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3화
343화
46장 - 저것은 해로운 요정이다
인간계로……. 제국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고 나는 귀환을 위한 준비를 서둘렀다.
돌아갈 수단은 확보해 두었기에 남은 것은 마무리 작업만 남았을 뿐.
그것도 오래 걸리는 용건은 아니었다.
우선은 중요하지는 않지만.
잊어서 안 되는 용건부터.
“시안……. 그거 설마?”
“하마터면 잊을 뻔했지 뭐야.”
척! 척!
가져온 모든 보관 수단에 마계의 온갖 자원과 혹 가치가 있을지도 모르는 광물, 희귀한 식물까지.
그리고 틈틈이 발굴해 놓은 아티팩트를 비롯한 아이템들도.
평소 지니던 가방 외에도 오늘을 위해 가져온 온갖 아공간 수납 아이템에 닥치는 대로 욱여넣는다.
“……어휴. 욕심은 여전하네.”
어쩐지 기막혀 하는 에밀리의 시선을 무시하자.
“무슨 중요한 일일까 생각했는데.”
“아니, 이거 되게 중요하거든!”
매우 중요하지!
나는 수납 용량의 한도에 달해 아주 빵빵해진 가방을 두드리며.
“기념품은 챙겨 가야 할 거 아니야!”
왔으면 본전은 뽑아 가야 하기 마련.
그렇지 않으면 땅을 치고 후회하잖아.
“마계에 오는 게 이번으로 마지막은 아니겠지만, 지금이 아니면 당당하게 챙겨 가는 것도 눈치 보일 거고.”
“눈치?! 흐으으음? 지금은?”
“흥! 누구의 눈치를 보겠어? 내가?”
마왕을 구해 준 은인이지 않은가.
“거기다 붉은 물. 그게 전부 빠져나간 덕에 드러난 땅덩어리에서 이것저것 채굴할 수도 있었고. ……뭐, 가장 큰 수확은 역시 이거지만.”
나는 깨지지 않도록 신중히 포장해 둔 천 꾸러미 하나를 가리켰다.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어떤 병.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든 내용물.
“흑철의 마왕의 보물고에서 들고나온 거지?”
“맞아.”
선견의 마왕에게 요구한 것처럼 당연히 흑철의 마왕에게도 보물고에서 기념품 좀 골라 가게 해 달라고 요구했다.
당연히 흔쾌히 들어주었지.
“하지만 결국 고른 게 술이라니…….”
“아니 이거 실은 술이 아니거든? 애당초 악마가 평범하게 술을 마실 리가 없잖아.”
《흑마의 명주》
《이미 소실된 비법으로 빚은 악마의 명주입니다.》
《대량의 사악한 마력은 본래 인간에게 독이지만, 그것을 극복한 자에게는 어마어마한 회복의 가호를 내려줍니다.》
흑마의 명주.
흑철의 마왕 토벌을 진행할 시 높은 전과를 달성하게 되면 얻을 수 있는 희귀한 아이템이다.
그냥 사용해도 되고 조합 소재로 써도 된다.
“알코올 따위가 들어간 게 아니야. 그 대신 들어간 건 강력한 마력과 독기…….”
“확실히 마력이 뭉쳐서 액화될 정도의 것이네. ……잘도 이런 걸 만들었구나.”
중요한 것은 효력.
흑마법 클래스가 사용 가능한 회복 아이템 중에서도 최상위의 것.
“이것을 쓰면 마력은 물론이고, 체력까지 전부 한 번에 회복되거든.”
다만 내가 주목한 것은 단순한 회복 효과가 아니었다.
완전 회복.
그것을 가능하게 해 주는 아이템은 이것 말고도 몇 가지 더 있었고, 구하고자 마음만 먹는다면 조금 성가시긴 하지만 어렵진 않다.
“게다가 이것을 소재로 더욱 유용한 효과를 가진 아이템으로 조합할 수 있어.”
“역시 목적은 그거구나.”
