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7화 (3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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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브드닌의 불길한 암시는 그대로 들어맞았다. 시즈는 간이 맞는 음식이 한 가지 

도 없다는 것에 아스틴 인들의 음식취향 자체를 의심했다. 

〈아스틴의 음식문화는 엽기적인 수준까지 발전했군.〉 

극한에 넘어서면 초월한다는 말이 꼭 어울리는, 음식의 맛을 초월한 요리들에 적 

응하는 것은 헤모와 보를레스 또한 무리였다. 하지만 식사를 주문하고 음식을 먹 

지 않는 것은 예의에 어긋났기에 그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새로운 형태로 미각을 

자극하는 요리들에 대해 하나하나 감상을 토로해야 했다. 

「혀가 맛을 보는 대신에 절규를 토하는 것 같군.」 

헤모는 그렇게 얼얼하기까지한 입 안의 상태를 공표했고, 나머지 둘도 받아드릴 

수 없는 충격에 자신을 내던진 것을 항의 하는 구강의 분노를 차디찬 맹물로 달 

랬다. 

「근데 보를레스 님은 기사였다면서요?」하고 물으며 시즈는 모른 척 수저를 내려 

놓았다. 헤모와 보를레스가 불꽃 튀기는 비난의 눈초리를 보냈지만 시즈는 꿋꿋하 

게 견뎌냈다. 그는 입과 뱃 속을 아귀지옥으로 만들 도구를 잡고 싶지 않았다. 

「예, 꽤 오래 전 이야기지요. 시즈 님은 이 곳, 벨루온을 보고 무엇을 느끼셨습니 

까?」 

「…….」 

보를레스 로만히데우그, 후세 사람들은 그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를 저명한 수학자이자, 전술연구가이며 동시에, 역

사가인 아버지의 뒤를 이은 마카호드 파우트시카 

의 서적에서 찾아내고 동경을 금치못한다. 

〈엘시크 중기에 혜성처럼 나타나서 너무 안정되어 발전이 없었던 엘시크 사회를 

마구 휘저었던 그는 서민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빌로아치 공작의 사위가문이자 

기사가문인 헤더우그가(家)의 장남으로 장래를 촉망받는 기사였다고 한다. 

「학문, 기술에 대한 연구와 개발은 어느 국가에서나 최우선시 되는 사항입니다. 벨 

루온은 아스틴이 국가 발전의 의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문화화를 시키는데 성 

공한 것을 드러낸 도시입니다. 

세계 각국의 나라들도 아스틴 만큼 성공했다고는 보기 힘들지만, 그 국가만의 환경과 불리한 조건을 개발하는 방향

으로 독자적인 발전을 이루었으며 계속 개발해 나가 

고 있지요. 

사막의 나라, 볼케아스는 국토의 대부분인 사막을 개간하기 위해서 수로기술을 비 

롯한 수계기술과 뜨거운 열기를 피하기 위한 지하건설기술이…, 실베니아는 작고 수 

많은 섬으로 이루어진 국가답게 섬들을 잇는 대지계 마법과 수상건축기술이 독창적 

으로 발달하여 있습니다. 

그에 비해 엘시크는 어느 것 하나 특정지을 만큼 독창적인 기술이나, 마법분야가 

없어요. 레이모하의 은총이 충만해서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가끔씩 튀어나오 

는 대륙적인 학자들의 출현은 오히려 엘시크를 자만으로 몰아넣어 흐르지 않는 물 

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로만히데우그는 당시 엘시크 사회의 모순을 정확히 판단 

하고 있었으며, 

「그 때 제게 감명을 준 것이 유레민트 님의 〈원시사회 서민문화의 발전양성〉라 

는 책이었죠. 유레민트 님은 거기에서 제도로 서민의 지위나 사회질서를 바꿀 지식 

을 막더라도, 서민의 삶의 질이 발전되는 것은 오히려 뒷받쳐줘야 한다는 논설을 

하셨지요. 결국 근본적으로 나라를 지탱하는 것은 서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그의 바탕적 사고는 현명한 엘프, 유레민트 하미렌의 사상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었. 실제로 보를레스는 유레민트의 추종자였으며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한 일 

