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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너무 걱정할 필요 없다니까! 엘시크 1000년 역사의 마
지막 현자라고 불리는 시즈 세이서스라고 누가 감히 납치를 했
겠어. 설마 납치를 한다고 해서 시즈가 그냥 납치를 당할 녀석
도 아니잖아.」
「우응?」
「그래그래. 정말이니까 제발 울음 좀 그쳐줘.」
이것이다. 〈마땅찮은 시즈〉의 저택에서 주인을 시즈라고 단
언할 수 없는 이유가……. 1시간 가량이나 주위를 낱낱이 살펴
보았으나 시즈의 종적을 찾지 못하자 끝내 레소니는 남자아이는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서러움 가득한 눈물을 뚝뚝 흘려대기
시작했다. 그의 작은 군대는 빗자루와 걸레를 들고 형을 가장한
누나의 명령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며 날 섬뜩한 눈초리로 노려보
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그 때였다. 이 얄미운 녀석이 나타난
것은. 레소니의 눈물 분수가 소강상태에 들어서고 있었는데 갑
자기 녀석이 들이닥치며 외친 것이다.
「크, 큰일났어요, 보를레스 님. 에리나가 괴한에게 납치됐어요!
시즈 님도 에레나를 인질로 협박한 괴한을 따라 숲 속으로 들어
갔어요.」
정말 큰일이로군. 훌쩍이고 있던 레소니는 아예 엉엉 울어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그러진 입술과는 달리 축축이 젖은 눈빛은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이 후 아무래도 시즈의 곁에서 24시간 벗
어나지 못할 것 같군.
「내가 찾으러 가겠어요.」
굳은 결의로 뭉친 얼굴로 레소니는 요리칼을 잡았다. 그리고
난 한숨을 내쉬며 혼신의 힘을 다해 말렸다.
「내가 목숨을 걸고서라도 찾아올 테니까 레소니는 제발 집에
있어.」
「그 말은 찾아오지 못하면 들어오지 않겠다는 뜻이죠?」
그래. 그래서 결국 이렇게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난 얄궂은 운
명과도 같이 달려든 피르트에게 외쳤다.
「아직 멀었나?」
「조금 멀어요.」
이렇게 멀리까지 왔으니 주변을 아무리 찾아도 없는 게 당연하
지. 제발 내가 갈 때까지 무사히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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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다 왔소. 저기 피어오르는 연기가 보이오? 그 곳이 목적
지요.」
복면의 사내가 손가락으로 지적해주는 곳을 볼 수 없었다. 헐
떡거리는 숨을 진정시키느라 바닥에 고개를 처박다시피 하고 있
었기 때문이다. 산소고갈로 붉게 상기되었던 얼굴이 정상으로
돌아오자 시즈는 입을 열었다.
「학자들이 유약하다는 소리를 듣지도 못했습니까? 기껏 납치하
는 거라면 대상의 상태를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 아니오?」
그 말에 사내는 손가락을 내리고 시즈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녹색의 풀잎 향기가 느껴지는 눈빛이었다.
「물살 속에서 물고기의 움직임이 어떤지 아시오?」
「유연하겠지요. 빠르면서도….」
「내 아이가 그대의 움직임을 이렇게 평했소. 마치 물살을 타는
물고기처럼, 바람을 타는 새처럼, 학자 시즈의 동작은 자연적으
로 이상적인 동물들과 다르지 않다.」
「그대의 아이가 누구기에 나를 알고 있단 말입니까?」
「곧 알게 될 거요. 어서 갑시다. 모두들 기다리고 있소.」
자신이 요주의 인물로 떠오르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은 아스틴에서 〈또 다른 고향〉이 출간된 후의 일이었다.
이미 시즈는 아스틴에서 돌아와 느긋한, 일명 〈탱자탱자 라이
프〉을 즐기고 있을 무렵이었기 때문에 야성적으로 뛰어 다니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혹시라도 레소니의 작은 군대들에게 쫓겨
다니는 움직임을 이상적인 동물이라고 표현한 것이라면 시즈는
상태 파악능력이 극도로 떨어지는 아이를 둔 괴한에게 애도를
표하고 싶었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에는 통나무로 간소하게 만든 작은 오두
막들이 상당히 널찍한 공간을 사이에 두고 여기저기에 자리에
있었다. 마을에서는 국제적인 귀빈의 방문을 알고 있었는지 중
앙에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 서있었다.
「음… 여기가 어디죠? 당신은 누구에요?」
타이밍 좋게 목적지에 달해서야 깨어난 에리나가 주위를 두리
번거리다가 복면 사내에 귀에 대고 소리쳤다. 진공의 소용돌이
에도 꿈쩍하지 않던 괴한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는지 비틀거렸고
대신 시즈가 대답했다.
