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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악마 소환함-303화 (303/389)

제303화

303화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백의 시조와 직접 맞붙는 게 썩 내키진 않았다.

상성으로 따졌을 때, 가장 껄끄러울 수밖에 없는 상대다.

신성력을 구사한다는 점도 그렇고…….

놈의 패턴도 마법사로서 상대하기 더러운 것이니.

단순히 신성력만 뿜뿜! 내뿜는 악당이라면 꼼수라도 공략할 여지가 있겠지만.

하필 녀석은 최고 수준의 무예 실력까지 곁들이고 있다.

‘마법사나 정령사 클래스로는 1, 2페이즈를 넘기기가 힘들다는 말이 정론이었으니.’

마법사로서는 정말 상대하기가 짜증스러운 상대다.

놈이 거리를 좁히고 한번 치기 시작하면 HP가 전부 날아가 사망해도 바닥에 5초는 넘게 떨어트리지 않는, 고인을 모독하는 수준의 공격 패턴.

그나마 같은 근접 계열이면 상대해 볼 만하지만, 거리를 벌리고 캐스팅 시간이 필요한 마법 클래스는 지옥을 맛본다.

게다가 한 가지 무기만 쓰는 게 아니었다. 검, 창, 둔기, 온갖 종류의 활과 심지어 소형 투석 도구까지 쓰면서 상대를 농락한다.

어디 패턴을 외워 보려면 외워 봐라!

개발자의 기이한 울분과 악의가 느껴지는 패턴.

그래도 깰 놈은 깨겠지만.

뭐, 그런 걸 공략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

‘결국은 유저들의 항의 끝에 나온 것이 그 불리한 패턴을 넘길 수단.’

놈이 만들어 낸 기억의 망령을 해방하여 반대로 놈을 공격하게 만드는 이벤트의 발생.

“그건 그렇고 어지간히 원망을 샀나…….”

망령들의 기세가 게임 때보다 훨씬 더 난폭하다.

녀석들을 해방시키고 조금 선동하는 것만으로도 바로 분노를 터트리며 백의 시조에게 덤벼들었다.

지금 놈은 그 망령들과 싸우느라 정신이 없다.

“놈이라도 이 머릿수는 쉽게 감당하기 힘들 거야.”

바쁘게 싸우도록 놔두고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알피네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잘했어. 알피네, 네 덕분에 저 방법이 먹혔어.”

“설마 시안이 말한 방책이란 게 저런 거였나요?!”

“자업자득 계획. ……뭐, 한 짓 그대로 돌려받는 거지.”

멍하니 내가 내민 손을 잡고 일어나며 묻는 알피네에게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어쨌든 알피네, 네 노력과…… 저 녀석들을 이용하면 내가 상대하기 껄끄러운 국면은 넘어갈 거야.”

“그럼…….”

“……이 뒤는 내가 알아서 할 차례라는 뜻.”

선수 교대다.

알피네를 물러나게 한 다음, 나는 전용 지팡이 악현의 길잡이를 꺼내 쥐며 나선다.

“그럼 결판을 지으러 가자. ……에밀리, 너도 준비해.”

“시안. 우리가 싸우지 않아도 저대로 망령들에 깔려 죽지 않으려나.”

“그럼 좋겠는데. ……저걸로는 조금 부족하겠지.”

어디까지나 성가신 패턴을 넘기기 위한 이벤트에 불과하다.

준비를 끝내고 기다리고 있자.

놈이 망령들과 난투를 벌이고 있는 소리가 점차 작아진다.

그놈의 기척이 작아지는 게 아니다.

“오히려…….”

“……어머, 그 반대네.”

부풀고 있다.

당장에라도 터질 것처럼 기운이 상승하면서.

“시작한다.”

놈의 마지막 패턴이.

확신하며 중얼거리는 순간.

서걱.

무언가를 베는 소리가 길게 메아리친다.

뒤이어 연속으로 소리가 무수히 울리고 난 뒤.

녀석을 깔아뭉갤 기세로 몰려들던 망령들이 한순간에 전부 소멸해 버린다.

“가증스러운 짓거리를 하는군. ……덕분에 그분께 바쳐야 할 병력을 이 손으로 지워야 했다.”

