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화 (18/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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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정 마법원장, 로티븐의 출국금지 명령으로 시즈는 세이탄의 저택에서 어느 때와 다름없

는 평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는 지고언어- 고문 -을 연구하지 못하자, 다른 과제를 

찾았는데 그것은 바로 세일피어론아드 각 국의 언어와 문자를 익히는 일이었다. 

「음…. 다른 곳은 모르겠지만, 실베니아의 언어와 문자는 정말 익히기 어려워.」하고 시

즈는 뚱한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그럴 것이 대부분의 나라는 엘시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문

자와 언어를 가지고 있었지만, 실베니아만큼은 완전히 달랐던 것이다. 

「마치 실베니아만 섬나라였다가 판 이동설처럼 대륙에 달라붙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지만 실베니아는 사막국가이고, 사막의 주위로는 큰 산도 없었다. 있다면 론도루 산 정

도였지만, 판끼리 붙이쳐 만들어졌다기에는 너무 소규모였다. 

「시즈 형, 아까부터 이상해요.」 

책을 정리하던 13살 소년, 레소니는 시즈가 좁쌀을 씹듯이 입을 연신 오물거리며 중얼거

리는 것이 걱정이 되었던 모양인지 조심스럽게 말했다. 소년은 얼마 전부터 시즈의 저택에

서 청소 및 주방일을 하는 아르바이트생이었다. 소녀들이 보내는 도시락도 한계가 있었고, 

무엇보다도 시즈는 책을 보고 제자리에 돌려놓는 법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서재는 한마디

도 난장판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즈도 남자인지라 여자와 단둘이 하루를 보내는 것은 위

험(?)했고, 때문에 집안일 잘하는 소년을 썼다. 부모를 여의고 레소니는 동생들과 살았기 

때문에 집안일과 애보기에는 가히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실력가였다. 그런 가운데서도 성

격도 착하고, 외모 또한 출중한 미소년인 레소니는 세이탄 사람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이웃들은 그 가족들을 돌아가며 돌보아 주었지만 언제까지나 그렇게 지낼 수는 없

었다. 그렇다고 거금을 그냥 줘버리기엔, 레소니를 비롯한 그 작은 가족들이 일하는 가치를 

알 수 없게 될까봐 걱정이 되었던 시즈는 자신의 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 수 있도록 

방 하나를 내주었다. 

「아…. 머리가 좀 아파서 말이야.」하고 시즈는 관자놀이를 양 엄지로 꾹꾹 눌러댔다. 작

은 손을 들어서 그의 이마를 짚어본 고개를 갸웃한 레소니는 시즈를 억지로 책상에서 일으

켜 거실로 내쫓으며 외쳤다. 

「하루종일 책만 보니까 그렇죠. 좀 쉬어요!」 

「자,잠깐! 레소니….」 「콰앙!」 

소리가 요란하다. 필요이상으로 거칠게 문을 닫은 소년은 마치 시즈가 서재로 들어올까봐 

두려워하는 사람같았다. 소년의 눈이 책상과 서재바닥을 향하는 순간, 그의 입은 그 두려움

의 정체를 드러냈다. 

「도대체 어느 정도 늘어놔야지. 하루종일 치워도 끝이 없다니까…. 아침이나 저녁으로 책

을 읽는 시간을 제한하도록 해야겠어.」하며 누가 집주인인지 모를 소리를 늘어놓으며 푹

푹 땅이 꺼질 듯한 한숨을 내쉬는 그였다. 집주인의 독서는 꼭 한평생 책도 못읽고 죽은 귀

신처럼 집착적이고 속사포같은 속도를 자랑했기 때문에 레소니가 잠시 나갔다가 돌아오면 

다시 책상 주위는 시즈가 읽고 대충 쌓아둔 책들로 가득했던 것이다. 그가 책들과 머리싸움

이 아닌 몸싸움을 하고 있을 때, 거실의 시즈 또한 힘겨워하고 있었다. 

집주인이 서재에서 거실로 내몰리자 어느 새 달려든 레소니의 어린 가족들은 팔,다리에 

붙어버렸고 시즈는 애들를 가진 몸을 힘겹게 움직이며, 찐득이들을 떼보고자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이다. 

