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6화
356화
내가 반드시 개입해서 박살을 내야 하는 곳은 크게 세 군데.
최종 보스인 종언의 흉성.
마탑주 제올루인 미켈드.
그리고 붉은 시조 가일론 리올레이트.
이 중에서 종언의 흉성이 자리 잡고 있는 본진은 아쉽게도 지금 시점에서는 쳐들어갈 수가 없다.
그것은 이미 협력을 통해 얻은 보고를 듣고 알 수 있었다.
“현재 놈들의 본진은 접근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거군.”
회의를 끝마치고 난 뒤 나는 별도로 받은 그 보고서를 재차 확인하며 신음했다.
그것은 제국의 군대가 놈들의 본진을 치기 위해 공격하던 과정 일부를 기록한 보고서.
제국군의 마법 병단이 날린 대량의 폭격이 그 본진에 닿기도 전에 묘한 장벽으로 차단된다는 것.
“결계 같은 건가 보네.”
“그것도 꽤 공들인 것인 모양이야. 아마 최상급 기술을 전부 투입해 만든 거겠지.”
몇 번의 공격이 막혔다는 기록을 확인하고 겨우겨우 그 종류를 특정할 수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게임의 지식에 해당하는 것이었으니.
“하나는 가일론 리올레이트가 친 결계 같고. ……나머지 하나는.”
“방식은 조금 바꾼 거 같은데, 광욕의 마왕의 결계술이네.”
“내가 봐도 그렇게 보여.”
두 개 다 해제하기 위해 가장 확실한 방법은…….
“시전자를 죽이는 수밖에 없지.”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그 악당들은 각각 다른 전장에 있다.
성가시지만, 본진을 공략하기 전에 먼저 놈들부터 제거할 필요가 있었다.
“번거롭게 됐네. 시안.”
“……케니실린 토벌안을 구상할 때도 염두에 두고 있었던 일이야. 새삼스러울 건 없어.”
굳이 본진을 보호하고 있는 결계 때문이 아니라고 해도 기회를 봐서 제거해 둘 리스트에 올려진 이름이기도 하다.
먼저 제거하지 않으면 한꺼번에 협공을 당할 테니까.
“우선은 간부들부터 해치우는 게 조직을 공략하는 정석이니까. ……같은 전장에 없는 것만 해도 다행이야.”
협력을 모르는 녀석들이라 참 다행이지.
“애들도 걱정이 되고.”
거기다 현재 아카데미 학생들 역시 제국의 각 전장으로 나뉘어 배치된 모양이다.
아무래도 지원 명목으로 투입된 것 같은데.
우연인지 아닌지 내가 주목하고 있는 곳에도 아는 애들이 몇몇 배치된 모양이다.
“슬슬 얼굴도 볼 겸 잘됐다고 치자.”
행동 방침을 검토하며 큰 차질은 없을 거라고 결론을 내렸다.
“역시 마탑주를 먼저 치자.”
서쪽이다.
마탑주, 그리고 그와 모종의 계약을 맺은 광욕의 마왕.
나는 우선 이들을 먼저 제거해야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유는 하나.
마탑주 휘하에 있는 마탑의 마법사들과 그 탑의 존재가 영 성가셨다.
“아마 적들이 사용하는 장비나 아이템 포션들의 출처가 그 마탑이니까.”
마탑은 강력한 전력이자 적들의 주요 보급처이기도 할 터.
나는 전장의 논리에는 빠삭하지 못하다.
그래도 아카데미 수업에서 배운 기본은 잘 새겨듣고 있었다.
전쟁이 벌어질 때 가장 먼저 파괴해야 하는 건.
“……마법사와 마법 관련 시설.”
그렇다면 역시 마탑주를 살생부 최상단에 올려 두는 게 좋겠지.
그리고 최강의 마법사가 과연 누구인지도 슬슬 판가름을 내는 게 좋을 테니까.
