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재능은 사람을 보고 찾아오지 않는다.
곳곳에 자리한 호수들로 보석처럼 햇살에 반짝이는 멜라누 숲,
깊숙한 곳에는 예전부터 희귀한 생물들이 생활하고 있었다. 그
렇기에 왕궁의 유희를 위한 사냥터에서 서민들의 삶에 없어서는
안될 온갖 식물과 물질의 채취 터로 각광을 받아왔다. 하지만
사람들이 아는 멜라누 숲은 일부분에 미칠 뿐이었다. 누구는 전
설 속의 드래곤이 산다고 했고, 혹자는 엘프의 마을이 숲 어딘
가에 감추어져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들은 예전부
터 멜라누 숲에서 살아왔던 엘프들 일까? 시즈의 호기심은 곧
눈동자에 응집되어 흑요석의 반짝임처럼 아른거렸다.
「아냐, 아냐. 멜라누 숲에는 엘프가 살고 있지 않아. 우리 부족
은 이제 막 이동을 해온 것 뿐이니까.」
「예?」
「자네가 궁금해하는 것 같아서 말해봤네. 아니었다면 말고…
….」
시즈는 자신이 그렇게 티나는 표정을 지었나 하고 생각하며 얼
굴을 어루만졌다.
「그렇게 놀라지 마세요. 베이란트 할아버지는 누구든 놀라게
하는 걸 즐기신다고요.」
「예……. 이런 일이 자주 있군요?」
「응! 아주 많이!」
그렇다면 우연이 아니라는 거군!? 대단해. 인간으로 치면 10살
이 넘었을 엘프 소녀의 말에 그는 내심 혀르르 내둘렀다. 시즈
는 모르고 있었지만 베이란트는 노일핀우드 엘프들의 숨겨진 현
자였다. 수 많은 세월동안 끊임없이 변해가는 세상과 사람을 유
심히 관찰해오지 않았다면 쉽게 가질 수 없는 능력이었다. 물론
영혼의 눈가림을 푼다는 예지력에 비하면 그리 대단하지는 않았
지만 얻기는 더욱 어려웠으므로 시즈에게 베이란트의 굽은 뒷모
습에 참을 수 없는 흠모를 느꼈다.
「자아……! 여기가 내 집이야. 넓지?」
「네…에.」
「그, 그렇군요.」
시즈와 에리나가 간신히 대답하는 게 즐거운지 베이란트는 넓
은 방 안을 뛰어들어가 테이블에 털썩 앉았다.
「여전히 좁군. 몸이 부딪히는 게…….」
「무슨 소리인가, 하윌! 시즈와 꼬마아가씨는 넓다고 하지 않는
가. 자네랑 시즈 군이 몇 피트씩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고, 에이
잉!」
「하, 하지만 베이란…….」
「됐네, 이 사람아! 내 집에 들어오기 싫거든 나가게나.」
그 말을 들은 하윌은 망설임없이 몸을 돌렸다. 시즈와 에리나
를 비롯한 다른 장로들도 몸을 돌리고 싶었지만 베이란트의 눈
빛은 살벌함이 오리하르콘이 박힌 미스릴 검보다도 더 할 것 같
았다. 결국 그들은 넓긴 하지만 낮은 천장에 허리를 숙이고 안
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몸을 낮추는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얼굴을 일그
러뜨리고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엘프의 촌장은 손뼉을 치며 자랑
스럽게 말한 것이다.
「자자! 다들 앉게나. 이번에 테이블도 좀 내게 맞게 낮춰봤지.
아주 편안하네.」
시즈는 토루반이 봤으면 기뻐했을 듯한 의자에 엉덩이를 걸쳤
다. 엘프 소년과 베이란트를 제외하고는 모두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는 게 한 눈에 느껴졌지만 예리한 관찰력으로 오랜 세월을
살아온 노일핀우드 엘프의 숨겨진 현자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얼굴로 진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제 몸도 마음도 편안하니,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그 전에
특별한 손님에게 대접한 차를 가져오지.」
사람들은 열광적으로 찬성했다. 그들은 넓고 편안하기 그지 없
는 베이란트의 집에서는 심정 안정이 이루어지지 않는 모양이었
다. 하지만 오늘의 초대인원이 많아서인지 차를 준비하는 시간
이 꽤나 길었다. 지루했는지 함께 들어온 엘프 소녀- 아마도 베
이란트의 손녀가 아닌가 싶었다. -안절부절했다..
