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1화 (31/200)

                                              -31-

 식당은 곧 여느 때와 다름없는 분위기로 돌아갔다. 그러나 충격의 여파는 쉽게

가시지 않는지 사람들은 가끔씩 미모의 여성을 힐끔거리며 숨을 죽였다.

「시력을 잃으신지 얼마되지 않았군요. 저런…. 어쩌다가….」

 자신을 〈아릴〉이라고 간단하게 소개한 여인은 안쓰러움에 찬 금안(金眼)을 가

늘지만 선명하게 드리운 속눈썹으로 부끄러운 듯 반쯤 감추고 물었다. 그녀가 조

씩 움직일 때마다 가얇프고 흰 목덜미를 덮은 청은발은 거미줄처럼 가는 몸채를

부딪히며 사락거렸다. 잘 익은 사과처럼 봉긋 부푼 입술은 오물거릴 때마다 남성

들이 아찔함에 몸을 떨게 만들었다.

「제가 원래 장님이 아니었다는 것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유리알 같은 눈동자가 놀람과 궁금함으로 흔들렸다. 안경을 잃음으로 흐릿한 시

선을 가졌던 시즈는 눈동자와 머리칼이 색을 잃은 후, 무미한 미소와 어울리며

백치 또는 인형과 같은 분위기를 보이고 있었다. 허나 외모와는 달리 그의 음성

은 낮고 부드러우면서도 또렷했다. 그런 이질적인 모습은 주위 사람들에게 비밀

스러우면서도 강력한 존재감을 안겨주었다.

「당신은 동료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불안해하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주

위 분위기가 바뀔 때마다 급격하게 당황하는 모습은 어느 때나 침착한 장님들과

는 거리가 멀죠. 또, 당신은 겉보기에는 가늘지만 탄력있는 근육을 가졌군요.

하지만 힘을 내기는 커녕 자신의 몸을 곧추 세우는 것도 힘들어하는 것을 생각

하면 근육의 세기조차 조절을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로 인해서 체력도

상당히 저하된 것 같고…. 뭐 이런 현상은 보통 오감 중에 어떤 것을 다쳤거나

잃었을 때 부적응 현상이죠. 어때요?」

「대단하십니다.」

 시즈는 그녀의 물음에 대한 대답 대신 진심어린 칭찬을 건넸다. 이제는 사라져

버린 안경의 흔적을 만지작거리는 것이 상대에 대해 그가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대단한 여인이야. 한 눈에 타인의 몸상태를 파악하다니, 의사라면 당연하겠지

만….〉

 아릴에게서 흘러나오는 바람을 느끼던 시즈는 그것이 부드럽다가도 맹수의 발

톱처럼 날카로운 기세를 포함하고 있는 것을 알아챘다.

 향기를 가진 장미인가?

 보이진 않았지만 식당의 원초적 분위기를 신전 예배당으로 바꿔버릴 정도의 외

모, 상대를 파악하는 능력, 아름다움과 향기를 동시에 가진 장미같은 여인이 있

다면 바로 멀어버린 눈 앞에 놓인 사람일 것이라고 시즈는 판단했다.

 하지만….

〈장미에 나비가 다가가지 않는 것은 가시를 알기보다 향기가 없기 때문이지. 향

기를 가진 장미는 위험하다.〉

 위험이라는 경보가 울리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아릴이라는 여인은 섣불리 다가

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것을 느끼는 이는 아마도 자신 뿐일 것이다.〉라고 시즈는 생각했다. 모르

긴 몰라도 옆에서 헤모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음식을 먹는 것을 생각할 때, 미

모에 가린 무서움을 알아채는 이는 눈이 먼 자신 밖에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 생각은 곧 잘못되었다는 것이 판정되었다.

 식사를 끝낸 후, 침실에서 여장을 풀며 헤모에게 자신의 느낌을 말하자, 놀랍

게도 그 또한 고개를 끄덕였던 것이다.

「나 역시 아릴이라는 여인에게서 알아챌 수 없을 정도로 잘 갈무리된 투기를

읽었어. 투기를 느낄 수 없다고 해도 경계했을 걸세. 그런 미모로 혼자 다닌다는

것부터가 예사롭지 않은 호신방법이나,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거지.」

「스프도 제대로 못 마실만큼 헬레레 - 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군요.」

「그, 그거야… 워낙에 이, 이쁘니까…. 비, 빌어먹을! 레이모하여 - . 어찌하여

이 불쌍한 사제를 시험에 들게 하시는 지요 -.」

 성투사 헤모의 전투적인 본능과 감각에 관해서 잠시마나 감탄을 금치 못했던 시

는 그와 같은 방 안에 여장을 풀어놓은 자신에 대하여 심각한 고찰을 할 필요성

을 느꼈다.