《검은 생명의 가호를 조합합니다.》
《해당 아티팩트의 효력은 1회 발동 후 자연 소멸됩니다.》
더욱 상위의 아이템으로 조합한다.
단순한 완전 회복 효과뿐인 아이템이라면 마왕의 토벌 보상치고는 시시하다.
이것의 진정한 가치는 이것을 이용하여 얻을 수 있는 아이템.
붉은 구슬 형태의 아티팩트로 완성된 그것을 쥐어 으스러트리자 그 파편이 내게 녹아들어 사라진다.
《검은 생명의 가호를 획득합니다.》
《해당 가호는 조건부로 자동 발동되는 것입니다.》
“좋아. 제대로 얻었어.”
“묘한 마력이 흘러들어 갔네. ……시안의 힘이 되는 건 아닌 거 같고.”
“일종의 조건부 발동 마법 같은 거야. 효과는 터무니없는 것이지만.”
상식 이상의 것이라고 자부하고 있다.
《검은 생명의 가호》
《조건부 액티브 스킬 : 발동 조건은 가호 해당자의 사망》
《사망 이후 자동으로 효력이 발휘되며, 해당하는 인물 ‘시안’에게 완전 회복 & 소생 상태를 부여합니다.》
“……라는 거지~.”
“말도 안 돼. 정말이니?”
“못 믿겠다고 보여 주지는 못하겠군. 1회용이고, 조건이 일단은 죽어야 하는 거니까.”
“지금 시험해 볼래?”
“1회용이라니까!”
게임에서는 즉시 부활 아이템으로 큰 가치를 지닌 것이었다.
게임에서 게임 오버가 되면 바로 이전 세이브 혹은 보스 전 시점에서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것을 무시하고 그 자리에서 완전히 회복된 상태로 부활하게 해 준다.
최종전의 고난도 전투를 위해 마련된 요소라고 할 수 있겠지.
특히 현실이 된 시점에선 더더욱 필요하다.
“……가능한 발휘되는 걸 보고 싶지도 않지만.”
나는 사실 게임에서도 이걸 사용한 적은 없단 말이지?
보통 한 번밖에 못 쓰는 부활 템이라고 하면 아까워서 처박아 두다가 결국 엔딩을 보는 순간까지 쓰지 않잖아?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쓸 때는 써야지.
“보험이라는 거구나. 그런 가호가 있다면 만일에 대비할 수 있을 테니.”
“그런 것도 있고~, 어쩌면 다른 용도로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시안?”
“이걸로 얻을 건 얻어 뒀고. ……남은 건 대답만 돌아오길 기다리면 되나.”
사실 지금 하는 것은 잠깐의 시간을 죽이기 위한 소일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말하기가 무섭게 내게 악마가 둘 찾아왔다.
각각 다른 마왕을 섬기고 있는 악마들.
“마왕이 보낸 심부름꾼이군. ……용건은?”
뭐, 물을 것도 없지.
두 악마는 다른 소리를 하는 것은 허가받지 못했는지 내게 각각 어떤 것을 주고는 바로 가 버렸다.
“마왕의 답변. 아아……. 지난번 요구한 거구나.”
“……약속이지.”
《조력의 증표 흑 & 청을 획득합니다.》
《해당 증표를 소유하고 있는 동안, 발동 시 악마의 군대를 일시적으로 빌릴 수 있게 됩니다.》
내가 마왕들에게 부탁하였던 병력의 요구를 잊지 않고 들어준 것이다.
이게 마지막으로 챙겨야 할 것.
“그럼 슬슬 돌아가 볼까. 그리운 인간의 세상으로……. 아니, 우리의 세상으로.”
굳이 필요 없지만, 멋들어지게 손을 휘젓는 시늉을 하며 나는 통로를 불러낸다.
마계의 문.
그것도 이곳에서 완전히 통행 권한을 얻은 완전판.
언제든 돌아갈 수 있었다.
“문제는 어디에 먼저 들를까 하는 거로군.”
