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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니?」
입 안의 음식물을 가득히 오물거리며 소녀는 연신 끄덕였다. 〈제법 숙녀처럼 꾸미고 왔는데 여기서 이미지 망가지
는 구나, 루안.〉하고 웃음기 가득한 어조로 중얼거린- 크게 말한다면 루안은 분명히 귀족소녀처럼 얌전히 먹을 것
이 두려웠다 -난 고개를 돌려 주방에서 동전들과 씨름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1 타로운짜리 금화 하나
가 음식점의 전직원의 주방호출이라는 사태를 일으키다니…. 죄책감이 가슴을 메우는 듯 했다. 나의 슬픔에 찬 표정
을 보면서 루안은 불명확한 발음으로 입을 열었다.
「오빠. 안 드세요? 계속 히죽거리기만 하네.」
얼굴이 돌처럼 굳어진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내 가슴에 피를 낸 장본인은 다시 음식으로 관심을 돌렸고,
내 굳어진 표정에 찔끔한 것은 음식점의 마스터였다. 그는 조심스럽게 내 눈치를 살피며 고풍스럽게 기른 콧수염을
몇번 쓰다듬더니, 힘없이 다가와 자신이 지을 수 있는 애처로운 분위기의 표정-고개를 돌려버리고만 싶었다-를 지
었다.
「죄송합니다만… 손님. 저희 가게로서는 도저히 금화를 거슬러드릴 수가 없습니다.」
이 정도라니, 케무사트우는 옷과 라이터에 500만 타로운이라는 금액을 선뜻- 협박이라는 첨가요소가 있었지만 - 내
놓는 것을 보았을 때 얼마나 부자와 서민의 빈부차가 큰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10 타로운을 드릴테니… 이 소녀가 오면 언제든지 원하는 대로 음식을 주십시오.」
「예 - ? 가,감사합니다.」
코가 음식에 닿도록 콧수염 씨는 허리를 숙였다. 거스름돈이라는 악몽에 휩슬리지 않아도 된다는 안심 때문인지 그
는 한결 가벼운 손길로 수염을 쓰다듬었다.
「실례지만, 숙녀분의 성함이?」하고 마스터가 물었다. 그러나 루안은 입에 가득찬 스파게티를 씹느라 정신이 없었
다. 너무나 무관심한 모습에 심술이 일어난 나는 루안의 작은 어깨에 손을 얹고 풍선처럼 부푼 그녀의 볼에 그윽한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
「제 약혼녀인 루안이라고 합니다. 혹시라도 제 약혼녀가 불만스럽지 않게 해주셨으면 합니다.」
달그락! 포크가 떨어지고 놀란 토끼눈으로 쳐다봐도 이미 늦은 일이다. 콧수염 씨가 미소를 지으며 뒤로 물러서자
난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붉게 달아오른 토끼에게 말했다.
「루안, 다 먹었니?」
내 귀여운 약혼녀는 억지로 입에든 음식물을 삼키고 인형처럼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냅킨으로 그녀의 입을 닦
아준 후, 손을 잡고 나갈 기미를 보이자 점원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어디나 돈이라는 무기는 굉장하다는 생각
이 든다.
「그럼 나갈까요, 레이디?」
놀랍게도 루안은 정말 레이디처럼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그렇다고 황당한 표정을 지을 수는 없어 레이디에게 그윽
한 미소를 지어주며 느릿느릿 그녀를 에스코트했다. 꼬마 레이디와 엉터리 기사가 집에 돌아온 것은 해가 산 위에
서 힘겹게 턱걸이를 하며 힘겨운 뻘겋게 달아오른 시각이었다. 마을을 두루두루 살펴보아 종이와 펜만 가져다주면
슥슥하고 지도도 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루안은 집 안에 발을 들여놓고 얼마 안있어 잠이 들었다. 많이 피곤했던
모양이다.
식사를 끝낸 후, 창 밖을 보니 마을에는 완전히 어둠이 내려앉아 거리에는 적막함이 감돌았지만, 은은한 금빛 오오
라가 적막함 속에 한가닥 온기를 수놓고 있었다.
「이만 이 곳을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
루안과 레나가 잠든 것을 확인한 나는 조용한 목소리로 마일리에게 입을 열었다. 놀랄 것이라고 생각했던 예상을
깨고 그녀는 마치 알고 있었던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시즈가 오래 있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알았어요. 하지만 이렇게 일찍 떠나갈 줄은 몰랐군요. 이유를 물어도 될까
요?」
음성이 가늘고 힘이 없어 그녀가 진심으로 아쉬워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바로 말을 했다가는 나 역시, 나약한
모습을 보일 것 같아 두려웠다. 나는 대답없이 금화가 가득히 든 주머니를 식탁에 올려놓았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머니를 열어제낀 마일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제서야 나는 케무사트우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녀는 날 의
혹과 경악, 그리고 알 수 없는 슬픔이 담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당신이 보통 사람이 아닐 것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요. 케무사트우 씨를 골탕먹인다고 하길래 그런가보다 했는
데…. 너무나 예상 밖이에요. 그 계획에 이렇게 떠나가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나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금화는 절 재워주신 보답입니다.」
「그럴 수는 없어요.」하며 그녀는 단호하게 말했고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2일 전의 만남을 떠올
리면서….
「제가 다리에 누워있는 것을 레나가 깨워주지 않았다면 전 지나가던 마차나 말에 깔려 죽었을 겁니다. 그리고 숲
에서 자려할 때, 루안이 절 데려와 주지 않았다면 늑대밥이 되었겠죠. 저 두 소녀는 제게 생명을 구해준 천사나 다
름없습니다. 부인께서 저를 그렇게 높이 평가하신다면 2번의 목숨값이라 생각하시고 받아주십시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받겠어요.」
한숨을 쉬며 그녀는 말했고, 난 그제서야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꼭 지금 떠나야겠나요? 내일 떠나더라도….」
마일리의 말에 나는 냉정할 정도로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루안의 얼굴이라도 보게 된다면 결심이 흐트러질 것 같
아 두려웠다. 아침에 정리해두었던 가방을 들고 일어서자, 부인은 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문 앞에 서있었다.
「마치… 고향에 온 느낌이었어.」
그 날 밤, 이 세계에 와서 한번도 꺼내지 않았던 일기장을 폈다. 이곳의 이름을 쓴다는 사실이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그물처럼 수놓아진 별빛을 바라보다가 생각하니 오히려 어울린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겉표지에 써있던 이름을
지웠다. 대신 그 자리에 〈시즈〉라는 이름을 써넣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기를 썼던 페이지의 다음 장을 넘겼
다. 이제는 보이지 않는 마을, 폴포즈의 하늘을 바라보면서 그리움이 담긴 커다란 필체로 한 페이지를 채워버렸다.
〈또 다른 고향〉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