“흥. 뭐래, 이 신성력 괴물 꼰대가.”

비웃으며 나는 걸어 나온 백의 시조의 모습을 재빠르게 확인했다.

난투를 벌이느라 적지 않은 대미지를 입었겠지.

놈이라도 지친다.

하지만 어쩐지 그 힘의 총량은 더욱 강해졌다.

놈이 꺼낸 마지막 무기 때문이다.

“멸성검. ……드디어 꺼내 들었군.”

달라진 것은 놈의 손에 들고 있는 빛나는 대검 한 자루.

저것이 놈이 유일하게 아끼는 무기.

궁지에 몰리지 않는다면 절대 꺼내지 않는 것을 손에 쥐고 있었다.

백의 시조 키온 말로레스의 최종 페이즈.

멸성검의 키온.

“어지간히 쫄았나. 일개 흑마법사를 상대로 그 성검을 꺼내 들어도 되냐?”

“…….”

자존심이 상했나. 수치심이라도 느끼나.

놈은 빠르게 도약하여 공중을 박차고 가속해 오더니 나를 향해 검을 휘둘러서 내리친다.

“……사라져라. 경박한 놈.”

“너무하군. 좀 더 놀자고.”

유성 같은 일격을 간단히 옆으로 피해 낸다.

쿠웅!

멸성검을 내리치자, 교회 성 전체가 흔들릴 정도의 힘이 바닥을 깨부순다.

“멸성검. ……패신교 시절의 최고의 보물. 삿된 자들은 그 검에 새겨진 신성문자를 보기만 해도 자연스레 소멸한다지?”

“잘 아는군.”

“잘 알지. 어쩌면 댁보다.”

파지직.

검에 베이지 않았는데도 내 주변에서 새하얀 번갯불이 들러붙어 반짝였다.

공격받은 것이다.

“정말로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영향을 주나. ……웃기지도 않는군. 반칙이잖아. 그런 무기.”

역성 마력을 습득하기 전이라면 저 검이 발생하는 신성력 때문에 자동으로 대미지를 입었을 것이다.

……이러니 불리한 클래스로는 못 깨지.

“참 짜증 나는 검이야.”

“불손하군. 어떤 외도에 몸을 담았기에 성검을 그런 눈으로 응시하는가.”

“놀고 있네! 그리고 불손하고 사악한 건 댁이고!”

이래서 종교에 찌든 놈들은 약쟁이 이상으로 상종하기가 싫다.

나는 코웃음을 치며 마법 공격을 시작했다.

-흑마반력옥.

검은 마기로 이루어진 구체가 놈을 향해 날아가 터질 듯 끔찍한 마력을 발생시키며 부풀어 오른다.

그것을 놈은 성검을 휘둘러 간단히 잘라 버린다.

썩어도 성검.

흑마법 정도는 간단히 베어 버리나.

뒤이어 연속적으로 흑마반력옥을 쏘아대지만, 놈은 검과 신성력을 구사해 간단히 받아친다.

“어리석군. 고작 한다는 것이 그 같잖은 흑마법인가.”

마치 내가 무슨 공격을 할지 궁금해서 기다려 줬다는 듯 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단 몇 발자국만을 걸어 거리를 벌리고 있는 나를 단번에 따라잡는다.

“역시 속도는 백의 시조 댁이 더 빠른가.”

“네놈이 굼뜬 거다. 시안 알케우스.”

무예의 경지에 이른 자에게 마법사의 움직임은 멈춘 것이나 다름없으리라.

“끝이다.”

놈은 내가 무슨 마법을 쓰든 그것보다 자신이 베는 게 더 빠르리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자만이 아닌 경험에 의한 확신.

“……그렇겠지. 그건 인정할게.”

나도 동의한다.

이 상황에서 내가 무엇을 하더라도 저걸 떨쳐 낼 순 없으리라.

캐스팅 속도가 빠른 것은 위력이 낮다.

놈은 막지도 않고 무시하겠지.

위력이 있는 것은 저 검보다 빠르게 캐스팅할 수 없다.

마법사의 단점.

애초에 마법사 계통의 클래스가 저걸 상대로 일대일로 붙는 게 미친 짓이니.