「무거워….」 

「곧 내려갈게. 과자있는 곳을 알려주다면!」하며 어깨에 달라붙어 있는 7살의 소녀는 몸

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5명의 꼬마악마들의 대장격으로 시즈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안돼요. 너희들한테 과자를 주면 레소니에게 잔소리를 듣게 되거든….」 

말을 그렇게 했지만 청년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소년과 소녀들은 목표달성이 가까워진 

것을 예감하며 더욱더 찐득-하게 달라붙었다. 역시 삶에 대한 투쟁심이 극도로 발달한 아

이들이야. 시즈는 아이들에 대한 칭찬인지, 무너지고 마는 자신에 대한 위로인지 알 수 없

는 생각을 하면서 말했다. 힘이 부쳐 

「선반 위에 있어요.」 

꼬마악마 한 마리가 떨어져나가더니, 의자를 딛고 선반 위를 뒤지고는 외친다. 

「목표 발견.」 

「좋아…. 시즈 오빠. 이제 사탕이 있는 곳만 말하면 오빠는 자유의 몸이야.」하며 대장악

마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시즈도 미소를 짓고 싶었지만, 얼굴은 전혀 말을 듣지 않고 어

색하게 올라간 입꼬리가 경련을 일으킬 뿐이었다. 결국 사탕이 있는 곳까지 모두 알아낸 악

마군단은 히히덕거리며 사탕과 과자바구니를 들고 저희네 방으로 몰려 들어갔다. 집주인은 

아르바이트생에게 들을 잔소리의 속사포를 떠올리며 절망에 젖어 거실바닥에 널부러졌다. 

「시,시즈…? 무슨 일이야?」 

굵직한 목소리가 다급하게 들려왔다. 누가 왔나보군. 시즈는 잔소리을 들을 절망감에 눈

에 고인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들었다. 

「헤모 사제님이시군요. 오늘도 당했거든요.」하며 시즈는 꼬마들이 매달려 반쯤 흘러내

린 셔츠와 바지를 추스렸다. 그 모습에 장신의 헤모 사제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넋나간 시

선으로 청년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누가!?」하고 소리치는 그의 눈에 막 서재를 청소하고 기분좋은 콧코래를 부르

며 걸어나오는 레소니가 들어왔다. 명주실처럼 가는 금발이 가지런히 흘러내린 귀여운 얼

굴, 도톰하게 부푼 입술, 갸냛픈 목덜미와 흰 피부를 유심히 관찰하던 헤모는 시즈의 어깨

를 다독거리며 말했다. 

「좋겠네 그려. 나도 사제만 아니면 콱!(?)」하고 시즈의 새파랗게 질려버린 얼굴을 보지 

못하고 말을 이었다. 

「아예 이 참에 가족으로 끌어드리는 것이 어떤가?」 

「두,두통이….」 

「어휴…. 들어가서 쉬라고 했잖아요. 그러길래 어지간히 하라니까….」하며 레소니는 짜

증과 걱정섟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왠일인지 거친 외모에 어울리지 않는 귀여운 홍조

를 띈 헤모에게 인사를 건넸다. 

「헤모 사제님 오셨군요.」 

「흠흠…. 그래.」 

「무슨 일로…?」 

「아! 잊고 있었군. 시즈, 왕성에서 부르신다. 어서 가자.」하고 헤모는 시즈의 축 늘어진 

몸을 번쩍 일으켰다. 반쯤 감긴 눈으로 시즈가 물었다. 

「왕성이라니? 누가 부르시는데요?」 

「헤트라임크 님께서. 어서 가자.」 

헤모는 얼마 전의 사소한 시즈의 장난으로 신성한 성투사에서 광투사로 불리워지게 되었

던 불쌍한 사제였다. 그는 다시 만난 시즈에게 원수를 갚아볼 생각으로 달려들지만, 불행히

도 시즈에게는 헤트라임크라는 희대의 대마법사가 보호자로 등극한 상태였다. 결국 전신화

상으로 동료사제들의 손길을 다시 한번 받아야 했고, 그 후 시즈의 진심어린 사과과 헤트라

임크의 불꽃어린 협박으로 눈물어린 용서를 해주어야 했던 헤모는 세이서스 부자의 연락병

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아버지께서요? 무슨 일입니까?」 

「나도 잘 몰라.」 

「급하신 것 같군요. 알겠습니다. 레소니, 집 좀 부탁해요.」 

레소니가 고개를 끄덕이자, 헤모와 시즈는 밖에서 준비하고 있던 마차에 올랐다. 세이서

스의 문장이 그려진 마차를 직접 보낸 것을 보니 어지간히 급한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에 시

즈는 마부를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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