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8화
318화
43장 - 악마의 세계
일 년의 마지막 날.
그리고 제국 필로스 아카데미의 일 년을 끝마치는 마지막 날.
종업 행사.
사실상 마무리를 기념하는 파티나 다름없었다.
한 해 모든 일정의 종료를 정식으로 선언하는 시점에서 아카데미의 일정도 마무리되는 셈.
“이번 한 해의 모든 수업 일정을 성공적으로 마친 것을 본 아카데미 학장인 필레프 팔레네우스는 몹시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네.”
아카데미 본관의 중앙홀에서 거행되는 종업 행사의 시작.
학장 필레프의 연설을 끝으로 아카데미 요리사들이 준비한 요리가 나오고, 학생들과 그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은 이제 올 한 해를 돌아보면서 서로 담소를 나누는 자리가 마련됐지만.
“뭔가 썰렁하군.”
홀의 구석에서 나는 그 분위기를 가늠하며 내 기억 속 게임 이벤트와 비교해 봤다.
확실히 썰렁하다.
참가하는 인원도. 그리고 참여한 녀석들의 분위기도.
“다들 망년회 싫어하나.”
나는 싫어하지만.
역시 연말에는 집이 최고지.
뭐, 단순히 그것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지만.
“농담은 그만둬라, 시안. ……참여한 학생이 적은 것은 어쩔 수 없지 않나.”
엘시아가 쓴웃음을 지으며 내가 한 헛소리를 들은 것인지 말을 걸어왔다.
이 녀석도 굳이 참석했나. 성실하네.
“사람이 없는 거?”
“듣자 하니 종업 행사를 전통대로 열어야 할지 말지 고민하였다고 하더군.”
“막상 안 하자니 전통이니 자존심 때문에 걸리고, 그렇다고 하자니 참여할 학생의 수가 이 모양이니 말이야.”
나는 다시 한번 홀 내의 학생들의 숫자를 눈짐작으로 세어 보았다.
역시 적다.
거기에 학생회는 물론이고 선배 기수도 실력이 있는 자들은 불참.
뭐, 바쁘겠지. 아마 황실 명령으로 뭔가 일을 하는 모양이고.
전통대로 종업 행사는 하지만 놀 때는 아니라는 뜻이다.
“……참여한 건 전체의 반 정도인가.”
“대부분은 본가로 돌아가 버린 모양이더군.”
엘시아의 말대로 당장 83기수만 하여도 낯익은 얼굴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셀리디아도, 알피네도, 미셀도, 그 외의 다른 녀석들도 드문드문 빠져 있군.
보통이라면 어지간해서는 불참을 허용하지 않으나.
이번만큼은 아카데미도 귀향을 막을 수 없다.
“시안, 너라면 들었겠지만 전쟁이 거의 확실시되어 가고 있다던데.”
“아하~ 그러니 집에서 불러들일 수밖에 없었겠지.”
전쟁이 터지게 되면 학생들은 의무적으로 소집된다.
어지간하면 전쟁터의 최전선에 나서지는 않아도 후방 정도에는 배치될 수 있겠지.
그것이 제국의 막대한 예산으로 배움을 누리는 이들의 의무일 테니까.
“의외네. 엘시아, 넌 리올레이트 공작가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거야?”
“훗, 돌아가서 뭘 하란 거냐? 농담이다. 명목상 급히 돌아가서 할 일은 없다.”
중요한 일은 그녀의 형제가 처리하고 있을 테니 딱히 간섭하고 싶은 마음은 없나 보다.
“학장님도 난처하게 되셨어. 어떻게든 분위기는 단단히 붙잡으시려는 모양이지만.”
“별수 없지 않나. ……그래서 시안, 전쟁이 일어나는 건 확실한 거냐?”
“왜 그걸 나한테 물어?”
“네가 단 한 번도 그 소문을 부정하지 않았으니.”
“……어떠려나.”
부정하지 않으나 딱히 긍정도 하지 않는다.
뭐, 그것만으로도 충분하겠지.
“거기다 묘한 편지가 얼마 전에 전해졌다만.”
“편지?”
“기이하게도 당장 해야 할 수행 방법이나…… 고민하는 것에 대한 힌트 같은 게 적혀 있는 모양이더군.”
“보낸 녀석한테 물어봐.”
