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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악마 소환함-334화 (334/389)

제334화

334화

몇 시간 전.

흑철의 마왕을 제압하기 위한 전투가 벌어지기 전이었다.

작전은 이미 세워 두었다.

흑철의 마왕 토벌전의 패턴을 고려하여 일어날 변수까지 어느 정도 상정한 후 마왕을 제압하는 작전.

악마들의 협조를 얻어야 했기에 사전에 몇 번이고 단단히 일러 둔 뒤.

남은 것은 토벌을 시작하기 전 준비 작업뿐.

“아무리 생각해도 이거 망할 거 같단 말이지?”

“꼬맹아, 이거 전부 네놈이 제안한 작전이잖냐.”

내 중얼거림을 들은 켈니오스가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에밀리도 내 머리 위에서 턱을 괸 채 뭐가 불안하냐는 듯 묻는다.

“시안이 제안한 방법은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내 입으로 말하기는 뭣하다만, 흑철 각하를 제압하는 것까지는 충분히 가능할 거다.”

분하다는 듯, 그리고 못마땅하다는 듯 켈니오스는 그 사실을 인정했다.

“신중한 건 괜찮은 자질이지만, 모험할 때는 해야 하지 않겠냐?”

“그딴 게 불안한 게 아니야. 솔직히 흑철의 마왕 제압 성공률은 아무래도 좋아.”

아무래도 내가 말을 하다가 말아서 뭔가 오해하게 만든 것 같았다.

내가 염려하는 것은 흑철의 마왕의 제압 자체가 아니었다.

그것은 성공하겠지.

애초에 고작 마왕 하나 가지고 내가 진지하게 고민할 리가 없잖아.

“쓰러트려야 하는 게 마왕이 아니잖아.”

“……그런 뜻인가.”

내 지적을 이해한 켈니오스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마왕을 무력화시키면 반드시 검은 시조가 모습을 드러낼 거야. ……상황을 살피든 아니면 우리를 제거하려고 하든.”

“말도 안 되는 소리군. 고작 흑마법사 한 놈, 각하만 탈환하면…….”

“이봐. 그걸 빼앗은 것도 그놈이야. ……그리고 까놓고 말해서 철저한 준비를 하고 싸우면 댁은 상대도 안 돼.”

나도 검은 시조와 대립할 경우, 놈을 죽일 수단으로 기습이나 함정 등 약점을 찌르는 것을 전제로 임하고 있었다.

마왕보다도 성가신 존재다.

“그럼 그 흑마법사는 역시 시안이랑 이 누나가 따로 찾아내 쓰러트릴 거니?”

“그렇게 순순히 싸워 주진 않을걸. 놈이 나타나면 할 일은…….”

마왕을 이용할 방법.

쉽게 상상이 간다.

“그럼 역시 저지해야 하나……. 응?”

훼방을 놓을 방법을 궁리하고 있는데, 불현듯 머릿속에 한 가지 정보가 떠올랐다.

여기 와서 우연히 듣게 된, 생각지도 못했던 정보.

“이봐, 해골바가지.”

“뭐냐?”

“분명 말했지? 진마빙현제 자체가 흑철의 마왕을 약화시킨다고. 그걸 어떻게 알아?”

믿기지 않으나, 저놈은 그리 말했다.

“대충 짐작해서 말한 거 아니지?”

“당연하지. 그딴 게 왜 궁금한지 모르겠지만, 이 몸이 틀린 소리를 한 건 아니다. ……애당초.”

놈은 말하다가 말고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말하기 꺼려지는 정보인가.

“애당초 뭐?”

“쳇. 가르쳐 주마. 네놈이 말하는 그 진마빙현제의 초안을 인간계에 뿌린 건 다름 아닌 흑철 각하였다.”

“……엉? 왜?”

어이없어하는 내게 녀석은 대략적인 경위를 알려 줬다.

과거 흑철의 마왕은 권속을 시켜 어떤 이론을 인간의 세계에 뿌려둔 모양이다.

“본래라면 각하의 혈마력을 인간계에 뿌릴 방안이었지. 계획이 꼬이긴 했다만.”

당시에 그 지식을 주운 흑마법사가 검은 시조였다.

놈은 그것을 마왕의 약점으로 방향성을 바꿔 이론을 재구상하기에 이르렀다.

마왕의 약점이 될 수 있는 계약식.

