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2화 (5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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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로큰스도무의 줄기 공격은 덩치와는 다르게 엄청난 속도로 시즈들을 압박해

 왔다. 사람 허리만큼이나 굵은 두께가 속도있게 움직이는 것을 자르거나 타격을

 입히는 것은 대단한 고수가 아니면 꿈도 못꾸는 일이었기에 보를레스와 헤모같

 은 경험이 많은 실력자를 제외하고는 반격은 커녕, 급박하게 피하는 것에도 땀을

 비오듯이 흘렸다.

 「모두들 한 곳에 모여!」

 한 수행원의 외침에 한 곳에 모인 기사들은 힘을 모아서 한 가지에 집중공격을

 해서야 하나를 베어낼 수 있었다. 헤모와 보를레스도 몇 개의 잔가지를 잘라낸

 후 지쳤는지 등을 서로에게 기댄 채 방어에만 치중하고 있었다.

 단숨에 달려가서 몸통을 베어버리고 싶었지만 너무 굵어 검이 들어가다 부러져

 버릴 텐데다가 무릎까지 쌓인 눈은 도망치는 것조차 쉽지 않게 만들고 있었다.

 헤모와 보를레스, 그리고 수행원들의 눈은 절망으로 채색되어 갔다.

 「토루반은 여행을 많이 다녀보았으니까 몬스터들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시죠? 도

 감에 보면 많은 몬스터에 대해서 설명이 나와있는데, 실제로 몬스터들을 만난다

 면 어떤 것을 조심해야 할까요?」

 막 수학에 관하여 수업을 시작한 토루반은 갑자기 데미노머가 수업내용과는 관

 련이 없는 질문을 하자 당황했다. 황당한 시선으로 바라보니 왕자는 시즈가 읽

 다가 내던지고간 〈인디움프스 몬스터 생태학〉을 보물이라도 되는 양 품에 꼭

 안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제야 사건의 전모를 파악한 토루반은 자리에 없으면

 서도 자신의 수업을 방해하는 어리숙한 청년이 몬스터에게 맞아죽길 기원하면서

 분필을 내려놓았다. 정신이 모험을 떠난 왕자에게 수업은 해봤자 〈소 귀에 경

 읽기〉가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음…. 인디움프스의 생태학 시리즈는 정확한 편이지요.」

 「오차가 있다는 뜻이군요?」

 그건 수학 노트라고 울부짖고 싶었지만 이미 왕자는 들고 있던 공책을 펴고 생

 태학용으로 바꿔버린 모양이었다. 그제서야 토루반은 자신이 혼자서 여행을 다니

 는 동안 이 사춘기의 왕자는 얼마나 밖의 세상을 동경해왔을지 안쓰러웠다.

 「우선 슬라임이 그렇소. 사람들은 슬라임을 초보 모험자의 사냥용으로 착각하고

 있지만 슬라임은 절대로 한 두 마리씩 다니는 일이 없소. 무리를 이루어서 다니

 는 놈들은 평소에는 매우 느리지만 위협하는 존재가 나타나면 매우 재빠르게 상

 대를 덮치오. 몸 전체에 독점액이 흐르는 슬라임의 몸체에 닿기만 해도 사람은 금

 세 마비를 일으키기 때문에 공격을 당하면 매우 위험하지요.」

 「슬라임이 그렇게 무서운 존재입니까?」

 전혀 예상치 못한 몬스터였는지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데미노머는 들고 있던 책

 을 들추어봤다.

 「아마 서적들에는 별 거 아닌 놈으로 나와 있겠지요. 심지어는 갖은 신화와 전

 설에서도 용사들의 여행 초기의 실력향상을 위해 몸바쳐 헌신하는 몬스터로 전락

 한 존재요. 슬라임 이외에도 〈포이실 앤트〉라는 놈이 있소. 사람의 팔뚝만한

 놈으로 거대한 개미인데, 드래곤도 이 놈들이 있는 곳에는 둥지를 틀지 않는 놈

 이오.」

 「하지만… 신기하게도 분포 범위가 매우 극소수인데요?」

 「재미있는 일이지만 거대 개미를 잡아먹는 천적이 있기 때문이지.」

 「예? 드래곤도 피해가는 존재한테 천적이 있단 말입니까?」

 「간단한 존재요. 바로 우리의 손톱보다 작은 개미들이지요. 몸집이 클수록 강하

 다는 것을 완전히 무시하는 경우지요.」

 놀라운 표정을 지으며 책을 뒤지던 왕자는 한 페이지를 펴서 내밀었다.