“……그러니 저건 맡기마. 에밀리.”

“후우……. 귀찮은 건 늘 이 누나의 몫이네. 맡겨주렴.”

단, 나는 혼자가 아니다.

당연히 마법사는 늘 일대일을 피하기 위해 노력한다.

무엇보다 내게는 늘 붙어 있는 악마가 있고.

에밀리가 내 바로 옆에 재소환되어 나를 간단히 걷어차 밀친다.

그리고 에밀리는 자신의 마기로 엮어 뻗은 검기로 놈의 성검을 막는다.

놈이 경악한다.

“악마?! 고작 악마 따위가 성검에 맞선다고?”

“고작이라니 너무하네. ……확실히 이 검은 좀 껄끄러운걸.”

고작 한 번 맞부딪친 것만으로 에밀리가 뻗은 마기의 칼날이 반절 가까이 깎여 나갔다.

하지만 그거면 충분하다.

엘피닐 알케우스에게 받은 대량의 마기로 에너지의 양을 늘렸기에 저렇게 맞서는 게 가능하다.

“저 꼰대랑 잘 놀아 주라고. 에밀리.”

악마를 이용한 근접전. 잠시 상대를 떠넘기고 나는 바로 공격을 위한 마법의 캐스팅에만 집중한다.

“설마 정직하게 일대일이 아니라고 불평하진 않겠지?”

골창을 계속해서 쏟아 낸다.

흡사 기관총을 연상시킬 기세로 쏘아대는 골창의 비.

그것을 백의 시조는 에밀리를 상대로 성검을 한 손으로 휘두르며 견제하더니 다른 한 손을 휘둘려 골창을 맨손으로 쳐 낸다.

괴물이냐.

“칫. 어디까지 버티나 보자고.”

계속해서 마법을 쏘아 내며 나는 여유롭게 웃는다.

상성은 불리하다.

하물며 놈의 근접전을 능가하기는 쉽지 않다.

“그 웃음은 뭐냐.”

“뭐긴, 댁 역시 별거 없잖아. ……라고 생각했을 뿐이거든.”

그러나 왜 내가 이놈이 멸성검을 꺼내 드는 3페이즈가 더 쉽다고 판단했는가.

분명 저 성검은 위협이다. 제대로 베이면 끝장이고.

하지만.

“위험한 건 너도 마찬가지지.”

알고 있다.

놈이 왜 진작부터 저 애검을 꺼내 들지 않았는지. 그 이유가 자존심도 단순히 아끼기 때문도 아니라는 것을.

“…….”

놈의 말수가 줄어든다.

내 마법을 받아치는 손에 상처가 남는다.

놈의 신성력의 방어가 무너지고 있다.

호흡도 흐트러진다.

“그 멸성검. 연비가 최악이지?”

무지막지한 신성력을 빨아들인다.

놈이 보유한 힘뿐만이 아니라 이 성역에 걸친 힘까지 거두어서 사용하고 있는 것.

본래라면 급히 끝낼 싸움에나 써먹겠지.

“위협적이지만, 그걸 든 시점에서 네 방어도 허술해진다는 것쯤은 알고 있거든.”

“……그게 어쨌단 것이냐.”

놈은 자존심에 상처라도 입은 듯 그 갈라진 목소리로 으르렁거린다.

성검을 난폭하게 휘둘러 성가시게 근접전을 벌이던 에밀리를 베어 떨쳐 낸다.

내 마법 공격은 굳이 방어하지 않고 받아 내며 돌진해 온다.

“무슨 계략을 펼치든, 어떤 싸움을 벌이든, 결국 네놈은 이 성검을 당해 내지 못한다.”

“아, 그건 틀리지 않아. 그것만은 인정할게.”

마기의 방벽을 펼쳐서 방어를 시도하나 역시나 성검에 닿는 순간 간단히 잘린다.

더러운 상성.

“흥, 정말이지 못 해 먹겠단 말이지.”

개발자, 이 망할 것들.

욕지거리를 지껄이면서도 나는 여유로운 웃음을 감추지 않는다.

내 손이 움직인다. 놈은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그러니 나도 별짓을 다 해서라도 상대해 줄 수밖에 없잖아.”