진마빙현제의 본래의 초안이었다.

하지만 정작 검은 시조는 곧 흥미를 잃은 것인지 내팽개친 모양이지만.

그 뒤에 그것은 모니아라는 흑마법사에게 넘어간 건가?

“약점이 될 수 있는 아이디어를 경솔하게 뿌린 이유가 뭐야? 마왕의 실수야? 그리고 미리 회수할 수 있었을 텐데?”

“낸들 알겠냐. ……각하께서는 만일을 위해 놔두라고 말씀하셨다만.”

“만일이라니…….”

“약점으로서 남아도 상관이 없다는 투였지. ……정확히는 선견의 마왕과 무언가 밀담을 나누었던 것 같다만.”

“무언가를 위해?”

그렇다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선견의 마왕으로부터 어떤 경고를 받고, 흑철의 마왕은 일부러 자신의 약점을 방치를 한 건가?

“……하지만 그걸 내가 써먹었다고?”

“인제 와서 탓하지는 않으마.”

“더럽게 관대하시군. ……그래도 그걸 듣고 확신은 얻었어.”

“무슨 말이지?”

놈의 질문에 나는 씨익 웃으며.

“엿 먹일 방법. ……그것도 놈이 승리를 확신했을 때 낭패를 보게 할 방법 말이야.”

내가 가장 바라던 그림을 그릴 순간을 말이다.

* * *

“허세같이 들리겠지만, 말해 두는데 댁이 마왕과 융합하는 건 얼마든지 방해할 수 있었어.”

무릎을 꿇은 마왕의 융합체를 향해 나는 지팡이를 어깨에 올린 채 툭툭 두드리며 잘난 체했다.

“무슨 꾀를 부렸지? 어떤 술식도, 아티팩트도 이 융합체에 간섭할 수는 없었을 텐데.”

“별거 아니야. 댁한테는 통하지 않아도 마왕한테는 통하는 약점. 그게 하나 있었거든.”

실은 놈이 흑철의 마왕과 융합 혹은 그에 버금가는 수단을 쓰기를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게 바로 내가 바라던 전개니까.

가장 쓰러트리기 쉬운 형태.

“스스로 무덤을 판 거야. 눈치챘을 텐데? 혈마력 줄줄 새고 있지?”

“말도 안 되는……. 그럴 리가? 계약이라고? 마왕에게 직접 에너지를 강탈하는 계약? 어느새?”

“역시 내가 이걸 쓰고 있는지는 몰랐군.”

“말도 안 돼! 그 이론은 합리적이지 않아 폐기했을 터!”

검은 시조는 경악했다. 놈이 장악하고 있는 흑철의 마왕을 기반으로 한 에너지.

마왕의 마기. 혈마력이 계속해서 새어 나가고 있다는 것을.

거기에 그것이 내게 모이고 있다는 것을.

“진마빙현제. ……어느 마법사가 정리한 이론이야. 정황상 네가 집어치운 걸 주워서 고안한 거 같지만.”

“그럴 리가! 그녀에게서 듣지 못했다! 무엇보다 그 이론은 폐기하는 게 효율적이었을 텐데!”

“아항~. 하긴, 그렇다면 그 자식도 모르는 게 당연한가?”

게임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스킬이니까.

케니실린도 그 지식에서 벗어난 것은 알지 못한다.

좋은 소식이군.

“내가 이걸 완성시키느라 개고생을 했거든~. 익힌 보람이 있는데?”

“그것을 통해…… 힘을 빼돌리고 있었나?”

“정답! 댁이 마왕의 힘에 취해서 감이 둔해진 동안, 야금야금 챙겼지.”

일부러 공격을 유도한 것도.

당해 내지 못한 척 계속 밀리고 있었던 것도.

놈이 마음껏 힘을 쓰는 동안은 진마빙현제를 통해 그것을 강탈할 틈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마법사로서 댁하고 싸우는 게 훨씬 골치 아팠어.”

거기다 단순히 마왕의 혈마력만을 채 간 게 아니었다.

융합하는 동안, 놈의 마력 역시 마왕의 에너지와 섞이기에 그것도 같이 빼앗는 게 가능했다.

놈이 마왕과 융합하여 생긴 리스크.

“그리고 빼앗은 건 짠! 여기에 있어. ……에밀리, 보여 줘.”

