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1화
361화
금색의 빛을 발하는 마력.
그 이질적인 낌새는 그곳에서 제법 떨어진 곳에서도 감지할 수 있었다.
당연하게도 가장 먼저 알아챈 것은 그들이 있는 곳과 반대 방향에서 싸우고 있던 두 악마.
시안의 계약 악마 에밀리와.
광욕의 마왕 닐케이트밀레인.
“어머? 저 마력의 빛은?”
“쓰겠다는 말은 들었지만, 벌써 써 버린 건가. 그 건방진 놈.”
황금의 마나.
이미 알고 있다는 듯 광욕의 마왕은 그 이름을 입에 담았다.
“확실히 저건 푸른색도 검은색도 ……어느 쪽도 아니네.”
“그렇다더군. 건방지게도 놈은 마나를 가장 강력한 형태로 다루기를 희망하는 것 같더군.”
마나에는 여러 형질이 존재한다.
마나라 불리는 근본적 물질을 어떤 방식으로 가공하느냐에 따라 그 형태와 성질이 바뀌기 마련이다.
그것이 푸른색이든 검은색이든.
혹은 그 외의 것이든.
“놈이 그것을 자랑하는 것을 보고 싶었는데, 유감이로군.”
“어머, 그거 큰일이네. 앞으로도 볼 일은 없을 텐데.”
에밀리는 광욕의 마왕의 방심을 노린 듯 마기의 칼날은 만들어 날린다.
그러나 쉽게 당할 리 없었다. 광욕의 마왕이 휘두른 검이 그것을 쉽게 분쇄한다.
“까불지 마라. 건방진 악마. 주제도 모르고 감히 마왕에게 반역하는 자여.”
“그런 말을 한들 내가 겁먹을 거 같아?”
“……소문은 들었다. 건방진 음마. 설마 네 의향대로 움직이는 인간을 찾아냈을 줄이야.”
“후후, 어떨까. 딱히 그 아이가 내 의향대로 움직이는 건 아닌데.”
“그러냐. ……어차피 볼 일은 없겠다만.”
거슬리는 말투.
“저 빛을 발하는 그는 아주 위험하다.”
어깨너머로 지켜본 것이 고작이지만, 저 비법을 완성하였을 때 마탑주의 힘은.
“어쩌면 전성기의 나를 능가할지도 모르니.”
지금처럼 제물로 엮은 몸이 아닌, 마계에서 본래의 힘을 발휘할 때의 마왕과 동등 혹은 그 이상.
그것은 허투루 말하는 것이 아니리라. 마왕의 체면도 있기에 농담으로 할 말도 아니지.
“흐응~! 그렇구나. 그건 인간치고는 제법이네.”
“뭐냐? 꽤 계약자를 중요하게 여기는 줄 알았는데. 아니면 내 말이 농담이라고 여기는 것이냐?”
“설마. 그런 농담을 할 마왕이 아니란 것쯤은 알아. ……하지만 고작 그 정도라면 걱정할 필요가 없는걸.”
“……뭐라?”
헛된 도발인가. 무려 이 마왕과 비교해 손색이 없는 힘이라고 했거늘.
그것을 저 음마는 같잖게 취급한 것이다.
“네년…….”
“사실인걸. 고작 그 정도라면 걱정할 필요가 없겠네.”
“건방진 소릴 지껄이는구나. 그렇다면 당장 네년은 소멸시키고 직접 확인해 주마.”
“그건 좀 어렵지 않으려나.”
여유로우면서도 상대를 안쓰럽게 여기는 어조.
“흠?!”
광욕의 마왕의 분노가 터지기 전에 먼저 폭발한 것은 에밀리가 쏘아 낸 마법에 의한 폭발이었다.
지금까지와는 격이 다른 위력.
그것은 마왕조차도 진심으로 방어를 펼쳤지만 충격에 떠밀려 그대로 지면까지 추락할 수밖에 없을 정도의 무시무시한 위력이었다.
“……설마?”
“어머, 뭘 그렇게 놀란 듯 보는 걸까.”
에밀리는 그런 마왕의 꼴을 보고 일부러 놀리는 투로 말한다.
“설마 마왕을 상대로 시간 따위를 끌어 달라는 명령을 내가 받았을 거라고 생각했니?”
아니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저 광욕의 마왕이 마탑주에게 가세하지 않도록 해 주는 게 가장 좋지만.
시안이 에밀리에게 지시한 것은 하나.
