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화 (19/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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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작 각하! 도련님 오셨습니다! 사제님께서는 이 쪽으로 오시죠.」 

「아, 예.」 

해골같이 비쩍 마른 집사가 겉보기와는 다른 우렁찬 음성으로 소리치자, 기다렸다는 표정

을 지으며 헤트라임크가 방에서 걸어나왔다. 마법사의 로브가 아닌 평상복을 입은 헤트라

임크가 반가운 얼굴을 하는 것도 잠시, 그는 매우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시즈를 자신의 방

으로 잡아 끌었다. 헤모는 무슨 일인지 궁금했지만, 기색을 내비치지 않고 집사를 따랐다. 

「그 동안, 잘 지냈느냐?」 

「예, 그런데 무슨 일로 부르셨는지….」 

「이런! 급하기도 하구나.」 

「용서하십시오. 아버지께서 다급하신 기색을 보이시길래….」하고 시즈가 고개를 숙이

자, 헤트라임크는 고개를 저었다. 아들을 의자에 앉게 한 후, 창 밖을 내다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어제 아스틴에서 3 명의 학자가 왕성에 도착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들이 너를 찾

고 있는 것 같다.」하며 그가 시즈의 얼굴은 힐끗 바라보았다. 청년은 약간 생각하는 것 같

았지만 묵묵히 듣고만 있을 뿐이었다. 당시의 일을 회상하는 듯 긴장스런 한숨을 내쉰 헤트

라임크는 처음의 만남부터 알 수 없는 신비감을 나타냈던 아들을 바라보았다. 

「놀라운 것은 그들이 국가 최고의 문학가들의 모임인 아스틴네글로드, 그 중에서도 최고

위원 7인 중 3인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처음부터 네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

었다. 망설이지 말고 말해보거라. 그들에 대해서 짐작가는 일이 있느냐?」 

「제가 세일피어론아드에서 발을 딛어본 국가는 엘시크 밖에 없고, 아스틴 사람과는 대화

도 한번 나눠본 적 없습니다. 저 역시, 그들이 왜 저를 찾는 것인지 짐작할 수가 없습니다. 

확실히 저를 찾는 것입니까, 아버지?」 

헤트라임크는 고민에 쌓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장본인이 모른다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

가. 

「틀림없을 것이다. 그들은 분명히 〈마땅찮은 시즈〉라고 찾는 이를 지칭했다. 그런 이름

을 갖은 사람은 〈시즈 세이서스〉 밖에는 없다. 너에 대해서 왕성에서도 몇몇 아는 사람이 

있으니, 분명히 불려가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미리 불러서 물어본 것이다.」 

「그리 큰 일이 아닐 것입니다. 심려마십시오.」 

시즈는 부모를 안심시키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지만, 헤트라임크의 마음 속은 그

다지 간단하지 않았다. 1명이라도 방문하면 나라의 학자들이 난리법석을 피운다는 대학자

들이 3인이나 엘시크의 왕성을 찾은 것이다. 그런 국가적인 귀빈들은 〈시즈〉라고 하는 

사람에 대해서 절대적인 경의를 조심스럽게 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갓 20세를 넘어

선 청년에게 그런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 헤트라임크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어놓고 있었

다. 

〈시즈는 현자라고 불릴만큼의 지식과 대마법사라고 지칭될 정도의 마법을 지니고 있다. 

누구라고 해도 이 아이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쉽지 않으리라.〉하고 스스로 마음을 놓고자 

하면서도 혹시나 자신의 사랑스런 아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모든 것을 버려서라도 보호

해주리라는 생각을 굳게 지니는 시즈의 아버지였다. 

「그래…. 내가 너무 걱정만 한 것 같구나. 요즘은 무엇을 공부하고 있지?」 

「대륙 국가들의 언어와 문자를 익히고 있습니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않는 구나.」하고 질책하는 어조로 말했지만 시즈를 자랑스러운 

시선이었다. 빙긋 웃어보인 시즈는 헤트라임크의 곁으로 걸어와 창 밖으로 높이 솟은 왕성

의 첨탑을 향해 시선을 맞추고는 말했다. 

「아버지, 재미있지 않습니까? 제가 아스틴으로 떠나는 것을 금지 당하자, 한 달도 채 되

기 전에 아스틴이 저에게 오고 있습니다. 저는 솔직히 두렵습니다. 하나의 세상이 자신의 

생각대로 너무나 쉽게 엮여져 간다는 것이….」 

그 말에 헤트라임크는 빙긋 웃고는 집사를 불렀다. 

「나는 내 아들이 대단한 지식과 마법, 그리고 앞으로의 예측력과 준비성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하지만 아쉽게도 꼭 필요한 준비를 너는 놓치고는 하더구나. 케츠타!!」 

「예! 각하, 부르셨습니까?」 

「아버지, 케츠타는 무엇 때문에….」 어리둥절하면서도 호기심어린 시즈은 이어진 헤트

라임크의 말에 얼굴을 굳혀야 했다. 

「넌, 왕실예법에 대해서는 왕녀님의 고양이만큼도 모르지 않느냐. 소환될 때까지 약간의 

여유가 있을 것이다. 케츠타, 명문귀족가 집사의 명예를 걸고 시즈에게 완벽한 왕실예법을 

가르치도록!」 

헤트라임크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시즈 세이서스는 2일 후 왕성으로 소환되었다. 헤트

라임크와 함께 입성한 그는 국왕 로타우노 앞에서 2일간 뼈빠지게 연습한 자세와 동작으로 

누구나 감탄할만큼 고풍스럽게 예를 올렸다. 국왕의 양 옆에는 긴 테이블이 하나씩 놓여있

었고, 두 테이블의 의자는 서로를 바라볼 수 있도록 배치되어 있었는데, 오른쪽에는 아스틴

의 귀빈을 비롯한 엘시크의 고위귀족들이 앉아있었다. 모두 비바랜 것같은 푸른 정장을 갖

춰입은 부자(父子)가 예를 올리자, 로타우노가 손을 들어 말했다. 

