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0화
310화
마계의 문 연구가 진행되는 동안, 내가 해야 할 일은 역시나 자기 향상의 시간.
마계 진입을 위해서 그곳에 걸맞은 능력을 키워야 할 필요가 있었다.
“우선은 이 책부터 좀 살펴볼까…….”
백의 시조를 처단하고 얻은 비서.
백의 비서.
그가 직접 편찬한 전투술이 기록된 책.
게임에서는 프리스트 클래스 계통의 캐릭터 육성에 보너스를 주거나 상위 스킬을 습득하게 해 주는 아이템이지만.
“잘만 하면 흑마법사인 나도 써먹을 구석이 있을 거야…….”
이 책 내용의 본질은 그 무예의 고수가 직접 남긴 지식이니.
설사 흑마법사라도 써먹을 구석은 있었다.
(어떠니? 잘돼 가?)
“확실히 기록된 기술의 심도가 꽤 깊어 보여.”
비교적 무예 쪽으로는 까막눈에 가까운 내가 보아도 상당한 가치가 있는 비전서라고 할 수 있었다.
“나는 이것을 써먹을 깜냥은 못 되지만.”
그래도 참고할 구석은 있었다.
“무기를 다루는 관련 지식도 제법 상세해. ……내가 참조할 만한 건 이건가.”
단검 계통의 전투술.
《백의 단검술을 체득합니다.》
《습득하였지만, 흑마법 클래스와 상성이 좋지 않으므로 스킬 활용도가 제한됩니다.》
화려한 기술은 어려워도 그 기본이 되는 움직임을 개선함으로써 근접 전투 시 대처 능력을 키우는 것쯤은 가능하다.
“……어디.”
적당히 단검을 한 손에 쥐고 차이를 가늠해 본다.
가볍고 훨씬 자유롭게 단검이 내 손아귀에서 춤추듯 휘둘러진다.
분명 차이는 느껴진다.
어느 정도로 성장했을까. 그것을 머릿속에서 한번 가늠해 보며 재차 연습하고 있자니.
소란스러움을 눈치채고 살피러 온 키르실이 말을 걸었다.
“시안 님?”
내가 단검을 쥐고 푸다다다닥! 난리를 치는 것을 보고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것은 종종 체술 수련을 하는 모습을 봐 왔기 때문이다.
“수련하고 계신 것은 단검술입니까?”
“응. 이전에 백의 시조 사건 말했지? 거기서 참고할 만한 걸 얻어서 조금 익혀 보려고.”
“소문으로 듣던 그자의 무예로군요. ……직접 보지 못한 것은 조금 유감입니다만.”
“흥미 있었어?”
“……조금입니다만.”
염치가 있기에 말은 하지 못하지만 아무래도 구미가 당기는 모양이다.
인색하게 굴 필요가 없었다. 나는 키르실에게 백의 비서의 내용을 보여 주었다.
“괜찮겠습니까?”
“어차피 봐도 지장은 없어. 오히려 보려면 지금 봐야 할걸? 나중에 질리면 교회에 팔아 치울 거거든.”
“……그럼.”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니란 것을 알기에 키르실은 사양 않고 내가 건네준 비서를 펼쳐 본다.
심심해서 보여 주는 것은 아니었다.
일단은 그녀 역시 상당한 수련을 해 왔고, 평범한 인간으로서는 엄두도 못 낼 오랜 시간 동안 싸워 온 실력자.
내가 훑어보는 것보다 그녀가 보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어때?”
“상당하군요. ……이것을 편찬한 자는 괴물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그 정도야?”
나는 그저 흉내 내기 어려운 기술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지만, 역시 무예를 제대로 아는 자에게는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키르실, 너라면 어느 정도까지 익힐 수 있겠어?”
“……아쉬운 것은 대부분의 기예는 지금의 저, 다크 엘프의 몸으로는 구현하기 어려울 거 같습니다.”
“아무래도 그 기반이 신성력의 기술이니까.”
“그래도 말씀대로 기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참고로는 더할 나위 없겠죠.”
키르실 역시 그 가치를 인정한다.
“역시 감을 잡는 것 때문에 애먹고 계신 것입니까?”
“일단 머리로 외우는 건 어떻게든 되는데, 몸으로 감을 잡는 건 별개의 문제니까.”
거기다 결국은 마법사의 역량 외의 것이다. 내 전공을 생각하면 별수 없는 일.
“…….”
그런 나를 키르실은 빤히 바라보며 무언가 궁리하더니.
“그럼 제가 시안 님의 움직임을 좀 봐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키르실은 거듭 비서를 확인하며 말했다.
아마 대략적인 내용은 봤으니 내 연습을 봐주는 것 정도는 가능하다는 뜻.
“무엇보다 제가 가장 적임자일 것입니다.”
“……하긴.”
다크 엘프의 육체를 가진 그녀는 내 기술의 연습을 봐주어도 다른 평범한 인간보다는 사고의 위험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행여나 기술이 잘못 구사되어 사고가 일어나도 그녀라면 괜찮다는 뜻.