게다가 이곳을 먼저 들러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현재 그곳의 전황이 다른 곳보다 더욱 골치 아프게 흘러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급히 막아야 할 곳이기도 하기에.
“그러니 여기로 가자.”
* * *
현재 제국의 서부 국경을 두고 벌어지는 전투의 가장 큰 특징을 꼽자면.
저 멀리 적의 진영 너머에 높게 솟은 푸른색의 탑을 거론할 것이다.
저것의 정체는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아는 자라면 누구나 알아볼 것이다.
마탑.
제국으로부터 공식적으로 제명된 푸른색의 마탑.
그것이 떡하니 모습을 드러낸 것과 동시에 그곳의 주인인 마탑주 제올루인이 마법사들의 군세를 이끌고 쳐들어왔다.
“분쟁 따위에 끼어드는 것은 흥미에 반하는 일이나, 그것 또한 협정. 그러니 유감스럽지만, 여기서 소멸해 주길.”
거만하게 선언한 마탑주는 직접 마탑의 마법사들을 지휘하며 침범을 개시했다.
그가 직접 모습을 보인 것은 마탑을 이곳에 출현시킨 첫날뿐.
그 뒤에는 탑에 소속된 마법사들로 이루어진 군대와의 전투가 이어질 뿐.
정확히는 마탑주가 나설 필요도 없었다는 게 적절한 표현이겠지만.
마탑의 출현 후 제국군의 전황은 마탑의 마법사들의 공세에 간신히 버텨 내는 게 고작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 무너지지 않은 게 용할 정도.
밀리는 원인은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순수하게 화력.
마탑의 마법사들이 끊임없이 퍼붓는 공세를 간신히 막고 있는 게 고작이었으니…….
“저놈들은 대체 뭐란 말인가…….”
성벽을 향해 마탑의 마법사들이 맹렬하게 마법 공격을 퍼붓는 상황을 보고를 받으며 한 사내가 탄식했다.
이곳의 책임자 로지닐 변경백은 깊은 고뇌의 말을 내뱉었다.
“정말로 저 미친 것들이 마탑의 마법사라고?”
저들이 취하고 있는 전략은 아주 단순했다.
순수하게 마법만을 퍼부어서 초토화시키는 것.
병법이라 부르기에도 부끄러울 만큼 아주 단순한 전략.
그러나 그 단순한 방법에 골머리를 썩이고 있다.
“놈들은 언제까지 공격을 퍼붓는 건가?”
“보고에 따르면, 마탑의 로브를 걸친 마법사들이 끊임없이 고위력의 마법을 난사하고 있다고…….”
“제정신인가…….”
믿기지 않지만, 그 마법사들을 직접 상대한 이들이 올린 보고에 의하면.
“지치지 않는 마법사들이라고? 그게 말이나 되는 건가?”
아침부터 밤까지 쉴 새 없이 마법 공격을 퍼붓고도 피로한 기색 하나 보이지 않는 마법사들.
무언가 보급을 받는 기색도, 교대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고 마탑의 마법사들은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쉴 새 없이 마법을 퍼붓고 있었다.
마력이 무한하지는 않은 것인지 하루 정도 지나면 한차례 철수를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저것은 터무니없는 지속력과 화력이었다.
“있을 수 없다.”
하루 동안 쉬지 않고 마법을 난사할 수 있다니.
기존 마법전의 상식으로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
전장에서 마법사의 존재는 강력하지만, 쉽게 들이밀 수 없는 카드와도 같다.
“순수하게 마법사만으로 이루어진 군대를 저런 식으로 이용한다고?”
거기에는 전술도 뭣도 존재하지 않는다.
마법은 강력하다.
전장에서 마법은 수많은 병사들을 순식간에 일소시킬 뿐 아니라, 때로는 지형마저 바꾸어 지휘관들의 머리를 감싸 쥐게 만드는 존재.
하지만 그 어떤 군대보다도 소모가 빠르고 취약하다.