「어서 오십시오. 궁정마법사 세이서스 후작, 그리고 시즈 세이서스 후작공자. 모두 일어

서십시오. 음… 그대가 요즘 소문이 끊이지 않았던 세이서스 후작의 양자로군.」 

「그렇습니다. 영명하신 국왕 폐하를 뵈어 영광입니다.」 

「마땅찮다는 이름과는 다르게 매우 절도있는 청년이로군. 과연 명문인 세이서스가의 공

자에 손색이 없어.」하며 왕은 유심히 시즈를 살피더니, 감탄을 늘어놓았다. 그는 한 국가

의 지배자다운 위엄있는 시선으로 옆에 앉아서 시즈와 헤트라임크를 주시하던 3인에게 시

선을 돌렸다. 

「아스틴네글로드, 원탁의 여러분, 여러분께서 찾으시는 사람이 맞습니까?」 

「그,글쎄요. 두 분 중 누가 〈마땅찮은 시즈〉이십니까?」 

3인 중 장년의 인간인 피브드닌은 떨리는 음성으로 되물었다. 아스틴의 귀빈들은 모두 불

신의 찬 얼굴에 흔들리는 시선으로 청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가 시즈 세이서스 입니다.」 

「그럴리가!!」 

무미건조한 청년의 말에 고명한 학자, 피브드닌은 창백한 고함을 질렀다. 놀란 중인들을 

무시하고 피브드닌은 눈을 부릅뜬 채 말을 이었다. 

「믿을 수 없다! 너 같은 어린 녀석이 아닐 것이다!」 

「무례하군.」하고 헤크라임크가 시즈의 앞으로 나섰다. 그가 손을 젓자, 피브드닌의 잔에 

담긴 차가운 물이 솟아올라 피브드닌을 덮쳤다. 촤악 - 하는 소리와 함께 홀 안이 정적으로 

가득찼다. 엘프 유레민트는 순간,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너무도 크게 느껴지는 것에 놀

랐다. 마법종족인 자신도 마나가 움직이는 것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눈 앞의 약간 괴팍스

러워 보인느 노인이 5클래스의 마법사인 그녀를 가볍게 뛰어넘는 말과 동일한 것이었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일어서 피브드닌의 어깨를 잡고 속삭였다. 

「어서 사과하세요.」 

「…감정에 휩쓸린 것 같습니다. 후작 공자, 부디 용서해주십시오.」 

「괜찮습니다. 그보다 왜 〈마땅찮은 시즈〉를 찾으시는지 듣고 싶습니다만….」 

유레민트의 눈빛에 감탄이 서렸다. 눈 앞의 청년은 상대방이 무례하게 자신을 무시한 것

을 용서하면서도, 〈마땅찮은 시즈〉라는 인물과 자신이 같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들어 

피브드닌의 무례를 약간이나마 덮어주려고 하는 것이다. 

「저희가 세이서스 백작 공자를 찾아온 까닭은 한 서적의 주인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그 

서적이 제플론 근처의 숲에서 발견되었는데, 한 상인의 사업경로에 따라 아스틴으로 건너

오게 되었습니다. 상상할 수 없을만큼 광대한 지식이 담겨져 있는 서적의 내용에 저희 아스

틴네글로드는 너무나 놀랐습니다. 그래서 책표지에 남겨져있는 〈마땅찮은 시즈〉라는 하

나의 글로 사람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시즈는 자신이 틀림없이 하나의 책을 잃어버린 사실이 있음을 기억해냈다. 세일피어론아

드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존재의 증거가 담긴 한 권의 갈색 책, 오랜 세월을 함께 해온 일기

장을 떠올리며 그는 입을 열었다. 

「제가 그것의 주인이라면 어떻하시겠습니까?」 

중인들은 대륙 최고의 대학자들이 긴장했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들의 말과 몸이 

모두 떨리고 있었으니까. 그것은 두려움이었다. 〈만약, 정말로 이 청년이 우리가 찾던 대

학자라면….〉 초월한 존재에 대한 멈출 수 없는 두려움에 몸을 가누기 위해 노력하며 유레

민트는 말했다. 다른 세계의 지식이 아닌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 약관의 청년이 그 

지식의 소유자였다니…. 

「아스틴으로 함께 가주십시오. 당신이 그 책의 소유주라는 것을 당신의 지식으로 증명해

주십시오.」 

누구나 끌려들 것 같은 작은 미소를 지어보인 시즈는 고개를 끄덕였다. 피브드닌은 왠지 

청년의 눈빛이 싸늘하게 빛나고 있다고 느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시즈가 가장 싫어하는 

부류가 자신의 지식으로 결과를 단정하여 상대를 무시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피브드닌

을 향하는 시선이 좋을리가 없었다. 다음 순간, 그는 피브드닌과 유레민트의 가슴을 얼어붙

게 만들었다. 

「마지막 페이지에 〈또다른 고향〉이라고 쓰여있다면 지식의 증명이고 뭐고 없을텐데…. 

그 책의 존재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지식인들의 고집이 느껴지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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