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화 (1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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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란이라고 불리던 작은 마을에는 저녁 때면 모락모락하던 굴뚝의 흰 연기 대신에 붉은 

혈향만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노을빛에 물든 것인지 아니면 원래 붉은 것인지 모를 액체가 

비라도 내린 것처럼 마을 거리에 흘렀다. 

「흐으… 흐으악! 시즈, 살려주게. 제발…!」 

한 남자가 마치 목쉰 여자아이처럼 갸얇프게 울부짖었다. 그에게 다가오는 무리들, 도망

치려는 남자의 다리를 잡아찢으며 기쁨에 절은 입을 이죽거린다. 이리, 또는 늑대라고 불리

는 그것들은 마을을 인간 대신 채우고 있을 정도로 많았다. 80 마리는 족히 넘어보이는 녀

석들 중 일부는 몸부림치는 남자의 몸에 입을 처박고 싱싱한 먹이를 음미했다. 

「별 것 아니다. 죽는 것은….」하고 나는 중얼거렸지만 몸은 쉴 새없이 떨렸다. 뛰어내려 

사람들을 구하는 것은 커녕이고, 나무에서 떨어질 것이 두려워 굵은 나뭇가지를 꼭 붙들고

만 있었다. 내가 있는 위를 바라보는 늑대들이 몰려들었다. 녀석들은 나무에 죽죽 발톱자국

이 새겼지만 올라오지는 못한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귓가에 쉴 새 없이 비명소리가 들려왔

지만 입에서는 안도의 한숨이 새어나왔다. 

「크르르르….」 

비웃을 테면 비웃어라. 죽는 것은 별 것 아니지만 죽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마음 속으로 

외쳐대면서도 내 눈에서는 눈물이 끊임없이 흘렀다. 녀석들은 마치 훈련받은 군인, 아니 그 

이상의 전문적인 인간 사냥꾼같았다. 본능적으로 약한 여성과 아이들만 골라 먼저 습격한 

놈들은 떼거지로 몰려 남자들에게 달려들었다. 필사적으로 대항했지만 팔뚝이 긴 핏줄기와 

함께 부어올랐을 뿐이었다. 놈들을 이길 힘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내가 할 일은 도망치는 

것 뿐이었다. 녀석들의 이빨이 보이지 않는 곳만을 찾았다. 옆에서 사람이 늑대들에게 덮침

을 당하던 뜯겨먹히던, 내가 중요했다. 방금 전의 그 남자는 2주일 전, 그다지 높지 않은 절

벽에서 떨어진 나의 부러진 다리를 치료해주고 함께 있도록 해주었던 사람이었다. 은혜, 갚

지 못했다. 그는 죽어가면서 원망과 저주를 담은 시선으로 바라보았었다. 

「헉! 허억…. 헉!」 

몇 마리째인가. 수십마리를 밴 것 같은 피로가 몰려들었지만 내 눈에 들어오는 녀석들의 

시체는 고작 4마리에 지나지 않는다. 쫓기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토록 끈질길 줄이야. 

그나마 다행인 것은 10 마리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것이랄까. 한 놈이 다쳤던 발목을 물었다. 

마치 다리의 은인을 배신한 댓가를 지불하라고 소리치는 것 같다. 다리가 꺽인다. 등 뒤에

서 올라탄 녀석은 오른쪽 어깨를 물어버린 듯 난 팔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끼며 예도를 떨

어뜨렸다. 이리떼들은 내 몸에 코를 처박고 싱싱한 먹이감에 감탄하면서 저 끔찍한 이빨로 

조각조각 날 뜯어먹을 것이다. 닥치도 않은 이빨일테니, 지금껏 먹었던 인간의 찌꺼기가 상

당하겠군. 아마도 여기서 살아난다고 해도 광견병에 걸려서 죽을지 모른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를 구해보는 건데…. 달려들어보는 것인데…. 너무 늦었나?」하며 

나는 왼손으로 예도를 잡았다. 오른쪽 어깨를 질겅질겅 씹어대는 녀석이 맘에 들지 않았다. 

「내 어깨뼈는 개껌이 아니야!」 「쾍! 커커억!」 

내 육체의 환상적인 맛에 취해있었던 것인지 피하지 못하고 턱이 꽤뚫린다. 그렇지, 그들

을 버려가면서까지 살았잖아. 지금 이렇게 죽으면 그들은 얼마나 억울하겠어. 

「쿠엑!」 

그러길래 과하면 독이라니까. 나무의 연두빛 잎새 사이로 푸르른 하늘이 엿보인다. 그래 

날아볼까? 좋아. 날아보자고…. 