내 손이 움직이고.

푸슉.

놈의 몸에서 피가 튀어 나가는 소리가 희미하게 울렸다.

“……검?”

내가 던진 것은 견제용 흑마법 따위가 아니었다.

아무런 마법도 쓰지 않고 던진 단검 한 자루.

“막지 그러셨어? ……왜 또 흑마법인 줄 알았냐.”

애들 장난 같은 짓이지만, 놈은 그것조차 반응하지 못했다.

꽤 궁지에 몰린 것이다.

망령들을 빼앗긴 시점부터 적지 않게 당황했겠지.

“왜? 너희가 아는 시나리오에 이런 잔재주는 없나 봐.”

“……네 이노오오오오옴!”

드디어 밑바닥이 보인다.

분명 분노해도 놈의 기술은 위협적이고 상대하기 더러운 것은 변함이 없다.

“이딴 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거냐!”

“댁 약 올리기?”

조금 전에 베인 에밀리를 재소환하여 막게 하는 것도 당장은 어렵지.

하물며 내 근접 실력은 궁지에 몰렸다고 해도 놈보다 뒤떨어진다.

게임이라면 여기서 두들겨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게임과는 결정적으로 다르다.

“크큭, 완전히 다르지.”

“……무슨 말을 지껄이는 것이지?”

“야. 뭔가 하나 잊고 있지 않아?”

현재 놈의 시야에는 오로지 나밖에 보이지 않으리라.

애초에 놈이 죽일 대상은 처음부터 나뿐이었던 것 같고.

거기다 여러 방법으로 어그로를 끌었으니 놈은 무지하게 열받은 상태.

그게 게임과 다르다.

얼마든지 조롱하고 열받게 하여서 유도할 수 있으니.

“너랑 싸우는 게 나뿐이었냐?”

“……!!”

그제야 놈의 면상에 동요가 어렸으나.

이미 늦었다.

“알피네! 지금이야!”

“기다렸어요!”

외치자마자 바로 나와 백의 시조의 측면에서 새하얀 빛이 파고들었다.

지금까지 뒤로 빠진 채 잠시 쉬고 있던 알피네가 측면에서 기습 공격을 한 것이다.

그것 또한 미리 의논한 대로.

내가 녀석에게 바란 마지막 역할.

그것은 중요한 때를 노린 기습!

“부숴 버려!”

“얼마든지요!”

기합과 함께 날아든 알피네의 발차기가 노린 것은 백의 시조가 아닌 그가 들고 있는 성검.

“……검을?”

놈이 당황하며 검을 거두려 했지만, 이미 알피네의 발이 검에 닿는다.

“하아아아앗!”

파직!

그 멸성검이 평범한 철검처럼 바로 두 동강이 나는 게 아닌가.

흑마법에 의한 공격이라면 얼마든지 휘둘러도 이 하나 나가지 않지만.

신성력이 의미를 갖지 않는 상대. 하물며 알피네는 한순간이라도 신성력 자체에 간섭할 수 있는 재주를 배웠다.

전력을 다한다면 철 덩어리처럼 부수는 것도 가능하다.

“잘했다. 알피네. ……부러진 성검은 그냥 반짝이는 응원봉이지.”

아니, 그것만도 못하리라.

놈의 얼굴에 노골적으로 당혹과 절망이 뒤엉킨 감정이 드러났다.

“그것도 업보지.”

지금까지는 놈이 주로 업보를 만드는 쪽이었지만.

역시 마지막에는 저지른 죄값에 당해 줘야 하는 법.

놈의 움직임이 늦었다.

내 지팡이가 허무할 정도로 간단히 놈의 명치에 파고든다.

“그깟 검 따위에 뭘 그리 놀라?”

“네놈! 시안 알…….”

“……시끄럽고. 이걸로 끝이다.”

악현의 길잡이의 형태가 전개된다.

아껴두었던 마법 대미지의 강화 기능.

악룡의 증폭의 발동.

“꺼져라!”

마기를 있는 대로 끌어내어 지팡이에 쏟아 넣자.

쏟아 넣은 대량의 마기가 흑염으로 바뀌며.

그것이 폭발하는 기세로 방출되어 놈을 포함하여 눈앞의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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