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0화 (3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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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혼이 구름에게 황홀한 무늬를 만들어주고 지평선에서 슬퍼할 때였다. 그들은  겨울이 다가오는 문턱에서 불어닥

치는 모래 섞인 바람에 더러워진 망토로 몸에 두르고 두터운 후드 사이로 밖을 볼 수 있을 눈만 간신히 내놓은  채 

마차를 거칠게 몰아댔다. 마차를 끄는 4마리의 말은 지쳤는지 연신 고개를 푸들거렸고, 마차를 몰고 있는  사내들의 

찡그린 눈에 멀리 마을이 들어왔다. 서로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 그들은 촘촘히 모인 집들을 향해 말을 재촉했다. 

 겉보기에 작은 마을이었지만 여관은 매우 컸고, 집들 뒤로는 인공적으로 조성한 듯한 숲이 조성되어 있었다.  아무

래도 모래바람이 불어대는 것에 대한 방책인 모양이었고, 이런 기후가 매년 일어난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었다. 

 마차가 마을 입구를 지나 여관 앞에 도착하자,  마부석에 앉아있던 남자 중 사제복을 입은  거구의 사제가 황량한 

거리와는 달리 시끌벅적한 소리가 끊이지 않는 건물의 문을 밀고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레이모하의 축복을 받으신 분이시군요.」 

「축복을 받긴…. 노예 취급을 받고 있지요. 그나저나 사람이 많군요.」 

「네. 갑자기 기후가 대처할 수 없을 만큼 변해서 그렇습니다. 이 지방은 겨울이 오기 직전에 엘로고라토 사막의 모

래가 바람에 섞여와서 여행객의 발을 묶곤 하 지요.」 

「호오…! 덕분에 재미가 쏠쏠하시겠구려?」 

 사제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묻자 여관 주인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빈 테이블로 그를 안내했다. 

「하하핫! 그런 면이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엘로고라토의 전령〉오는 것은 아주 잠시  뿐입니다. 이제 멈출 시기

가 되었으니 걱정하실 것 없이 푹 쉬십시오. 그런데 〈엘로고라토의 전령〉을 뚫고 혼자서 오다니 정말 대단하십니

다.」 

 주인은 진작부터 잔소한 근육까지 고루 발달된 거체에 감탄하고 있었다. 비록 착각을 하기는 했지만 칭찬은 한 사

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그 인상을 좋게 보여주기 마련이다. 헤모는 기분이 좋아져  눈가에 주름이 가득히 잡힐 만큼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것 참! 하하하! 장사를 아주 잘하시는 군. 미안하지만 나도 오늘처럼 끔찍한 모래바람을 뚫고 홀로 여행할 자신

은 없소. 일행이 꽤나 되니까 이 마을에라도 도착했지,  아니었으면 〈전령〉이 소식 전하기를 그칠 때까지 꼼짝도 

못했을 겁니다. 이제 곧 들어올 거요. 마차를 보관소에 넣고 있지. 15명 가량 되니 테이블이 4개는 필요할 겁니다.」 

 끼 - 익.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문이 열리며 헤모의 동료로 예상되는 한 떼의 사람들이 가게 안으로 우르르 들

이닥쳤다. 그들은 모두 모래로 회색이 되어버린 망토나 외투를  입고 있었는데, 그들이 발을 옮길 때마다 옷깃에서 

모래가 떨어져 바닥을 청소해야 하는 점원들의 입술에서 한숨을 털어놓게 만들었다. 

 겉옷을 벗은 그들의 모습에 가게 안에 있던 사람들은 놀람을 금치 못했다. 보기 힘든 엘프와 드워프를 수행원으로 

보이는 무사들이 호위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눈길을 끌었던 것은 평범해 보이는  인간 청년이었다. 엘프, 드워프 등 

몇 사람과 함께 호위의 대상인 듯한 청년은 신기하게도 흰색의 머리칼이 목을  덮고 있었고, 어딘가를 바라보는 눈

동자는 동공이 투명하여, 흰자위 안에 유리알을 박아 넣은 것 같은 이질감을 가져다주었다. 

「다들! 여기입니다. 마스터, 우선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것으로 부탁합니다.」하고 음식선정을 무책임하게 여관 주

인에게 맡겨버린 헤모는 시즈의 곁으로 다가가  여린 손을 잡아 자리로 이끌었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청년이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엇! 자리가 모자른데!?」 

 시즈를 부축하며 천천히 테이블로 돌아온 헤모는 이미 일행이 테이블을 차지하고 남은 자리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

다. 당황한 표정으로 주위를 바라볼 때, 뒤에서 후드를 깊이 눌러쓰고 있던 사람이 그를 톡톡 건드렸다. 

「괜찮으시면 합석하시지요.」 

 가슴 한 편을 시원하게 만드는 종소리처럼 맑고  청량한 목소리였다. 시즈는 서늘한 바람을 쐬는  것 같은 느낌에 

투명한 시선을 돌려 음성이 들려온 곳을 바라보았다. 

「아 - 이거 정말 고맙습니다. 레이모하의 보살핌이 그대에게…. 한데, 덥지 않으십니까?  후드가 정말 무겁게 보이

는 구려.」 

 언제나처럼 털털하고도 붙임성 있는 미소를 지으며 헤모는 의자도 찾지 못하는  시즈를 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자

신도 의자에 앉는 순간, 「좀 덥긴 하군요.」라는 말과 함께 후드를 젖히는 사람을 보고, 흐물흐물하게 일렁이던, 멈

출 것 같지 않던 미소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하얗고 가는 손가락에 후드에서  가려진 얼굴이 조금씩 드러남에 따

라 헤모는 숨이 막히는 것만 같았다. 

「처, 처, 처, 천족?」 

 경악이 더듬더듬 섞인 사제의 중얼거림에 시끌벅적하던 주위는 싸늘할 만큼 침묵  의 주의를 보였다. 언제나 소란

스럽던 여관식당의 소음은 천천히 잦아들어 잠시 후에는 신전 안으로 착각할 정도로 정적의 극치를 이루었다. 바라

보는 이를 신비감으로 도취시켜 버리는 미모, 그 아름다움은 도저히 현세의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되지 않은 한 종업원은 과격하게 혀를 깨물어 보고 비릿한 피 맛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천족?」 

 미인의 목소리가 청량하였다면 이번에는 마음을 편안하게 쓰다듬는 온화한 음성이  테이블 위를 넘실거렸다. 눈이 

보이지 않아 유일하게 온전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던 시즈가 갑작스럽게 얼어붙은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궁금

함을 토한 것이다. 그의 투명한 눈동자는 볼 수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떨림이라는 방식을 통해 단적으로 표현하

고 있었다. 

「아니에요. 사제께서 착각을 하신 모양이에요.」하고 이제 스물이  되었을까 하고 생각되는 여인은 천상의 미모에 

그윽한 미소를 지었다. 그것이 보이는 걸까. 시즈 또한 그 만의 온화한 미소를 띄우며 답했다. (주점이 화원이 되어

버린 걸까?) 

「하하핫. 천족으로 착각할 만큼 아름다우신 모양이군요. 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 습니다.」 

「아아…. 정말 나도 네가 불쌍해.」 

 잠에서 막 깨어난 것 같은 어눌한 어조로 헤모가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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