“가능하면 마왕을 없애 달라고 했지 뭐니. ……참 악마를 곤란하게 부려 먹는 계약자야.”
하지만 오히려 그것을 달갑게 여기는 듯 에밀리는 지금 발휘할 수 있는 모든 힘을 쏟아 낸다.
“여기서 소멸하는 건 저 마탑주인가 뭔가 하는 인간뿐이 아니란다. ……광욕의 마왕. 오랫동안 군림하면서 썩어 버린 짜증 나는 악마의 왕, 당신도 함께야.”
그리고 그 마왕은 얕보던 일개 악마에게 패하여 인간 세상에서 쓸쓸히 소멸하리라.
* * *
마탑주가 본 힘을 발휘하겠다며 선보인 금색의 마력.
황금의 마나.
그것의 정체는 이미 보자마자 떠올릴 수 있었다.
“금색……. 설마 다른 누구도 아니고 댁이 도달할 줄이야.”
“역시 알아보는 것입니까?”
기쁘다는 듯 외치는 마탑주.
그야 즐겁겠지.
자신이 도달한 경지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보다는 그 자체를 확실히 이해해 주는 적과 대면하는 것이 가장 큰 쾌감으로 다가올 테니.
“푸른색도 검은색도 아닌 또 다른 성질의 마력. 먼 옛적에 망상 같은 이론만이 기록되어 남아 있다고 하였지.”
“학문의 조예가 깊군요. 그것은 마탑이 가지고 있는 기록일 터인데. ……하긴, 그 케니실린과 비슷한 비결을 가졌다면 이상할 건 없겠죠.”
내가 가진 지식의 출처를 의심하지 않는다.
황금의 마나.
그것은 게임에서도 어떤 특수한 상황에서만 잠시 등장했던 미지의 성질.
“그렇다면 당신의 처지가 얼마나 절망스러운지도 이해하고 있겠군요.”
“웃기시네.”
내가 비웃자 그것을 안쓰러운 허세라고 여긴 것일까. 마탑주는 그 금색의 마력을 수습하여 지팡이에 응축시킨다.
제어는 완벽한가 보군.
“그럼 어디 당신을 향해 시험해 보죠. 시안 알케우스.”
지팡이에서 응축된 빛이 나를 향해 곧게 뻗어 나온다.
금의 일섬.
황금의 마나를 각성할 때 사용할 수 있는 공격 마법.
“……자랑이나 하긴.”
나는 빠르게 그 자리를 이탈하며 공격을 피했다.
부아가 치밀긴 하지만, 저것은 마법으로 방어할 수 있는 부류의 성질이 아니기에.
그대로 곧장 뻗어 나온 금색의 빛은 닿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며 사라진다.
소멸시킨 게 아니다.
말 그대로 빨아들인 것.
“문헌대로의 성질이군요. 실제로 체감하는 것은 역시 다르군요.”
내게 빗맞았음에도 마탑주는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짓는다.
무엇 때문인지 모르지 않는다.
저 황금색의 마력의 특성.
그것은…….
“모든 물질을 아우르는 지배.”
“말 그대로 물질의 왕이라고 할 수 있겠죠.”
아는 것을 떠벌리는 게 몹시도 즐거운지 놈은 기꺼이 정보를 내뱉는다.
뭐, 나도 아는 정보이지만.
황금의 마력.
그것은 푸른 마력처럼 다양한 성질과 위력을 낼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검은색의 마기처럼 저주나 삿된 효력을 발하는 것도 아니다.
쓸 수 있는 마법은 한정적이다. 응용력도 가장 떨어지고.
그러나 저것이 다른 마력 아니, 모든 물질의 머리 꼭대기에 서 있는 이유는.
“그 빛에 닿은 것은 모조리 집어삼켜진다.”
저 마력에 의한 공격을 당하면 저항력이 약한 인간이나 물질은 그대로 물질의 최소 단위째 분해되어 저 빛에 흡수된다.
요컨대 뭐든지 먹어 치우는 빛.
또 다른 이름은.
“약탈의 마력.”
“그렇게 사라진 물질은 새로운 마력이 되어 차오르는 것이죠.”
조금 전의 공격으로 사라진 주변의 물질에서 추출한 마력만큼 놈의 힘이 차오른다.
결론은…….
“제가 공격하는 모든 것은 제 힘이 되어 돌아온다. ……쓰러트릴 수 없는 최강의 마력이라는 것입니다.”
