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0화
320화
케니실린 샤렐로스의 계획이 미친 소리라고, 절대 불가능하다고 무턱대고 부정할 수는 없었다.
녀석이 말한 것은 이해도, 공감도 할 수 없지만, 그 목표를 실현시킬 방안은 짐작이 가고도 남으니.
“……종언의 흉성.”
[맞아. 그 존재의 힘을 빌릴 거니까. ……아니, 이용한다는 말이 더 옳으려나. ……알고 있지?]
“그래.”
최종 보스.
뭐, 어디까지나 트루 엔딩 루트에서만 물리치게 되는, 이 세상 최악의 괴물이다.
“그것은 세상 전체를 오염시키고 녹여서 집어삼킨다고 하는 괴물일 텐데.”
[맞아. 인간의 부정적인 감정……. 욕망, 시기심, 증오, 복수심, 그런 것에 이끌려 그것에 가득 찬 이들에게 종언을 선언하고 먹이로서 집어삼키는 괴물이야.]
역시나 알고 있다.
“그것을 이용한다고? ……물리쳐야 할 괴물에 지나지 않거늘.”
[아까운 소릴. 그것을 지배하여 손에 넣는다면 세상을 집어삼켜 다시 원하는 대로 환원할 수 있어.]
“……미친 소리.”
요컨대 녀석은 세상을 한 번 멸망시키겠다는 소리였다.
멸망시켜서 그 괴물의 위액 속에 녹아 버린 세계를 다시 자신의 입맛에 맞게끔 만들어 굳히겠다는 것.
망상 같은 이야기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로 불가능한지 아닌지를 따진다면, 나는 몹시 짜증 나지만 가능하다는 쪽에 손을 들어 줄 수밖에 없었다.
‘……게임 시나리오에서도 그렇게 수습되었으니까.’
최종장.
종언의 흉성 강림 & 토벌전.
제국에서 극히 일부의 땅을 제외하고 전부 그 괴물의 먹이가 되는 것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당연히 물리쳤으나 세상은 멸망했습니다! 라고 끝낼 수는 없으니 기적적으로 그 집어삼켜진 세상이 주인공의 사랑의 힘이 불러온 기적으로 복구된다는 식으로 적당히 마무리가 되는데.
[그걸 다루는게 가능해.]
요컨대 저 녀석은 그 수습 과정의 두루뭉술한 부분을 악용할 셈이다.
[조금만 신경을 쓰면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어. ……어떤 의미로는 창조주가 된다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창조주는 개뿔. 그저 재활용한다는 거겠지.”
세상이 쓰레기니? 녹여 재활용하게.
……쓰레기 맞나?
[틀리진 않아.]
녀석은 세상을 재활용하여 제 입맛에 따라 원하는 대로 조작하려는 속셈.
“내가 그걸 듣고 못 본 척할 이유가 되나? 어찌 되었든 세상을 멸망시키자는 거잖아.”
[멸망이 아니야. 아마 사람들은 멸망했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할 테니까. 잠깐 눈을 감았다 뜨면 돼. 달라지는 것도 없어. ……아니, 더 좋아지겠지.]
“놀고 있네.”
역겨운 논리.
[분쟁도 비극도 없을 거야. 모든 것은 나를 위해. 내 밑에서 통솔될 테니.]
“……개소리야.”
[물론 시안, 네게 그걸 강요하지는 않아. 하지만 묵인해 준다면 네가 원하는 안락한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도 어렵지 않아.]
“……그렇군. 그런 뜻에서 협력이라는 건가.”
그것도 틀리진 않은 말이리라.
종언의 흉성을 이용한 계획.
그것을 성공시킨다면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 나를 어딘가의 왕이든 무엇이든 마음대로 앉혀 놓을 수 있겠지.
“내게 그런 것을 주겠다고?”
[세상은 넓어. 어딘가 한 곳을 떼어 주는 것쯤이야 어렵지 않아.]
“흥! 통도 크시네.”
나는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하고는.
얼굴에서 표정을 지웠다.
[……거절하는구나.]
“그딴 헛소릴 듣겠냐. ……거기에 악인과는 협상하지 않는 게 상식이거늘.”
[악? 내가 단순히 악인으로 보이는 걸까.]
“세상은 그런 걸 악인이라고 하거든.”
결국은 세상을 멸망시키려 드는 시점에서 저 녀석이 그 최종 보스랑 다를 게 뭐가 있는가.
타협해야 할 대상이 아니었다.
“그리고 물리쳐야 하는 대상이지.”
토벌해야 하는 적.
그저 내게 저것은 일개 몬스터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유감이야. 이해할 거라고 여겼는데.]
“어이가 없군. 어째서 내가 그딴 개소리를 이해할 거라고 여긴 거지?”
