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7화
307화
역시 마계에 가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갈 방도가 없었다.
지하 도서관에 다녀온 뒤 나는 조금 고민하다가 일단 이 문제를 치워 두기로 했다.
“우선은 엘피닐 씨가 말한 대로 저택을 다시 한번 더 뒤져 보자.”
분명 엘피닐의 망령은 내게 알케우스가의 저택을 다시 조사한다면 내게 필요할 것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럼 늦장 따위를 부리지 말고 확인해 보는 게 낫겠지.
어쩌면 일손도 필요할지 몰라서 키르실과 다크 엘프들에게도 동행을 지시했다.
뭐, 한꺼번에 몰려가면 귀찮기에 다른 다크 엘프들은 옛 알케우스 가의 저택에서 합류하기로 했지만.
“무슨 일이 있는지는 알겠습니다만. ……그 알케우스 가문의 저택은 살펴보신 게 아니었습니까?”
“아마 단순히 둘러봐서는 찾지 못하게 숨겨 놓은 거겠지. 짐작 가는 곳은 있어.”
“그런데 에밀리 님은? 그 사건 이후로 보이지 않는 거 같습니다만.”
“아, ……그 녀석.”
이야기를 나누던 중 에밀리가 근래 계속 조용하다는 것을 눈치챈 듯 키르실이 묻는다.
“요즘 조금 잠잠해. ……힘써야 할 때는 응답하는데, 뭔 생각을 하는지 침묵 모드거든.”
(…….)
딱히 계약 악마로서 일을 내팽개치는 건 아니지만, 요 며칠 사이 말수가 급격히 줄었다.
별일은 아니다.
“생각할 게 있다나 뭐라나.”
“별일이 아니라니 다행입니다만…….”
딱히 에밀리의 상태를 채근하지 않는 것은 내가 무심한 게 아니라 원인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 성에서 엘피닐의 망령이 한 충고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있는 모양.
뭐, 그 부분은 내가 무어라 한다고 결론을 지을 수 있는 게 아니기에 그냥 놔두기로 했다.
아마 그리 오래 고민할 것 같지도 않고.
일단은 저택을 재조사하는 게 먼저다.
옛 알케우스가 저택에 도착한 나를 먼저 기다리고 있던 다크 엘프들이 반긴다.
“오셨군요.”
“일단 먼저 지시한 대로 살펴는 봤어?”
“가능한 확인은 해 봤습니다만…….”
다크 엘프들의 표정이 신통치 않다.
“저희가 먼저 지시대로 저택 전체를 조사해 봤지만, 말씀하신 것 같은 것은…….”
아무래도 찾지 못한 모양이다.
“숨겨진 방이나 통로 같은 흔적은 도통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럼 마법으로 은폐한 건가?”
“……그건 그거대로 흔적이 남는 게 보통이라.”
“하지만 오래 방치된 곳이니 쉽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을 겁니다.”
키르실은 다크 엘프들의 의견을 일단 한차례 정리하고는 내게 묻는다.
“다시 조사를 시킬 것입니까?”
“아니, 일단 내가 지난번 봤을 때도 딱히 위화감은 느끼지 못했어.”
사실 어지간해서는 쉽게 발견되지 않을 방법을 썼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엘피닐 씨는 저택을 조사해 보라고만 했단 말이지…….”
힌트 같은 거라도 물을 거 그랬나?
아니면…….
“잠깐, 키르실.”
“예.”
“나 좀 데리고 저택 지붕까지 올라가 줄래?”
“문제는 없습니다만.”
어렵지 않은 일인 듯 고개를 끄덕이고 키르실은 내 허리에 팔을 휘감고 들어 올려서 단번에 뛰어올라 지붕 위까지 올라갔다.
“그래, 잠깐 그렇게 들고 있어.”
그대로 나는 주변을 확인하며 키르실에게 계속 이동하기를 지시한다.
귀찮겠지만, 별수 있으랴. 지금 우리 악마는 계속 고민하는 중인데.
“……무엇이 신경 쓰이는 것입니까?”
“별건 아니고, 엘피닐 씨가 말한 저택을 조사해 보라는 뜻을 조금 고민했거든.”
평범하게 확인하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어쭙잖은 마법으로 숨겼을 가능성은 역시 없어. 애초에 어지간한 마법은 걸릴 가능성이 많아.”
그럼 발상을 바꿔 보자.
내가 주목한 것은 위에서 올려다봤을 때 저택의 풍경.
주로 저택 주변의 정원의 흔적이다.
“……뭔가 덮은 건가?”
“예?”
“확인했으니까 내려가자.”
다시 내려온 나는 이번에는 다크 엘프들에게 알케우스가 저택의 주변으로 물러나라고 하였다.
“일단 주변 좀 잘 살펴봐. 혹시 소동을 듣고 누가 오면 적당히 둘러대.”
