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0화 (50/200)

                                              -50-

간밤에는 눈이 내려 세상을 수놓았고 아침 햇살이 흰 들판 위에 영롱히 비치는 

가운데 시즈는 꿈에서 깨어나지 못한 몽롱한 표정으로 여관의 계단에 앉아 있었 

다. 

「좋은 아침이네요. 간밤에는 편안하셨나요?」 

누구지? 그렇잖아도 깨어나기 힘든 아침에 꿈결같은 음성으로 속삭이는 것은… 

. 졸음을 떨치지 못한 모양세로 고개를 끄덕이자 감미로운 음성은 귀엽게 킥킥 

거렸다. 

「오랜 여행으로 아직도 피곤하신 것 같은데 좀더 주무세요.」 

도리도리도리. 웃음 소리와 함께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빗자루 소리에 맞추어 

시즈는 고개를 흔들었다. 개슴츠레하게 떠진 실눈 사이로 가냘픈 몸체의 여자가 

빗자루질을 멈추고 다가오는 모습이 들어왔다. 살짝 미소를 띄운 눈은 촉촉히 

호기심과 물기가 어려 영롱하니 희미한 빛이 아른거려 시즈는 작고 여려보이는 

그녀가 눈물이 많은 여인이라고 생각했다. 

「눈이 많이 내렸어요. 어젯밤엔 함박눈이 내리는 모습이 굉장히 아름다웠는데 

보셨나요?」 

「아니요. 보지 못했습니다. 어제는 일찍 잠들어서….」 

청년은 어제 저녁, 자신을 〈에레나〉라고 소개했던 여관의 마스코트(?)인 아 

름다운 여종업원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처음 봤을 때, 〈아름답다〉라기보다는 

〈귀엽다〉라는 생각이 첫인상으로 떠오를 정도로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여인은 

단정한 외모의 청년이 한참동안 시선을 떼지않자, 물결처럼 검푸른 머리카락과 

대조되도록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에레나」 

「아, 예!」 

「이름을 잘 불려보지 않은 모양이군요. 놀랄 것 없어요. 묻고 싶은 것이 있는 

데 대답해주시겠어요?」 

「물론이에요.」 

「이 곳은 전쟁에 시달라고 있나요?」 

「예? 무슨 말씀이세요?」 

「전쟁에 휩쓸린 마을처럼 너무 크다고 생각되어서요.」 

아직도 졸음을 깨지 못한 청년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던 에레나는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을 바라보고서야 그가 무엇을 가르키고 말하는 것인지 알게 되었다. 조는 

모습이 귀엽직한 귀족청년은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통나무 방책에 대해서 

묻고 있는 것이다. 

「아…! 으음, 전쟁?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도 할 수 있죠.」 

이해하기 힘들어서인지 졸음 때문인지 시즈가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마을 촌장 

의 집에서는 일단의 무리가 모여 회의를 하고 있었다. 

「어떻습니까? 이번에 온 기사들은 꽤 좋은 사람들 같던데….」 

「그래요. 어제 저녁은 매우 조용하면서도 즐겁게 식사를 마치더군요. 소개를 하 

는 것보니 상당히 거창한 신분의 귀족인 것 같은데 기사도를 제대로 아는 기사들 

입니다.」 

이른 아침부터 모인 사람들은 시즈 일행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대부 

분 어제 도착한 기사들에게 좋은 인상은 받은 듯 했다. 하지만 그것은 수행원들이 

권력주의가 난무하는 정치계나, 통상의 기사단에 귀속되지 않고 학자들을 호위하 

는 임무를 가진 네글로드의 호위 기사단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실패하면 우리는 더이상 용병이나 기사들을 불러올 재물이 남 

아있지 않습니다.」 

「괜찮을 겁니다. 모두 건장한 청년들이었고, 1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니까요.」 

「문제는 그들이 갑작스런 의뢰를 받아드리겠냐는 것입니다.」 

「호위하고 있다는 그 학자분께 부탁을 드려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어제 첫인상 

부터 매우 부드럽고, 태도도 공손하지 않았습니까.」 

「흠흠, 그럼 촌장인 내가 직접 말씀드려보도록 하지. 이번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놈을 없애야 돼.」 

마을 사람들이 우르르르 여관으로 몰려갈 무렵, 시즈 일행은 막 아침식사를 끝낸 

상태였다. 그들은 시즈와 입구 계단에 함께 앉아 눈을 가지고 장난치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여인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흑진구 같이 동글동글 커다 

란 눈동자를 깜빡이며 시즈의 농담아닌 농담에 함박웃음을 짓자, 허리까지 무거울 

듯 덮힌 풍성한 감청빛 머리가 가볍게 찰랑거리는 청순하게 느껴지는 여인이었다. 