내가 보내도록 시킨 조언이 제대로 도착한 모양이다.
당연히 내가 하는 짓을 익히 봐 온 녀석들은 보자마자 누구의 짓인지 떠올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으리라.
“……무슨 속셈이냐, 시안?”
“그냥 말할게. 전쟁은 무조건 일어나. ……길어지진 않겠지만 그게 끝나고 얼굴 아는 녀석이 보이지 않게 되면…… 조금 우울하잖아?”
내 말에 엘시아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뜬다.
사사로운 이득이니 뭐니를 노린 게 아니라 순순히 아이들이 살았으면 하는 이유라고 솔직하게 말했으니.
“내가 보낸 건 하루라도 더 살아남게 하기 위한 조언이야. ……대단한 것도 아니니 맹신하면 곤란하지만, 참고는 되겠지.”
“시안, 대체 넌…….”
엘시아는 머릿속이 복잡하다는 듯 눈동자가 흔들렸다.
전쟁을 확신하고.
그것을 대비하는 전제로 단호히 말한다.
“혹시 황제 폐하께 들은 것이냐?”
“그렇다면 내 입으로는 말하기 더 곤란하겠지.”
오해한다면 그걸로 됐다. 나는 착각할 수 있는 정도로만 말을 얼버무렸다.
“내가 거듭해 줄 말은 그거야. ……내년에 만약 무슨 일이 일어나면 가능한 살아남도록 노력해.”
“……묘한 말이군. 마치 네가 그 자리에 없을 거라는 말처럼 들리는데.”
예리하네.
“이유가 있어서 자리를 비울 거거든. 가능한 빨리 돌아오고 싶지만, 당분간은 어렵지 않으려나.”
“소문이 들리더군. 시안, 네가 뭔가 묘한 탐사를 시작한다고.”
“맞아 대충 그거랑 관계가 있어. 위험하진 않을 거니까.”
“알았다.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별수 없겠지.”
내 조언을 들어서 단 한 번도 손해를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모르진 않을 테니.
엘시아는 머리 아픈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쓸데없는 소릴 했군.’
뭐, 전쟁이니 뭐니 아직 체감도 되지 않을 일을 거론할 만한 자리는 아니리라.
그렇지 않아도 내 대화가 들린 것인지 몇 녀석들이 불안한 얼굴을 하고도 있고.
다른 화제로 옮길까?
“음? 잠깐? 그러고 보니 오늘.”
“시안?”
내가 뭔가 골똘히 생각하자, 이를 눈치챈 그녀가 묻는다.
“야, 엘시아. 어차피 우울한 분위기일 테니 계속 있어 봐야 좀 그렇지?”
“벌써 내빼자는 것이냐?”
“내뺀다기보다는 잠깐 어디 들러서 하고 싶은 게 있거든. 조금 거들어 줘.”
“상관은 없다만, 뭘 하려는 거지?”
“말나온 김에 너희에게 도움이 될 거 하나만 더 구하러 가게.”
마침 딱 오늘만 구할 수 있는 게 있거든.
하마터면 잊을 뻔했다.
* * *
게임에서 아카데미는 단순히 일상을 보내거나 학업 이벤트만 진행되는 곳이 아니라.
특정 조건만 맞아떨어지면 몇 가지 진귀한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이벤트도 벌어지는 곳이다.
“……기록의 탑? 오자고 한 곳이 겨우 여기냐?”
“맞아. 한 해의 마지막 날. 하마터면 여길 오는 걸 깜빡할 뻔했지 뭐야.”
나는 “위험했네. 휴우~!”라고 진심으로 안도하면서 아카데미의 시설 중 하나인 기록의 탑을 올려다보았다.
벌써 그립군.
처음 여기에 발을 디딘 게 입학하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던가.
“수업 일정은 마쳤더라도 시설 이용 권리는 사라지지 않았으니까 이용할 수 있어.”
“그건 안다만. 시안, 왜 굳이 오늘 이곳을……. 설마 훈련이라도 하자는 것이냐?”
“아니, 아닌데?”
아무리 나라도 연말에 수업이나 훈련을 할 만큼 인생이 삭막하지는 않다.
“기록의 탑의 용도가 훈련 시설인 건 맞긴 한데…….”
과거에도 언급하였지만, 이 탑의 기본 목적은 도전 시설.
