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5화 (4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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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전 그저 20세라는 약관의 나이에 아스틴 네글로드, 원탁으로 추천된 

이를 한번 보고 싶었다는 것을 대단한 용건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만.」 

그의 입술은 연인의 귀에 속닥이는 것처럼 약동했을 뿐이지만 약간 떨어져 있 

는 시즈과 숨어있는 토루반들에게도 바로 옆에서 말한 것처럼 또렷한 음성으로 

들려왔다. 냉소와 장난기가 동시에 녹아있어 어느 것이 진실된 감정인지 알아챌 

수 가 없었다. 

〈알 수 없기에 불안하다.〉 

토루반의 머리 속에는 형체를 알 수 없는 섬뜩한 무언가가 들어찼다. 약간이지 

만 시즈가 뒤로 물러서는 것을 볼 때, 그 또한 같은 생각에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고작 그런 이유로 미행을 했다는 것은 믿기가 힘들군요.」 

「후후…. 그렇게 경계할 것은 없습니다. 타인들에게 얼굴을 보이는 것이 꺼림 

직하여 인적이 적은 곳까지 따라온 겁니다.」 

굵고 힘이 있으면서도 깨끗하게 공기를 울리는 목소리로 볼 때, 남자는 그리 나 

이가 들지 않았다고 시즈는 생각했다. 

「난 경계하고 있지 않습니다. 어서 용건을 말해보시죠?」 

「경계하고 있지 않다? 연장자의 경험을 얕보면 안됩니다. 그대가 아무리 뛰어난 

학식을 갖추고 있다고 하더라도 시간을 지나온 경험이라는 벽을 뛰어넘을 수는 

없어요. 노인들이 변화를 거부하는 고지식한 사고방식만 가지지 않았다면 세상 

젊은이들보다는 노인들이 이끌어갔을 겁니다.」 

「하고 싶은 말은 그게 다 입니까?」 

상대를 보고 있는 시간의 찰나가 흐를 수록 시즈는 불안감과 함께 두려움이 솟 

았다. 남자의 어투, 행동, 풍기는 분위기까지 주위에 서 있는 작은 집벽보다도 

거대하게 느껴졌다. 

미소가 짙어질 때마다 시즈는 압박감을 느끼며 뒤로 물러섰다. 침을 삼키는 그 

에게 남자는 재밌다는 듯이 경쾌한 리듬으로 다가왔다. 

「이제 한번만 더 침을 삼키면 6번째입니다. 물 대신 침을 마시고 사는 것은 아 

니겠지요? 게다가 심장 박동수가 너무 빨라요. 아! 지금 심장이 순간 움찔했네요 

. 내 말로 놀랐다면 사과하죠.」 

그 말에 놀란 것은 토루반이었다. 검사들 중에는 상대의 신체 내부적인 구조를 

해부한 것처럼 알 수 있는 감각을 가진 이들이 있고는 했다. 대부분 청각이나 촉 

각이 특수하게 발달된 그들은 매우 극소수였고, 엄청난 수련을 쌓은 것과 동일한 

뜻으로 해석할만큼 특출한 검사였다. 〈경우의 상황에서 내가 나서더라도 시즈는 

죽는다.〉 현명한 노인이자, 자긍심 높은 드워프는 언제나 천으로 둘둘 말아 등 

에 메고 있던 도끼의 손잡이를 잡으며 생각했다. 

「……. 당신이 날 죽이고 싶다면 언제든지 죽일 수 있다는 뜻이군요. 일깨워주 

셔서 감사합니다. 으음…. 이제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이렇게 저를 만나 하고 싶 

은 말이 뭐죠?」 

죽음을 앞에 둔 이들은 오히려 차분히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던가. 시즈는 

언젠가 들었던 말을 떠올리며 마음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특유의 온화한 미소 

가 그의 얼굴에 살아나자, 남자는 놀랍다는 듯 입이 동그랗게 벌어졌다. 잠시 말 

을 잇지 못하던 남자의 후드 아래에서 입술이 빙그레 초승달처럼 구브러졌다. 

「쿡쿡! 정말이군요. 놀라워요. 누구나 동경해 마지 않는 아스틴 네글로드의 원 

탁을 거절한 사람다워요.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대는 곧 엘시크로 돌아가 그 방대 

한 지식을 엘시크 사회전반에 적용시킬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이미 엘시크 

가 고인 채 썩어가는 물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겁니다.」 

시즈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나 고정된 귀족제도, 숨통을 막힌 채 그냥 살아가 

는 서민들, 이미 보를레스의 이야기를 들으며 엘시크의 앞날 정도는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난 묻고 싶습니다. 마땅찮은 이여…. 그대는 막힌 물이 흘러가게 하기 위해 폐 

단적인 귀족들을 뜯어고칠 것입니까, 백성들을 위한 직접적인 구제정책을 펼칠 

것 입니까?」 

「썩어가는 근본을 뜯어고치겠지요.」 

「그 말은?」 

「귀족을 부수겠습니다. 필요하다면 왕족도.」 「!!」 

숨어있던 두 인영의 눈이 토끼눈처럼 떠졌다. 경악에 어울리는 그 얼굴들의 눈 

에는 핏빨까지 돋아있었다. 남자와 여인의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후드가 격렬하 

게 흔들리는 것에 시즈는 만족했다. 남자는 흥분에 쌓여 몸을 부들거리며 뜨거운 

숨을 내뱉았다. 

「이거 예상 이상입니다. 그대는 정말로 〈마땅찮은 이〉로군요. 하지만 기억해 

두십시오. 다른 이들에게 그대는 이름 그대로 인식되어버릴 겁니다. 나 역시 다 

음 번에는…. 후후! 우리는 이만…. 손님이 더 계신 것 같아서」 

고개를 끄덕인 남자는 작게 박수를 치고 가볍게 몸을 돌렸다. 군데군데 기운 

더러운 로브가 찬란한 망토처럼 출렁거리며 남자를 따랐다. 여인 또한 물끄러미 

청년을 바라보았지만 무표정하게 고개를 돌렸다. 나지막한 여인의 아름다운 목 

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만나면 죽음을 각오하세요.」 

그들을 골목 귀통이가 삼켜버린 후에야 그 때까지의 긴장이 덩어리째 뭉친 한 

숨은 내뿜으며 주저앉은 청년은 히히히 하고 웃었다. 

「어서 나와요, 토루반.」 

머쓱하니 망설이며 고개를 빼꼼이 내민 두 사내가 한심스러워 양미간을 꾹꾹 

눌러댄 시즈, 미세하지만 일그러진 미소를 지었다. 

「당신도 용건이 있으세요?」 

귀빈관으로 걸어가며 토루반은 100 살은 연하인 청년에게 부끄러운지 데미노머 

의 그림자에 숨어 헛기침만 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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