「비천세….」하고 중얼거리며 새의 형상으로 검을 치켜들자. 앞에 달려드는 놈을 반으로 

가르고 옆으로 달려드는 놈의 양다리를 날려버리자. 미련하게도 나는 땅에 머리를 처박아

가고 있었다. 점점 희미해지는 바람의 소리에 반가운 동족의 음성이 들리는 것은 착각일

까? 

「아하하하…. 자네, 큰일날 뻔 했어. 내가 달려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될 뻔했는가.」 

「무슨 소리야! 내가 없었으면 소독도 못하고 열병으로 죽었을 거야. 소독이 뭐야, 아마 지

혈도 못했을 걸.」 

「뭐야!? 이 허약한 녀석이!」 

「내 말이 틀렸냐? 이 무식한 놈아!」 

「죄송합니다. 이곳이 어디입니까? 후음! 콜록!콜록!」 

그제서야 자신들이 환자를 보살피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두 청년은 머쓱한 표정으로 싸움

을 멈추었고, 그 중 덩치가 고릴라만큼이나 우람한 남자가 쾌활한 어조로 대답했다. 

「여긴 심벌튼 영지라네. 난 영지의 경비대장인 노리스라고 하고, 여기 이 친구는 경비대 

전속 의사인….」 

「츠바틴이라고 하네.」하고 소개를 하며 그들은 미소를 지었다. 뒤늦게 자신이 살아났다

는 것을 안 나는 세상이 떠나갈만큼 기뻤다. 그러나 웃고 싶었지만 웃음이 나오지를 않았

다. 억지로 힘겹게 미소를 지은 그는 고개를 꾸벅하고 노리스와 츠바틴에게 감사했다. 

「우린 자네의 이야기를 듣고 싶네. 이틀 전에 소문을 들으니, 몬티디런 숲의 멜란 마을이 

완전히 쑥밭이 되었다지?」 

「전 시즈라고 합니다, 쿨럭! 저도 거기서 오는 길입니다.」 

내가 한 마을의 참사를 말하기 시작하고 얼마되지 않아서 듣고 있던 두 사람의 얼굴은 흙

빛이 되어갔다. 

「100 마리가량 되었다고? 그게 정말인가? 늑대가 그렇게 대규모로 움직인다는 것은 들어

본 적이 없어.」 

「아니, 있네. 늑대라고 하기는 힘들지만, 분명 늑대는 늑대지.」 

노리스의 말에 츠바틴이 고개를 지었다. 츠바틴은 눈을 빛내며 내게 물었다. 

「잘 생각해보게. 그들의 털색은 무슨 색이었나?」 

「붉은 색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노을빛에 비친 것인줄 알았지만, 분명히 피처럼 붉은 늑대

였습니다.」 

「알겠나?」하고 츠바틴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노리스를 바라보았다. 노리스는 거대한 

몸을 일으키며 침체된 목소리로 말했다. 

「시즈의 말대로 〈티플〉이라면, 성의 기사들에게 알려야 겠군.」 

그의 행동은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성주에게 시즈의 이야기를 알림과 동시에 마을 사람들

을 성 안으로 불러들였으며, 얼마 후 기사단이 출정했다. 몇일 후 난 침대에서 잠결에 티플

이라는 늑대의 변종을 한 마디로 남김없이 심벌튼 기사단이 말살시켜버렸다는 얘기를 얼핏 

들은 것 같다. 

「시즈. 시즈! 일어나라, 시즈 세이서스!!」 

누가 날 흔드는 것 같다. 츠바틴인가? 눈꺼플 사이로 왠 노인이 보인다. 땀을 흘리며 내 

몸을 열심히 흔들어대는 노인. 아…. 꿈이었군. 나는 양아버지 헤트라임크의 집에서 하룻밤

을 묵고 있었다. 내가 죽을까봐 굉장히 걱정하셨던 모양이군. 나는 밝게 웃으며 말했다. 

「아버지, 괜찮습니다. 악몽을 꾼 것 뿐입니다.」 

그 날 이후, 다시 웃게 되는 것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가. 나는 또, 불안해하는 

아버지를 위해 악몽을 다시 이야기하는 수고를 더해야 했다. 그는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

며 미소를 지었다. 

「일기로 쓴다면 한 편의 이야기가 되겠구나. 혹시 어쩌면 그 일 때문에 너의 살에 대한 의

지력이 더 강해진 것인지도 모르지.」 

그 말에 난 쓴웃음을 지었다. 한 성직자와 만나던 날밤 숲 속에서 잃어버린 갈색의 일기장 

때문이었다. 3년이 넘도록 쓰던 것이었는데, 너무나 아쉬웠다.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다시 한번 그런 일이 제게 일어난다면….」 

그 때도 나는 살아남을 겁니다. 죽음에서 내가 내버렸던 사람들, 그 생명의 시간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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