도가 있다.
인맥도, 가진 실력도.
‘중요한 건 내가 가진 것이면 아낌없이 써먹을 수 있다는 거야.’
거기서 떠올렸다.
내가 써먹을 수 있는 건 뭘까? 실력? 지식? 혹은 인맥?
‘응, 전부.’
다 쓸 수 있네.
거기서 떠올렸다. 마침 최근에 상당히 좋은 것을 지어 올렸지 않은가.
“딱히 행사 장소로 꼭 할당된 교실이나 실험장만으로 제한을 둔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긴 하네요. ……하지만 이거 과연 될까요?”
다니엘 교수님은 조금 불안한 듯 중얼거렸다.
흑마법 클래스의 외부 참관 행사의 장소는 교실도 그 어디도 아니었다.
바로 검은 탑.
흑마법 클래스 교실에 별개로 게이트를 설치해 두고는 검은 탑으로 이동하게끔 만들어 두었다.
그리고 탑의 시설을 이용하여 대규모 흑마법 관련 전시장 및 강의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꾸며 두었다.
“규칙에 저촉된 건 없습니다만.”
나는 뻔뻔하게 웃으며.
“전 어디까지나 제가 가진 검은 탑의 영향권을 행사하여 시설을 빌렸으니까요.”
“…….”
“허가도 직접 받으셨잖습니까?”
“학장님의 눈빛이 진심으로 쓰레기를 바라보는 눈빛이었죠.”
“교수님도 이제 참 관록이 붙으셨네요.”
모든 것은 흑마법 클래스의 앞날을 위해.
“슬슬 손님들도 구경 오는 모양이고요.”
처음에는 흑마법 클래스의 편견 때문에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행사가 시작되고 두세 시간쯤 지나자, 슬슬 구경을 오는 이들이 생겨난다.
“다행이네요. 그래도 관심을 두는 이들이 있다는 거네요!”
“아뇨. 그냥 중간에 사람을 써서 오게끔 유도했습니다만.”
“…….”
세상일이란 거 다 그런 법이다.
“장사나 마찬가지죠. 중요한 건 알아주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꼬이게 하는 거니까요.”
물론 손님을 모으기만 하고 실속이 없다면 아무런 효과도 거두지 못하겠지만.
실속이 없을 리가.
탑의 모든 시설, 인력 그리고 겸사겸사 몰래 끌어들인 뒷돈까지 전부 써먹었다.
아슬아슬하게 규칙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각종 흑마법을 이용한 놀이시설. 그리고 특가로 싸게 파는 갖가지 기념품. ……거기다 알찬 강의도 예정되어 있고요.”
덧붙여 아직 판매되지 않은 신규 상품도 특별히 사전 판매라는 식으로 내놓았다.
네크로맨서의 방부 기술과 이론을 응용하여 만든 주름 개선 화장품이라든가.
신규 흑마법 장비라든가.
혹은 새로운 스크롤도.
그 외에도 가능한 흑마법을 어떻게 악용…… 아니, 이용할까 골머리를 써서 개발한 상품들.
특별히 이곳에 오면 한발 먼저 구입할 수 있습니다?
(그거 사기 아니니?)
악마의 태클은 무시하자.
“……생각해 봤는데, 역시 걸리지 않을까요?”
“괜찮습니다. 교수님. 이런 건 결국 뻔뻔한 놈이 이겨요. ……아니면 이제 와서 다 없던 걸로 할까요?”
다니엘 교수님은 잠시 눈을 감고 고민한다.
어디까지나 흑마법 클래스의 앞날을 위해.
그리고 내년도 클래스의 예산을 위해.
“속행하죠! 생각해 보니 다른 클래스도 비슷한 짓을 하니까요.”
“그렇죠?”
알아주실 거라고 믿었습니다.
무엇보다 뒤탈이 없을 거라고 확신한 이유는 이미 비슷한 짓을 한 놈들의 사례를 게임을 통해 확인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거 원래는 마탑이 한 짓인데.’
게임에서는 다른 행사에서 마탑이 이런 짓을 벌인 적이 있었다.
내 존재로 인해 그들은 조금 더 일찍 잠적해 버렸고.
그렇다면 그 아이디어를 내가 이용해 주면 되는 거다.
……이게 맞지?
“하긴, 이런 걸 다 쏟아부어 봐야 정작 실속과 진심이 느껴지지 않으면 의미는 없습니다만.”
“……알고 있어요.”
다니엘 교수님은 쓴웃음을 지으며 슬슬 손님들의 앞에서 얼굴을 보이기 위해 나섰다.
조금 뒤에 있을 공개 강의를 위한 것.
“역시 시안도 뭔가 할 건가요?”
“나름 재주나 좀 부려 볼까 합니다만.”
다니엘 교수님의 강의가 끝나면 나도 적당히 얼굴을 내비칠 자리를 만들기로 하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방문한 손님들 중 진정으로 각 클래스의 가치를 평가할 자들이었다.
그들의 이목을 끌려면 역시 내가 직접 나서서 몇 마디 정도는 어필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강렬하게 잊지 못할 흑마법이라는 인상을 주고 싶으니까요.”
그렇게 해야 이번 행사에서 가장 큰 성과를 남길 수 있을 테니까.
거기에 그 뒤에 이어질 이 이벤트의 진짜 목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