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6화 (56/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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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우…. 내 신세가 이게 뭐람?」 

두둥실 떠가는 구름마저 나를 비웃는 구나. 한탄과 함께 정처없이 

숲을 해메이면서 에밀레오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은 투덜거리며 

한숨을 푹푹 내뿜는 것 뿐이었다. 

「하하핫! 그래서 말야…. 난 지금부터 시즈를 찾아야할 것 같아.」 

「저도 함께….」 

「그, 그건 안돼! 저기 문 앞에서 서슬퍼렇게 노려보는 여자애가 

보이지? 시즈 님의 사모님이라고. 지금 남편이 실종됐다고 다그치 

시는데 다리를 죽도록 놀려서 찾아다주지 않으면 나는 해고될지도 

몰라.」 

「그, 그렇군요.」 

에밀레오가 허물을 수 십번을 벗는다고 해도 전력질주하는 기사를 

따라다닌다는 것은 무리였다. 보를레스의 말이 뜻하는 바를 쉽게 

이해한 소년은 땅 꺼지듯이 기대가 바닥으로 내려앉으며 함께 어깨 

도 축 늘어졌다. 

「아하하핫, 미안하게 됐네. 〈마땅찮은 시즈〉께 부탁을 드려서 

정식으로 초대를 하도록 할게. 좀 이해해주게.」 

그렇게 말한 후 쏨살같이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보를레스는 사라 

져 버렸다. 결국 에밀레오는 홀로 인형처럼 터벅이며 숲을 되돌아 

갈 수 밖에 없었다. 

「하긴…. 나 같은 애송이를 대륙적인 학자가 만나줄 리가 없지.」 

힘없이 걸음을 옮기던 소년는 규칙적으로 발을 떼던 동작을 곧 멈 

춰야 했다. 그의 귀에 미약하지만 맑은 음악소리가 들려왔던 것이 

다. 

「숲 속에서 음악회라도 열린 걸까?」 

실베니아와 아스틴의 변방 마을에서는 정기적으로 마을 음악회를 

여는 일이 다반사였고, 엘시크 또한 수가 매우 적었지만 그런 마을 

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런 것을 보아두는 것도 공부가 되겠지….」 

피식거린 중얼거림과는 다르게 그는 달렸다. 방금 전에 들려왔던 

음색은 너무도 맑아 침울했던 마음 속을 가볍게 씻어내고 소년의 

호기심을 자아내고 있었다. 

「헉! 헉!」 

수풀을 제치는 에밀레오의 시야에 처음으로 들어온 것은 꺄륵거리 

며 놀고 있는 어린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난잡하게 딩구는 아이들 

도, 어딘가를 향해 눈망울을 반짝이는 아이들도 크게 떠들어 허공 

에서 춤추는 음률을 방해하지는 않았다. 아니, 어쩌면 웃고 떠들고 

있지만 주위를 고요하게 만들어버리는 하나의 넬피앙 선율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몰랐다. 

에밀레오는 고개와 눈동자를 돌려 맑은 음률의 근원을 찾아내는 

순간, 몸이 경직되는 것을 느꼈다. 

〈소년〉은 감긴 듯이 살짝 떠진 눈매로 아늑하니 먼 곳을 바라보 

는 듯 했고, 흰 안개로 착각될 것같은 새하얀 로브에 싸여 바위에 

앉아 그는 길고 가는 손가락이 넬피앙의 현을 튕기고 리듬에 맞추어 

다리를 가볍게 흔들며 노래했다. 

구름이 맑게 개인 어느 날, 

꼬마는 여행을 떠났어요 

발에는 나막신, 머리엔 밀집모자 

서늘한 바람과 함께. 

풀들이 춤을 추며 손짓하네요. 

꼬마도 함께 춤춰요 

꽃들은 향기로 노래하네요. 

꼬마도 함께 노래를 부르죠. 

라랄라 라랄라라라 라랄라라라 

봄날의 싱그럼 속에… 

귀를 귀울이는 것만으로 행복한 리듬에 빠져버릴 듯한 노래에 에 

밀레오는 뛰노는 아이들 속에서 눈을 감았다. 웃음 소리와 겨울의 

막바지에서 조금씩 솟아나는 풀잎향기…. 넬피앙과 더불어 노래하 

는 〈소년〉 주위로 꽃이 만발하는 환상이 머리 속을 맴돌았다. 

「자아…. 한 줄로 서세요. 다 줄테니까, 그렇게 재촉하지 않아도 

되요.」 

음악이 끝난 후에도 에밀리오는 여운 속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소년〉은 아이들에게 과자를 조금씩 나누어주고 새로 등장한 15 

세 가량의 관객에게 걸어갔다. 관객은 송충이가 입 안으로 떨어지 

길 기다리는 긴 손가락 원숭이처럼 입을 헤 - 약간 벌리고 멍하니 

나무에 기대어 있었다. 

「음!?」 

시선을 느낀 에밀레오가 눈을 뜨자 소년은 반갑다는 듯 미소를 지 

었다. 어쩐지 다리부근이 따끔거린다는 생각을 하는 그에게 소년은 

약간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불개미들은 투쟁심이 대단해서 자신들의 집을 밞은 존재는 드래 

곤이라고 해도 내버려두지 않아요.」 

에밀레오는 어이가 없다는 듯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내가 아침에 

시뻘건 구두를 신고 나왔던가? 

「으아아앗!」 

몸을 구르고 발차기를 해봐도 개미들은 순식간에 허벅지를 지나 

허리를 타올랐다. 개미들의 관능적인 애무에 에밀레오는 자극이 지 

나친 모양인지, 연신 비명을 질러댔고 아이들은 무슨 일인가 눈이 

휘둥그레진 채 귀를 막았다. 

「개미는 땅과 불의 생물이랍니다. 개미들을 피할려면 물로 들어가 

는 게 좋을 거에요.」 

소년의 말이 무섭게 계곡을 흐르던 냇가에서는 풍덩! 하고 듣기만 

해도 시원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아직 겨울이 끝나지 않아 수영하 

는 사람의 몸이 약간 떨릴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소년과 아이들은 에 

밀레오의 멋진 다이빙 솜씨에 박수갈채를 보냈다. 다만 시간이 지나 

도 떠오르지 않는 잠수 실력에는 의문과 걱정을 보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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