하지만 그녀를 함부로 대해도 된다고는 여기지 않았기에 내가 선뜻 이용하지 않았던 것뿐이다.
“괜찮겠어?”
“그것을 위해 제가 있는 것입니다. 시안 님께서는 사양 않고 절 이용하셔도 됩니다.”
“아니, 말은 똑바로 하자고.”
하여튼 본인이 그렇게 권한다면야 괜찮겠지.
평소라면 에밀리에게 연습을 맡기겠지만, 그녀도 인간 무예 쪽은 지식이 부족하기에 정확히 봐주는 건 어려웠다.
“그럼 부탁하지.”
“예. 얼마든지 맡겨 주십시오.”
* * *
그리하여 나는 단검술의 기량을 본격적으로 체득하기 위해 키르실의 반짝 과외 지도를 받게 되었다.
“안심하십시오. 이래 보여도 저는 지도술에 꽤 조예가 있는 몸입니다.”
“금악룡 사건 이전에는 어느 나라에서 기사 일을 했다고 했지?”
그렇다면 훈련이나 지도 경험은 당연히 어느 정도 있기 마련이겠지.
“물론 지금의 아카데미에서 말하는 최신 이론이나 병법, 기예 등은 다소 낯설게 여겨집니다만.”
“뭐, 아무래도 나이가 나이…….”
서걱.
키르실이 가볍게 휘두른 단검 사이즈의 목도가 내 발치 아래를 가른다.
“…….”
“아무렴 어때. 아무튼, 한 수 부탁해.”
하기야 쓸데없는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겠지.
나도 목제 단검을 쥐고는 자세를 잡는다.
막 백의 비서를 통해 체득한 방식을 의식하며 서서히 전신에 힘과 긴장을 불어넣는다.
《백의 단검술이 발동합니다.》
자연스레 자세가 잡히고 몸에 마기가 순환하며 그 능력이 오른다.
“막 익혔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기척입니다. 시안 님.”
“칭찬은 됐어. ……쓸데없는 아부로는 아무런 발전도 이룰 수 없어.”
“물론입니다. ……무예란 노력과 피로써 성립하는 것.”
키르실이 진지하게 끄덕이며 목제 단검의 날을 앞으로 내밀고 손짓한다.
“오십시오.”
“……근접은 내가 몇 수 아래이니 내가 먼저 가야겠지.”
무엇보다 그래야만 연습하는 의미가 있고.
신호는 필요 없었다.
나는 바로 준비가 되자마자 몸을 움직이며 키르실을 향해 거리를 좁혔다.
나아가기 바라는 거리를 시야에 넣고 자연스레 의식하는 것으로 몸이 마치 저절로 움직이듯 내달린다.
“과연. 그런 움직임이군요.”
키르실은 눈동자 하나 움직이지 않고도 마치 그것이 보이는 듯 중얼거렸다.
일단은 한 방 정도 먹이는 것을 목표로 삼을까. 적어도 그 정도가 아니면 주인으로서 체면이 서지 않을 테니.
“…….”
숨소리조차 흘리지 않을 정도로 호흡을 가다듬으며 내가 쥐고 있는 목제 단검이 움직인다.
따악.
두세 개 정도의 궤적이 어지러이 움직인 끝에 키르실의 목제 단검과 날이 부딪친다.
“……과연, 시안 님의 근접은 허를 찌르는 것에 치중되어 있군요.”
“본직은 마법사야. ……강력하고 당당한 검술을 추구하면 주객전도잖아.”
“맞습니다.”
키르실은 내가 휘두르는 검을 능숙하게 받아치며 지도하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좀 더 급소를 노리십시오. 단순히 목숨을 빼앗는 자리만이 급소가 아닙니다. 예기치 못한 곳 혹은 생각지도 못한 곳을 베면 얕은 상처라도 적은 동요하기 마련입니다.”
막기만 하는 게 아니었다. 자연스레 내가 단검으로 노려야 할 곳을 유도하며 방어로 흘리거나 어떻게 하면 뚫을 수 있을지 고심하게 만들면서 내 공격을 받아 주고 있었다.
“……요령은?”
“외람되지만, 이렇게 비유할 수 있습니다. ……검에 악의를 담아.”
그야말로 지금의 아카데미에서는 절대 조언하지 않을 만한……. 아니, 하면 큰일 날 요령이겠군.
“악의인가.”
“그것이 싸움입니다. ……시합도 아닌 살수를 주고받는 자리에서 더욱 큰 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그 악의겠죠.”
살의와 악의.
키르실은 그것이 지금 내가 수련하는 근접 요령을 더욱 심화시킬 본질이라고 조심스레 지적한다.
(후후, 살벌한 말이네.)
‘하지만 맞는 말이지. ……나도 정정당당한 승부 따위는 내키지 않아 하는 편이니.’
그 조언을 받아들이고 궁리하고 이해하면서 내 움직임을 조금씩 개선한다.
《백의 단검술의 이해도가 깊어집니다.》
《흑무검술을 터득합니다.》
단검술의 기본 능력을 높여주는 패시브 스킬의 성립.
