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7화 (2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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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의 다리는 바람보다 빨리 움직였고 번개처럼 땅을 박찼다. 생존의 의지가 얼 

마나 대단한 것인지 〈춤추는 칼〉의 도망자들은 처절하도록 확연히 보여줬다. 

「왜 우리도 도망쳐야 하는 거지?」 

 피브드닌은 쏨살같이 헤모의 등에 업힌 채 가끔 부딪혀 오는 나뭇가지에 하나도 

피하지 못하고 정신없이 얻어맞으며 중얼거렸다. 헤모는 짐을 지고 달리는 판에 예 

쁘지도, 그렇다고 귀엽지도 않은 30대 중반의 사내가 업혀 등에 턱수염난 얼굴을 

징그럽게 비벼가며 바람 때문에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오물거리니 다닥다닥 소름 

이 돋는 것이 한올한올 느껴졌다. 그래, 레이모하의 사랑을 베푼다고 생각하자. 이 

한 몸을 희생하는 것이 사제의 길이 아니겠는가. 그런 헤모의 헌신적인 심정을 알 

리 없는 일행은 발을 놀리는 것에만 온 정신을 쏟았다. 

 만약 들판이었다면 벌써 등에 칼이 꽂혔겠지만 다행히 숲에서는 말의 움직임 자유 

로울 수가 없었고, 〈춤추는 칼〉은 이름 뿐이라도 명실공히 산적이었다. 그것도 

국경 치안을 당담하는 기사들에게 있어서는 산에 자리잡고 개미떼처럼 우글우글하 

는 여타 산적들보다도 눈에 피발 - 잠을 못 자서-서게 만드는 존재인 그들은 나무 

와 수풀을 달아나는데 효과적으로 이용했다. 

 아스틴의 수행원들도 대부분 경호를 위해 무술이나 검술을 익혀 동작이 빨랐고, 

엘프인 유레민트와 몸이 가벼운 네메이나는 땅을 침대밟듯 살풋살풋 짚는 것 같으 

면서도 가장 앞에서 달려나갔다. 일행의 예상을 빗나가게 한 것은 토루반과 시즈였 

다. 다리가 짧아 타인이 한 발을 내딛을 때, 다섯발은 쪼르르 달려야 할 드워프는 

등에 무거운 배틀 엑스를 동여맨 것이 부담이 되지 않는 양 야생마처럼 힘차게 질 

주하며 튕겨나갔고 시즈는 작고 유약해보이는 체격으로 일행을 고민시켰지만 곧 걱 

정을 한순간에 놀라움으로 바꾸어놓았다. 물살 속에서 물고기가 유영하는 것처럼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시즈의 동작은 아름답기까지 했고 어찌보면 한가로 

워 돌아보는 이들은 자신이 걷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져들었다. 만약 

청년이 땀을 쉴 새 없이 흘리지 않았다면 그가 인간이라는 것을 부정했으리라. 

「여전하군, 황홀할 정도의 체술. 흐르는 물은 한 없이 부드럽고 느려보이지만 눈 

으로 느끼는 것보다 훨씬 빠르지.」 

 멧돼지처럼 돌진하면서도 장애물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달리는 헤모는 그 와중에도 

눈을 힐끗거리며 감탄을 토했다. 덕분에 등에서 파릿파릿하게 질린 피브드닌은 기 

절하지 않는 자신의 정신력이 한없이 안타까웠다. 

「헉! 헉! 모,모두 좀 쉽시다. 이제는 아마 놓쳤겠지?」하고 사론이 한숨을 내쉬며 

 다리를 멈추는 순간, 

「휘익- 퍽! 부르르르-」 머리 위로 무엇인가가 산뜻하게 스치 지나갔고 

「흐읍!」 하고 사론은 내쉬던 숨을 도로 들이키며 눈 앞에서 나무에 꽂힌 채 부들 

거리는 화살과 박자를 맞추어 한 차례 부르르 떨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냅다 뛰었 

다. 