「에리나, 너무 걱정할 거 없어. 우린 납치를 당한 거 뿐이고,
에리나를 지고 있는 사람은 납치를 한 장본인이야. 그렇게 시끄
럽게 하면 다시 기절시켜서 어디론가 데려가버릴지도 모르니까
조금 소리를 낮추는 게 좋을 거야.」
대학자 시즈의 충고는 역시 씨가 잘 먹혀 들어갔다. 양갓집 규
수처럼 얌전해진 에리나의 모습에 복면의 사내는 시즈에게 존경
의 시선을 보내며 사람들의 무리로 걸음을 옮겼다.
「들꽃의 순수보다 벌새의 자유를 가진 인간이여, 어서 오시
게.」
무리에서 걸어나온 노인이 건넨 인사에 시즈는 그를 눈여겨 살
펴보았다. 흰 눈썹이 축 늘어져 신선을 상상하게 만드는 노인은
얇은 입술을 꾹 다물고 풍성한 눈썹 아래 감춰진 날카로운 눈으
로 초청객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눈썹 옆으로 뾰족한 귀
가 유연한 곡선을 이루며 길쭉하게 뻗어 나와있었다.
「거센 바람을 품고 자리를 지키는 갈대의 미덕을 피우는 엘프
여, 화려한 초대에 감사합니다.」
미소하는 시즈의 답변이 마음에 들었는지 노인은 장난기 가득
한 웃음소리로 히히힛하고 웃음을 터뜨렸고 주의깊게 시즈를 살
피던 다른 엘프들이 「과연!」하고 탄성을 지르며 고개를 끄덕
였다. 박수를 치며 즐거워하던 엘프의 노인은 시즈의 손을 잡고
거친 악수를 건네며 말했다.
「역시 그 아이가 격찬을 할 만하지 않은가? 내 이럴 줄 알았다
니까. 이보게, 시즈 난 이 마을의 족장인 베이란트 라고 하네.
내가 그대를 초대했지. 아! 꼬마 숙녀 분도 잘 왔어. 비록 불청
객이긴 하지만 말이야. 이 쪽으로 오시게.」
시즈와 에리나를 한 손에 한 명씩 잡고 리얼한 표정과 큰 동작
까지 곁들이며 호들갑스럽게 이끄는 모습은 매우 익살스러웠다.
숲의 귀족이라고 일컬어지는 엘프에게 동경을 품고 있던 에리나
는 베이란트의 모습 때문에 정신적 충격이 상당한 모양이었다.
그녀는 도저히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보통 엘프들은 차분하고 냉정하지 않나요?」
「그런 편견은 잘못된 것이지. 그런 편견 때문에 대부분의 엘프
노인네들은 어울리지도 않는 분위기를 잡느라 골치가 썩어서 스
트레스성 질환으로 수명을 제대로 누리지를 못하는 거야.」
그에게 오래사는 문제는 굉장히 심각한 사항인 듯 했다. 침중
한 얼굴로 턱을 쓰다듬으며 내뱉는 열기 가득찬 어조에 에리나
는 웃음을 터뜨렸다.
「족장님,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이런! 자네가 엘프인가? 족장이라고 부르게!? 이름은 장난으
로 가르쳐준 게 아니란 말이네.」
「죄송합니다, 베이란트. 말씀하는 것에서 의구심이 생겨서 그런
데요. 아까 저희들을 데려온 엘프도 그렇고, 그 아이란 누구를
말하는 것입니까?」
「하윌이 말해주지 않았나 보군. 몹쓸 엘프 같으니, 하윌! 이리
좀 와보게.」
하윌이라고 불린 엘프는 막 복면을 벗고 머리를 감고 있었는데
베이란트가 부르자 물이 묻은 금색의 머리칼을 닦지도 않고 걸
어왔다. 20대의 차가운 귀공자같은 외모를 하고 있는 그가 큰
키에도 불구하고 허리까지 오는 긴 금발을 흔들며 다가오자, 베
이란트는 하윌의 엉덩이를 탁탁 두들기며 웃어댔다.
「이보게, 하윌, 이보게 하윌, 어서 소개 좀 해보게나.」
소개를 하지 않으면 영원히 엉덩이가 두들기고 있을 듯한 족장
의 기세에 하윌은 마지못해하며 입을 열었다.
「하윌 노일핀우드 필레니언.」
「아스틴에 있는 유레민트 노일핀우드 필레니언의 아버지라네.
얼굴은 저래도 나이는 278살의 장로지. 아니! 시즈, 뭘 그리 놀
라나? 어서 들어가세.」
「예? 예.」
대답을 하면서도 시즈의 동공은 풀린 채 걸음을 옮기고 있었
다. 기계처럼 걸어가는 그의 모습을 보며 하윌은 얼얼해진 엉덩
이를 무심히 문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