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9화 (59/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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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도 함께 노래를 부르죠… 라랄라 라랄라라라…….」 

괴한은 협박(?)을 당해 끌려가는 주제에 봄을 기다리는 꽃봉우 

리를 들추어보며 콧노래까지 불러대는 젊은 학자의 행태에 산채 

로 골을 파먹히는 원숭이가 된 기분이었다. 

「크으… 고명한 학자선생, 다른 것은 몰라도 노래는 제발 그만 

둬 주겠소? 특히 〈라랄라 라랄라라라〉 부분이 반복될 때마다 

온몸에서 힘이 빠지는 게 이 귀여운 아가씨를 떨어뜨릴 것 같단 

말이오.」 

「저런! 다른 어떤 것보다도 곤란한 상황이군요. 그 소녀를 떨어 

뜨리면 날 위협할 인질이 사라지는 것이니, 될 수 있으면 안간 

힘을 내도록 해봐요. 젖 먹던 힘까지 낸다면 더 좋겠지요.」 

학자들이 모두 이렇게 골치아픈 존재들이라면 다시는 그들을 

건들지 않겠어. 괴한 사내는 한층 무겁게 느껴지는 에리나를 고 

쳐 안으며 다짐했다. 하지만 〈마땅찮은 시즈〉라고 불리는 소 

년 학자는 그가 노래를 방해하자 상당히 기분이 나빴는지 뒷짐 

을 지고 있던 손을 풀고 심장 부위를 꼭꼭 누르며 퉁명스레 말 

했다. 

「게다가 그 부분이 사람들에게 아이들같은 동심으로 되돌려보 

내는 회심적인 절정입니다. 그것이 싫다니, 슬프게도 그대는 순 

수함을 너무나 많이 잃어버린 거에요. 가슴 속의 투명한 감정을 

잘 떠올려보세요.」 

「후우……. 빌어먹을!」 

「맞아요. 순수함을 잃어버린 것은 빌어먹을 정도로 슬픈 일이 

지요.」 

괴한이 빌어먹을 정도로 슬퍼한다고 생각했는지 시즈는 기쁜 

표정을 지으며 콧노래를 불렀다. 자꾸 골치를 썩히느니 당장 들 

고 있던 물체를 내동댕이치고 시즈를 두들겨 기절시킨 후 대신 

들쳐메어버릴까 하고 사내는 나직하게 말했다. 

「뭔가 착각을 하는 모양이군. 내가 이 꼬마를 죽인다고 해서 

너를 못 데려가는 것은 아니야. 아까는 도망갈 수 있었을지 몰 

라도 지금은 혼자라는 것을 알아야지.」 

말을 끝맺자마자 그는 바람의 정령들이 지르는 비명소리를 듣 

고 놀라며 공중으로 솟구쳤다. 발이 딛고 있던 나뭇가지에서 떨 

어지자마자 나무는 엄청난 고통에 괴로워하는 병자처럼 격렬하 

게 나선형으로 꼬여나갔다. 

거대한 나무가 통째로 갈라지며 내는 소리는 마치 우뢰소리로 

착각할 정도였다. 우지지지직하며 연쇄적으로 터져나가는 나무 

조각들 사이로 어느 새인가 손을 뻗고 있는 소년의 미소는 은은 

했지만 강렬한 전율을 풍겼다. 

「그 소녀를 죽인다면 나를 데려갈 수 없어요. 생명줄을 잘 보 

듬어 안는 것이 좋을 겁니다.」 

「그래야 할 것 같군. 그대가 그 힘을 다시 한번 사용할 수 있 

다면 말이오.」 

발 밑을 휘감았던 바람은 괴한이 아니라 그가 딛고 있던 나무 

의 기둥을 노린 공격이었다. 진공의 칼날마저 일으키는 용권 - 

회오리 -가 만약 자신을 목표로 시전했다면 부족 제일의 권술을 

가진 그라고 해도 피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그 아이가 전해준 말이 아니었다면 상당히 당황할 수 밖에 없 

었겠군. 고작 20살인 어린 아이가 사용한 능력이라고는 보기 어 

려울 정도로 위력적이다.〉 

한편, 시즈는 시즈대로 담담한 괴한의 대답에 내심 곤란한 심 

정이었다. 무참히 조각난 나무의 파편을 보면서도 남의 집의 불 

구경하는 듯한 여유로움이라니……. 게다가 복면의 사내는 얄밉 

게도 그의 마법적 제약에 대해서 알고 있는 듯 했다. 

〈무리를 한다면 한번 더 의지를 발현할 수 있겠지만 무리한 댓 

가를 치르겠지.〉 

백발이 되는 것을 넘어서 앞도 보지 못하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끔찍한 고통은 제발 사양하고 싶은 시즈였다. 만약 다른 괴한이 

더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시즈는 해치지 않는다던 복면 사 

내의 말을 믿는 수 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담소를 하면서 쉬었으니 그만 가도록 할까?」 

「그러시죠.」 

「…….」 

「왜 그러십니까?」 

사내가 몸을 날리다가 말고 되돌아서자 시즈는 무슨 일인가 하 

여 물었다. 

〈높은 곳에 있어서 멀리 뭔가가 보이는 모양이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그는 곧 사내의 질문에 얼굴이 구겨졌 

다. 

「그 꼬마가 쫓아오고 있군. 이대로 둔다면 숲에서 길을 잃어 

버릴 거야. 괜찮겠어?」 

에밀레오가 미행하는 기척이 복면 사내의 감각에 걸려든 것이 

다. 자신의 의향을 묻는 질문에 시즈는 고개를 저었다.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이니 당신 마음대로 처리하시오.」 

「그래도 유약하게 생긴 주제에 제법 숨을 줄 아는 군. 능력이 

안 되면 멀리서 미행하는 게 정석이지.」 

「귀족 자제라고 하더군요. 기사를 아버지로 둔 모양이지요.」 

힐끔거리는 시선이 마치 비웃는 듯 하여 눈썹을 찡그리며 시즈 

가 빠르게 걸음을 옮기자 복면 사내도 어설픈 미행자에게는 관 

심이 없는지 나무 사이를 건너뛰기 시작했다. 

멀리서 조심스럽게 뒤를 밟던 에밀레오에게는 갑자기 두 사람 

이 사라지는 것으로 보였다. 이름있는 기사 아버지에게 이론과 

전술을 배운 덕에 은밀한 방법으로 자신있게 미행했지만 상대는 

그보다 몇 단계 위의 존재였다. 

「그래도 여기서 그만둘 수는 없어.」 

기사의 아들로서의 오기? 학자로서의 자존심? 무엇이 그를 이 

끄는 지는 상관없었다. 다만 〈마땅찮은 시즈〉라는 엘시크의 

대학자가 납치되는 것을 그만둘 수 없을 뿐. 소년은 공과 사를 

구분할 줄 아는 이였다. 

그는 이미 학자 이전에 기사로 완성된 자였을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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