상식적으로는 지금 시기면 아카데미로 먼저 돌아가야 한다.
정보를 얻고 협력을 얻어야 한다.
거기다 지금 이 시기면 다른 아이들은 대기 중일 테니까.
“그건 좀 아깝지 않으려나.”
의견을 말한 것은 에밀리.
“이 문으로 돌아갈 때 떨어질 곳은 어디든 상관이 없는 거 아니니?”
“마계에 올 때처럼 랜덤은 아니야. 내가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지형지물이라면 어디든 도착할 수 있어.”
그러니 아깝다는 것이다.
“이거 쓰면 적들의 본거지까지 갈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랬으면 좋은데. 아쉽게도 일이 그렇게 쉽게 풀리진 않더라고.”
나도 고려를 해 봤고, 혹시나 가능할까 시험해 보고자 했다.
분명 내가 인식하는 장소라면 어디든 갈 수 있겠지.
하지만…….
“놈들의 본거지에는 당연히 대비가 되어 있고. ……딱히 문이 연결되진 않더라고.”
“아쉽네.”
“흥, 기대도 안 했어.”
실망하지 않은 건 나 같아도 그런 기습에 대한 대비책을 미리 세워 놓았을 거라서.
아무리 그래도 최종 결전이 이뤄질 장소를 워프로 도달할 수 있을 리 없지.
“그렇다고 아카데미로 바로 가는 것도 왠지 아쉽단 말이지. ……내가 그렇게 성실한 것도 아니고.”
돌아갈 때는 딴짓을 해야지.
이 귀환 수단은 가능만 하다면 어디든 한 번은 완벽한 기습이 가능했다.
“그러고 보니 유용하게 써먹을 곳이 하나 있군.”
마계의 문의 좌표를 재빠르게 수정한다.
되려나?
만약 그곳도 방어책이 마련돼 있다면 아쉽지만, 단념해야겠지…….
“됐다.”
다행히 그곳은 이동할 수 있었다.
“이건……. 여기에 먼저 가려고?”
“그렇지 않아도 저것부터 빨리 처리하고 싶다고 생각했거든. 아카데미에 돌아가기 전에 미리 해결해 버리기 좋은 기회야.”
마계의 문에 어떤 장소의 풍경이 비친다.
통로 저 너머의 광경.
……그곳은 어느 전장의 것.
“케니실린이 부하들을 이용해서 침공하고 있는 장소들 중 먼저 처리해 버리고 싶은 곳이야.”
케니실린 샤렐로스의 부하들.
녀석을 추종하거나 어떤 이득을 위해 녀석과 손잡은 놈들.
그날 직접 확인한 놈들이나 협조하고 있는 녀석들은 대강 파악해 뒀다.
“남김없이 처리해 버릴 생각이야. ……예외는 없어.”
하나같이 이 세상에 도움이 안 되는 악당들뿐이니.
다만 이렇게 기습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면 확실히 목을 따 버리는 게 나은 녀석이 하나 있었다.
“……이 자식이야.”
마계의 문 너머에 보이는 광경.
그것은 현재 제국 국경을 수비 중인 군대와 맞붙어 있는, 어떤 기이한 종족.
제국군을 덮치는 것은 무수한 작은 불빛들.
그 빛의 정체를 알아본 에밀리가 눈을 부릅떴다.
“뭔가 했더니 요정? ……그러고 보니 그때 나타난 자들 중 요정으로 보이는 녀석이 있었지.”
에밀리가 드문 것을 보았다는 반응을 보인 채 중얼거렸다.
병사들을 살육하고 있는 것은 대량의 요정들.
요정.
악마, 정령과 더불어 인간과는 확실히 생물학적인 존재 방식을 달리하는 기이한 종족 중 하나.
그리고 저 대량의 요정을 지휘하는…….
“요정의 여왕 필리안닐.”
저 요정 대군의 중심에 있을 강력한 요정의 여왕.
“저 녀석을 가장 먼저 없애야겠어.”
