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8화 (28/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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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즈 님! 어째서 저희까지 도망가야 하는 겁니까?」 

 사론은 끊어질 듯한 다리를 부여잡으며 옆에서 숨을 몰아쉬는 청년에게 물었다. 그 

러자 다른 아스틴의 수행원과 네글로드도 궁금증을 얼굴에 완연히 드러냈고, 피브드 

닌같은 경우는 그물친 듯 생채기가 난 얼굴을 서글픈 손길로 쓰다듬으며 청년을 째 

려봤다. 

「그래…. 나도 묻고 싶소, 시즈. 왜 우리까지 도망쳐야 하는 거요? 난 이제껏 이런 

 취급을 받아본 적이 없소이다. 아스틴네글로드라고 밝히면 될 것을 왜!」 

 불만이 가득한 것 같군. 시즈는 기사들이 쫓아오지 못하는 것을, 주위를 한번 휘이 

 둘러보며 살폈다. 그가 고개를 돌리자, 수행원들은 흠칫했다. 평소의 시즈가 짓던 

온화한 인상은 온데간데없었고 그의 표정은 얼음의 마법을 썼다고 착각할 정도로 차 

갑고 딱딱했다. 

「그렇다면 〈춤추는 칼〉의 사람들은? 당신의 말은 한마디로 우리는 상관없는 사람 

들이니까, 기사들에게 산적들이 사냥당하는 것을 즐겁게 지켜보자!? 이 말입니까?」 

 냉담하게 몸을 후벼파는 비꼼에 피브드닌는 붉게 달아올랐다. 그제서야 주위를 둘 

러보니 〈춤추는 칼〉은 지쳐 다리를 주무르면서도 씁쓸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 

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 중에는 살기를 서슬푸르게 띈 눈빛도 섟여있어 그는 차 

갑게 식은 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저희가 이렇게 함께 도망친다고 해서 이들을 구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보십시오. 같이 도망치기만 할 뿐입니다. 개죽음이 될 뿐이라고요.」하고 

 가라앉은 사론의 말에 시즈는 힘겹지만 자신에 찬 미소를 지었다. 

「도울 수 있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유레민트님, 절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시즈가 유레민트에게 무엇인가를 작게 속삭이자, 엘프는 귀를 움찔거리며 놀라 청 

년을 희안한 것을 보는 시선으로 바라보았고 이내 결심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 

이며 말했다. 

「물론 마법 시전 자체라면 할 수 있을 거에요? 하지만 그 후에 유지는 어떻게 하려고…?」 

 시즈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는 땅바닥에 나뭇가지로 큰 원을 그렸다. 

「모두 이 원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그들이 쫓아오기 전에 해야합니다.」 

「그런 것이라면 걱정하지 마시오. 군사운용에 대해서는 아스틴 네글로드 중, 날 둘 

째가라고 생각하는 이는 없습니다. 내가 생각하건데, 그들은 지금쯤이면 쫓기보다는 

 넓게 퍼져서 천천히 포위하고 있을 것이오. 그 후에 조여들겠지.」 

「당연하지, 셋째가도 안되는 놈을 누가 둘째가라고 생각하겠어?」 

「토루바아안!」 

「어린애들처럼 말다툼하는 것은 그만하고 어서 원 안으로 들어오세욧!」 

 남자들의 세계에서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은 여자라는 것을 단순하게 증명하는 

 일이었다. 유레민트의 예쁜 입술에서 서슬 푸르게 튀어나온 고함에 남자들은 놀란 

생쥐가 쥐구멍으로 들어가듯 달려와 원 안에 털썩 주저앉았다. 누가 보면 여왕님과 

똘마니들 이라고 착각할 만한 광경이었지만 시즈에게는 그저 반가운 현상으로만 느 

껴졌다. 

「그럼 시작합니다.」하는 동시에 시즈는 눈을 감고 입술을 꽉 물었다. 피가 날 것 

처럼 붉게 변한 입술에서 너무 작아 들을 수 없는 중얼거림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그 

의 몸에서는 따뜻한 바람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눈을 질끈 감았던 사람들은 눈을 천천히 뜨고는 의아해하고 

있을 때 유레민트는 손을 높이 들어올리며 주문을 외쳤다. 

「모든 것은 빛의 꿈, 나는 감추고 싶은 욕망에 빠져 빛의 파도에 휩쓸리니 꿈결의 

파도 속에 숨겨지리라.」 

 나뭇가지로 그어진 선분에서는 새하얀 빛이 은은하게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고 곧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아챈 사람들은 비명을 질러댔다. 