도 있었다고 하나 사실인지는 알 수 없으며 그저 세간에 전해오는 흥미로운 야화 

일 뿐이다. - 물론 필자 또한 보를레스의 청혼을 유레민트가 어떻게 거절했는지 

알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다. - 

기사의 신분으로 평민의 각성을 요구해보지만 얼어붙은 엘시크 사회와, 이미 죽 

어버린 서민, 신민의식에 절망한 보를레스는 귀족의 탈을 대던지고 산적으로 전 

락하였으니, 필자는 폐단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회가 한 현자를 내친 현상이라고 

보고 싶다. 물론 그의 사상과 활동 자체는 엘시크의 전반적인 제도 개혁을 이끌 

어냈지만, 성공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가 없었다면 엘시크는 아직도 

중기의 문화와 기술에서 벗어나지 못한 도태된 국가로 쇠퇴했을 것은 분명한 사 

실이며, 그의 영향을 받은 많은 개혁가의 출현과 귀족들의 각성이야말로 보를레 

스 로만히데우스가 이룬 거대한 업적이라고 필자는 단호하게 평할 수 있다.〉 

「역시 엘시크는 돌이킬 수 없을만큼 썩어있었습니다. 귀족들은 안정된 사회를 

움직일 생각, 아마 추호도 하지 않고 있을 겁니다. 풍부하고 비옥한 토지, 인재 

개발이 없이도 튀어나오는 세계적인 석학, 엘시크는 축복받은 국가이 아니라 신 

이 인간의 본성을 시험하기 위한 실험국가일지도 모르지요. 축복은 도태를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보를레스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포크를 놓았다. 그야말로 교묘한 타이밍이었 

으므로 시즈와 헤모는 전혀 알아채지 못한 채 안쓰러운 심정에 젖어있었다. 목 

표를 달성한 보를레스는 마음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보를레스는 시즈들과 만나기 

까지의 여정을 대충대충 늘어놓은 후, 씨익 웃으며 시즈에게 눈신호를 보냈다. 

「솔직히 시즈 님이 제가 존경하는 유레민트 님을 비롯한 아스틴 네글로드의 초 

청을 받을 정도의 고명한 학자이신 줄은 몰랐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뭔가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은 들었지만 말이죠.」 

그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신상에 대해 말하지 않는 시즈 자신의 책임이었다. 보 

를레스는 벨루온에 들어서면서야 겉으로는 평범하게만 보이는 한 청년이 대륙의 

석학들이 골머리를 싸매도록 만든 인물이라는 것에 놀랄 수 있었던 것이다. 

「하핫, 그렇게 말씀하시니 부끄럽군요.」하며 청년은 의자에서 뱀이 허물벗듯 

이 매끈한 움직임으로 일어섰다. 이미 눈신호로 예약이 되어있던 보를레스 또 

한 그에 맞추어 몸을 일으켰고, 둘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네메이나가 유레민트 님의 저택에서 말썽이나 부리고 있지 않을런지 걱정이 

되는 군요. 함께 가시겠습니까?」 

「저 역시 식사 후가 무료함으로 가득찰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잘됐군요.」 

자신의 존재는 잊은 듯이 친근한 웃음을 나누며 식당을 나가는 그들을 헤모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도저히 일어설 수가 없었다. 손에 들린 

저주스런 도구를 시종들은 한결같이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사제는 얼마 전 

제플론에서의 잊은 사건이 아련히 떠올랐다. 잊을 수 없는 보랏빛 향기 속에 

묻혀진 고문용 독약…. 아마 장담하건데 눈 앞에 놓인 요리들은 그에 못지 않 

으리라. 

딸그랑! 왜 이 놈의 접시는 이토록 맑은 목소리로 울리는 것이냐! 헤모는 절 

규했다. 그는 다시 포크와 나이프를 들었다. 시종들과 주방장이 씨익하고 웃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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