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화 (16/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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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만한 귀족들도 사용하기 힘들다는 청광석이 중앙에 굳건히 박혀있는 홀의 중앙, 7인의 

사람들이 대리석의 원탁에 둘러앉아 있었다. 그들의 눈은 끊임없이 탐구하는 지성으로 빛

나며 원탁의 중앙에 놓여있는 한 권의 책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은 참담하

기 그지 없었다. 머리를 감싸쥐고 고민하는 사람, 푸른 빛이 어려있는 애꿎은 청광석을 올

려다보며 침음성을 토하는 사람, 이 시대 최고의 지식인들이라고 할 수 있는 그들 모두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갈색 표지의 서적 한 권이 휘젖어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아…. 한숨들 좀 그만 뿜어대고 어서 고견들을 말해보시오.」 

눈썹과 수염, 머리칼할 것 없이 새하얗게 흰 노인이 일어서며 가늘지만 힘있는 어조로 말

하며 원탁을 휘 - 둘러보았다. 그러자 머리를 감싸쥐고 있던 장년의 남자은 고개를 들지도 

않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로우 베토리오 원장님, 저희 한숨이 무슨 드래곤의 브레스입니까? 한숨을 내뿜게….」 

「드래곤의 브레스라면 쓸모라도 있겠네, 그려. 먼지 밖에 안날리는 것과 비교한 것을 고

맙게라도 여기게나. 그런 감사의 표시로, 피브드닌 자네가 먼저 생각을 말해보게.」 

피브드닌은 괜히 나섰다고 생각하며 절망적인 얼굴로 힘겹게 일어섰다. 그는 잠시 〈골 

썩히는 책〉을 노려보더니, 힘없는 어조로 입을 열었다. 

「아스틴네글로드 원탁의 7인 중 피브드닌 파우트시카가 먼저 부족한 생각을 말하겠습니

다. 우리의 머리를 좀먹고 있는 저 갈색의 책에 쓰여진 내용은 분명 소설입니다.」 

「이메나 바르노가 고명하신 파우트시카님께 반박하겠습니다. 소설이라면 책에 쓰여진 

〈나는 극한과 무한급수는 정말 질색이다. 연속과 미분의 관계도 내 머리 속을 조각조각내

서 우유에 타먹는 듯한 느낌만 든다. 이 빌어먹을 것을 왜 고등학생에게 가르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솔직히 한국의 고교생 수준은 세계적이지 않은가. 그 세계적인 수준이 대학에서 

놀고 먹으면서 깡그리 무너지니까 문제지만 말이다.〉 바로 이 부분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

하고 싶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미분, 극한은 마법사와 수학자가 아닌 이상에야 그런 분야가 

있다는 것도 잘 알지 못하는 고난도의 학문입니다. 여기에 나타난 작가의 나이는 분명 18

살, 당연한 것처럼 미분과 연속성의 관계를 읊어대고 있습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일기입니

다.」하고 20대 후반쯤 되어보이는 여인이 준비해온 보고서를 들쳐보면서 말하자, 이번에

는 로우베토리오처럼 나이가 든 대머리의 노인이 일어서며 입을 열었다. 

「나, 모프크 바르노는 딸의 생각과는 다르오. 작가의 나이가 18살에 미분과 연속성의 관

계를 읊어댄다는 것 자체가 인정할 수 없는 일이오. 본인은 상당한 연륜과 실력을 가진 학

자가 일기형식으로 소설을 쓴 것이 아닌가 생각되오.」 

「좋아요, 소설이라고 쳐보죠. 하지만 여기 등장하는 비행기, 오토바이 등의 있을 수 없는 

산물들에 대한 표현은 조금도 어색하지 않아요. 게다가 가끔씩 튀어나오는 미지의 학문, 특

히 연금술이라고 생각되는 〈화학〉은 현재 우리의 깊이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경지에

요.」 

「그래서 이메나님은 그것이 다른 세계의 산물이라고 생각하세요?」하고 금발의 엘프가 

일어섰다. 그녀는 왕국의 정치에 참여하고 있는 유일한 엘프였다. 종족에 맞는 화려한 아름

다움을 간직한 그녀의 질문에 이메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엘프 여인은 녹색의 에머랄드 빛

깔을 띤 눈에 힘을 주며 말했다. 