“시안은 유난히 요정이란 걸 싫어했지.”
“좋아할 리가 없잖아? 그런 흉물스러운 놈들을.”
이유는 간단하다.
요정의 강함이 문제가 아니라 저것의 존재가 도덕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요정만은 보이는 즉시 전부 구제해 버리는 게 세상에 아주 이롭거든.”
저건 분명 세상에서 가장 해로운 생물이니까.
누구도 그리 말하지 않았다면 내가 지정해 주겠다.
요정은 해로운 생물이야!
* * *
에타니올 제국. 건국기념제.
그 행사를 돌연 취소시킨 것은 황성에 난입한 케니실린 샤렐로스라고 자신의 이름을 댄 악인의 출현.
단순히 불온한 사건으로 끝나지 않은 채 크나큰 혼란을 일으켰고, 케니실린은 선전포고대로 제국과 전쟁을 벌였다.
제국의 모든 국경을 포위한 적의 군대.
케니실린에게 협조하며 제국을 규탄하는 각 나라의 군대는 물론이고.
소속을 알 수 없는 괴인들.
하물며 난생처음 보는 괴이쩍은 존재들까지.
그리고 현재 제국 동부의 국경은 그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생물의 침공을 받고 있었다.
“저 괴물은 대체 뭐냔 말이냐!”
“……꿈이지?”
“젠장! 정신 바짝 차려라! ……무엇을 보든 겁먹지 말라고!”
비명 소리.
전쟁의 가혹함으로 비명을 지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비위로 감당하기 너무 힘든 것을 보았을 때의 비명.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도망치고 싶어 하는 병사들을 상관이나 선임병들이 윽박지르고 걷어차며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게 만들었지만.
……사실 그들조차도 저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차라리 제대로 된 전쟁터가 나은 게 아닌가…….”
그런 바보 같은 혼잣말이 누군가의 입에서 절로 흘러나왔다.
이곳을 침공한 것은 난생처음 보는 생물이었다.
아니, 처음에는 침공이라는 인식조차 하지 못했다.
불과 사흘 전 밤.
그날 밤의 악몽은 저것을 보는 지금도 결코 잊을 수가 없었다.
“……그때 눈치를 챘어야 했다.”
그날 밤.
적의 침공을 대비하여 경계를 서던 병사들은 어떤 것을 목격했다.
밤하늘에 내려오는 수많은 불빛.
처음에는 계절에 맞지 않는 묘한 벌레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기이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후후후후후…….]
[이곳이 우리가 놀 장소야?]
[여왕님도 허락하셨어. 여기서 마음껏 놀라고.]
목소리를 내는 불빛.
그 불빛을 자세히 살펴보자, 주먹 정도 크기의 작은 인간과 비슷한 형상의 생물이었다.
“뭐야? ……저거?”
“헛것을 보고 있는 거 아냐?”
“얼른 마법사들을 불러!”
환각이 아닐까 싶어 군의 마법사들을 불러오게끔 닦달하거나 신기해하며 그 작은 인간형 생물을 만지려고 하는 병사들도 있었다.
그들에게 그 작은 인간형 생물은 천진한 웃음을 흘리며 기꺼이 달라붙는다.
해가 없어 보였고, 오히려 사랑스러운 인상까지 주는 존재.
그것은 자신들을 이리 소개했다.
[안녕. 인간들. 반가워.]
[우리는 너희들이 기억하는 이름으로 불리는 아이들이야.]
바로…….
[요정.]
실존이 확인되지 않은 종족.
악마, 정령과 더불어 오로지 마력으로만 존재한다는 정신체 종족들 중 하나.
……그리고 그것을 조금이라도 아는 지식인들은 경고하는 종족.
[그리고 우린 너희를 먹으러 왔어.]
[인간.]
[맛있는 인간.]
가장 끔찍한 종족이라고.
그 요정들이 천진난만하게 목적을 밝히는 순간.
그곳은 인간들의 처절한 비명으로 가득 찬 지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