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 (1/200)

                                        노래는 마법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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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상한 습성이 있었다. 비슷한 내용의 중얼거림을 기분에 따라 흥얼거리고 다녔고, 언

제나 입술을 오물거리는 모습을 주위에선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혼자서 키득

거리게 만들던 작은 유희거리는 언제부터인가 매번 뒤죽박죽이었던- 가사는 큰 차이 없었

지만 멜로디는 이게 그 노래였나할 정도로 - 모습을 탈피하고 완전한 하나의 노래가 되어

있었고, 슬픔,기쁨,외로움… 속에서도 떨어질 수 없는 존재였다. 그 날도 역시 마찬가지였

다. 수능에서 실망적인 점수를 기록한 난 재수생의 신세를 한탄하며 버스로 학원에서 집으

로 지친 몸을 실어나르는 도중이었다. 어느 덧 어둑어둑해진 밖이 입김으로 뿌옇게 흐려졌

다. 이렇게 추운 겨울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지. 

나는 생각하고 있죠. 이 지겨운 생활에서 그만 벗어나고 싶다고... 

한 때는 빌어도 봤어요. 꿈에 사는 새가 되고 싶다고... 

하지만 보이지 않는 걸. 작게 뚫린 꿈이라 불리는 구멍 속으로 

머리를 들이밀어 보지만 수많은 꿈의 그물 속에서 발버둥치는... 바로 나인걸 

바람에 휩쓸리고 싶다고... 그 얼마나 바래왔을까... 

구름에 몸을 띄어 몸을 숨길 수만 있다면... 

너무 기뻐 눈물이 솟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내게 닥쳐오는 건 꿈결같은 바람 대신 빙하의 파도 뿐인걸 

현실의 이빨에 옥죄이고 쫓기여 죽을 힘을 다해 지느러미를 놀리겠지... 

그 어딘가에라도 신이 있더라면, 제발 누군가 물어봐주길... 

왜 나는 바람을 갈망할 수 밖에 없는... 등푸른... 생선이냐고...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거죠?」 

또 종점까지 와버린 모양이다. 졸아버린 건가. 박카스 한병이라도 한병 마셨으면 좋겠다. 

힘들게 눈꺼풀을 들어올렸지만 촛점이 잘 잡히지 않은 난 다시 뒤로 누워버리고 말았다. 

「이봐요! 장난쳐요!?」 

후우… 굉장히 성급한 아가씨군. 아르바이트라도 하는 사람인가? 앙칼진 목소리를 들어보

건데 미인이야. 요즘 여인네들은 얼굴값을 하거든. 어쨌든 버스 안에서 밤을 새고 싶은 맘

은 절대로 없었기 때문에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예상에 어긋남없이 눈 앞에는 얼굴이 벌개

진- 어떻게 보면 귀여운- 미소녀가 코뿔소 마냥 성난 숨소리를 내며 째려보고 있었다. 

「여긴 어디지? 버스가 아니네」 

그제서야 주위를 둘러본 난 누워있던 곳이 버스와는 아주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 수 있었

다. 어떻게 된거지? 난 눈이 튀어나오지 않을까 걱정되는 소녀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참 

없어보인다. 무슨 17세기 중세유럽에서나 입었을 옷을 입은 거지. 난 그녀가 어깨에 이고있

는 항아리를 바라보았다. 물이 가득… 

촤아아아아악 - 

아니, 정정하겠다. 소녀는 빈 물통을 마저 내 머리에 털어대고 소리쳤다. 

「이제 잠 깼냐!? 어서 비켜!」 

가만히 있다가 옆구리터진 샌드백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인 난 얼른 옆으로 비

켰고, 1초라도 늦었으면 불안이 현실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살기어린 눈길로 한차례 날 해

부하며 그녀는 옆을 지나쳤다. 무릎 위로 팔랑이는 푸른 치마가 내 바지를 스쳤다. 코스튬

플레이라도 하는 걸까? 흥미롭군. 난 게임이나 만화에서 여인들의 복장이 야릿한 것에 진

심으로 감사한다. 보라, 살랑이는 눈요기를… 흠흠, 계속 이러고 있다간 변태도 찍힐지도 

모르겠군. 

「도대체 여기가 어디지? 영화세트장인가?」 

내가 누워있던 곳은 벽돌로 만든 다리였다. 아래로는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고 주위로는 

연록빛 잔디가 가지런히 솟아있었다. 소녀가 걸어가는 방향에는 영화에서나 봤음직한 고성

이 우뚝 서있었고 그 주위로 조밀조밀하게 집들이 굴뚝으로 연기를 피어올렸다. 눈을 감은 

사이에 헐리웃 중세 영화 세트장에 와버린 건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 소녀와 했던 

대화가 생각났다. 

「아냐, 그럼 분명히 영어를 써야겠지.」 

다시 생각해보니 그녀의 머리색이 굉장히 자연스러운 갈색이었던 것이 떠올랐다. 도대체 

뭐지? 마을에 가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난 달렸다. 이런 상황에서 걷는다는 건 미친 

것이겠지. 

「저,저기 이 곳은 어디입니까?」 

내가 불러세운 남자는 영화의 엑스트라같았다. 굉장히 의심스런 눈초리로 날 바라보던 그

는 퉁명스레 말했다. 

「무슨 말이오? 어디냐니?」 

「아, 그러니까 이 곳은 미국입니까? 아니면 한국의 영화세트장?」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요? 그런 지명은 듣도보도 못했소.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는 모르

겠지만, 여긴 〈엘시크 남부의 폴로즈〉라는 곳이오.」 

엘시크!? 폴로즈!? 무슨 소리야? 나도 그런 지명은 듣도보도 못했다고. 내가 멍하니 서있

는 동안 남자는 힐끔힐끔 날 보고는 사라져버렸고, 그제서야 주위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

다. 모두 날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나 아무래도 상상도 못할 곳에 와버

린 것 같은데…!? 마을에서 뛰어나와 숲의 나무에 몸을 기대고 앉았다. 그제서야 알 수 있

었다. 난 내가 아는 세계가 아닌 곳에 있다는 것을… 

바로 세일피어론아드라는 마법의 세계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훨씬 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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