「저기요……. 시즈는 유레민트 님을 만나봤지요?」
소녀의 물음에 시즈는 가볍게 끄덕였다. 하지만 소녀의 입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어떠신 분이세요? 분명히 아름답고 청순하고 가련하고 섹시한
미모에 자상하고 상냥하면서도 활발한 성격을 겸비하신 …(주절
주절)… 분이죠?」
「그, 그럼요!」
상당히 노골적인 표현으로 수식하는 군. 시즈는 그녀의 입에서
순식간에 쏟아져나오는 수식어의 완성사전을 인식, 해석하는 것
으로도 뇌가 포화상태에 이를 지경이었으므로 황급히 대답했다.
마치 상관에 명령에 대답하는 하급병사로 보일 정도였다.
「엘프들은 우상이 없다고 들었는데…….」
「전체적인 성향으로 개개인을 파악해서는 안되지. 유레민트는
훌륭한 노일핀우드의 엘프라네.. 그 아이가 인간과 어울리는 희
생을 하기는 했지만 성향이나, 그 심성이 바뀌지는 않았어. 덕분
에 우리도 편히 살아온거야.」
에리나가 유레민트의 엄청난 인기에 놀라는 동안 한 사람 앞에
하나의 찻잔을 놓은 베이란트는 엘프 소녀의 연보라빛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헌데… 그 아이가 너무 활약을 하는 바람에 엘프의 마을 역사
에 있어 유례없는 우상이 나와버렸단 말이야. 덕분에 어린 엘프
들이 인간들에 대한 경계심도 많이 사라졌어. 시즈 자네로서는
잘된 일이지. 만약 100년 전쯤에만 왔었어도, 자네는 꼬치에 꿰
어 불 속에 몸을 돌리는 도마뱀보다 더 잔인하게 죽었을 거
야.」
「핫하하! 그래도 베이란트가 있었으니 괜찮았을 겁니다.」
「그 친구가 아부도 수준급이로군. 내 오늘 자네를 불 속에 돌
리진 않을테니 걱정말게. 우선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꼬마아
가씨에게는 별로 유익한 얘기가 아니야. 차도 마셨으니 니아레
와 함께 나가서 놀는 게 좋겠어. 혹시 아는 사람이 올지도 모르
니까…….」
「아니! 이런 깊은 숲 엘프의 마을에 무슨 아는 사람이 찾아
온…….」
에리나는 순간 언제나 붙어 다니던 소년이 떠올랐다. 찾아서
오지 않았을까? 시즈가 그녀에게 미소를 지으며 재촉했다.
「베이란트의 말이 맞아요. 어서 가보세요. 쓸데없는 다툼이 될
지도 모릅니다.」
시즈의 그 말은 에리나의 왕자님이 아닌 자신의 수호자를 생각
하고 한 말이었다. 사려가 깊은 듯하면서도 극적인 상황에서는
뇌 속이 텅 비어버리는 보를레스를 모를 그가 아니었다. 그리고
시즈의 예상은 벗어나지 않았다.
「여기란 말이지?」
「예!」
소년의 힘찬 대답에 보를레스는 멀리 연기가 피어오르는 마을
을 바라보았다. 마을의 배치를 보건데 저런 식으로 집들을 짓는
종족은 대부분 엘프였다.
〈엘프들은 인간들의 눈에 띄기를 싫어할 텐데…….〉
그런데 인간의 마을이 얼마 떨어지지 않은 숲에서 보란 듯이
굴뚝연기를 피우다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보를레스
는 그것보다 더 고심해야 할 일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으므로
급히 몸을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