마법사의 소모율. ……요컨대 그들의 힘은 마력이 충만할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
반대로 전장은 사소한 행동만으로도 마력의 소모가 발생하는 곳.
무엇보다 소모의 보충이 쉽지 않은 곳이다.
그렇기에 마법사를 전장에서 굴리는 것은 의외로 까다로운 조건이 요구된다.
그것을 맹신했을 때의 결과는 치명적이다.
지친 마법사들이 고립되어 평범한 보병에게 학살당한 예도 수두룩하다.
하물며 100퍼센트 마법사들만으로 이루어진 군대라니.
평균 4~5서클의 마법사들이라고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기세로 공격을 퍼붓는다면 그 힘은 몇 시간도 지속하지 못할 터인데.
그것을 믿고 방어에만 집중했으나.
“판단을 그르쳤다…….”
일반적인 마법전의 상식에 기대어 방어를 고집한 결과가 이것이다.
로지닐 변경백은 자신의 실책을 후회하며 주먹을 꽉 쥐었다.
아니, 후회해 봐야 아무 의미도 없지만.
“각하! 주의를!”
부관이 다급히 외친다.
변경백의 사고가 다시 지금의 상황을 직시하게 된다.
“공격이!”
“흠?!”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하늘을 가득 메운 불덩이가 마구잡이로 그들이 있는 곳까지 떨어진다.
마탑의 마법사들 중 일부가 방어선을 뚫고 그 뒤의 전선 기지까지 들어온 것이다.
“캬아아아아아아아아악!”
“마법! 마법으으으으으으을! 이 마력을!”
“죽여라! 마탑을 위해!”
광기 어린 괴성과 함께 방어선을 뚫고 세 명의 마법사가 뛰어들었다.
상식 밖. 목숨마저 아깝지 않은 듯 보이는 행동. 그 세 명이 폭주하듯 쏟아 내는 마법들을 저지하지 못했다.
“피해가 커지기 전에 처치해라! 고작 셋이다!”
변경백은 직접 검을 빼 들고 그 칼날에 견고한 오러를 둘러 휘두르면서 폭주하는 마법사의 목을 노린다.
스르륵!
마치 천이라도 스치는 듯한 소리가 계속 터지는 마법에 섞여 사라지고, 동시에 마법사의 목이 떨어진다.
“나머지 두 놈은…….”
성가시다며 혀를 찬다. 이미 두 마법사는 동료의 죽음에 분개하며 변경백을 노리고 양측에서 지팡이와 완드를 겨누고 있었다.
부하들로서는 저 광기 어린 기세에 대응하기 어려울 것이다.
무리해서라도 벨 작정으로 검을 쥔 손에 힘을 주려는 그때였다.
“이상한 마법사……. 마력이 이상해.”
“동감이야. 셀리디아. ……어쩐지 마력의 낌새가 불쾌하네.”
이 전장과 어울리지 않는 소녀들의 목소리.
동시에 변경백을 노리던 두 마법사를 각각 별개의 방향에서 날아온 폭발이 휩쓸면서 격추시켰다.
“……훌륭하군.”
신속하면서 망설임 없는 공격.
전장에서는 당연히 필요한 일이지만, 그것을 날린 자가 누군지 감안하면 충분히 감탄할 일이었다.
그리고.
“미안하게 됐네. 아카데미의 학생들이여.”
변경백은 마법사들을 공격한 학생들을 돌아보며 씁쓸한 말투로 사죄했다.
그녀들뿐이 아니라 지켜보는 다른 학생들에게도.
이곳까지 적이 침투하여 일어난 소동에 소년 소녀들이 당황한 듯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제국 필로스 아카데미의 학생들.
전장이 고착화됨에 따라 지원이라는 명목으로 이곳에 대기하고 있는 학생들이다.
“……상관없어요.”
셀리디아 밀로닐은 아무래도 괜찮다는 듯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방금 마법사는 이상해.”