“후후, 눈치채지 못하게끔 모아 뒀단다.”

에밀리가 자랑하듯 알차게 강탈한 대량의 마력을 끄집어내어 거대한 구체의 형태로 만들어 보여 준다.

검붉은 대량의 마기가 마치 거대한 화염구처럼 넘실거린다.

훌륭한 수확이군.

“대충 3할 정도인가. ……그래도 적지는 않지?”

놈이 현기증을 느끼고 비틀거릴 만한 정도의 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있을 수 없다! 합리적이지 않아 폐기한 이론 따위에!”

하지만 검은 시조는 그 막대한 마력을 두고 말도 안 된다며 현실을 부정한다.

“이봐, 학자라면서 눈앞에 보이는 걸 안 믿어도 되는 거야?”

“마력을 강탈한 것은 납득했다. ……하지만, 아직 인간의 육신에 머물러 있는 네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할 텐데.”

“아, 그건가. ……별 바보 같은 걸 묻는군.”

“뭣이?”

놈의 지적은 이해가 갔다.

강탈한 대량의 마력. 마왕의 순수한 혈마력은 인간의 몸과 정신으로는 감당하기 힘들다.

그렇기에 마법사는 어느 정도 경지에 도달하면 인간의 틀에서 벗어나는 일에 집착하고 그걸 선택하게 된다고 하지.

“난 그런 건 질색이거든. ……굳이 거기까지 집착할 필요도 없고.”

인간으로 살면서 안락함을 누리겠다. 그 모토를 내세우는 내게 그런 고민은 필요 없었다.

그렇기에 망설임도 없다.

“그리고 내가 이걸 자력으로 굴린다고는 하지 않았는데?”

“……설마?”

검은 시조의 시선이 내게서 에밀리 쪽으로 옮겨진다.

정답.

“악마에게 맡긴 건가?!”

“적재적소. 할 수 있는 인재에게 맡기는 건 상식이잖아.”

“제정신인가?!”

검은 시조는 비상식적인 광경을 본 듯 크게 놀란다.

그 막대한 힘을 계약한 악마에게 고스란히 맡긴다니.

“확실히 보통 깡으로는 못 하겠지. ……근데 난 딱히 찔리는 게 없거든.”

악마는 내 편이고, 악마의 적은 명확히 존재하지 않나.

뭐가 찔려서 불안할까?

“역시 악행은 할 게 못 되지. ……하여튼 그런 고로 그쪽 재롱은 다 구경했으니.”

나는 손을 까딱였다.

놈은 믿었던 자신의 우위가 사라져 당황하고 있을 터.

굳이 유예 시간을 줄 필요는 없었다.

“처형 시간이다.”

“……대량의 마력을 빼내도 아직 흑철의 마왕은 내 통솔 아래 있다. ……그 힘의 차이는.”

“아, 됐고. 차이? 그깟 거 메우면 되지.”

내가 노리는 건 단순히 약화가 아니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첫 번째 수단.

본래 목적은.

“시작해. 에밀리.”

내가 신호하자, 에밀리는 모아 두었던 흑철의 마왕의 혈마력을 그대로 개방하여 내게 보낸다.

“제정신인가?!”

“뭐, 정신 나간 짓인 건 인정하지.”

지금 사용하려는 것은.

진마빙현제.

하지만 개량된 것이 아니고, 이전에 내가 써먹으려다가 실패하였던 오리지널.

흑마법사 모니아. 그 수상쩍은 선배가 고안해 두었던 원본.

“그것을 사용했다간 의식이…….”

“당연히 흑철의 마왕이 앗아 가려 하겠지. ……악마의 에너지란 그 악마의 혼 자체나 다름없으니.”

그렇기에 나는 원본을 사용하기를 꺼렸지만.

“오늘만큼은 달라.”

오늘은 반대로 원본을 사용하는 게 현명한 짓이다.

“봐라.”

나는 씨익 웃으며 가볍게 팔을 흔들었고, 그러자 안정된 대량의 혈마력이 그에 호응하며 움직인다.

마치 거대한 마력의 거인을 덧씌우듯.

폭주하는 것도 아니고, 내 의식에는 아무런 지장도 없었다.

“제어한 건가?! 네 녀석도 마왕을 제압하기 위한 술수를 고안한 건가?!”

“설마?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 폭거는 못 해. 다만 서로 이해가 일치했을 뿐.”