「분명 저 갈색의 책에 담겨진 내용은 이메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엄청난 것입니다. 저, 

원탁의 한 엘프, 유레민트 하미렌은 이렇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저 엄청난 책을 쓴 지식인

이, 다른 세계가 아닌 이 세일피어론아드에 존재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그녀의 말에 곳곳에서 침음성이 터져나왔다. 유레민트는 그들을 한 번 훑어본 후 다시 입

을 열었다. 

「물론 그 지식인이 존재한다면 우리의 존재는 그 앞에서 달빛 아래 반딧불의 존재가 되겠

지요. 하지만, 만약 이메나님의 말씀처럼 다른 세계의 책이라면…. 전 생각만 해도 끔찍합

니다. 18살에 그런 엄청난 지식을…. 책에는 분명 고등학교 라는 교육기관 위에 대학이라는 

상위교육기관이 더 존재하는 것으로 나와있습니다. 저, 이메나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습니

다. 그런 세계가 존재한는 것보다는 세일피어론아드에 초월적인 현자가 숨어있다고 보는 

것이 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대 마법왕국의 산물이라고 보는 것은 어떻습니까?」하고 검은 후드가 달린 로브를 걸

친 장년의 사내가 말했다. 그러자 반대편에서 작은 키의 드워프가 일어서서 말했다. 

「원탁의 한 드워프, 토루반 로쿠스가 말합니다. 그 것은 확실히 무리가 있습니다. 천년 전

의 마법제국에 대한 자료가 약간 남아있긴 하지만, 이 책의 내용과 부합되는 것은 없습니

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종이의 재질이 틀립니다. 이런 양질의 종이는… 세일피어론아드의 

역사상 처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종이를 연금술사들에게 맡겨 시간에 따른 종이 제

질의 변화 실험을 해본 결과, 서적이 만들어진지 오래 되었다고 해도 7년 이상을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의 말은 홀을 다시 침묵으로 끌어들였다. 어느 누구도 확실하게 미지의 서적에 대해 결

론을 내릴 수가 없었다. 로우 베토리오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자 모두의 시선이 노인의 

흰 눈썹 아래 빛나는 눈동자에 집중되었다. 

「우선 이 책을 쓴 사람을 찾아내는 것이 우선인 듯 하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확실한 것

은 그 작가는 이 시대를 바꿔놓은 대학자라는 사실과 소설이라고 했을 때 역사상 전례가 없

는 위대한 글이라는 겁니다. 이것이 엘시크의 수도 근처에서 발견되었다고 했지요? 이런 

대학자라면 엘시크의 왕궁에서 알고 있지 않을까 싶소. 작가의 이름도 특이하고….」 

노인의 웃음 띤 마지막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미소를 지었다. 로우는 대륙을 뒤흔들어놓

게 될 갈색의 책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오늘부터 이 책의 이름을 마지막 페이지의 글대로 〈또다른 고향〉으로 부르도록 하지

요. 난 즉시 〈지식의 법원〉의 사람들에게 사본을 만들도록 하겠소. 오랜 여행이 될지도 

모르니, 우리 중 가장 젊은 피브드닌과 엘프인 유레민트님, 그리고 드워프인 토루반님께서 

수고를 해주셔야 겠소이다.」 

이름 불리워진 3인의 지식인이 로우에게 고개를 숙였다. 다시 고개를 든 피브드닌은 머리

를 긁적이며 말했다. 

「저기, 원장님. 〈또다른 고향〉을 가져온 상인이 댓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만….」 

「우리 중 흥정을 가장 잘하는 사람이 누구요?」하고 로우가 흰 수염을 쓰다듬으며 퉁명

스럽게 말했다. 나머지 6인이 서로를 바라보더니, 씨익 웃으며 합창하듯 대답했다. 

「로우 베토리오 원장님이십니다.」 

「교활한 놈들….」하고 중얼거리며 로우는 쓰다듬던 수염을 뜯어버릴 듯이 움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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