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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하핫! 그대들도 당한 모양이군.」
「피브드닌은 이미 알고 계셨던 것 아닙니까?」
두텁지만 부드럽게 보이는 가운을 걸친 장년 남자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알맞
게 말린 담배가루를 꺼냈다.
「하시겠소?」
밖에서와는 달리 저택의 주인은 위엄을 갖춘 음성으로 보를레스에게 물으며 멋드
러지게 구부러진 담배대를 건넸다.
「아아, 있습니다. 오랫동안 쓰진 않았지만 정이 들어서….」
「그렇군요. 그럼, 위나! 가져와요.」
보를레스는 시녀가 건네는 담배를 두 손으로 받으며 황공한 표정을 지었다. 왠만
귀족들은 감히 냄새도 맡지 못할 고급 담배였기 때문이다.
「하아, 이것 참! 노벨우잔산 이로군요.」
「하핫…! 걱정마십시오. 토루반의 창고에 가면 꽤 많은 편이니까.」
「토우반이요!?」
「그는 드워프들의 현자니까요. 노벨우잔은 드워프들의 도시 아닙니까. 가끔씩
토우반은 고향으로 여행을 하곤 할 때마다 등에 담배를 한아름씩 지고 옵니다.」
그들이 의기투합하여 담뱃대를 열심히 빨고 있을 때, 시즈는 위나라고 불린 시녀
의 눈치를 조심스레 살피고 있었다. 피브드닌의 옆에 놓여있던 담뱃대를 입에 문
채 은근슬쩍 그녀가 든 담배함으로 손을 뻗었다.
「안돼!」 찰싹! 하는 피부마찰음이 홀 안에 두 장년이 내뿜는 담배연기와 함께
피어올랐다. 놀란 집주인과 보를레스가 고개를 돌리자 위나는 도끼눈을 하고는 소
리를 빽 질렀다.
「글쎄, 이 시종녀석이 주인님께서 아끼시는 담배에 손을 뻗지 뭐에요!」
그들은 담뱃대를 입에 문 채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붉게 부어오른 손등을 쓰다듬
는 시즈의 모습을 웃지 않을 수 없었다. 피브드닌은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기 위해
기묘한 표정을 지으며 더듬더듬 말했다.
「큭, 그, 그냥 주도록 해, 큭큭!」
「주인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셔도 아직 성년도 되지 못한 소년에게 담배를 권할 수
는 없어요!」
그녀는 한 마디할 때마다 시즈의 안색을 탈색시키는 능력을 지닌 듯 했다. 코방
귀를 흘리며 주방으로 들어가버리는 가증스런 뒷모습을 바라보며 시즈는 기필코
〈아저씨〉가 되겠다는 다짐을 했다.
「으흠! 그래, 자네들같은 귀빈에게 그런 괴기스런 요리가 나왔는지 궁금하겠지?」
시즈가 부루퉁한 표정으로 미약하게 끄덕이자 피브드닌은 담백한 담배를 쪼옥 빨
아드린 후 연기를 풀풀 흘리며 말을 이었다.
「요리를 전담하는 사람의 혀의 감각이 엉망이라서 그렇다네. 그녀는 시종장의 딸
인데 세계를 돌아다니며 요리와 음식을 연구했다더군. 하하하하…. 그러나 뭐 하
겠나. 그녀의 미각은 너무 강열한 음식들을 연구하는 동안 한계이상으로 혹사당해
서 이미 제대로 맛을 느끼지 못하는데…. 그녀는 아직도 그런 자신을 깨닫지 못하
고 있지. 귀빈관의 시종들을 비롯한 모든 사람이 감추고 있으니까. 덕분에 자네들
같은 귀빈들과 손님들이 희생되는 거지.」
「미인인가 보군요?」
개인을 위해서 다수를 희생시킨다는 것은 그 개인에게 다수보다 우선, 또는 이상
가는 의미가 있다는 뜻이라고 판단하는 시즈였다.
「대단하군. 어떻게 알았지?」
「사람들이 이유없는 희생을 할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학자 피브드닌은 그렇게 말하는 청년이 무미한 미소를 지으며 무언가를 비웃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섬뜩하게 등을 타고 내리는 무언가를 착각이라고 치부하
고 그는 충동적으로 담배를 강하게 빨아들였다.
「자네 말이 맞네. 엄청난 미인이지. 게다가 성격도 얼마 전에 내렸던 눈처럼 순
백하여 미움을 받을 수 없는 여인이야.」
「도대체 어느 정도의 미인이길래 귀빈들이 그런 오물덩어리를 먹고도 얌전히 있
는 것입니까?」
「세상에 그보다 미인은 존재하지 않을 걸세. 그녀를 만나본 사람들은 그녀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는 것이 세상
을 읽는 것보다 더 두렵다고 생각할 정도니까. 아!
지난 번에 〈엘로고라토의 전령〉과 함께 만났던 여인이라면 비견될 수 있지 않을
까 생각되는 군.」
「아릴 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피브드닌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며 시즈는 생각에 빠졌다. 자신의 가슴을 들
뜨게 했던 음성과 노래, 그녀 앞에서 그의 노래는 물 먹은 솜처럼 힘없고 늘어진
것에 불과했다.
〈그것이 진짜 음유시인일까?〉
보를레스는 회상 속으로 비치는 아릴의 영상에 넋이 나간 듯 했다. 도대체 얼마나
미인일까? 외모에 그리 관심이 없는 시즈였지만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때,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오는 것인가? 라던 누군가의 말이 모두의 머리 속에
위나의 음성과 함께 울렸다.
「주인님, 손님이 오셨습니다. 아릴이라고 하면 아실 것이라고 말씀하시는데요!?」
4부 - 꿈을 여행하는 이방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