백의 비서를 통해 실마리를 잡고 대련을 통해 몸에 체득하며 점차 배워야 할 기술의 윤곽이 잡혀간다.
“이젠 좀 감이 잡히는군.”
내 입꼬리가 실룩이는 것과 동시에 목제 단검 끝에 검은 마기의 광채가 일렁인다.
“키르실, 조금 살벌하게 할 거야.”
“언제든지 괜찮습니다.”
키르실의 눈매가 미세하게 가늘어졌다.
점차 내 기술의 윤곽이 잡혀 가기에 그녀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
휘두르는 목제 단검의 궤적이 바뀐다.
“……이건.”
“조금 전하고는 다를 거야. ……조금은 조심해.”
경고와 함께 내가 휘두른 단검이 키르실의 단검과 부딪친다.
하지만 조금 전처럼 경쾌하게 울리는 소리는 발생하지 않는다. ……그 대신 일어나는 것은.
콰지직.
마치 물어서 잡아 찢는 듯한 괴기한 소리.
“……헉?!”
키르실도 예상하지 못한 듯 놀라는 것과 동시에 팍! 하는 작은 충격과 함께 무언가가 솟구쳐 날아갔다.
부서진 목제 단검의 파편.
키르실은 자루만 남은 그것의 상태를 눈여겨보고는.
“이것이 조금 전의 지도로 얻은 결론입니까?”
“응. 악의 어린 검. 딱 그 형태잖아?”
단순히 베어 부러진 것이 아니었다.
부서진 파편의 크기는 각각 불규칙적으로 조각이 나 있었다.
“보았습니다. 시안 님의 검에 씐 마기가 제 목검에 닿는 순간, 그 형상이 변하는 것을요.”
“약간의 잔재주지.”
발상의 변화.
평범하게 예리하고 날카로운 검술은 필요 없다는 생각에 이른 나는 꽤 이질적인 변칙을 주었다.
검이 닿을 때, 그 마기의 칼날을 마구잡이로 변화시켜 잡아채고.
“콱! 찢는 거지.”
나는 허공을 손으로 움켜 낚아채는 시늉을 하면서 그 원리를 설명한다.
《악쇄검기를 습득합니다.》
그리고 공격 스킬로서 제대로 습득하게 되었다.
“어때?”
“쓸 만할 것입니다. 단순히 예리한 검술이 아니라 물어뜯듯 고약한 상처와 파괴력을 주는 단검술은 드무니까요.”
난잡한 상처는 예리하게 베인 것 이상의 고통을 줄 것이니 적 또한 당황하겠지.
위력과 심리적인 압박을 둘 다 주기에 적합한 스킬이라고 여겼고, 키르실 역시 동의했다.
“하지만 다루기 어려운 기예일 것입니다만.”
“응. 타이밍을 연습해야 해.”
단순히 쓱싹! 베는 게 아니라 닿는 순간 칼날을 다루어 잡아채고 찢는 감각을 체득해야 한다.
“그러니 이번에는 작정하고 검을 주고받으면서 타이밍을 잡는 방식을 수련해 보자.”
“……예. 그렇다면.”
키르실은 새로운 목제 단검을 꺼내며.
이번에는 자신의 목제 단검에 검은 오러의 칼날을 덧씌운다.
그러고 보니 저 녀석 안 썼네. 오러.
어쩐지 키르실은 기쁜 듯 오러로 덧씌운 단검을 휘두르며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저도 진심으로 상대해 드리겠습니다. ……설마 이 정도이실 줄이야.”
“아니, 일단은 기술 개발이 목적이니까 제발 적당히 하자. 응?”
* * *
덕분에 필요한 기초 감각을 충분히 익힐 수 있었다.
“조금만 더 확실하게 체득하면, 마법사로서 이상적인 근접 대책을 얻을 수 있을 거 같아.”
“지금도 훌륭하게 습득하신 거 같습니다만.”
“아직 부족해.”
그래도 더 욕심이 생긴다.
나의 이런 욕심에 호응했기 때문인가. 아니면 조금 전 연습의 성과인가.
《흑무암검의 숙련도가 일정 이상의 이해도를 넘었습니다.》
《노력과 열망만으로 숙련도를 충족하였기에 상위 스킬의 확장 조건이 제시됩니다.》
과연. 열의와 노력으로 수련을 하면 그만큼의 대가가 주어진다는 걸까.
《해당 조건을 달성하십시오.》
《패검의 인형 격파 0/1》
제시되는 상위 스킬의 습득 조건을 확인한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패검의 인형? 아, 오러 클래스의 그 골칫거리를 말하는 거군.’
다행히 멀리 나가지 않아도 되겠군.
후딱 갔다 올까.
나는 곧바로 채비를 하고는 나섰다.
“바로 외출입니까?”
“응. 해 지기 전에는 돌아올 거야.”
“막 훈련을 하신 뒤입니다만, 대체 어디에?”
“별거 아니야.”
숨길 필요도 없었다.
“오러 클래스에 가서 비품 하나만 부수고 올게.”
“……예?”
민폐 끼치고 온다는 말을 당당하게 하는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