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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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지구에서의 옷을 입었다간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볼 것이므로 난 레나에게부탁해 

그녀 아버지의 옷을 빌려입고 입고 있던 옷을 가지고 있던 가방에 집어넣었다. 그러고나니 

식사하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침 식사는 조촐했지만 맛은 고급요리에 못지 않았다. 

간소한 스프와 담백한 치즈를 바른 소밀빵 - 치즈가 별미였다 - 에 따뜻하게 데워진 우유 

한잔으로 마무리를 하자 배가 불러왔다. 뭐, 맛이 없었다고 해도 갑자기 쳐들어와 하룻밤 

신세를 졌으니 무슨 불만이 있겠는가. 루안의 어머니, 마일리 부인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간 밤에 잘 주무셨을지 모르겠네요. 아스틴 왕국에서 오셨다고요?」 

「아! 예.」 

「무슨 일을 하시는 분인지 물어도 될까요?」 

나는 순간 당황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굳은 얼굴로 우수에 찬 표정을 지었다. 

「그저 여행자일 뿐입니다.」 

「무슨 사정이 있는 모양이군요.」 

예. 믿을 수 없는 사정이지요. 이번에는 정말로 모르는 사이에 슬픈 표정을 지었던 모양이

었다. 쪼르르 하고 다가온 루안이 내 손을 잡으면 커다란 두 눈동자에 가득 눈물을 글썽였

다. 부드러운 갈색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소를 짓자 어린 소녀는 무슨 말이 하고 싶은 듯 우

물거리다가 헤헤 하고 웃기 시작했다. 

「그래, 앞으로는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마일리 부인의 질문은 머리 속을 얼려버리는데 충분했다. 잠이 들기 전까지 고민하던 것을 

아침에는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것이다. 내 얼굴이 창백해지는 것을 흥미롭게 지켜보던 마

일리는 입을 가리고 웃으며 말했다. 

「결정하지 못하셨으면, 떠날 때까지 저희 집에서 있으시는 게 어때요?」 

「그,그럴 수는 없습니다.」 하고 나는 기뻐서 날뛸 것 같은 가슴과는 달리 난색을 표하며 

말했다. 

「괜찮아요. 그렇잖아도 장작패기 같은 남자가 해주어야 할 일이 많거든요. 다른 사람들한

테 부탁하기도 뭐하고….」하고 그녀는 기대가 찬 눈빛을 했다. 그러면 그렇지. 역시 이용

가치가 있어서였군. 그리 나쁜 조건은 아니었기에 난 부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호호. 그렇다면 지금 좀 해주세요. 땔깜이 모자르거든요. 루안, 시즈 씨를 안내해드리

렴.」 

바로 써먹는 군. 다행인 건 내가 키는 작지만 힘은 강하다는 것 - 엄지손가락으로 팔굽혀

펴기 할 정도 - 이다. 꼴사나운 모습은 보여주지 않을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흡!! 읍!」 퍼슥! 퍼슥! 

역시 만만치 않다. 반 정도 밖에 자르지 않았는데도 어깨가 쿡쿡 아려오기 시작했다. 땀도 

비오듯 쏟아져 이마를 한번 훔칠 때마다 소나기라도 내렸나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 

내 모습을 구경거리라도 되는지 루안은 나무그늘에 앉아서 눈을 굴리며 바라보았다. 가끔

씩 불어오는 기분이 기분좋은지 긴 머리를 쓸어넘기며 무슨 노래를 흥얼거렸는데 그녀의 

팔에는 기타와 비슷한 악기가 안겨있었다. 호기심이 일어나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입을 열

었다. 