“소동? 대체 무엇을…….”
“엎을 거야. ……저택을.”
나는 지팡이를 꺼내 들고는 힘을 한껏 불어넣는다.
대량의 마기가 치솟으며 지팡이의 강화 효과를 더해 더욱 위력이 증폭된다.
-문드러진 뇌구.
내 의도를 깨달은 키르실이 외쳤다.
“지나칩니다?!”
“한 방에 날릴 거니까 이 정도는 돼야 해!”
저택은 물론이고 그 정원까지 전부 박살 낼 정도의 거대한 흑뢰구로 증폭시킨 마법이 위에서 아래를 향해 낙하한다.
“시안 님?!”
“괜찮아. 만일을 위해 철거 허가도 받아 뒀거든.”
물론 정말로 할 거라고는 생각도 안 했지만.
“애초에 저택을 조사한다고 할 때, 그 범위가 어디까지일까?”
“……글쎄요.”
“일단 명의상 알케우스가의 소유권은 저택과 정원 그리고 울타리 범위까지.”
그리고 겉으로 보이지 않는 것까지.
“그 아래까지 알케우스가의 것이라고 생각해야지.”
지하.
뭐 아득히 먼 땅속까지 말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아마 내가 파악한 게 맞는다면.
“아무래도 엘피닐 알케우스는 생전에 저택을 한차례 허물고 다시 지은 모양이야.”
무언가 공사를 했다.
저택뿐 아니라 정원까지 한차례 엎어야 할 정도의 공사를…….
“물리적으로 땅속에 완전히 숨긴 거면 어중간한 탐사 마법으로 찾기도 어렵지. 보통은 그런 짓까지 한다고 생각하지도 못하고.”
찾으려면 아예 저택째 부숴 날려 버려야 하니까.
“그런 것이군요…….”
키르실은 이해한 듯 끄덕였다. 하지만 두어 번쯤 고갯짓하다가 뚝 하고 멈춘다.
“그런데 만약 아니면 어떻게…….”
“맞을 거야. 내가 틀린 적은…… 아마 없어.”
그걸 위해서 자세히 다시 살펴보라고 한 거고, 저택 자체에는 숨겨진 게 없다고 확실히 결론을 지은 거니까.
마법으로 저택을 박살 내서 날리고는 그 뒤에는 다크 엘프들에게 부탁해서 땅을 파게 시켰다.
“파, 파라는 겁니까?”
“응. 아, 만일을 위해 삽이나 공구도 일단은 충분히 있어.”
“그런데 어디까지…….”
“……뭔가 나올 때까지.”
마법으로 파헤치고 싶어도 위력이 강한 마법으로 날리다 보면 뭔가 쓸데없는 것까지 부술 위험이 있으니까.
이럴 때 안전한 건 사람의 손과 삽이다.
느닷없는 대규모 철거와 삽질 그리고 곡괭이질의 시작.
당연히 주변 사람들이 기이하게 여기며 몰려들기 시작했고, 나는 그들을 일단은 제국에서 허가받은 공사라고만 둘러대며 흩어 버렸다.
한참을 파내고 있을 무렵이었다.
(……좀 더 왼쪽으로 안쪽.)
느닷없이 에밀리가 충고하고는 다시 침묵한다.
아마 무언가 알아챈 것이다.
내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그 사실에 안도하며 조금 더 조심스레 파고 내려가자.
따악.
삽 끝에 뭔가 단단한 게 걸린다.
잔뜩 녹이 슨 두꺼운 철판.
“정말로 막아 놨군…….”
“물러나 주십시오. 열 수 있는 구조는 아닌 듯하니 이대로 판만 잘라 내겠습니다.”
키르실이 낫을 꺼내 와 날에 검은 마기의 오러를 휘감고는 간단히 할퀴듯 긋는다.
그것만으로 철판에 선이 그어지며 간단히 잘려 나간다.
통로가 드러난다.
“좋아. 다들 밖에서 대기. ……누구도 들어오게 하지 마.”
만일을 위해 확인은 나 혼자서 하는 게 나을 것이다.
키르실과 다크 엘프들에게 바깥의 감사를 단단히 명해 두고는 나 혼자 그 통로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저 굴을 파 놓아 적당한 크기의 공간을 만들고 회반죽을 발라 굳혀서 봉해 놓은 구조.
마법을 전혀 쓰지 않은 것은 탐사에 걸리지 않기 위한 꾀인가?
그 굴 안에는 두 가지 물체가 보관되어 있었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검게 찌들은 천에 둘러싸인 큼직한 물체.
일단은 내 키보다 조금 더 큰 물체 같은데.
“……그리고 이건가.”
그 정체불명의 물체 앞에 이번에는 내 머리 정도 크기의 것이 마찬가지로 천에 싸여 있었다.