확신하고 있었다.

이 상태에서 진마빙현제의 원본을 쓴다는 것은 마왕의 의식과 접촉한다는 것.

“공통의 적이 있다면 당연히 다툴 필요가 없지.”

설명할 필요도 없다.

흑철의 마왕은 진마빙현제의 원본을 발동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아무런 저항 없이 내게 힘을 쓸 권리를 넘겨주었다.

마치 이번만큼은 내 손을 잡아 주겠다는 듯.

“오늘만큼은 나는 마계와 악마의 편이거든. 당연히 협조적으로 나오지.”

“큭! 그렇다고 해도 아직 힘의 총량은 이쪽이 우위일 터…….”

사태를 이해한 검은 시조는 아직 온존하고 있는 마기를 끌어내 마법을 발동하려 한다.

“흥, 어련하시겠냐. ……역시 어리석어.”

수많은 업적과 난해한 흑마법을 고안한들 놈은 내내 공방에 틀어박혀 있었던 노인네에 지나지 않는다.

“이 시점에서 넌 나를 못 이겨.”

“어리석은 주장……. 커헉!”

놈이 마법을 캐스팅하기도 전에 고통스러운 비명을 토하며 나가떨어진다.

조금 전 놈이 서 있던 곳에는 내가 가볍게 손을 털며 서 있었다.

“어떻게…….”

“마법은 아냐. 흐음~, 과연 마왕이야. 힘의 총량은 적어도 자기 힘은 역시 자기가 가장 잘 쓰는 법이지.”

나를 감싸고 있는 대량의 혈마력. 나는 굳이 그것을 억지로 제어하지 않는다.

사용하는 방법, 싸우는 요령, 이 그 모든 것을 마왕의 의사에 고스란히 맡긴다.

“오? 제법 참고가 되겠는데?”

내가 손을 뻗자, 오른손에는 혈마력으로 이루어진 대검.

그리고 왼손에는 뭉툭한 메이스가 쥐어진다.

마법사가 아니라 마치 전사와 같은 무기를 쥔다.

그런데도 위화감은 없으니.

마왕의 능력과 기술.

그것을 인간의 몸으로 고스란히 재현한다.

“그럼 실컷 두들겨 주자고. ……원하는 대로 움직여 줄 테니.”

제휴 중인 혈마력에, 마왕의 의식에게 제안하듯 말을 걸자 마치 고개를 끄덕인 것 같은 기척이 느껴진다.

뜻이 일치하면 거리낄 것은 없다.

“가자.”

강화된 신체에 힘을 주어 다리를 내디딘다.

단숨에 거리가 줄어들며, 내가 휘두른 대검이 놈의 몸통을 강타한다.

콰앙!

반쯤 뜯기듯 거칠게 베여 나간 검은 시조가 피를 토하며 공중으로 튀어 오르고 그것을 쫓아 추격한 내가 이번에는 메이스에 힘을 담아 내리친다.

콰아아앙!

폭음과 함께 놈이 지면으로 추락한다.

놈은 그 두 번의 일격만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간신히 융합체의 형체를 유지하는 게 고작이었다.

“제어하는 힘은 이쪽이 더 클 텐데!”

“요령의 차이지. ……뭐, 이 꼴이 된 건 다 네 업보고.”

동정할 가치도 없고, 가르쳐 주려고 애쓸 필요도 없었다.

놈이 깨달을 필요도 없으니.

“끝장을 내 주마.”

사방으로 뻗어 나간 혈마력이 사슬의 형태로 엮이며 놈의 사지를 포박한다.

마치 처형을 시작하려는 것처럼.

“으윽?! 그럼 이탈을……. 큭!”

“어딜 멋대로 가려 하냐?”

놈은 흑철의 마왕에게서 떨어지려고 하나 아무리 버둥거려도 분리가 되지 않나 보다.

조금 전의 공격으로 마왕에 대한 지배력이 약해졌다. 아마 마왕 본인의 의지가 놈을 포박하고 있겠지.

이대로 놈을 죽이라고.

“행패를 부렸으면 벌을 받아야지?”

나는 대검을 치켜들어 비명을 지르는 놈을 향해.

그대로 내리쳤다.

서걱.

대검은 놈을 세로로 양단하고, 그 혼마저 완전히 두 쪽을 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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