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8화
358화
광법사.
마탑의 반란 시점에서 마탑주가 꺼낸 비밀 병기.
한계를 초월한 힘을 억지로 부여하는 비인도적인 수단.
내가 마탑의 수단을 알고 있는 것은 이것 또한 본래는 게임에서도 그들이 사용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거보다 강력하긴 하지만.’
마력량도, 광법사로 타락한 마법사들의 위험성도 게임에서 설정된 능력과는 비교하기 어렵군.
원인은 광욕의 마왕 때문일까…….
‘조언이라도 얻었나?’
하긴, 마왕의 협력을 얻는 편이 그것을 완성하는 데 편리했을 테니까.
“악마라고?! 말도 안 돼! 흑마법사도 아닌데!”
미셀이 가장 먼저 이해하고 기겁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그렇지 않다며 고개를 저었다.
“악마를 이용하는 게 흑마법사만의 전매특허는 아니야. 그리고 이것을 흑마법사의 악마 계약과 비교하는 것도 모욕적이고.”
“시안의 말대로네. 그 마왕은 이 누나가 말하기 뭣하지만, 아주 잔인하단 말이지. ……인간에게도 악마에게도.”
냉담한 내 말과 어딘가 불쾌한 듯한 에밀리의 묘한 반응.
이것에 대한 지식이 없거나 눈치챌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면 의아해할 수밖에 없으리라.
“……비명.”
직감적으로 무언가를 짐작한 것인지 셀리디아가 작게 중얼거렸다.
“순간 두 가지의 비명이 들린 거 같았어.”
“예리하네. 인간의 감각만으로는 결코 알아차리지 못할 텐데.”
셀리디아가 말하는 두 개의 비명의 의미는 별것 없다.
말 그대로 두 가지 종족의 소리라는 것이니.
“인간의 혼과 악마의 혼의 비명이라고 해야 하나.”
“……무슨 말이지? 시안 알케우스?”
결국, 참지 못하고 로지닐 변경백이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일단은 설정대로의 지식으로 대답했다.
“악마를 빙의시킨다고 설명하면 될까요?”
“……빙의라고?”
설명이 모호했나.
“인간 마법사의 서클에 악마를 깃들게 합니다. 그 악마를 이용하여 큰 힘을 얻게 하는 것이죠. 거기에 악마와 정신을 공유하여 막대한 마법 능력도 얻게 됩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냐고 묻는다면 나도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어디까지나 마탑주가 광기 어린 연구 끝에 발견한 비술이니까.
사악하긴 해도 천재는 천재인가.
‘그 머리를 좋은 데 쓰지 못하고…….’
어이가 없다는 웃음을 지으며 나는 계속해서 그 비술의 설명을 이어 나갔다.
“계약이라기보다는 기생이라고 해야겠죠. 그렇게 마법사에게 강제로 악마를 융합시키고 본래 주어진 역량 이상의 힘을 얻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인간 마법사에게 억지로 악마의 능력을 얻게 하는 것이다.
“시안! 그건 이해했는데, 왜 그런 짓을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이해가 안 간다며 질문을 던진 것은 미셀.
원리를 이해 못 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한 말을 듣고 마법사의 시체를 관찰한 그녀는 바로 그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식은땀을 흘렸으니까.
그녀가 지적하고자 한 것은.
“불합리해.”
상식적인 문제.
“불합리하다라…….”
“시안의 말대로 악마를 이용하면 큰 힘을 얻을 수 있을지 몰라. ……하지만 그게 가장 적합한 건 흑마법의 영역이야.”
그렇게 말하면서 미셀은 어딘가 경멸하듯 미간을 찌푸렸다.
“악마의 본질적 에너지는 마기. 흑마력에 적합한 것. 그것을 왜 억지로 푸른색의 마나로…….”
“억지로 변환시켰느냐는 소리지?”
안다.
게임에서도 지적된 이 비술의 설정상의 불합리한 점.
비효율.
악마를 빙의시켜 봐야 얻는 것은 기본적으로 막대한 마기다.
그것을 푸른색의 마력으로 억지로 치환시켜서 돌리고 있지.
“마기를 마력으로 변환시키는 술식이 추가되었을 거야.”
“미셀 네 말대로야. ……쓸데없이 불합리하지. 확실히 악마를 기생시켜서 그 능력을 얻는 발상은 참 대단해.”
그건 인정한다.
내가 농담하듯 인정하자, 악마인 에밀리가 약간 뚱한 눈빛을 보낸다. 악마를 이런 식으로 써먹는 게 마음에 안 드는 거겠지.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하지만 마기를 억지로 푸른 마나로 변환시켜서 이용하고…… 그걸 무리하게 사용하면 마법사의 정신마저도 변질시키는 영향이 나타나.”
마법사 대부분이 이성조차도 날아가고, 그것을 극복해도 호전적으로 변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아마 고통도 상당하지 않을까.
“기생 된 악마에게도 썩 좋지 않을 테고.”
비효율, 불합리 그리고 비인도적.
“무슨 메리트가 있어서? 차라리 마기를 그대로 이용하는 마법을 개발하는 게 나을 텐데?”