이 탑이 재현하는 온갖 몬스터의 환영을 상대로 여러 전투 기술을 시험하는 곳이지.
그리고 그 세 개의 탑 중 내가 향한 곳은 중앙에 있는 탑.
“훈련이라도 할 거냐?”
“에이~ 설마~.”
당연히 지금의 내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꼭대기에 올라간다고 해도 금방 결판이 날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새삼 1년 만에 내가 말도 안 되게 강해지긴 했구나 싶었다.
……괴물 취급을 받는 것도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군.
“그럼 어째서…….”
“이 탑은 특정 기간에 올라가게 되면 본래의 의도와는 다른 효력을 발휘하게 되거든.”
“……무슨 뜻이지?”
“보면 알아. 뭐, 그걸 위해서는 일단 상층까지 진행해야 하는데 혼자서는 귀찮거든.”
그러니 거들어 달라는 것이다.
혼자서 귀찮은 것도 적당한 친구에게 떠넘기면 편하잖아.
“…….”
“농담이야. 나도 놀지 않고 도울 거니까. 응?”
“알았다. 뭔가 뜻이 있겠지.”
* * *
기록의 탑.
중앙의 탑의 마지막 층에 등장하는 몬스터는 아이언 미노타우로스.
과거 딱 한 개체가 제국에서 날뛰었는데, 이놈 혼자서 수백 명의 병사를 죽였다고 전해지는 괴물이다.
“뭐, 우리한텐 어림없지만.”
지금의 너는 강하다. 가라, 엘시아 리올레이트.
내가 뭔가 자랑스러워하듯 말하는 사이에 엘시아가 휘두른 창이 간단히 미노타우로스를 베어 넘겼다.
“시안, 어쩐지 나 혼자서 이걸 쓰러트린 거 같다만.”
“네 실력이 많이 늘어서 지원할 시점을 찾지 못했던 것뿐이야.”
“정말인가?”
“정말.”
“……되었다. 그리 어려운 몬스터도 아니었으니.”
내가 농땡이 부릴 걸 미리 예상했는지 창을 거두면서 엘시아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농땡이 아니거든?
굳이 말하자면 일부러 힘을 아끼고 있다.
이다음을 위해서.
“시안, 이곳이 마지막 층일 텐데? 네가 말한 건…….”
“성질도 급하긴. 이제 시작이야.”
“그럴 리가…….”
당황하는 것도 당연했다. 공식적으로 안내된 기록의 탑 사양은 이곳이 마지막 층이고, 조금 전의 쓰러트린 몬스터가 끝.
“안내되지 않은 기능인가?”
“아~, 그거랑은 달라. 일단 기능 자체는 그게 전부인 건 맞아. ……지금부터 할 건 이곳을 설계한 자도 모르는 오류 같은 거.”
“오류라고?”
“왜 기록의 탑이 여러 몬스터의 힘을 재현하는 기능을 발휘하는 거 같아?”
단순히 환각 계열의 마법만으로는 있을 수 없는 현상이다.
“모르겠군.”
“응. 대부분 그렇게 말할 거야. 애초에 이걸 설계한 자도 잘 모를 테고.”
말하자면 우연.
“구상은 했지만, 실현하기에는 여러모로 어려웠거든. 하지만 그걸 해결한 게 어떤 희귀한 보물을 손에 넣고 사용했기 때문이야.”
“보물이라고?”
“이 탑의 중추에는 몬스터의 재현 능력을 발휘하기 위한 어떤 보물이 매장되어 있어.”
탑의 기능을 보완해 줄 귀중한 보물이지.
“그게 무엇이지? 짐작 가는 것도 없다만.”
“어떤 희귀한 존재의 일부.”
“흠?”
엘시아는 여전히 짐작 가는 게 없는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숨기면서 놀릴 필요는 없겠지.
나는 그것을 바로 보여 주기로 했다.
“그리고 이 탑은 한 해의 마지막 날 어떤 조건에서 생각지도 못한 오류가 발생하게 돼.”
정확히는 게임에서의 특수 이벤트 발동 조건이지만.
나는 싱긋 웃으며 대량의 마력을 발생시켜 기록의 탑 천장에 처박는다.
목표는 아래.