 「이 몬스터는 어떤가요?」

 「브로큰스도무!? 전하는 이 몬스터가 강해보이오?」

 「아닌가요? 아무래도 의외의 몬스터들이 실제로 강한 것 같아서 약해보이는 걸로

 골랐는데요.」

 헤헤헤 하고 어설프게 웃으며 다시 페이지를 넘기는 데미노머의 팔을 잡고 책장

 을 고정시킨 토루반은 고개를 저었다.

 「제대로 골랐소. 임디움프스의 서적의 몇가지 오류 중에 들어가는 녀석이오. 여

 기보면 브로큰스도무는 한 아름의 기둥을 가진 나무가 몸통기둥이 잘려나가고 밑

 둥만 남아있는 모습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잘못된 기록이오. 브로큰스도무는 아무

 리 작은 것도 약 네 사람은 손을 맞잡아야 끌어안을 수 있을만큼 몸통이 거대하고

 약간 남아있는 줄기만해도 사람 허리둘레에 달하는 데다가 뿌리줄기는 강철처럼

 단단하지요. 주로 늪지나 온천 주위의 습기어린 지하동굴에 숨어있는데, 드워프들

 은 수십명이 달려들어야 해치울 수 있는 괴물 중의 괴물이오.」

 「대, 대단하군요. 약점 같은 것은 없나요?」

 「불이다! 불! 시즈! 어서 불의 마법을 쓰게. 모든 식물의 약점은 불이야! 모두

 시즈와 에레나 양을 보호해!」

 줄기가 모두 부러져나간 브로큰스도무가 늪 속의 뿌리를 꺼내들고 공격을 해오자

 전투력이 뛰어난 성투사도 속수무책이었다. 화급한 사제의 외침에 시즈가 정신을

 집중하기 위해 눈을 감자 일행은 그와 에레나를 둘러싸고 필사적으로 몬스터의 공

 격을 차단했다.

 「물론 있지만….」

 「혹시 불이 아닙니까? 식물들에게 불은 죽음의 상징이나 다름없잖아요?」

 흥분해서 상기된 얼굴로 질문하는 왕자에게 드워프의 현자는 세상은 무조건 법

 칙대로만 행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일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약간이라도 지능이 있는 생물이라면 자기의 천적을 피하기 위한 대비책을 마련

 하기 마련이오. 브로큰스도무는 언제나 평소에 늪이나 온천에 몸을 담그고 있다

 가 먹이를 공격하기 때문에 몸에는 항상 액체로 축축하오. 한번에 몸을 태워버릴

 만한 고열이라면 모르지만 액체를 증발시킨 후에 지름이 3m나 되는 거체를 한순

 간에 태워버릴 고열은 마법으로도 만들기 힘드오.」

 「그럼 약점이 뭐지요?」

 「차가운 물체요.」

 토루반은 눈을 찡긋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데미노머는 자신이 생각한 약점과는

 너무나 대조되는 것인지라 입을 떡하니 벌리고 놀라움을 표시했고, 익살기 가득

 한 조그만 현자는 열렬한 반응에 만족했다.

 「어제 내린 눈같이 차가운 물질 말이오. 물론 액체로 덮힌 거체에 닿으면 눈은

 녹아버리겠지만 액체의 온도는 분명 떨어질 거요. 브로큰스도무는 온도의 변화

 에 극도로 민감해서 약간만 온도가 내려가도 몸이 마비가 되어버리고 심하면 얼

 어죽어버리지요.」

 「그대의 의지는 춤, 열기가 가득한 끝없는 변화의 동작에 매료된 존재는 그들

 이 사라져가는지도 알지 못하더라! 타올라랏!」

 시즈의 언어와 의지는 강렬한 염화가 되었다. 수행원들을 비롯한 일행은 환호성

 을 질렀고, 거체의 나무괴물은 아무런 징조도 없이 갑자기 몸에서 솟아난 형체없

 는 붉은 것이 고통으로 죄어들자 시즈들은 도저히 듣지 못할 비명을 지르며 발버

 둥쳤다.

