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화 (12/200)

                                              -12-

보통 영지와 수도와의 차이점은 경비병들의 갑옷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여유

가 있는 영주라면 경비병들에게 보통 링 메일이라는 효율성이 높은 갑옷을 입혔다. 그들에

게 시즈의 눈 앞에서 눈알을 부라리고 있는 왕궁 내부의 경비병들이 입고있는 플레이트 메

일이라는 갑옷은 꿈에서나 볼 수 있는 산물이었다. 

「못들었나? 이 곳은 궁정마법사가 아니면 들어갈 수 없다고!」 

소리를 지르는 사람은 할버드를 가지고 있는 중장보병 타입의 플레이트를 걸치고 있었는

데, 아침에 갑옷을 입을 때 고생을 한 모양인지 그에 비해서 관절을 편하게 고안한 필드 플

레이트 갑옷을 착용한 경비병은 싱글싱글 웃고 있었고, 할버드를 시즈에게 들이대는 자신

의 동료를 달랬다. 

「하일로, 그만하게. 안에 다 들리겠어. 젊은 친구! 자네도 그만 돌아가게. 이 곳은 왕실의 

허가를 받지 않은 마법사가 아니라면 발도 들여놓을 수 없거든. 억울하더라도 지키지 않으

면 우리가 징벌을 받게 된다네.」 

그들은 시즈가 생각하는 평범한 경비대가 아니었다. 왕실 직속의 병사 중, 실력있는 병사

들로만 이루어진 친위대로 평상시에는 왕궁을 수호하고, 전쟁시에는 국왕을 호위하는 궁정

기사단의 정예였다. 

「무슨 일로 이렇게 소란스럽지요?」 

밖의 소리가 거슬렸는지 문에 열리며 서른 살이 약간 넘어보이는 갈색 머리의 여자가 머

리를 빼꼼 내밀었다. 

「아…. 옛! 이 자가 궁정마법원 내로 들어가려고 해서….」 

마법사와 기사의 지위체계는 확연히 달라서 작위가 아닌 계급으로 서로를 대하는 일은 매

우 드물었다. 마법사는 어느 나라에서나 병사나 기사에 비해 그 수가 턱없이 적었으므로, 

견습이라도 상당히 존중을 받았다. 게다가 서민이라고 해도 재능만 있으면 인정받아 귀족

으로 계급상승을 노릴 수 있었기에 빵집 아들, 과일가게 딸, 할 것 없이 커서 뭘 될래? 하고 

물으면 마법사라고 대답하는 것이 부기지수였다. 그러나 그 재능이란 것이 가진 사람이 많

다면 마법사가 희귀하겠는가? 

여마법사는 그의 말에 시즈를 아래 위로 훑어보더니 궁색한 옷차림에 눈살을 찌푸렸다. 

양 허리에 손을 얹고 오만스러운 자세로 시즈를 내려보았다. 

「마법원에 무슨 볼 일이 있지?」 

금실이 수놓아진 녹색 법복에 검푸른 로브를 걸치고 있었는데 살랑이는 밝은 갈색 머리칼

이 잘 어울리는 그녀를 보며 〈이게 바로 마법사구나.〉하고 신기한 동물을 구경하는 표정

을 지으며 말했다. 

「마법이란 학문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하고 환하게 웃는 그를 여자는 어이없는 눈빛

으로 바라보았다. 그녀는 목소리가 우렁차던 경비병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끌어내 주시겠어요?」 

「들었지?」하며 어깨를 으쓱한 하일로가 붙잡으려는 손을 피하며 시즈가 소리쳤다. 

「왜 이러는 겁니까?」 

「왜 이러는 건가!」 

뒷걸음질치던 시즈는 등 뒤에서 비치는 그림자를 보고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리 뜯

어봐도 괴팍해보이는 노인이 미간에 주름을 가득히 잡으며 노려보자, 여마법사는 찔끔했

다. 눈썹과 수염이 모두 백색을 띈 노인은 꼭 맞춘 것처럼 어울리는 흰색의 법복과 로브를 

걸치고 있었는데 한 눈에도 그가 마법원의 상당한 지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

다. 평소에 인상대로 까다로웠던 모양인지 여마법사는 감히 노마법사의 얼굴을 바라보지도 

못하고 자초지정을 이야기했다. 그 역시 기가 막힌 얼굴로 시즈를 바라보았지만, 그 시선에

는 흥미가 포함되어 있었다. 

「마법이라는 학문에 대해서 알고 싶다고? 그건 무슨 뜻이냐?」 

시즈는 그 또한 자신을 내쫓을까봐 걱정하던 차에 자신의 생각을 들어보려는 의향을 비추

자, 벌떡 일어섰다. 

「마법의 구현이라는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다만 제가 모르는 학문, 마법에 대해서 알

고 싶습니다.」 

「학문으로서의 마법….」 

시즈의 말을 되새겨보던 노마법사, 헤트라임크는 〈누군가도 이런 말을 했었지.〉라고 중

얼거리며 어떤 의지로 물든 눈빛을 발하는 한 청년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의 등 뒤로 자

신의 목숨보다 소중했던 소년이 비쳐 보였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자애로운 시선을 하고, 

중얼거렸다. 

「에밀키드 세이서스…. 나의 아들아….」 

「예?」 

「아,아니다! 너의 이름이 뭐지?」 

갑자기 부드러워진 헤트라임크의 어조에 시즈는 의아스러웠지만 이내 미소를 지으며 대

답했다. 

「시즈. 시즈라고 합니다.」 

「평민인가? 의외로군. 뭐 상관없지. 메드린, 시즈를 마법서적을 볼 수 있게 관내 도서관

으로 데려다 주게. 내가 허락했다고 그래. 후우…. 난 그럼 와인이라도 한 잔 하고 와야겠

군.」 

온화한 미소를 지어주던 아들이 다시 한번 겹쳐보이자, 노인은 슬픔에 잠긴 눈을 천천히 

돌리며 말했다. 등을 돌린 채 왔던 길을 돌아가다가 갑자기 돌아서며 시즈를 향해 말했다. 

「시즈, 자네. 책을 보고나면 한번 날 찾아오게나. 내 이름은 〈헤트라임크 세이서스〉라

고 하지. 마법원에서는 대부분 알고 있을 게야.」 

대답 대신 시즈는 고개를 깊숙히 숙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메드린은 어안이 벙벙한 표

정을 짓고는 말없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역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는 두 경

비병 사이를 지나쳐 시즈는 황급히 메드린을 쫓아 마법원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