풀어 보니 양피지로 만들어진 책.
“엘피닐 알케우스가 직접 남긴 기록이군.”
(…….)
“신경이 쓰인다면 쓰인다고 해.”
(……별로.)
낌새 정도는 계약자도 눈치채기 마련.
나는 가볍게 피식대며 일단은 그 수기부터 펼쳐서 읽어 내려갔다.
“이곳에 숨긴 것은 그자가 예견한 것을 위해서 받은 선물이다.”
[노년에 접어든 나는 간혹 젊을 때의 일이 신경 쓰였다.]
[그중에서 자주 떠오르는 것은 내가 젊을 적 계약했던 악마.]
[내 역량이 부족하여 결국은 돌려보내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그때를 회고하며 나는 이 얼마 남지 않은 노구로 무엇을 할지 고민했다.]
[진심으로 무언가를 찾았던 것은 아니었다. 애당초 의미조차 없을 거라는 것을 잘 안다.]
[……우연일까. 아니면 누군가 말하길 운명이라는 것일까. 내게 어떤 이가 찾아와 말을 걸었다.]
“……그는 무려 자신을 마왕의 권속이라고 말했다.”
분명 그녀는 제3의 마왕, 즉 선견의 마왕과 접촉한 적이 있다고 하였지?
그리고 예언을 들어서 언젠가 나와 마주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고 하였나.
[권속의 입을 빌려 마왕은 내게 어떤 것을 부탁하였다.]
[그 마왕은 일개 인간. 그것도 변변찮은 흑마법사에 불과한 내게 권속의 몸을 통해 직접 고개를 숙였다. ……내가 아는 악마의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
[호기심. 그리고 기이한 예감에 나는 선견의 마왕의 말을 들어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이 세상은 끝날 것이다. 지금의 마계에 뒤이어 인간의 세상 역시 끝을 맞이한다.]
[그것도 어떤 이기적인 자의 욕망 때문에.]
“멸망에 대한 예언을 받았다라……. 확실히 선견의 마왕이 할 법한 소리군.”
(…….)
[하지만 그런 말을 들어도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것인가?]
[내게 그는 말했다. 없다고.]
[하지만 누군가에게 전할 수는 있다고.]
[언젠가 내가 결별한 악마를 데리고 다시 돌아올 누군가에게.]
“그리고 이것을 맡기니 이해한다면 이것을 통해 찾아오라. 그가 말하길 이것은 초대장이라고.”
수기는 그걸로 끝이다.
아마 그다음 이야기는 언급된 초대장을 써먹어야 알 수 있다는 건가.
나는 수기를 일단 가방 속에 넣고는 그다음으로 커다란 천에 주목했다.
조심스레 단검으로 찢고는 내용물이 상하지 않도록 확인하며 개봉하였다.
“초대장치고는 좀 큰데…….”
(……믿기지 않네.)
조용하던 에밀리가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래, 이해한다.
나도 이것이 뭔지 알아보았기에 마찬가지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초대장이라 비유했지만, 실상은 조금 다른 용도의 물건이다.
무언가의 커다란 파편.
재질을 특정하기 어려운 광석으로 이루어진 어떤 물체의 일부다.
표면에는 읽을 수 없는 문자가 묘한 배열과 함께 어지럽게 새겨져 있었다.
“대체 그 마왕은…… 엘피닐 알케우스와 무슨 이야기를 나눈 거지?”
분명 그녀는 내게 말했다.
내게 필요한 것이 이곳에 있을 것이라고.
필요한 것? 많지. 아이템이든 지식이든 혹은 그 외의 것이든.
“정말로 필요한 거긴 하네.”
조심스레 그 조각을 만진다. 만지는 것만으로는 별 탈이 없을 것이다.
적어도 지금은 그저 평범한 조각에 불과한 것이지만.
(알고 있니? 이거.)
“모를 리가 없잖아.”
그 정체를 이해한다면 조심스레 다룰 수밖에 없지.
“이건 어떤 문의 조각이야. ……아마 귀퉁이의 것일 테고.”
게임에서는 어떤 장소에 진입하기 위해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하는 소재 아이템.
이 세상에서 본래 쉽게 가지 못할 어떤 곳과 연결되었다는 전설이 있는 문.
“마계의 문!”
《마계의 문의 파편을 입수합니다.》
《서브 퀘스트가 활성화됩니다.》
《마계의 문의 모조품을 완성하십시오.》
《보상 : 마계의 진입》
그렇지 않아도 내 골머리를 썩이고 있었던 것은 마계 진입 수단의 확보.
그리고…….
“이걸 이렇게 준다는 건 나더러 찾아오라는 거군.”
확실히 초대장이다.
올 수 있으면 한번 와 보라는 것.
《마계의 문을 재현하여 오십시오.》
《그곳에 당신의 의문에 대답해줄 자가 기다리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