 미치면 잠재력을 사용할 수 있다던가. 발광하듯 내지른 공격은 지금까지와는 차

 원이 틀렸고, 보를레스는 뿌리를 능숙하게 막아내고도 힘에 못이겨 뒤로 날아가

 바위와 부딪혔다. 나무괴물은 몸을 태우고 있는 불이 지금까지 상대해온 마법사

 가 쏘아보낸 조그마한 불덩이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존재라고 깨닫고 발버둥치며

 늪으로 육중한 거체를 던졌다.

 「안돼! 막아!」

 치익! 부그그그! 절대로 춤을 멈추지 않을 것 같은 염화는 그저 늪의 물 몇방울

 만 증발시키고 사그라들었다. 다시 늪에서 튀어나온 몬스터는 거칠 것 없이 시즈

 일행에게 공격을 가했다.

 「갈비뼈가 두개 부러졌습니다.

 「빌어먹을! 어떻하면 좋지?」

 방금 전, 기사로 지낸 생애에도 보지 못한 위력의 마법을 보여준 청년이 다친 옆

 구리를 가차없이 주무르며 상태를 말하자 보를레스는 식은 땀이 등을 쓰다듬는 것

 을 느끼면서 위태롭게 방어하고 있는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꺄아아아악!」

 「에레나 양!」

 사론들이 무거운 뿌리공격에 뒤로 넘어진 사이 붙잡혀버린 여인은 허리를 묶고

 있는 두툼한 나무뿌리를 풀어보려고 발버둥쳤다. 가장 맛있어보이는 먹이를 잡았

 다고 생각했는지 긴 줄기들이 바람에 나풀대는 모양으로 흐늘거렸다.

 「안돼! 시, 싫어!」

 거칠게 부러져버린 것처럼 생긴 나무의 윗둥이 쩌억 갈라져 입을 벌렸다. 부러진

 흔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놈의 튀어나온 이빨이었던 것이다. 공포에 질린 여인은

 다리와 팔을 마구 휘저었고 그 발은 근처에 있던 나무의 작은 나뭇가지를 건들였

 다.

 톡. 나뭇가지에 쌓여있던 주먹만한 눈덩이가 브로큰스도무의 입 안으로 쏘옥 들

 어갔고 순간이지만 흐늘거리던 움직임이 딱 하고 멈췄다. 시즈의 머리 속에 섬뜩

 한 빛 한줄기가 스쳐지났다. 그의 시선은 다시금 흐늘거리는 거체를 지나서 근처

 에 버티고 있는 거대한 나무를 타고 올라갔다. 헤모도 같은 생각을 한 것일까?

 둘은 눈을 마주친 순간 태풍처럼 몸을 날렸다. 유연하면서도 바람처럼 빠른 움

 직임으로 거대한 나무를 걷어찼고, 헤모가 뒤를 이어 맹호처럼 달려들어 강철같

 은 어깨를 들이박았다.

 「하아앗!」

 다시 한번 헤모의 몸이 나무에 부딪혔고, 보들보들 부드러운 살결을 가진 먹이감

 을 입에 넣으려는 나무괴물의 머리로 나무 높은 곳에 얹혀있던 방대한 양의 눈덩

 이들이 쏟아져내렸다.

 콰르르르륵!

 「에스코트!」

 시즈는 동산만큼 쌓여있는 눈덩이 위로 빼꼼히 빠져나온 커다란 나무뿌리로 다

 가가 하얀 살결같은 눈으로 머리를 장식한 여인의 손을 잡아내렸다. 순식간에 일

 어난 일에 멍한 펭귄처럼 서있던 남정네들은 손을 들어올리고 기쁨에 찬 환호성

 을 질렀다.

 「우와아아아앗!」

 콰르르르르릉!

 그 때 마을에서 용사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던 촌장과 사람들은 보았다. 산

 마루에 싸여있던 많은 눈이 용사들이 열심히 싸우고 있을 장소를 중심으로 흘러

 내리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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