「시즈는 정말 빠르군. 언제 저런 미인을 사귄거지? 정말 마땅찮은 녀석이야.」 

보를레스는 공적인 자리가 아닌 곳에서는 시즈를 털털한 친구처럼 대했는데,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는지 식당의 남자들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턱을 괸 채 음식 

을 구겨넣었다. 

그 때 갑자기 시즈가 여관을 문을 벌컥 열어재꼈다. 숙연하진 식당, 시즈는 영문 

도 모른 체 빈 테이블에 앉았다. 촌장 노인이 뒤따라와 앉았고 에레나는 서둘러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러니까 촌장님, 다시 말씀을 해보세요.」 

「예. 저희 마을 사람들은 국경에 가까운 지리적 이점을 이용해서 숙박업과 그로 

인한 부가적인 수입원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주수입은 저기 보이는 산의 

늪지에서 나오는 버섯을 팔아서 얻고 있습니다. 그런데 몇 해전부터 버섯이 특별 

할 정도로 많이 나오는 늪 근처에 괴물 하나가 나타났습니다. 그 괴물 때문에 버 

섯을 캐러간 사람들이 계속 다쳐서 점점 마을이 궁핍해져가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빈민촌이 되어버릴 겁니다. 제발 기사분들이 도와주십시오.」 

창 밖에서 고개를 내민 채 마을 사람들이 침을 꿀꺽 삼키며 시즈의 붉은 입술을 

긴장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고개를 깊숙이 숙인 촌장이 더욱 목을 꺽어 테이 

블 위에 머리를 대자, 시즈는 매우 곤혹스러웠다. 볼을 긁적이며 그는 사론과 수 

행원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라고 하시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넵킨으로 입 주위를 닦으며 사론은 얼굴을 찌푸렸다. 

「전혀 괜찮지 않습니다. 괴물이 무엇인지 알고는 있습니까?」 

「그, 그것은….」 

「아무 것도 모르는데 어떻게 싸우란 말입니까?」 

「그, 그것이….」 

「죄송합니다. 도와드릴 수 없습니다.」 

「다, 다른 분들도….」 

「저희도 사론의 생각과 같습니다. 정보가 없는 싸움은 개인적인 결투라도 무모 

하다고 저희는 배웠습니다. 무모한 전투를 하는 것은 기사의 조건에 벗어나는 

일이죠.」 

실망한 촌장이 머리를 힘없이 떨궜다. 그런데 음식을 나르던 에레나가 갑자기 

촌장과 시즈가 있는 테이블에 다가와 다소곳이 앉고 말했다. 

「잠깐만요, 제가 알아요.」 

「예? 아가씨께서?」 

「에레나?」 

이웃이던 촌장과 마을 사람들도 놀라는 가운데 에레나는 대수롭지 않은 미소를 

띄우고 테이블 위의 물을 조금 마셨다. 

「저도 얼마 전에 갑자기 돈이 필요해서 버섯을 캐러 갔었어요. 거기서 나무의 

밑둥을 보았죠. 기둥은 잘려나간 나무의 모양을 하고 있는데 정말 컸어요. 뿌리 

가 지네의 다리처럼 부드럽게 움직였는데 신기하게도 늪 주위의 일정이상 밖으 

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았죠. 안그랬다면 전 벌써 늪 속으로 가라 앉아있었을 

테니까요.」 

「후우…. 아마도 〈브로큰스도무〉인 것 같군요. 하지만 보통 나무 기둥 정도 

의 크기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처치해주실 겁니까?」 

대답은 들을 필요도 없는 것 같았다. 다들 잠시 방 안에 들어가더니 무장을 하 

고 나왔으니까…. 마을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는 가운데 보를레스가 어깨를 으 

쓱하고 말했다. 

「가끔은 무료함을 달랠 수 있는 일도 괜찮겠지. 모두들 안 그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