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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 뭐지? 뭔가 지나간 것 같은데 작은 들짐승인가?」
「윌리브, 모하는 거야? 포위망이 벌어지잖아!」
「알았어!」
보를레스는 기사가 자신의 앞을 천천히 지나가자, 한숨을 내쉬며 발을 떼었
다. 그의 등에는 가얇은 체격의 청년이 하나 업혀있었다.
「시즈, 괜찮습니까?」
「아…. 예에….」
시즈는 고개를 힘없이 끄덕이며 대답했다. 절대로 괜찮게 느껴지지 않는 그
대답에 보를레스는 뛰는 속도를 빨리했다. 일행들도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내
고 있었다. 함께 몰려다니면 기척을 쉽게 알아챌까봐 흩어졌다가 포위망을 뚫
고 모이기로 한 것이다. 가장 먼저 그에게 다가온 토루반과 유레민트가 걱정
스러운 눈초리로 시즈의 상태를 살폈다.
「이제 마법을 풀어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그러다가 죽겠어요….」
「아닙니다…. 마차까지는… 유지해야 되요….」
그렇게 말하며 시즈는 희미하게 웃음를 지었다. 투명하게 변한 동공, 그는 눈
이 보이지 않았다.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소리로 유레민트와 토루반이 있는 곳으
로 고개를 돌리며 슬프도록 아름다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도 한 명도 아니고, 스무 명가량 되는 사람들에게 두 가지 마법을 동시에
유지하는 것은 자살행위에요.」
「유레민트, 그만하게. 저 녀석도 이미 알고 있어. 어차피 체력도 떨어져서 얼
마 견디지 못할거야.」
마법을 멀쩡한 유레민트가 멀쩡하고 시즈가 폐인이 되어버린 것은 당연한 것이
었다. 유레민트는 그저 불을 당겨주었을 뿐, 그것을 유지하는 것은 시즈였기 때
문이다. 투명 마법과, 투시마법이 기본적인 마법이긴 했지만 대규모의 사람들에
게 시전하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마나를 기본으로 했고, 유지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렇다고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불씨를 받아서 불을 피우
는 일이 어려운 것이 부싯돌에서 불꽃 튀기는 일이 어려운 것은 아니었으니까.
「다들 모였군. 그러저나 시즈, 아주 예뻐졌군. 머리칼도 회색으로 멋지게 탈색
되었어.」
헤모는 유쾌하게 시즈에게 말을 걸었지만 그의 얼굴은 참담할 정도로 우울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것은 모든 이가 마찬가지였다. 포위망을 빠져나온 것은 기
뻤지만 한 청년의 망가진 모습은 그들의 마음을 바늘처럼 찔러댔다.
시즈는 나뭇가지로 원을 그은 후에 원 안에 들어온 모든 사람에게 유레민트가
시전하는 마법을 유지시키는 의지를 불어넣었다. 그 후에 원을 지우며 마법에 걸
린 물체가 계속 유지되도록 정신력을 쏟아부었다.
「저렇게 미소짓고 있지만 아마 죽을 지경일 거에요.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는 것
만으로도 4클래스의 마법을 쉬지 않고 70번은 쓴 것과 동일하다고요.」
유레민트의 말에 〈춤추는 칼〉과 수행원들은 놀라서 침을 꿀꺽 삼켰다. 우리
는 지금 대마법사가 될 사람을 미리 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헤모와 토루반은 그와는 다른 생각으로 긴장했다. 만약 그가 약속의 언
어를 찾게 되다면? 아마도 세일피어론아드에 다시 없을 마법사가 등장하게 될 것
이다. 세계정복을 꿈꾼다고 해도 지금 보를레스의 등에 축 늘어져 업혀있는 청년
을 당해낼 자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리 없지. 그런 멋진 생각을 하고 있는 놈이 이렇게 바보스러운 희
생을 자처해서 할리가 없으니까 말이야.〉
「어서 갑시다. 빨리 마차를 되찾아야 시즈군도 쉴 수 있지 않겠소?」
해는 천천히 하늘 끝을 향해 솟아갔다. 늦가을의 바람이 따가운 햇살에 데워졌
지만 그들의 몸을 가로막을 수는 없었다. 오히려 분명히 지쳐버렸던 다리였는데
부드러운 바람에 스치며 회복되어 가는 느낌이 들었다. 하늘에는 바람의 구름을
타고 다니는 불량스런 정령들이 있다던데… 이런 기분이라면 불량정령해도 좋겠
는 걸. 네메이나는 환호성을 지르고 싶을 정도로 자유로움에 몸을 맡기고 있었
다. 영원히 이렇게 달려가도 좋을만큼….
