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화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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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 중에 진실로 어둠이라고 신성시되던 밤을 경험해본 이들이 얼마나 될까. 모르면 모

르되, 전기가 잘 들어오지 않는 시골을 제외한 도시의 내 또래 중에서는 극히 드물 것이다. 

몸체에 이어진 손의 윤곽조차 알아볼 수 없었지만 나는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아

는 사람 하나없는 상상 속의 세계라는 불안감도 있었지만 어느 새 어둠 속에 묻혀진지 오래

였다. 아마도 홀로 여행을 다녔던 경험이겠지. 

「밤이 되니 제법 바람이 쌀쌀한걸」 

하지만 바람에 날리는 머리칼이 기분만 상쾌하게 했다. 나는 잠시동안 이 세계를 〈판타지 

세계〉라고 지칭하기로 했다. 배경도 비슷하고 지구에는 없었던 곳이라는 것은 틀림없으니

까. 나는 〈판타지 세계〉가 따뜻한 기후라는 것에 만족했다. 만약 시베리아같은 기후였다

면 달랑 오리털 잠바로 밤을 견디고 함께 얼음 고슴도치가 되어버렸을 것이다. 

「거기… 누구죠?」 

갑작스럽게 들려온 목소리와 기척에 놀라 난 몸을 벌떡 일으켰다. 풀숲을 헤치고 나타난 

불빛과 길게 늘어진 사람의 그림자가 내게로 다가왔다. 

* * * * * 

「루안, 정말 괜찮겠어? 난 완전히 외부인인데…」 

난 13살 정도 되어보이는 앳된 꼬마를 어미닭을 따르는 병아리마냥 졸졸 따라가고 있었다. 

얼굴도 보이지 않게 빵모자를 꾹 눌러쓴 아이는 웃음띈 입술로 말했다. 

「전혀 괜찮치 않아요. 하지만 그런 곳에서 잤는 것을 내버려뒀다간 늑대에게 잡아먹힐 테

니까… 아셨으면 얌전히 따라오세요.」 

부담과 불안감을 동시에 주는 아이의 한 팔에는 약초라고 쓰일 듯한 풀들이 가득 담겨있었

다. 어머니가 병에 앓아 누워계시다고 한다. 기특한 녀석이야. 늑대가 나올 거라면서 그 숲

을 횃불 하나만 들고 약초를 찾아다니다니… 

「여기에요, 아저씨. 루안 지금 돌아왔어요. 아저씨도 들어가요.」 

루안이 길게 소리지르며, 문을 열고 나를 집안으로 밀었다. 엉겹결에 떠밀려 신발을 벗은 

내 등을 식은 땀이 타고흘렀다. 루안이 달려가 안긴 소녀의 미모가 눈에 익었기 때문이었

다. 

「어두워서 잘 구별이 안 가길래 비슷한 것은 모두 뜯어왔어. 그리고 이쪽은 오면서 사귄 

친구야.」하며 소년은 내 팔을 끌어당겼다. 운명의 시간이구나. 

「아,안녕하세요. 아,아까는 죄송했습니다.」 

「당신은… 아까 그…」 

「아저씨를 알아? 아저씬 〈아스틴〉에서 왔는데 일행이랑 떨어졌대…. 그래서 갈 곳이 

없었나봐. 숲 속에서 혼자 앉아있길래, 늑대한테 물려가면 안되잖아. 내가 데려왔어.」하고 

루안은 방긋 웃었다. 사실 루안의 말은 혼자서 추측하길래 몇번 끄덕이고 대충 건더기를 덪

붙여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래. 아까는 물… 미안해요. 그런 줄 몰랐네요. 전 레이 라고 해요.」 

「전 시… 즈…. 시즈! 시즈입니다.」 

「시즈? 쿡쿡… 아저씨랑 안 어울려」하고 루안이 키득거렸다. 급조된 이름이라서 그렇

다. 한숨을 한번 내쉰 난 레이에게 물었다. 

「집안 어른께서는 어디 계십니까?」 

「아! 잊었었네요. 이리 오세요.」 

루안의 말대로 방 안에서 앓아누운 여인이 침대에 앉아 내게 미소를 보냈다. 거실에서의 

대화가 다 들렸던 모양이었다. 

「아스틴에서 오셨다고요? 누추하지만 편히 쉬다가 가세요. 남편은 뱃사람이라 오래 있어

야 돌아오니 마음 편히 계셔도 되요.」 

그래서 없었던 거로군. 선원이라면 시간을 오래 걸리지만 한번 항해를 다녀오면 많은 이익

을 얻기 때문에 루안의 집은 서민의 집치고는 힘들게 사는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이자, 그녀는 루안에게 말했다. 

「루안, 시즈 씨를 2층방으로 안내해드리렴. 그리고 잘 때 씻는 거 잊지 말아.」 

루안은 그 때까지도 모자조차 벗지 않고 있었다. 2층으로 안내해준 루안은 머리를 콩콩 두

들기더니 혀를 내밀고 말했다. 

「여기가 아저씨 방이에요. 잘 자요. 아! 씻는 거 잊을 뻔했다.」 

귀여운 아이로군. 나무계단을 통통 거리며 뛰어내려가는 작은 뒷모습을 바라보며 실소를 

흘렸다. 난 아이들을 굉장히 좋아했다. 친구들에게는 무정하다던가, 냉정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지만, 아이들에게만은 그럴 수가 없었다. 

「달이 정말 크군.」 

불을 끄고 창을 열자 입에서는 바로 감탄이 나왔다. 지구에서의 달이 메츄리알이라면 내 

눈에 선명하게 비쳐진 달은 달걀이라고 칭할 수 있었다. 침대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삭

막한 방이었지만 지붕과 이어진 커다란 창문으로 들어오는 달빛은 오히려 신비스런 느낌까

지 주고 있었다. 안경을 침대 머리맡에 던져버린 나는 창문틀에 몸을 걸치고 앉았다. 

「평화롭군. 이게 판타지의 세계일까?」 

내 상상 속의 판타지는 언제나 모험이 가득한 곳이었다. 불 뿜는 드래곤과 공포의 마왕, 용

기의 기사와 마법의 용사… 뭐 이대로도 좋았다. 현실에서는 절대로 느낄 수 없는 해방감을 

느낄 수 있는 것으로도 내게는 충분히 판타지 세계로서의 가치를 느낄 수 있었으니까. 

「만약 그렇다면 돌아갈 방법은… 후우, 골치 아프군. 마법이라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

을까. 그러면 당장에 믿어버릴텐데.」 

그러고는 멋모르는 아이처럼 허공에 손가락을 이리저리 저어보았다. 바람이 손가락에 둘

둘 말리는 것 같다. 눈을 감고 나직히 중얼거렸다. 

「바람아… 불어라」 

화 - 악!! 우당탕탕!! 

거꾸로 바닥에 쳐박힌 채 나는 손을 들여다 보았다. 분명히 대답이라도 하듯이 바람이 불

어닥쳤고 강렬한 밀림에 바닥에 쳐박혀버린 것이다. 

「아,아저씨! 무슨 일이에요?」 

루안의 다급한 목소리와 더불어 계단을 뛰어오르는 발소리가 들렸지만, 그저 흥분으로 땀

이 흥건해진 손을 바라보았을 뿐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이거 멋진데…!?」 

주먹을 힘있게 쥐고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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