“놀고 있네.”
코웃음을 치긴 했지만, 틀린 소리는 아니었다.
“그것보다 푸른색의 마나가 너희의 긍지 아니었냐? 금색은 괜찮고?”
“그것을 지배하는 것조차 푸른 탑의 마법사의 수장인 제 역량. ……무엇보다 이걸 사용한다고 푸른 마력을 못 쓰는 것도 아니니까요.”
마탑주가 손을 까딱이자, 지팡이에서 일부 푸른빛이 새어 나오며 고열의 화염 폭풍이 휘몰아치면서 나를 향해 덮친다.
과연 평범하게 마법을 사용하는 것도 자유자재인가.
“그건 대단하네.”
게임에서는 그렇게까지는 사용 못 했거든.
“자, 절망하기까지 얼마나 남았습니까. 시안.”
“글쎄다.”
놈의 마법 공격으로 틈틈이 섞여 들어오는 금색의 빛을 나는 확실히 피해 내며 반격을 위해 흑마법 공격을 펼쳤다.
사방에서 펼쳐지는 골창과 흑염의 세례는 녀석이 금빛의 커튼을 펼치는 것과 동시에 허무하게 사라지며 녀석의 마력으로 환원된다.
‘짜증 나긴 하는군…….’
평범한 공격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하물며 저 빛으로 이루어진 공격은 단조롭지만, 닿으면 방어 불능의 즉사급.
……본래는 저걸 주인공이나 그 동료가 각성하여 사용하는 이벤트성 능력이니까.
절망적인 상황을 넘기기 위한 한순간의 강력한 능력.
당연히 사기성이 짙을 수밖에.
“이것을 연구한다면 이후 황금의 마나에 걸맞은 술식을 개발도 할 수 있겠죠.”
“아, 그래? 거참 잘나셨네!”
놈이 떠벌리는 동안, 빈틈을 노려 맹독을 바른 단검 하나를 뽑아 던진다.
당연히 막혀 분해되어 사라진다.
‘역시 모든 물질에 대응하나. 그럼 어쩔까…….’
다행히 저것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설정상 리스크가 없지는 않다. 굳이 금기로 두며 후대에 연구조차 되지 않은 이유.
그것을 생각할 때쯤.
“소용없습니다.”
“뭐가?”
“황금의 마나의 리스크.”
눈치가 빠르군.
“그것을 유지하는 데 막대한 수명이 필요하다는 것…….”
“……잘 아네.”
역시 알고 있었나.
설정상 인간은 저것을 다룰 수가 없다.
정확히는 인간의 생명력으로는 유지할 수 없다지만.
약 1시간을 유지하는 것으로 60년의 수명을 바쳐야 한다던가.
“그렇다면 기꺼이 바치면 될 뿐이죠. ……충분한 제물을.”
거기서 그가 도움을 받은 게 마왕의 지식이리라.
마탑주가 돌연 자신의 의복 앞섶을 열어젖힌다. 딱히 노출이 취미인 건 아니었다.
보여 주기 위해.
그가 말한 해결책을.
“……끔찍한 짓을 했네.”
그의 가슴팍에 새겨진 것은 어떤 마법진.
핏빛을 받아 맥동하는 묘한 마법진은 마치 그것이 또 다른 심장처럼 보이게 했다.
“생명력의 강제 집속. 너, 설마 그걸…….”
“예. 탑에 속한 모든 마법사에게 이식했죠.”
자신의 수명을 쓸 것도 없었다. 탑의 마법사의 수명을 강탈하여 지불하면 되니까.
“뭐, 그들은 어디까지나 광법사의 힘을 얻은 부작용 정도로만 알고 있을 겁니다만.”
“쓰레기 자식!”
내가 화풀이로 날린 화염탄을 그는 금빛 방어벽을 쳐서 아무렇지 않게 막아 낸다.
“어쩌자고 그딴 짓을 꾸민 거야!”
“반대로 묻죠. 시안, 당신은 왜 이런 짓을 생각하지 않은 겁니까?”
“……뭐?”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적.
“당신의 지식이라면 이것을 손에 넣어도 이상할 게 없죠. 하지만 하지 않았다. 그 같잖은 양심 때문에.”
마탑주는 그것을 한심하다고 비난하였다.
“틀림없이 당신은 강합니다. 분하지만, 마법사로서의 역량도 저따위를 아득히 웃돈다고 인정해 드리죠.”