「이번이 마지막 도적질이다….」
〈춤추는 칼〉의 〈네모꼴〉, 바크호가 기분좋은 표정을 지으며 나직하게 중얼
거렸다. 산적들은 모두 달리는 중이었지만 똑똑히 들을 수 있었따. 다들 순간적
으로 다리가 느려졌지만 바크호는 멈추지 않고 말을 이었다.
「사실 우리는 평범한 서민이었잖아? 그 재수없는 상인들에게 시달려 골탕을 먹
여보고자 시작했던 일이었는데…. 재물에 정신팔린 이들을 욕하고 그들의 것을 빼
았는 동안에 우리도 재물의 귀신에게 사로잡혔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 난 그만
두겠어. 이제 충분해….」
「다들 비슷한 생각인 것 같은데?」
보를레스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바크호는 갑자기 쿡쿡하고 달리면서 어깨를
들썩이는, 전례없는 주법을 보였다.
「너희들은 정말 멍청이들이라니까….」
「너 역시 마찬가지잖아. 그런데 보를레스, 당신은 원래 우리같은 서민이 이나었
잖아. 자네도 이제 갈 길을 가야지.」
「아하하핫, 걱정말게. 따라갈 사람을 벌써 이렇게 붙잡아두었으니까.」
「아앗! 보를레스, 떨어뜨리지 말아요.」
갑자기 업고 있던 사내의 팔이 헐거워지자, 겁을 먹은 시즈는 그의 굵은 목을 꽉
붙잡고 매달렸다. 〈춤추는 칼〉의 사람들은 흥겨운 표정을 지으며 달리는 속도를
더했다.
헤모의 등에서 그들을 지켜보던 피브드닌은 언제나 냉철한 표정을 짓고
있던 얼굴에 온화한 미소를 띄고 있었다. 저 모습이구나. 시즈 군은 저 모습을 보
기 위해서 희생한 것일 것이다.
하지만 시즈는 눈이 보이지 않았다. 부딪혀오는 약간은 따뜻한 바람에 기분좋게
머리를 흔들며 촛점없는 눈동자로 활짝 웃고 있었다.
「네메이나도 따라가겠어.」
이제는 좀 힘이 부치는지 네메이나는 가끔 발을 헛딛고는 했지만 유레민트가 옆
에서 잡아줘 용케 떨어지지 않고 쫓으며 의지에 찬 어조로 힘차게 말했다. 수행
원들이 기가 막힌 시선으로 쳐다봤고, 그녀는 상관하지 않고 씨익 웃었다.
「산적질도 질렸었거든.」
그래그래, 누가 널 거역하겠어. 분명했다. 〈춤추는 칼〉 사람들이 짓고 있는
정이 의미하는 바는.
새로운 꿈으로 빛나는 그들의 눈에 한가롭게 들판 위를 굴러가는 마차가 하나 보
였다. 휘장이 화려한 고급 마차, 보를레스의 입가가 매력적으로 끌려 올라갔다. 우
리의 마지막 추억의 도적질이다.
「어디에서든 멋지게 한탕해보는 거지!」
그들의 발걸음을 막을 것이 세상엔 과연 존재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