「으아아악! 내 몸이!」 

「사라져간다….」 

「좀 조용히 하게. 지금 투명화되는 것이 발견되면 말짱 헛짓이야. 왜 이렇게 도망 

쳤다고 생각하나? 바로 이 마법을 시전할 시간을 만들기 위해서야!」 

 소란은 토루반의 근엄하고 무게있는 말로 진정궤도로 들어섰다. 일행이 모두 서로 

를 보지 못하게 되자, 유레민트는 다시 한번 주문을 외웠다. 

「공간의 틈 속에… 빛의 틈 속에… 존재를 숨죽인 이여…. 내 눈은 빛의 장막을 뚫 

고 그대를 보리니, 앞에 나타나리라.」 

「오…! 보인다. 그런데 왜 자네는 거기에 엎드려있나?」 

「당신이 밀쳤잖소!」 

「그랬나? 하핫! 아무 것도 안 보여서 말이야. 뭔가 부딪히는 것 같았는데 너무 맥 

없이 없어지길래 바람인가 했지.」 

 사론은 이를 갈며 주먹을 움켜쥐었지만 그렇다고 꿈쩍할 보를레스가 아니었다. 도 

망치는 일행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챙긴 보를레스였지만 그는 뛰기 시작할 때의 모 

습이나 현재나 별로 다르지 않았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헤모는 주의깊은 시 

선으로 그의 균형잡힌 체격을 노려보았다. 

「이제 포위망을 뚫도록 하죠. 그들이 기사인 만큼 기척을 느낄 수 있을테니, 가장 

빠르고 가볍게 빠져나가야 합니다. 이것은 싸우는 것보다도 더 어려울 수도 있어요. 그리고 피브드닌?」 

 시즈는 눈도 뜨지 않은 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춤추는 칼〉과 아스틴의 수행원들은 왜 마법을 펼친 유레민트

는 아무렇지도 않고 그가 힘들어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잠자코 얘기에 귀를 귀울였다. 

「피브드닌 님이라면 알 수 있겠죠? 우리가 현 상황에서 그들의 허를 찔러 빠져나갈 수 있는 가능성과 방법을 알려

주십시오.」 

 피브드닌은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수행원들에게 뭔가를 요구했다. 지도를 받아 

든 피브드닌은 그것을 펼쳐놓고 손으로 재어가며 몇 가지 계산을 하는 듯하더니 히 

죽 웃었다. 

「그 정도는 간단하지. 우리는 행운아들이라고. 다행히 이 숲은 성쪽을 향해 뻗어있 

고 무작정 숲 속으로 도망친 우리 또한 성을 향하고 있어.」 

「방향을 알 수 없지 않습니까?」 

「걱정말게 내게 해시계가 있으니까, 현재 시간에 대한 해의 각도로 4방위를 알 수 

있어. 우리는 앞으로 계속 가면 되는거야. 우리 마차를 수거해 가고 있는 놈들은 아 

마도 경계가 허술할 거야. 설마 산적들이 기사단에게 토벌당하면서 뺏긴 물건을 되 

찾으러 올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겠지. 아마도 느긋이 간다고 할 때, 빨라봤자 마차 

의 속도는 시속 10km 정도? 우리가 자리를 떠난 시각부터 출발했다고 해도 25km 정 

도 밖에는 가지 못했을 거야. 예상 범위를 찾아보건데 여기서 여기 안에 콧노래를 

부르며 가고 있겠지.」 

 이렇다 저렇다하지만 그는 역시 대륙 최고의 학자 중 하나였다. 수행원들과 산적들 

은 감탄하며 피브드닌의 설명과 지도를 옮겨다니는 손가락에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신이 난 피브드닌의 눈이 흥미거리를 발견한 어린아이처럼 반짝였다. 

「우리 또한 성을 향해 달려왔기 때문에 이 범위와 떨어진 거리는 길어도 4km 가량 

이야. 방금 같은 속도로 1시간만 뛴다면 잡을 수 있지. 마차와 말을 다시 되찾는다 

면 엘시크를 벗어나는 것은 쉬운 일이지.」 

「역시 대단하십니다.」하고 산적들이 그의 손을 철썩 잡았고 토루반과 유레민트도 감탄한 눈치였다. 

「처음하는 뒤통수치기다. 흥분되는 걸.」 

「결국 일일 산적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는 군.」 

 〈춤추는 칼〉과 아스틴 네글로드 일행은 서로 다른 감상을 내놓으며 키득거렸다. 잡히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상황

에서 그들이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이 스스로도 신기했지만 그 감정을 숨기지는 않았다. 

「그럼 시작할까요?」 

 대륙의 전설적인 7인의 학자 중 유일한 엘프, 유레민트는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지만 내심 걱정하고 있었다. 

이러다가 즐기게 되는 것 아닐까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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