 갑자기 창문을 열어젖히고 절규하는 헤모의 울부짖음을 들으며 시즈는 여관 굴뚝

에 올라가서 가슴을 퉁탕거리는 고릴라를 상상하고 오해받지 모른다는 생각에 복

도로 나와 방문을 조용히 닫았다.

 방향에 대한 기억과 벽을 더듬으며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던 시즈는 뭔가 다리

에 걸린다는 것을 느꼈다.

「아깝다! 그대로 허리만 쭈 - 욱 폈으면 계단으로 굴러가는 걸 볼 수 있었을 텐

데….」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네메이나?」

 시즈는 계단에서 넘어져 이빨이 깨지는 바람에 망쳐버렸던 악몽같은 수능날을 떠

올리고 침을 꿀꺽 삼키며 더듬거렸다.

 네메이나는 히죽 웃으며 얼굴을 시즈의 눈 앞으로 바짝 가져다댔다.

「넌 남을 위해서 희생하는 바보같은 귀족이니까, 계단에서 구르는 것도 재밌게

보일 것 같았거든.」

「예?」

「바보구나? 네가 우리 〈춤추는 칼〉을 위해서만 희생을 한 것이 아니라는 것 정

도는 나도 알아. 사절단으로의 〈아스틴 네글로드〉의 입장, 그들로서 타국의 기

사단을 건드는 것은 국가적인 마찰이 될 수 있잖아? 게다가 우리같은 산적의 편을

든다는 것은 〈춤추는 칼〉이 아스틴의 군사적인 전략적 도구라는 오해 또한 살

수 있지. 그렇다고 너희 신분을 밝힌다면 〈춤추는 칼〉을 도울 수 없었겠지, 너

같은 귀족이 우리를 도울려고 했다는 것이 인정하기는 싫지만….」

「에에?」

「그렇다고 혼자서 다 짊어져버리는 멍청한 귀족에게 지배를 받아야한다는 것은

정말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고!」

 그녀는 어떻게 보면 섬뜩하게까지 보이는, 속이 비칠 것 같은 시즈의 눈동자에서

더없는 아름다움을 느끼고 있는 자신이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무표정하니 어리둥

절한 표정을 지으며 안절부절하는 그의 눈동자가 무척이나 귀여웠다.

「눈의 시력은 좀 돌아왔어?」

「아! 아니요. 아직…. 하지만 곧 돌아올 겁니다. 헤모 사제께서 제 머리칼의 색

이 약간을 돌아왔다는 걸로 말씀하시는 걸로 봐서….」

「음…. 그럼 기회는 지금 밖에 없다는 뜻이네?」

「무슨…. 읍!?」

 시즈는 갑자기 자신의 입술에 어떤 물체가 다가와 접촉하는 것에 놀라 몸을 뒤로

뺐다. 불행히도 뒤에는 벽이 버티고 그의 뒷걸음질을 가로막았고, 그는 입술에

닿는 한없는 부드러운 느낌에 몸서리칠 수 밖에 없었다.

「네, 네메이나?」

「왜 그래? 너 키스라도 한 것 같은 얼굴이네? 네 입술이 굉장히 이뻐서 한번 만져

본 것 뿐이야. 그렇게 빨게 지다니 나까지 무안해지잖아.」

 적응하기 힘든 짜증을 내고 들어가버리는 소녀의 뒷모습을 시즈는 방문이 닫히는

소리로 쫓으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 그럼 손가락 하나에 흥분을 하다니… 나… 욕구불만일까?」

 한편, 네메이나는…

「네메이나!? 무슨 일 있어요? 그렇게 얼굴이 빨갛다니, 혹시 열이라도 있는 거 아

니에요? 앗! 뜨겁네!」

「아, 아니에요!」

「아니긴요! 일행의 여행에 방해되고 싶지는 않겠죠? 누워요! 당. 장.」

 울상을 지으며 눕는 소녀는 이 모든 것이 밖에서 반쯤 넋을 잃은 채 식당으로 걸

음을 옮기고 있는 청년 때문이라고 규정했다.

「내일도 괴롭혀주겠어.」

「뭐라고요?」

「아, 아니에요!」

 그 때, 갑자기 여관 안이 추워짐을 느끼며 몸서리침과 동시에 발을 헛딛을 뻔한

시즈는 무한한 불안감에 몸을 떨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