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2화 (62/200)

                                    -62- 사람을 움직이는 법 (1)

                                               9회

「예에에?」 

「허허헛. 젊은 친구가 말귀가 어둡군. 엘프라면 귓병에 걸렸다 

고 해도 들렸을 듯한 큰 소리였거늘……. 지금 이 곳, 즉 이 숲 

을 엘프보호구역, 즉 인간들의 불가침 영역으로 만들어 달라 이 

말일세.」 

「자, 잠깐만요.」 

쿠웅! 손을 내저으며 벌떡 일어선 시즈는 넓은(?) 건물의 구조 

를 망각한 대가를 머리 정수리의 볼록한 혹으로 대신했다. 천장 

에 부딪힌 머리를 감싸쥐고 고뇌하는 그의 모습에 베이란트는 

박장대소했다. 

「그대에 대한 소문을 듣기를 참으로 현인이라고 들었네만, 내 

보기에는 굉장히 유쾌한 이로군. 꼭 광대를 보는 것 같지 않은 

가.」 

「크윽! 엘프 보호구역이라니요? 그걸 저보고 해달라는 말씀이 

십니까?」 

「그래. 자네라면 할 수 있을 거야. 유레민트가 그렇게 말했으니 

틀림없어.」 

시즈는 현재 만약 레소니가 봤다면 당장 침대 위에 눕힌 후 커 

다란 얼음주머니를 이마에 얹혀 놓을만큼 골치아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도대체 유레민트 님이 저를 어떻게 설명하신 거죠?」 

베이란트는 허리춤에 꽂아두었던 양피지를 꺼내 펼쳐 보이며 

말했다. 

「설명은 무슨……. 그저 보고서 형식으로 국제 규격 크기에 맞 

눈 양피지 가득히 자네의 외모와 성격, 특기 ,취미를 비롯하여 

친우관계와, 사람들과의 관계, 약점 등과 사용하는 마법의 특성 

정도만 기록해놓았을 뿐이지.」 

무서운 여자였군. 청순가련하게만 느껴지던 유레민트의 미소가 

어쩐지 가증스럽고 섬뜩한, 마치 총각을 노리는 처녀귀신으로 시 

즈의 머리 속에 각인되어 갔다. 베이란트는 멈추지 않고 인간청 

년에게 일격을 가했다. 

「오……. 여기에 보면 다른 이를 생각하는 마음이 깊으나, 의외 

로 게을러 움직이는 걸 싫어하니 인질을 잡아서 협박을 하라고 

쓰여있지 않나. 내 이래서 자네 뿐이 아니라, 저 꼬마 아가씨도 

함께 데려오라고 한 게지.」 

「협박이라면?」 

「시즈, 자네는 엘프들이 성격이 좋다고 너무 되묻는 군. 말했잖 

은가. 자네가 100년만 일찍 왔으면 도마뱀구이보다 처참하게 없 

앴을 거라고. 뭐 지금이라고 못할 건 없지. 자네를 해친다면 귀 

찮은 일이 많이 생기겠지만 자네 주위의 관계자들을 하나씩 도 

마뱀으로 만드는 게 어려운 건 아니야. 아! 자네의 절대적인 마 

법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네. 하지만 하윌이 말하길 이미 한번 

사용한 것 같더군. 유레민트의 보고서에 따르면 생각해볼 때, 다 

시 그런 위력의 마법을 쓰면 후유증이 좀 오리라고 생각하네.」 

엘프가 이렇게 위험한 종족이었나? 시즈는 들어온 바와 너무나 

틀린 엘프, 그것도 그들의 인자한 현자의 모습에 차가워진 침만 

목뒤로 넘기며 입술을 씹었다. 

「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오.」 

꼭 가야할 갈림길에 섰다면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일까? 그것은 

어느 쪽이 현명한 선택인지 판단하는 생각과 고민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시되는 조건은 고민할 시간이다. 누군가와 대화나 

협상을 나눔에 있어서 시간을 끄는 것은 상대에게 넘어간 주도 

권, 또는 흐름을 멈춤과 동시에 흐트러진 자신의 정신이나 마음 

을 바로잡는 기본적인 활로였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시즈는 

쉽게 손해를 보지 않는 화법을 알고 있는 이였다. 

「시간이라… 주지. 단, 인간들이 이 마을에서 오르는 연기에 의 

심을 품고 몰려오기 전에 생각을 마쳐주길 바라네. 다들 나가서 

기다립시다.」 

〈우선은 보를레스가 올 때까지 기다려보는 게 좋겠어.〉 

그러면서도 시즈는 계략이라고 말할만한 생각을 떠올려보려 노 

력했다. 장로들와 장년 엘프들이 허리를 숙이고 밖으로 나가려는 

때였다.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온 엘프가 급한 얼굴로……. 

「촌장님! …우억! 와득!」 

천장에 머리를 박았다. 

〈깨물었군.〉 

한 눈에도 머리와 턱을 감싸쥐는 게 그가 피를 음미하고 있을 

거라는 게 느껴졌다. 눈물을 찔끔되던 엘프 청년은 안쓰러움과 

재촉이 담긴 베이란트의 시선에 아픈 혀를 움직였다. 

「아으… 치이자가 이으니다아. 잉강잉니다아.」 

「침입자가! 하윌은 뭘하고 있었길래 인간이 침입하는 걸 놔두 

었지?」 

「하잉…….」 

「그냥 직접 보는 게 낫겠군. 누가 로포브를 치료해주시게. 시즈, 

그대의 일행이오?」 

「아마도 그럴 겁니다.」 

시즈와 베이란트가 넓고 낮은 저택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자 기 

다리고 있었는지 에리나가 시즈의 옷자락을 잡아끌었다. 

