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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하고 있었길래 이렇게 늦은 거야?」
2m 도 넘는 장신이 아래로 시선을 내리깔고 노려보는 것은 상당한 위압이었다. 헤
모는 엄지손가락으로 시즈에게는 보이지도 않는 자신의 어깨 뒤를 가리키며 〈산적
들이 아우성치는 것을 감당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하고 투덜거리면서도
요리를 담당한 사람답게 〈간이 맞았는지도 보게. 사람들이 많으니 이거 긴장되는
구만.〉하고 소근거렸다.
레이모하를 섬기는 사제들은 언제나 자신의 음식을 떠먹을 스푼을 지니고 다녔다.
어떻게 보면 거지근성을 들어내는 일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레이모하의 사제들은 아
무 곳에 껴서 음식을 얻어먹을 만큼 배짱과 사교성을 가지고 있었고 한 편으로는 서
민들과 귀족 모두에게서 환영을 받을 수 있는 배경을 만들어낸 원인 중 원인 중 하
나였다.
그 배짱과 사교성을 거들어주는 이유가 있었으니, 바로 그들의 요리실력이었던 것
이다. 레이모하의 사제들은 왠만한 음식점 요리사만큼의 요리실력은 기본적으로 갖
추고 있을 뿐 아니라, 다양한 재료 즉 어디에서나 멋진 요리를 만들어 낼 수 있었ㄷ
.
「엘프도 사냥할 필요가 있어?」
자신을 요리를 하도록 끌어드리려는 섬뜩한-게다가 크기까지 하다- 헤모의 손길을
가까스로 벗어난 시즈가 고개를 음성이 들려온 곳으로 돌려보니 눈을 환기시켜 주는
두 여인과 소녀가 그늘진 나무 밑에서 깔깔거리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야 당연히 생존을 하려면 사냥은 필수적이에요. 메네이나는 왜 그렇게 생각하죠
?」하고 유레민트는 새초롬한 시선에 호기심을 담고 그늘을 요리조리 굴러다니는 소
녀에게 물었다.
산적들답게 〈춤추는 칼〉의 사람들은 야생동물을 사냥하는 실력이 수행원들보다
월등했다. 그 중에서도 메네이나는 그들의 생계유지를 책임진 사람처럼 단도를 날렸
는데 그 실력은 엘프인 유레민트조차 감탄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숲의 종족, 엘프의 궁술에 비할 수는 없었다. 그녀의 화살이
날아가 동물들의 급소에 정확히 꽂힐 때마다 메네이나를 제외한 〈춤추는 칼〉은
꼬리를 토끼마냥 동글동글하게 말고 나무 뒤에서 비애에 빠졌다.
「거기 아름다운 아가씨들, 식사하러 오시겠어요?」
일명 〈호스트〉로 알려진 수행원, 사론이 큰 소리로 웃으며 두 여인을 불렀다. 하
지만 식사를 하면서도 두 아가씨의 이야기는 끊이질 않았다. 특히 메네이나는 입을
쉴 새 없이 놀리며 음식을 씹으면서도 완벽한 발음을 구사하는 신기를 보여주어 눈
길을 끌었다.
「난 엘프가 숲을 다치게 하지 않고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간다고 들었는 걸… 꿀꺽!
그리고 숲도 엘프가 원하면 들어준다고 해서- 우물우물 - 엘프가 〈나 토끼 먹고 싶
어〉하면 숲이 애 낳듯이 쑥쑥 주는 줄 알았는데?」
「우하하핫!」
토루반과 헤모가 자지러질 정도로 웃어재끼며 뒤로 쓰러지기 시작했고, 피드브닌과
시즈도 웃음을 참는 것을 감추기 위해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유레민트는
심각한- 남의 종족의 이해를 이렇게 시키다니- 표정으로 그들을 한번 흘겨주고 메네
이나에게 물었다.
「메네이나, 그거 누구한테 들었어요?」
「응!? 아냐? 웃지마! 보를레스가 그랬단 말이야!」하고 소리를 질렀지만 메네이나
도 얼굴을 붉히고 곧 스프를 신경질적으로 들이마셨다. 처음 유레민트의 손을 잡고
눈물마저 흘려대던 〈춤추는 칼〉의 문학 산적은 움찔했다. 주위의 늑대를 방불케하
는 빛나는 시선에 그는 듬직한 신체를 조심조심 움츠려갔고, 유레민트는 한차례 한
숨을 땅이 꺼지도록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저희는 필요한 만큼만 사냥을 해요. 인간들처럼 어떤 종족을 멸종시킬만큼 아름다
움, 귀여움, 희귀성에 잡히지는 않는답니다. 숲의 동물들도 모두 자신들의 살아가는
것 이상의 사냥은 하지 않죠. 그것은 자연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 되는 거에요. 꼭
동물을 사냥하지 않는 것 자체가 자연에 조화를 맞추는 행동은 아니랍니다. 자신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만큼의 요구와 행동가 바로 조화로 향하는 길이죠.」
언제 또 메네이나와 같은 사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춤추는 칼〉 사
람들은 진지한 안색으로 굳히며 귀를 기울였다.
유레민트가 숲 속에서 종족과 자연 간의 조화에 대한 문제를 처음으로 강의하는 이례적인 경험을 하는 도중, 갑자
기 그녀의 귓가에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몇 마리가 아닌 꽤나 되는 숫자가 열을 맞추어달려오는 것이 분명했다.
〈이런 변두리에 왠 말발굽 소리지? 급한 일이 있어 지나가는 것이겠지.〉하는 섵부
른 판단은 잠시 후 그녀의 얼굴을 창백하게 만들어놓는다.
갑자기 들어닥친 무장을 한 기마단 중 푸른 단장을 어깨에 수놓은 망토를 두른 중
년기사는 씨익 하고 능글맞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손을 들어올리고는 말했다.
「안녕하신가, 〈춤추는 칼〉 여러분? 이거 생쥐처럼 잘 빠져나가더니 오늘은 왠일
로 얌전히 기다리고 계셨을까? 우리는 여러분에게 당했다는 상인들의 난리로 밤잠도
설치는데 거의 축제분위기로군. 〈제 12 국경치안 기사단〉 앞으로! 드디어 우리의
골머리 한구석을 파먹던 산적들을 소탕할 기회가 주어졌다.」
「우아아앗!」
어지간히 골이 아팠던 것일까. 국경치안 기사단은 환호에 가까운 기합을 지르며 〈춤추는 칼〉 무리를 노려보았다.
시즈 일행과 산적들은 갑자기 튀어나온 기사단이 기쁨이 내포한 살기를 마구마구 내뿜자, 어이없는 얼굴로 뜯다만
토끼고기를 떨어 뜨렸다.
보를레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도망… 가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