미셀은 아직 자신의 능력으로는 깨닫지 못하는 무언가 이점이 있기에 그런 단점들을 감수하는 게 아닐까 고민하는 모양이다.
그러니 이해 못 하는 것이다.
이해해서도 안 되고.
“없어. 그런 거.”
나는 단점을 무시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그게 쓸데없는 거라고 해도 고집을 부리는 게 있거든. ……특히 정말로 쓸데없는 색깔 따위로 말이야.”
“색? 아……. 그런 거구나.”
미셀이 신음하고, 차례로 다른 이들도 깨달았는지 인상을 찌푸렸다.
“악마를 이용해도 놈들은 푸른 마나를 다루는 마법만이 제일이라고 우기니까. ……특히 마탑주가 가장 그걸 신봉하는 작자고.”
때로는 그 웃기지도 않는 집착이 광기 어린 짓을 부를 때도 있다는 것이다.
결함투성이, 위험투성이의 무리수를 감행해도 검은 마나만큼은 죽어도 쓰기 싫다는 거겠지.
“푸른 마탑이라는 건가.”
놈들이 집착하는 마나처럼 푸른색의 탑을 떠올리며 나는 부질없는 짓이라고 조소했다.
그런 내 웃음소리를 끊은 것은 로지닐 변경백의 한숨.
“자네가 말한 대로 놈들의 힘의 비결은 이해했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대책이라면 일단 선택지는 두 가지입니다.”
“두 가지나 된다고?”
별거 아닌 듯 내가 제안한 대책 두 가지.
전부 게임에서도 제안된 방법.
“하나는 버티는 것.”
“무슨 뜻이지?”
“저 비술은 강력해 보여도 마법사의 육체와 정신이 소모됩니다. 방어를 견고히 굳히고 틀어박히면 언젠가 자멸해 버리고, 결국 마탑주와 원로급의 마법사들만 남겠죠.”
그때를 노려서 치면 된다.
“애당초 저들이 공격만 감행하는 것도 최대한 빨리 밀고 나가기 위해서니까요.”
“그건…….”
“난처하겠죠. 버티는 것도 고역이고. 시간이 넘쳐나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러니 채택할 마음은 없었다.
당연히 내가 밀고 있는 건 두 번째 방안이다.
“놈의 비술을 공략할 겁니다. ……조금 준비 시간이 필요하긴 한데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만.”
“준비라니…….”
“곧 후속으로 지원하는 이들이 올 겁니다. 자세한 설명은 그 뒤에 드리겠습니다만.”
내 휘하의 다크 엘프, 검은 탑의 인력들 그리고 아카데미 흑마법 클래스의 교수들까지.
그들이 약간 늦는 것은 마탑주의 사악한 비술을 깰 준비를 하기 위해서다.
“비술을 깨? 으아……. 시안, 설마…….”
내가 무엇을 할지 미리 예측한 듯 미셀이 뜨악한 시선을 보낸다.
잘 아는군.
“맞아. 놈들에게 보여 줄 거야. ……악마를 다루는 기술의 원조가 누군지.”
그리고…….
“그 비술로 힘을 발휘하고 있으니 그걸로 망하는 걸 보는 것도 즐거울 테고.”
자존심이 박살 난 놈의 표정을 놓치는 것도 좀 아쉽거든.
* * *
곧 내가 필요로 하는 자재와 소재들을 가지고 후속 지원 부대가 도착했다.
나는 다시 한번 사람들을 모아 놓고 정식으로 마탑주의 비술을 깰 방법을 발표하고는.
“우와, 미쳤어! 진짜 이런 걸 하게?”
미리 알고 있던 이들은 묘한 쓴웃음을, 미셀처럼 이 자리에서 처음 듣는 이들은 경악했다.
“그럼 반대하게?”
“설마! 당장 해야지!”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사실상 만장일치.
뭐, 다른 방도가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별수 없겠지만.
그리하여 신속하게 대항 마법을 펼칠 준비를 시작한다.
다수의 마법사를 동원해야 하는 술식이기에 적어도 준비에 몇 시간은 걸린다.
이미 검은 탑의 주요 간부들과 다니엘 교수님께는 설명을 끝내 두었기에 그들은 바로 사람들을 지휘하여 대규모 마법을 펼칠 준비를 시작한다.
……내가 해야 할 일은 그것을 지켜보거나 혹은 방해가 되지 않게끔 얌전히 지키고 있는 것뿐.
“탑이 기습할 낌새는 없군.”
(자신만만하네.)
뭐, 이렇게 빨리 비술을 뒤집을 방법을 준비하고 있을 거라고는 그 마탑주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테니까.
마탑의 다음 공세까지는 못해도 몇 시간은 걸린다.
악마를 기생시킨 마법사의 마력은 터무니없이 많다고 해도 그것을 유지 보수할 간격이 필요하다는 점도 이미 알고 있다.
적어도 다음 공세까지는 시간을 맞출 수 있으리라.
“……그리고 비술을 깨고 마탑주와 광욕의 마왕을 끄집어내 없앤다.”
(흐으음~ 간단하려나.)
“별거 없지.”
