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7화 (5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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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윽!」 

「상당히 따갑겠지만 붓기는 가라앉을 거에요.」 

개미독에 부풀어오른 에밀레오의 다리는 꼬치구이에 꽂혀 검붉게 

구어진 울퉁불퉁한 고기덩이를 연상케했다. 그렇다고 해서 먹음직 

스러워 군침이 고일만한 광경은 아니었지만 아이들은 신기한지 절 

규하는 에밀레오의 고통을 아랑곳하지 않고 쿡쿡 찔러보는데 정신 

이 팔려 있었다. 

「빌리, 부탁 좀 들어주겠어요? 저기 보이는 냇가에 가면 갈퀴처럼 

생긴…. 으음, 아니에요. 제가 직접 다녀오죠. 대신 이 형이 아파 

하니까 잘 보살펴주도록 해요.」 

「네 - 」 

활기찬 대답과 함께 서광이 비치는 눈동자. 에밀레오는 고양이에 

게 맡겨진 생선의 기분을 부피가 늘어난 다리 곳곳으로 절실히 느 

끼며 가까스로 눈물을 참았다. 

「이런! 난 이 소년을 장난감으로 준 게 아니에요. 그나저나 굉장 

히 아파하는 군요. ……」 

「에밀레오, 에밀레오 도플트.」 

「그래요. 에밀레오, 지금 바르려는 약초는 더 아플텐데 참아보도 

록 하세요.」 

한 움큼 쥐고 있는 온갖 풀들과, 비평과 신음 사이에서 갈등하는 

에밀레오를 번갈아 쳐다보던 소년은 평평한 돌 위에 가져온 약초를 

올려놓고 빻기 시작했다. 환자 다리에 골고루 뭉친 약초를 바르고 

빵을 넣어왔던 바구니에서 무명천을 꺼내 깔끔하게 감는 과정까지 

그의 손놀림은 능숙함을 넘어서 현란하기까지 했다. 

「넌 누구지? 약사인가?」 

의사와는 달리 약사는 큰 제한이 없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연령층 

이 낮았다.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약사소년은 과자가 자신의 

명함이라도 되는양 에밀레오의 손에 쥐어주며 물었다. 

「당신은 귀족인 것 같은데 세이탄에는 무슨 일입니까?」 

「사람을 찾아왔는데,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아. 마차를 탈 수 있는 

곳까지 좀 부축 좀 해주겠어?」 

「물론입니다.」 

자기보다도 작은 소년이 부축한다고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에밀레오는 갑자기 공중으로 떠오르는 듯한 느낌에 당황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제서야 자신의 한쪽 어깨를 받힌 소년의 

가냘픈 어깨가 탄력적인 근육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깨달은 에밀 

레오는 의외의 황당함과 함께 안도했다. 

「아름답지요?」 

약사 소년을 가로챘다는 이유로 아이들로부터 눈째림을 당한 에밀 

레오가 식은땀을 흘리며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가로 눈길을 돌리고 

과자를 오물거리자 숲의 정경에 취한 것이라고 생각한 소년이 물었 

다. 

「응. 왕자의 별궁이 자리잡을 만한 곳인걸. 아! 그리고 물어볼 것 

이 있는데, 아까 네가 부른 노래는 누구의 곡이지? 간소하면서도 

굉장히 편안한 노래던데!?」 

「좋았다니 다행입니다. 아이들에게 들려주려고 만든 곡이거든요.」 

겨울의 아쉬움과 봄날의 기대가 한데 어울어진 바람이 한 차례 두 

소년의 머리카락을 휘저었다. 흰 로브 때문인지 까만 윤기를 흘리 

며 까마귀의 목덜미 깃털을 연상시키는 약사 소년의 긴 머리칼이 

물결처럼 흔들리는 사이로 에밀레오의 놀라움에 찬 눈동자가 크게 

빛났다. 

「대단하잖아. 평민이 노래를 자작곡하다니, 게다가 조잡하긴 하지 

만 충분히 듣기 좋은 곡을…….」 

흑발의 소년은 에밀레오가 처음에는 간소하다고 하다가 평민이 만 

들었다는 말에 조잡하다고 말을 교묘하게 바꾸자 귀에 거슬렸고 덧 

남없이 갈무리된 눈썹이 급격하게 휘어졌다. 

「글쎄요. 듣기 안좋은 노래도 귀족이나, 영웅의 곡이라면 간소하 

고 평민의 곡은 괜찮은 곡도 조잡하다고 하는 귀족 자제분에게 듣 

기에는 과분한 칭찬이 아닌가 모르겠군요.」 

「뭐엇!? 이 팔 놔! 감히 평민 주제에 내게 설교를 하려는 거냐?」 

「앗! 피르트, 찾았어. 저기 계셔!」 

거칠게 팔을 뿌리치는 에밀레오와 갑자기 힘을 주고 있던 물체가 

사라지자 비틀거리며 뒷걸음질치는 흑발 소년. 그리고 둘을 발견하 

고 무슨 일인지 달려오는 갈색 머리의 소년과 소녀. 에밀레오는 갑 

자기 숲 그림자 사이에서 나타난 두 소년소녀를 보고 의외라는 듯 

말했다. 

「너희들은!?」 

「에밀레오잖아! 여기에는 무슨 일로… 아하! 네 녀석도 시즈 님 

을 만나뵈러 온 모양이구나?」 

「피르트, 에리나. 너희들 시즈 님이 세이탄에 계신지 알고 있었 

던 거냐?」 

「물론이지. 나와 에리나는 시즈 님께서 아스틴 네글로드에 초청 

받기 전부터 알고 있었는 걸.」 

두 귀족소년은 이전부터 가문끼리 긴밀한 교류를 주고 받아온 사 

이였고, 아버지들은 같은 기사동료로 절친했기 때문에 아들인 둘 

또한 친구의 관계였다. 그런 에밀레오가 죽마고우인 피르트의 약 

혼녀인 에리나를 모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사실이었다. 굳게 

손을 맞잡고 반가워하는 피르트와 에밀레오에게 미소를 짓던 에리 

나는 먹구름이 가득히 낀 흑발 소년의 모습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눈 앞에 드러난 표정을 해석하자면 분명히 화가 난 듯했으나, 그 

녀의 기억에 흑발 소년은 화를 내기는 커녕 기분이 나쁜 일도 웃 

음으로 넘겨버리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 때, 뜻하지 못한 만남의 기쁨을 나누던 에밀레오가 소년에게 

소리쳤다. 

「흥! 이제 네 부축따위는 필요없다! 꺼져버렷! 다시 내 눈에 보 

이면 그 때는 네 무례에 대한 댓가를 치르게 해주마.」 

그는 곧 자신의 말이 에리나와 피르트의 피부에서 핏기가 사라지 

는 현상을 초래하는 것에 신기함과 의아함을 함께 품어야 했다. 피 

르트가 붉게 충혈된 눈빛을 한 채 에밀레오를 거칠게 흔들었다. 

「너 그게 무슨 말이얏!?」 

「무슨 말이긴 저 녀석이 감히 내게 설교를 하려고 했다고, 감옥 

에 쳐넣어버리지 않은 걸 고맙게 여겨야…」 

〈그 동안 피르트 녀석이 많이 순약해졌군.〉이라고 생각하며 퉁 

명스러운 어조로 이어지던 에밀레오의 말은 에리나가 외치는 소리 

와 함께 끊어져버렸다. 

「기, 기다려주세요, 시즈 니임!」 

경련어린 목젖의 여운과 함께 말이다. 

이미 무례한 약사소년은 수풀 속으로 삼켜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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