[나랑 같이 세상의 미래를 아는 자니까. ……그것을 이용하고.]
“……돌았군.”
저 녀석이 어떤 식으로 이 세상의 미래를 알고 있는지까지는 알 수 없었다.
적어도 확실한 것은 나와 같이 ‘게임’으로서의 요소로 인식하지는 않는다는 것.
하지만 미래를 알고 그것을 전제로 이용한다는 것은 같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바람도 이해할 거라고 여겼는데.]
“이해하겠냐. ……등신 같은 소리. 댁이랑 같은 취급은 하지 마.”
확실히 나도 게임의 지식과 경험을 통해 내 멋대로 행동한 적은 있다.
그것이 치사하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남에게 피해를 준다든가 세상을 멸망시킨다는 발상 따윈 한 적이 없어.”
[그것이 소망에 필요한 것이라고 해도? 너라면 어쩔 건데?]
“나라면 그 시점에서 소망을 포기할 거야.”
그것이 내 방침이다.
내가 시안이 되었을 때 가장 처음부터 생각한 한 가지 방침.
적어도 내가 원하는 건 그런 짓을 하지 않아도 이룰 수 있으니.
“그러니 달라. ……쓰레기.”
[정말로 안타까워. 나를 이해하지 못하다니.]
케니실린은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듯 한탄하였다.
[아깝지 않아, 시안?]
“아깝다고?”
[이 세상이 어찌 될지 알아. ……얼마나 허무한지도 알고 있지.]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조금만 욕심을 부리면 얼마든지 세상을 차지할 수 있어. 그리고 그 허무한 세상을 의미 있게 만들 수도 있어.]
“그게 네가 지배하는 거다?”
[무지한 이들보다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악인이나 할 법한 소리군.”
오만하면서도 참으로 역겨운 논리이자 사고방식. 그것이야말로 내가 녀석의 말에 동조하지 않는 이유라고 할 수 있으리라.
더 들을 필요도 없다.
나는 통하지 않는 걸 알면서도 흑염을 일으키며 내쫓을 의사를 비쳤다.
“꺼져. 그리고 기억해 둬. 절대 네가 원하는 대로는 되지 않을 테니.”
[기억해 둘 가치도 없겠어. 시안. 동의하지 못하겠다면 너 역시 없애고 순종적인 존재로 만들면 그만이니까.]
“네가 원하는 대로 됐을 때의 일이겠지. ……뭐, 너만 이것저것 떠들면 불공평하니 나도 한마디 충고해 주마.”
녀석은 대꾸하지 않은 채 듣는다. 아마 무시하려는 거겠지.
듣거나 말거나.
나는 아마 녀석이 모를 한 가지 진리에 대해 말했다.
“이 바닥에서 악인은 원하는 걸 이룬 적이 없어.”
[역시 들을 가치도 없네.]
“그러냐. ……정말로 뭘 모르는군.”
이곳부터가 그 철칙이 들어맞는 세상일 터인데.
케니실린은 협상이 결렬된 시점에서 더는 이야기를 나눌 마음이 없어진 것인지 멋대로 사라졌다.
“진실을 말한 건데. ……멍청한 녀석.”
* * *
드디어 마계로 넘어갈 때가 되었다.
마계 원정의 시작.
나는 마계의 문 앞에 선 채 언제든지 그것을 열 수 있도록 기다렸다.
“……출발하자. 에밀리.”
에밀리는 가벼운 한숨을 쉬며 실체화하여 내 앞에 사뿐히 착지했다.
“정말로 갈 생각이구나. 시안. 말했지만 볼 건 없을 거야. 악마의 세상은…….”
“그러니까 가야지.”
거기에 부르는 자도 있을 테니.
“흐음, 그럼 가자. 시안. 우리들, 악마들의 비참한 세계로.”
에밀리는 내 바람대로 마계의 문을 열기 위한 작업에 들어간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활성화되기 시작한 문에 에밀리가 그 마계의 문을 확실히 열기 위한 마무리를 한다.
《마계의 문이 개방됩니다.》
《마계에 진입할 수 있게 됩니다.》
“……가자. 마계에.”
* * *
내가 그곳을 보자 무심코 중얼거린 말은 이것뿐이었다.
“……붉군.”
“붉지?”
어딘가 씁쓸하다는 투로 내 감상에 맞장구를 쳐 주는 에밀리.
“지난번에 듣긴 했지만, 설마 이건…….”
나는 멍하니 중얼거리면서 눈앞의 것을 바라보았다.
붉은 무언가.
마계의 문을 통해 도착한 곳은 마계의 어딘가.
게임과는 다른 경로로 손에 넣은 문이기 때문인지 내가 도착한 곳은 게임 때의 지도와는 다른 곳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게임에서 마계의 풍경이나 알고 있는 지식을 한순간 잊을 뻔한 광경이 가장 먼저 나를 맞이한 것이다.