「루안, 그 악기는 네가 연주하는 거니?」 

「음… 그랬으면 좋겠지만요. 아니에요, 이건 아버지의 악기에요. 〈넬피앙〉이라고 하는

건데… 음유시인이 쓰는 악기래요.」 

자세히 보니 크기가 조금 작긴 했지만 기타와 완전히 판박이였다. 내가 주의깊게 바라보자 

루안은 선뜻 내주고는 빙그레 웃었다. 마치 연주해달라고 말하는 것 같아 난 간단한 로망스

를 치기 시작했다. 우수가 어린 선율이 잔잔히 손가락을 탄다. 그와 함께 공기도 서서히 날 

감싸않는 것이 느껴졌다. 어제 밤의 그 느낌이다. 바람이 날 안아주는 것 같은…. 마지막의 

음을 끝으로 여운이 느릿느릿 사라지자 넋을 잃고 듣고있던 루안이 내 옷자락을 잡고 흔들

며 소리쳤다. 

「대단해요! 마을에서는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버지 밖에 없었는데! 히잉 - 또 들려주세

요!」 

얼마나 귀엽게 어리광을 부리는지 이런 친동생이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

다. 한차례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후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손가락이 서서히 기타줄을 

튕기기 시작한다. 

풀잎새 따다가 엮었어요... 

예쁜 꽃송이도 넣었구요... 

그대... 노을빛에 머리곱게 물들면 예쁜... 꽃모자 씌워주고파... 

냇가에 고무신 벗어놓고 흐르는 냇물에 발 담그고... 

언제쯤 그애가 징검다리를 건널까 하며 가슴은 두근 거렸죠. 

흐르는 냇물위에 노을이 분홍빛 물들이고... 

어느새 구름사이로 저녁달이 빛나고 있네... 

노을빛 냇물위엔 예쁜 꽃모자 떠가는데... 

어느 작은 산골 소년의 슬픈 사량얘기.... 

<산골 소년의 사랑이야기> 

- YeMin 

내가 가장 좋아하고 편안해하던 노래였다. 내 목에서 기분 좋은 떨림과 함께 흘러나온 노

래는 곁을 흐르는 바람을 타고 노래와 넬피앙의 선율은 흘러흘러 멀리 퍼져나갔다. 은은한 

물결 속에 빠져든 상태로 느리고 편안하게 난 노래를 불렀다. 눈을 서서히 뜨자 몸을 감싸

던 바람은 아쉬운 듯 한차례 날 휘어감고는 사라져버렸다. 

「와아… 대단한데!!」 

「젊은이 노래 정말 멋지군!」 

어느 새 사람이 이렇게 모여든 거지? 내 주위로 언제 모였는지 마을 사람들이 빙 - 둘러싸

고 - 어떤 사람은 누워서 턱을 괴고 있기 까지 했다 -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놀

란 얼굴로 밖으로 나온 마일리 부인과 레나도 있었다. 어리둥절한 난 머리를 긁적이며 루안

을 힐끔 바라보았다. 멍하니 내 얼굴을 바라보던 루안의 눈이 정면으로 마주쳤고 빙그레 미

소를 짓자, 무슨 일인지 그녀는 갑자기 얼굴을 붉히고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못 보던 얼굴인데?」 

「아스틴 왕국에서 온 여행자인데 길을 잃어서 한동안 우리집에서 머물기로 했어요.」하

고 마일리 부인이 자랑스러운 듯 어깨를 으쓱였다. 

「오오… 마법과 음악의 나라에서 왔다니, 노래를 잘 부를만 하구먼!!」 

빵을 만들다가 왔는지 얼굴에 밀가루를 가득 묻힌 중년의 사내는 얼굴에 함박웃음을 가득

히 띄우며 내 어깨를 쳤다. 황소머리만한 손바닥이 주는 충격은 강렬하여 내가 얼굴을 찡그

리자 루안이 대신하여 그를 쏘아보았다. 찔끔한 그는 이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날 일으켜 

어깨동무를 했다. 모여든 사람들에게 손을 치켜들고 크게 소리쳤다. 

「자자… 오늘 밤!! 이 즐거운 음유시인을 맞이하는 파티를 엽시다!!」 

「우와 - 」 

그들의 환호에 나무에서 졸던 새들이 하늘을 메우며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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