무엇보다 놈들은 내게 그저 중간에 건너가야 할 다리밖에 못 되는 존재들이다.
긴장할 필요가 없었다.
“흐아아아아암~!”
느긋하게 하품이나 하고 있자니, 염화로 떠들던 에밀리의 목소리가 갑자기 멎었다.
내게 다가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잠시 침묵한 것이다.
모니아 임시 교수.
“역시 소문 속 인재잖아. 설마 이런 걸 제안할 줄이야.”
“칭찬은 감사합니다만. 모니아 임시 교수님은 일 안 하십니까?”
“유감스럽게도 모난 돌 취급이라서 말이야~. 이러쿵저러쿵 떠들어 댔더니 시끄럽다면서 다니엘한테 걷어차였어.”
“가서 한 대 더 걷어차 달라고 하고 싶네요.”
내 말에 모니아 임시 교수는 좀 봐 달라며 크게 웃어넘긴다.
슬쩍 허리를 문지르고 있는 게 정말로 걷어차인 건가.
“감사는 하고 있습니다. ……이 방법을 실현하는 데 조력해 주셔서 말이죠.”
“솔직하네.”
“……원래 이건 반쯤 보류하고 있던 공략법이라서 말입니다.”
비술을 정면으로 깨는 공략은 사실 시간 맞추기가 어려웠다.
다른 게 아니라 이론이 미비했으니까. 게임처럼 쉽게 준비할 수도 없었고.
그런 내 제안을 고속으로 구체화시킬 수 있었던 것은 발상을 들은 모니아 임시 교수가 빠르게 술식을 실용화했기 때문이다.
“에이~, 너무 추켜세우지 않아도 돼. 시안. 네 말대로 악마를 다루는 건 흑마법사의 기본이니까. ……나는 그걸 극대화시킨 거고.”
“의외로 참 겸손하시네요.”
“물론! 그걸 가능하게 한 건 이 대선배님의 넘치는 지성 덕이겠지만.”
“아, 방금 한 말 취소하겠습니다.”
능력을 인정한다는 말은 진심이다.
아마 손에 꼽을 정도로 뛰어난 천재.
예상은 했지만, 정말로 타고난 인재라고 할 수 있었다. ……그것도 게임에서는 드러나지 않은 숨은 인재.
……참 편리하네. 이런 상황에서 이런 인물이 툭툭 튀어나오고 말이야.
“임시 교수님의 덕은 쭉 봤으니 감사한다는 인사는 다시 해 두고 싶었습니다.”
“그거 뭘 말하는 걸까?”
“모른 척 마시죠.”
진마빙현제에다 금룡의 공방에 남겨 둔 연구 성과 등……. 묘하게 놀라운 흔적들을 많이 남겨 두었지.
“지난번에는 제대로 말씀드릴 기회도 없었으니까요.”
“아~ 그러고 보니 진마빙현제를 실용화했다는 소식은 듣고 놀랐어.”
“네, 여러 가지로 써먹었습니다. ……그래서 이 기회에 좀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만.”
마침 기회다.
급한 것도 아니고 다른 일로 바쁘다면 미뤄 둘 일이지만, 마침 이야기 정도는 할 짬이 났다.
거기다 지금은 단둘뿐이니.
“이론의 상담? 그런 거라면 환영인데.”
“꽤 여러 가지를 손대시는 거 같은데, 무엇을 목표로 하신 겁니까?”
“별거 없어. ……굳이 노리는 거라면 흑마법의 업적?”
“업적이라고요?”
“성과가 있다면 인식이 달라져. ……흑마법을 이용해 혁혁한 공을 세워서 세상이 나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그게 내 목표야.”
모니아 교수는 지금까지의 행동, 즉 충동적으로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다양한 연구에 손을 댄 이유를 말했다.
명예인가.
“아카데미에 임시 교수로 온 것도 이런 시기이니 좋은 기회라고 여겨서고.”
“공로와 명예입니까?”
“그게 클수록 출자하는 사람도 많고, 내 연구 환경도 개선되거든!”
결국은 욕망 때문이라는 건가.
참으로 시답잖으면서도 흔히 말한 법한 이유.
“시안 후배도 늘 출세를 입에 달고 살았다고 들었는데.”
“누가 말한 건지. ……짐작 가는 데는 넘치네요.”
이해는 한다.
뭐, 나도 충분히 공감할 만한 이야기지만.
그러나 내 입가는 실룩이면서도 눈매는 그다지 움직이지 않고 있을 것이다.
반 정도는 거짓말이니까.
모니아 임시 교수의 말에는 중요한 것이 빠져 있었다.
그때 그 제단에서도 일부러 지적하지 않은 부분.
“근데 그게 목적은 아니잖습니까, 모니아 교수님?”
“……무슨 말일까?”
“트집 따윌 잡을 시기는 한참 지났으니 직설적으로 묻죠. ……당신 누굽니까?”
그것이 내가 추궁하고 싶은 것이다.
“당신이 한 일과 가진 지식은 평범한 흑마법사의 범주를 뛰어넘었습니다. ……저처럼 말이죠.”
그렇기에 듣고 싶었다.
“당신은 적입니까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