“시안도 참 운이 나쁘네. 설마 바로 저걸 볼 줄이야.”
“과연 이게 에밀리, 네가 말한 마계의 위기라는 거야?”
내가 밟고 있는 황무지의 저편에는 붉은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아니, 바다라고 표현하지만, 저것을 과연 액체 따위에 비유해도 좋은 건지.
저 지평선 너머까지 붉은 물 같은 것으로 가득 차 있었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시안. 가까이 다가가면 밀어닥칠 거거든.”
“밀어닥친다? 뭐가?”
묘한 표현에 내가 의아해했지만, 에밀리는 곧 알게 될 거라는 투로 의미심장하게 중얼거린다.
그녀의 말대로 곧 알게 되었다.
한순간 그 붉은 바다가 일렁였다.
파도라도 치는가 싶어서 별것 아닌 듯 무시하려 했지만, 나는 그것에서 묘한 적개심을 알아채고는 반응했다.
“……뭐? 반응한다고?”
에밀리의 말로는 가까이 다가가면 반응한다고 하였다.
그 말대로 내 존재에 반응한 것인지 그 붉은 물이 치솟는가 싶더니 곧 이쪽을 향해 맹렬히 쏟아진다.
“공격하는 건가?”
“단순히 그곳에 있을 뿐이라면 위협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하겠지? ……저것은 가까이 다가가는 것에 반응하고 덮쳐들어.”
에밀리는 지긋지긋하다는 듯 설명하며 검은 번개를 만들어 쏟아지는 물을 향해 흩뿌린다.
그대로 번개에 증발한다.
“저거에 공격은 통해?”
“소량이라면. ……하지만 저 정도의 양이면 아무리 퍼부어도 의미가 없지 않을까.”
거기다 위협적인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겠지.
“골치 아픈 건 지금부터 시작이란다. ……시안.”
단순히 덮쳐드는 것뿐이라면 악마들이 위협을 느낄 이유는 없겠지.
쿠구구구구궁.
땅이 흔들린다.
정확히는 흔들리는 것이 땅이 아니라 그것을 포위하고 있는 대량의 붉은 물.
마치 분노라도 하듯.
“흥. 뭐 열 받으면 이번에는 해일이라도 덮치나?”
“……그것보다 더 불쾌한 거란다.”
다시 붉은 물이 솟구친다.
그러나 이번에는 나를 집어삼키기 위해 쏟아지는 것이 아니라 그 솟구치는 물의 안쪽에서 무언가가 연이어 튀어나왔다.
“……악마?”
“저것이 저 괴물이 지독한 이유란다. ……집어삼킨 것을 저렇게 흉내 내어 덮쳐들거든.”
점액질은 여러 종류의 악마의 형상을 갖춘 채 어느새 벌써 수십 마리째 튀어나와 이쪽을 향해 접근해 온다.
“저거 단순한 흉내는 아니지?”
“시험해 볼래?”
“그 말 듣기만 해도 알 거 같아.”
일단 싸워 보는 쪽이 알기 쉬울 터.
나는 가장 앞에 선 점액질의 악마를 향해 흑마법을 캐스팅하여 쏟아 내었다.
“우선은 적당히 간단한 거로 쏴 날려 볼까.”
-흑마반력옥.
검은 구체가 그 붉은 물로 이루어진 악마에 부딪히자 그대로 일그러지면서 파열한다.
“……역시 안 먹히나.”
쓰러트렸는가 싶었으나, 곧 산산이 조각난 붉은 물의 악마는 다시 형태를 갖추어 내 쪽을 향해 검은 화염탄을 쏘아 낸다.
“악마의 마법까지 재현하는 건가.”
어렵지 않게 막긴 했지만, 그 마법 공격은 악마의 것 특유의 낌새가 짙었다.
요컨대 잡아먹힌 것은 악마건 무엇이건 저렇게 재현할 수 있다는 건가.
끔찍하네.
“저걸 어떻게 쓰러트린담…….”
“시안, 좋은 생각 없니?”
“미안하지만, 오늘 처음 본 걸 상대로 묘안을 내놓으라는 건 너무하지 않냐.”
에밀리가 말한 대로 저것이 마계에 얼마나 큰 위협이 되는지는 이해했다.
거기에.
그녀에게는 처음 본 것이라 했지만 거짓말이었고.
“……역시 이런 거였나.”
“시안?”
“일단 여기에 뭐가 있는지는 알았어. ……그럼 이제.”
우선 해야 할 방침은 하나.
“튀자.”
당장 쓰러트릴 수 없는 것을 억지로 쓰러트리고자 애쓰는 것은 아주 미련한 짓이지.
서둘러봐야 이득도 없는 짓임을 알기에 우선은 물러날 것을 지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