“그래서?”
“하지만 그 같잖은 양심과 도덕 때문에 파멸을 맞이하는 겁니다.”
조롱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가엾게 여기는 것처럼 들리는 것은 그저 기분 탓만은 아니겠지.
“안타깝군요. 그토록 마법사로서 가장 중요한 진리를 외면해서야.”
“……그게 뭔데?”
“모든 것을 바치는 것.”
양심을, 인간으로서의 모든 도리를 외면하고 습득한 지식은 전부 써먹어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그것을 알고 있기에 저는 이길 것이고, 당신은 파멸할 겁니다.”
“네, 네. 연설 잘 들었습니다. ……요컨대 그게 틀렸다는 걸 증명하고 네가 피를 토하게 만들면 되는 거지?”
“후후, 가능하다면 말이죠.”
“오? 정말?”
확실히 들었다.
마탑주는 내 묘한 태도에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듯 얼굴을 찌푸렸으나, 그러고도 자신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확실히 내가 가진 마법, 보유한 스킬, 그 외에 잡다한 기술 등을 총동원해도 그 빛을 능가할 수는 없겠지.”
설계상 불가능하니까.
뭐, 어쩌면 있을지도 모르고 내가 그 깨달음에 도달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르나.
지금의 시점에서는 확실히 인정한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라? 뭐, 일부는 인정하지.”
“무슨 말입니까?”
“말했을 텐데, 그 마력의 리스크?”
“……그것이라면.”
“수명? 누가 그딴 걸 논했는데?”
설마 내가 그딴 거에 의존하겠냐?
“애초에 말이야. 그 마력이 왜 발전되지 못하고 사라졌는지 알아?”
모르는 눈치다.
그렇다면 이기는 건 내 쪽이다.
“가르쳐 줄게. 대가는 네 죽음이겠지만.”
나는 망설임 없이 녀석을 향해 돌진한다.
마탑주는 인상을 찌푸리며 황금의 마력을 전개해 펼친다.
부딪치는 것만으로도 나는 죽겠지.
“어리석은 짓을…….”
“……누가? 내가? 아니면 네가?”
설마 맨몸으로 부딪힐까. 나는 아공간을 열고 어떤 것을 꺼내 작동시키며 거칠게 옆으로 내던졌다.
검 한 자루.
“……그건?!”
마탑주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물든다.
“보검 실페스?!”
한순간.
그 황금의 빛이 흔들리더니 사라진다.
“본 적 있지? 황성의 보물. 그야 그렇겠지. 그곳의 어떤 결계를 칠 때 너도 조력했다면서?”
황성에서는 마법의 발동이 뜻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그 효력을 저해하는 결계가 있으니까.
그리고 그 결계의 모티브는 황성이 보관한 어떤 보물에서 유래되었다고 하지.
보검 실페스.
다른 이름은 방해 검 실페스.
딱히 예리한 검은 아니다. 오히려 공격력은 저질이라고 할 수 있다.
귀찮은 능력을 갖췄을 뿐.
마법 발동의 저해.
황성의 결계는 이것의 능력을 베낀 것이다.
“허락을 맡고 빌려 온 거야. ……뭐, 효력은 우리 수준의 마법사라면 극복할 수 있지만.”
정점 급의 마법사라면 충분히 대처할 힘이다.
그러나 저 금색의 마력은 이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 저항할 요령이 아직 연구되지 않았으니까.
그것이 리스크.
아직 발전하지 못한 힘이라는 단점.
완전히 계열이 다른 마력이기에 기존의 마력이라면 극복할 수 있는 현상에 대처하기가 어렵다.
“너라도 쉬이 터득하지 못했겠지. 마력 운용의 요령이 다를 테니까.”
“……그렇다면.”
마탑주의 마력이 다시 푸른빛을 띤다. 그래, 그거라면 마법을 쓸 수 있겠지.
“그래도 늦어.”
반면에 나는 마법을 캐스팅하지 않는다. 오로지 가진 에너지를 신체 능력의 상승에만 집중시키고 폭발적으로 늘려서.
“……꺼져.”
단검을 꺼내 휘둘러 녀석의 목 위를 완전히 산산조각 내어 버린다.
“기본? 그렇다면 잊지 말아야지. 전쟁터에서 마법사의 사망 원인의 4할은 검이나 화살 따위거든. ……이 얼간아.”
그 허무한 죽음은 마탑의 주인이라고 해도 예외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