“으, 음? 그러고 보니 그런 말을 하였지. 정령사 학생, 그게 무슨 뜻이지?”
“정상이 아니란 뜻이에요. 변경백님.”
설명을 못 하겠는지 곤란한 얼굴로 귀를 까딱이는 셀리디아.
그녀 대신 끼어들어 설명한 것은 격추시킨 마법사의 시체를 살펴보고 있던 미셀 위스티닐이었다.
“무슨 뜻이지? 저들이 정상이 아니란 건…….”
“전술적인 의미가 아니에요. 이 마법사의 마력량이 이상해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는 변경백.
미셀은 무례할 정도로 긴 한숨을 쉬고는 그 마법사의 시체를 경멸하듯 걷어찼다.
마치 더러운 속임수를 쓴 장면을 목격한 것처럼.
“조금 전부터 지켜봤는데, 이상할 정도로 마법을 남용하고 있잖아요.”
“그것은 부자연스럽지. ……특수한 보급 방법을 갖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네만.”
그런 상식적인 위화감이 아니었다. 미셀은 고개를 젓고 셀리디아도 눈가를 찡그렸다.
“……마력이 없어.”
“뭣?”
“적의 시체에 마력이 텅 비었어요.”
묘한 말투.
“맞아. 셀리디아. 이상할 정도로 비어 있어. ……이거 대체 뭐야?”
“비다니 무엇이 말인가? ……아니, 직접 확인해 보겠네.”
직접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었다.
변경백은 조금 전 미셀이 확인하였던 시신을 조심스레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녀들이 지적한 위화감이 무엇인지 깨닫고는 작게 신음했다.
“어째서 마력이 텅 빈 것이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막대한 마력을 품고 있었던 자가?”
시체에 마력이 텅 비어 있었다.
물론 죽은 자에게서는 마력이 빠져나오는 것 자체는 이상할 게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급격히 텅 비어 버리는 현상은 아무래도 이상했다.
“이자. 죽자마자 마력이 전부 사라졌어요. ……뭔가 불쾌한 방법을 쓰고 있는 모양이네요.”
마탑의 전술은 이상했다.
터무니없는 양의 마력을 모든 마법사들이 지니고 있고, 거기다 이성도 반쯤 날아간 모양새.
“어떤 약물? ……마법? 들은 적이 없네. 뭐일까.”
“흥미로워할 때 아니야.”
조금 흥미를 갖자니 셀리디아가 툭, 하고 가볍게 치면서 미셀을 말렸다.
“그리고 마력이 가득할 때 그 마법사의 기척은 이상하게 불쾌해.”
떠올리기만 해도 본능적으로 적의가 샘솟는지 셀리디아의 짐승 귀가 뾰족하게 섰다.
“가장 이상한 건 이 마법사. ……이 로브의 문양은 마탑의 하급마법사의 증표네요.”
“기다려 보게! 고작 하급이라고?!”
변경백은 경악했다.
마탑의 체계는 그 역시 귀동냥으로 들은 바 있다.
하급. 본래라면 1~2서클 정도의 애송이.
하지만 사용한 마법의 위력만 보자면 적어도 5서클이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미셀의 의심처럼 어떤 비법이 사용되었겠지.
“고작 1서클 정도의 애송이가 이런 힘을 발휘한다면……. 그런데 마탑의 인원수는 몇인가?”
“소문에는 탑의 마법사는 하급이 약 3천 명, 중급이 1천, 상급이 오백 명가량 된다고 들었어요.”
“으음~. 하지만 저들은…….”
“소문보다 많네요.”
미셀이 지적한 인원수를 들은 변경백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현재 방어선을 공격 중인 마탑의 마법사들의 부대는 약 5천 정도.
당연히 그게 전부가 아니리라.
“……더 있다면요?”
미셀의 지적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추가로 무시무시한 굉음이 전방에서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