「시즈 님, 빨리요. 보를레스 님이!」 

「역시 일행이 맞는 모양이군. 꼬마아가씨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아무도 다치진 않을 겁니다.」 

자신을 대답하여 베이란트가 대답하자 시즈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히 그의 눈에도 마을 정면의 공터에서 건장한 체 

격의 두 남자가 격투를 벌이는 모습이 들어왔지만 그리 위험하 

게 보이지는 않았던 것이다. 

「보를레스가 그렇게 만만한 실력의 소유자는 아닐텐데……. 하 

윌 씨가 어느 정도의 실력자인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베이란 

트?」 

「그가 권술을 익힌지 올해로 꼭 250년 되었다네.」 

「강하군요.」 

「그래. 강하지. 아마 대륙의 권술가 중 가장 강할 걸세.」 

소년의 이름은 에밀레오. 그는 지금 눈 앞에서 펼쳐지는 싸움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쉬익쉬익하고 뱀처럼 검이 공중을 

가르고 주먹이 공간을 때린다. 보를레스는 근위기사 중에 특출한 

실력을 가진 그의 아버지가 인정할 정도의 실력자였는데도 날카 

롭게 생긴 엘프 청년은 전혀 밀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보를 

레스가 힘겨워했다. 처음에는 주먹과 발을 피하며 검을 내질렀지 

만 점점 피하기보다는 막는 것에 치중했다. 

한편, 보를레스는 엘프의 강렬한 공격이 그의 굵직한 팔둑에 와 

부딪힐 때마다 뼈 속까지 저려옴에 조금씩 뒤로 물러섰다. 

〈이러다가는 검을 잡고 있을 힘도 남아있지 않겠어.〉 

초조해진 보를레스의 움직임이 경직과 함께 틈이 점점 늘어났 

다. 섬광이 일 듯 거대한 검이 기합소리와 함게 곧게 뻗어 나갔 

다. 이번에도 역시 가볍게 검면을 손바닥으로 쳐올리는 엘프. 

〈어디서 이런 괴물이 나온 거지?〉 

그 엘프는 힘도 엄청나서 종족을 오거로 생각해보는 게 더욱 

합당하게 인식될 것 같았다. 흥분해버린 보를레스는 자신이 그의 

공격권 안에 들어와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하윌의 주먹은 

강철만큼이나 단단하여 서로 부딪힐 때마다 금속음이 거세게 울 

려퍼졌다. 아마도 그의 몸을 보호하는 어떤 에너지가 있는 모양 

이었다. 

「헛!?」 

갑자기 하윌의 움직임이 변했다. 주먹이 우쾌같은 파공성을 내 

며 쏘아져오자 보를레스는 헛바람을 삼키면서 가까스로 막았지 

만 연신 뒤로 강하게 밀리는 몸을 가눠야 했다. 비틀거리면서 그 

는 하윌이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봐주지 

않는다면 이렇게 상대의 자세가 흐트러진 기회를 놓칠 리가 없 

었다. 

「자신이 있다는 건가?」 

인간에게 오기가 있다는 건 마(魔)가 준 어리석음일까, 신이 준 

또다른 능력일까? 보를레스에게 그런 건 어찌됐든 좋을 것이다. 

그는 분명히 오기와 자존심을 검술에 (+) 작용으로 만들 정신력 

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하아아압!」 

후우우우웅! 

인간은 모든 종족 중에서 가장 감정에 치우친 존재였기에 하나 

의 감정이 극도화가 되었을 때 일으키는 변수 또한 가장 크다. 

하윌은 보를레스의 검에 실린 기운에서 인간이라는 종족의 특성 

을 확연히 느꼈다. 하지만… 

「무언가에 대한 마스터의 칭호를 얻는다는 건 의외의 변수에 

대해서도 이미 통달하고 있다는 뜻이지.」 

베이란트는 가볍게 턱을 쓰다듬으며 보를레스의 복부를 주먹으 

로 올려치는 하윌의 모습에 미소지었다. 

「커어헉!」 

보를레스는 고작(?) 한번 명치에 주먹이 슬쩍 파고든 것에 숨 

이 막히고 다리에 힘이 풀리는 현상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명치는 사람의 움직임을 무뎌지게 함은 물론 생명까지 뺏을 수 

있는 급소 중에 급소였다. 하지만 그렇기에 기사들을 비롯한 검 

사와, 뭇 전투가들에게 있어 더욱 단련하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제법이군. 검술은 별 볼일 없지만……. 그걸 맞고 쓰러지지 않 

다니, 맷집 하나는 氣를 두른 마스터 수준이로군.」 

「쿨럭쿨럭! 치, 칭찬 고맙군, 쿨럭! 도대체 어떤 기술이지?」 

「일어서라. 말을 하는 걸 보니 아직 장에 힘이 미치지는 않았 

군. 아니 회복력이 빠른 건가? 자네가 맞은 주먹은 氣로서 충격 

의 표면적을 넓히는 기술이지. 명치에 맞았지만 상반신 전체에 

충격이 흡수되었을 거다.」 

보를레스는 어렸을 적 높은데서 떨어지거나 해서 가슴전체에 

충격을 받았을 때 숨이 막혔던 것이 생각났다. 하윌은 가볍게 시 

전했지만 아마도 대단한 기술이 틀림없으리라. 

「어느 정도 경지의 권경이지?」 

「기본적인 기술이지만 마지막 권경(卷境)이다.. 자아… 일어서 

라.」 

하윌은 끝을 봐야겠다는 어조로 말하며 힘줄이 돋은 주먹을 앞 

으로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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