「오늘 아주 작정을 한 모양인데!?」 

 보를레스는 기가 질렸지만 다리의 속도는 느려질 기세를 보이지 않았다. 잡히면 

그대로 천국향인 것이다. 산적이니 지옥행일지도 모르지. 쫓기는 편에서는 죽을 맛 

이었지만 〈제 12 국경치안 기사단〉의 입장에서는 이날이 바로 장날이었다. 

 얼마나 하룻밤의 깊고도 편안한 잠자리를 간절히 바라였던가. 신고와 고발로  말발굽이 닮아라 출동해도 흔적으로 

남겨진 그들의 표식, 땅에 꽂힌 칼 한 자루만 외로이 남아 자신들의 무능을 비웃는 것 같았다. 

 주민들에게 시달려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던 기사들에 대한 하늘의 보살핌인지 

간밤에 〈바난 숲〉을 지나던 한 여행자가 숲에 켜진 모닥불과 한 떼의 인원을 수 

상히 여기고 신고를 한 것이다. 그리고 경계가 밤보다는 아침이 헤이할 것이라 여 

겨 들이닥친 것이 적중한 것이다. 다시는 오지 않을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막상 

쫓는 기사들은 그것을 신경쓰지 않는 듯 〈이제는 편히 잘 수 있다.〉라는 환희에 

넘쳐 입가에 끈적한 액체가 흐르는 것도 모르고 히죽되면 말을 몰아대는 이도 있 

었다. 

「이 말, 값이 상당할 것 같은 종마인데!? 이 놈들, 큰 것을 한탕한 모양이군.」 

〈제 12 국경치안 기사단〉의 단장, 로트 바키더는 시즈 일행이 미처 신경쓰지 못 

하고 내버려두었던 말의 갈기를 쓰다듬으며 부하들이 토끼 사냥을 즐겁게 즐기고 

있을 방향을 노려보았다. 옆의 마차 안에서 시즈 일행의 물품을 살펴보던 기사가 

걸어나와 부복하고 말했다. 

「꽤나 비싸게 받을 것 같은 서적과 골동품이 다수 있습니다.」 

「어떤 상인인지 모르지만 억울하겠군. 이미 목숨을 잃었겠지? 쯧쯧! 성으로 가져 

가게!」 

「옛!」 

 마차에 실려있던 것은 제플론의 문인귀족들이 존경의 표시로 피브드닌에게 건넨 

것이었다. 그 때 피브드닌은 잊었던 물건들을 생각해내고 아까움에 눈물을 닫다가 

다시 다가온 나뭇가지에 생채기가 났다. 마차가 성으로 향하는 것을 지켜보던 로트 

에게 부관이 굼금한 어조로 물었다. 

「고작 20 - 30 명 정도의 산적퇴치에 제 12 사단의 기사들을 모두 동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의 물음에 로트는 미간을 찌푸리고 낮고 서늘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충분히 나설 필요가 있지. 그들을 얕보지 마라. 그들이 재빨리 일을 처리하고 도 

망갈 수 있다는 것은…. 상인들이 고용한 용병을 쉽게 물리칠 수 있다는 뜻이지. 

특히 보를레스라는 놈은….」 

「메네이나 조심햇!」 

 흡!하는 기합소리와 함께 메네이나에게 날아오던 화살이 잘려나갔다. 

「보, 보를레스!?」 

「도망쳐라. 잠시 후에 쫓아가마. 어서!」 

 갑자기 악귀같은 기세와 고함에 메네이나는 뒷걸음질쳤다. 그녀의 머리 속은 갑자 

기 백지장이 되어 절대적인 명령을 들은 것처럼 무작정 달릴 뿐이었다. 소녀가 사 

라지자, 보를레스는 적당하게 살이 빠진 롱소드를 꼬나잡고 한 기사를 노려보았다. 

〈잡배의 자세가 아니다. 저것은 기사의 검술이야.〉 

 기사는 몸을 편하게 하기 위해 약간의 보호장비도 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텁텁 

한 입맛을 다시며 그가 말에서 내리려는 순간, 

「지금이닷!」하고 보를레스가 몸을 움직였다. 

「비, 비겁하다」하고 외치려던 기사는 그대로 말에서 굴러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달려들어 검을 내지를 것 같던 보를레스는 그대로 내뺐던 것이다. 기사는 땅바닥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비겁해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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