이 탑을 경유하여 지하 깊숙한 곳에 매설된 그것을 자극하고자 하는 것이다.
《서브 이벤트가 발생합니다.》
《기록의 탑에 매장된 보물. 요정 여왕의 심장이 대량의 마력에 반응합니다.》
“요정 여왕……. 정확히는 전 여왕이지만, 그것의 유해를 사용했거든.”
“요정이라고?! 그런 게 실존하는 건가?”
엘시아가 놀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요정은 별 볼 일이 없기 때문이다.
“보면 알 거야. 자, 저기 나오네.”
마력에 반응하여 요정 여왕의 유해로부터 흘러나온 기운이 탑에 새로운 존재를 재현시킨다.
마치 유령과도 비슷한 현상.
요정 여왕의 영체가 부활하며 적의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잊힌 요정의 여왕》
전대 요정의 여왕. 기록의 탑 특수 이벤트의 보스라고도 할 수 있다.
“우연히 손에 넣은 소재를 이용해 몬스터의 기록을 재생시키는 소망을 이루게 한 거지.”
“그건 알겠다만 시안, 저 요정의 영체가 적대하는 거 같다만.”
“당연하지. 요정은 기본적으로 인간을 싫어하거든.”
이곳에서 요정은 인간을 적대하는 대표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으니.
“뭐, 그래서 내가 힘을 아끼고 있었던 거야.”
엘시아에게 걱정하지 말고 있으라고 적당히 손짓하고 나는 덤벼들려는 요정 여왕의 영체를 향해.
지팡이를 꺼내 들고는 가리켰다.
“유감이지만, 내겐 상대가 안 돼.”
비탄의 거완.
7서클이 되어 익힌 흑마법 계통의 공격 마법.
두 개의 거대한 악마의 팔이 튀어나와 단숨에 요정 여왕의 영체를 짓뭉개 파괴한다.
《잊힌 요정의 여왕을 토벌하였습니다.》
《요정의 유해를 획득합니다.》
《특정 이벤트를 클리어함으로써 패시브 스킬, 요정 찬탈자를 획득합니다.》
목적은 이 보물을 입수하는 것.
그리고 겸사겸사 요정에게 추가 대미지를 줄 수 있는 패시브 스킬을 얻는 것.
내 손에 들어온 여왕의 심장. 보석처럼 생긴 녹색의 물체를 확인하고 나는 바로 그것을 가공하였다.
《소망의 가호를 완성하였습니다.》
목걸이 형태의 장신구 아티팩트로 잽싸게 제작하였다.
그것의 완성도를 재차 확인한 후 나는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던 엘시아에게 휙 던졌다.
그녀는 그것을 허둥지둥 받아 들었다.
“왜 내게 주는 거지? 시안, 네가 손에 넣은 것일 텐데.”
“그 아티팩트는 집단전밖에는 활용 못 하거든.”
이름은 거창하지만, 요컨대 대규모 전쟁 시나리오에서 유리하게 플레이하기 위한 아이템.
“발동 조건은 지휘관. 요컨대 다수의 인간을 지휘하고 있을 때 효력이 자동으로 발생해.”
아군의 숫자가 많을수록 능력치 상승 버프를 걸어 주는 아이템이기에 나보다는 전쟁이 벌어졌을 때 동급생들을 지휘하게 될 그녀에게 주는 게 더 적절하다.
뭐, 나도 요정 대응용 스킬도 손에 넣었으니 무료 봉사는 아니고.
“그걸로 만약에 경우 어떻게든 애들 잘 타일러서 살아남아 봐. ……그럼 그 뒤는 어떻게든 될 테니까.”
“그, 그래. 고맙게 쓰도록 하마. 시안.”
이렇게까지 하니 엘시아 역시 내가 말하는 전쟁에 대한 우려가 사실임을 직감한 것이겠지.
장난으로라도 이런 것을 주진 않을테니.
“돌아가자. 들키면 귀찮으니까.”
“그러고 보니, 이것을 만들었다면 기록의 탑은 내년도에는 어떻게…….”
“눈치챈 사람은 없으니 괜찮을 거야.”
당장 여기 쓸 사람이 없으니 눈치채지 못하겠지만, 머지않아 누군가 비명을 지르겠지.
“……비밀로 해 두마.”
사람 구하자고 하는 짓이니 별수 없지 않겠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