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4화 (64/200)

                                    -64- 사람을 움직이는 법 (1)

「어때요?」 

기대에 찬 레소니의 물음에 따라 아이들의 긴장어린 시선도 시 

즈의 입을 주시하고 있었다. 시즈는 진지한 표정으로 입 속에 

담긴 무언가를 오물거리며 음미하다가 한 마디를 토했다. 

「맛있는데!?」 

「우와앗!」 

그의 평가에 음식을 향해 달려드는 아이들. 그 모습을 만족스 

럽게 지켜보며 시즈는 그윽한 음성으로 레소니에게 칭찬을 건넸 

다. 

「대단한 걸!? 정말 실력이 많이 늘었어.」 

「헤헤……. 뭘요…….」 

레소니는 행복하게 웃으며 스푼을 들었다. 그녀가 모두의 입에 

맞는 요리를 하게 된 것은 요근래 들어서야 가능해진 일이었다. 

그 동안 사람의 입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희생된 많은 생물들의 

억울한 넋이 지천을 메울 정도였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재료 

인 하루기 -참새보다 조금 더 큰 조류로 탄력있는 살코기로 유 

명하다 -는 무척이나 행복한 죽음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요새 뭘 그렇게 찾고 계시는 거에요? 제가 보기에는 

이미 읽으셨던 책도 다시 펼치시는 것 같던데……. 」 

「음…. 이거 하루기 가슴살이 특히 맛있는 걸. 한 접시 더 주겠 

어?」 

「네.」 

「고마워요. 네가 생각한대로야. 얼마 전에 부탁 받은 일이 있는 

데 그게 쉽지가 않아. 그렇다고 들어주지 않을 수도 없고…….」 

그가 며칠간 잠도 못자고 일을 하는 것으로 충분히 심각하다는 

걸 인식하고 있는 레소니였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시즈는 

몇 번의 우물거림과 한 번의 목젖 턱걸이를 한 후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내 힘만으로는 역시 힘들 것 같아서 왕족을 끌어드 

릴 생각인데 뭘로 유혹할지 생각하면서 자료를 조사하고 있어. 

역시 왕족들은 권위라는 단어에 뇌세포가 반응하지 않을까?」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렇게 말씀을 하세요? 왕족을 모독하 

면 큰 벌을 받아요.」 

「왕족 모독이라……. 그러고 보니 그것과 관련된 고대유물이 

있던 것 같은데… 아! 그거야! 레소니 고마워요! 핫핫핫!」 

뭔가 떠올랐는지 시즈는 레소니를 끌어안고 그답지 않은 호탕 

한 웃음을 터뜨리며 뛰어나갔다. 

「그럼 나 나갔다 올게!」 

「네…에….」 

아이들은 멍해져 버린 레소니의 눈앞에 스푼을 흔들었다. 그리 

고 그녀의 증상에 대해서 피린은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눈이 풀렸어.」 

격렬하게 춤추는 붉은 머리칼, 매끈하게 박동하는 근육을 타고 

내리는 땀줄기. 아직도 살을 이는 추위가 가시지 않은 초봄이었 

건만, 그의 주위는 뜨거운 불꽃이 일렁이는 여름날 같았다. 드래 

곤이었다면 브레스를 뿜어내는 듯한 기세로, 입에서 토해지는 

기합은 대기를 흔들었다. 흔들린 대기는 다시 짙누르는 검의 압 

력에 이기지 못하고 갈라지며 한줄기 비명을 남긴다. 

짝짝짝! 

「시즈로군.」 

이미 멀리서 소년 정도의 무게를 가진 남자 기척을 느끼고 있 

던 그는 얼굴을 돌리지 않고 박수의 장본인을 집어냈다. 폴짝하 

고 바위에서 뛰어내린 시즈는 활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대단해요. 그 정도면 하윌이랑 다시 한번 대결한다면 볼만하 

겠는데요!?」 

「농담은 그만 두시지. 너야말로 꽤나 고심하는 듯 하더니, 뭔가 

방법이 떠오른 모양이군. 꽤나 밝은 얼굴인 걸 보니…….」 

「맞아요! 생각났죠. 그런데 어때요? 보를레스.」 

「뭐가?」 

「저랑 한번 해보시겠어요? 오랫동안 휘두르지 않아서 완전히 

무뎌지기는 했지만 앞으로는 또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아서 

요. 게다가 이번 일을 하기 전에 보를레스를 좀 강하게 만들어야 

할 것 같거든요.」 

「…….」 

잠시동안 보를레스는 시즈가 검은 수실로 장식된 예도를 흔들 

며 하는 말을 이해하느라 미간을 엄지손가락으로 꾹꾹 눌러가며 

고민했다. 망설이는 어조로 떨떠름하게 입을 여는 보를레스는 

꽤나 당황한 듯 했다. 

「그거… 장식 아니었나?」 

「여, 역시 그렇게 보였나보군요.」 

휴우…하고 크게 한숨을 내쉰 시즈는 갑자기 눈을 빛냈다. 

〈투기!〉 

보를레스는 뒤로 한발짝 물러서며 검을 고쳐잡았다. 그는 시즈 

의 투기에 연약해보이기만 하던 학자가 꽤나 뛰어난 검력을 지 

녔으면서 실력을 숨기고 있던 검사라고 착각을 해버린 것이다. 

하지만 투기라는 것은 일종의 기세로 검을 잡지 않는 학자라고 

해도 충분히 풍길 수 있는 강한 의지의 폭출이었다. 

「그럼 봐주지 않겠어.」 

「섬(閃)!!」 

파앙!! 

대답을 하듯이 검집을 차고 나오는 검광에 보를레스는 가까스 

로 막아내며 애써 모았던 기합을 흩어지는 걸 느꼈다. 서둘러 

뿌리치고 반격하려 했지만, 앞날만 서있고 칼등이 뭉툭한 몽둥 

이를 연상시키는 기묘한 검의 일격은 고작 170cm 의 단신의 힘 

으로 내질러졌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묵직했다. 그랬다. 인 

간 하나의 무게는 절대로 무시할만한 게 아니었다. 단 일격으로 

보를레스의 자존심에 화려한 금을 내버린 시즈는 언제나 곱게만 

보였던 시선을 날카롭게 흘리며 검날을 돌렸다. 칼등을 보를레 

스의 검과 맞댄 상태로 몸전체를 날리는 시즈의 검에는 살기마 

저 풍기고 있었다. 

「흐으으압!」 

전력을 다해 밀쳐내는 보를레스. 등에 흐르는 땀이 차갑다는 

것을 느낀 그는 찰나, 죽음이라는 단어를 인식했다. 

「시, 시즈? 왜 이런!?」 

그의 경악성을 시즈는 키득하고 웃어넘기며 우람한 근육의 사 

내가 밀쳐낸 힘을 반동삼아 회전했다. 갸갸갸갹. 소름끼치는 이 

금속성은 보를레스의 검이 뒤로 밀렸다는 걸 뜻하는 것이다. 멈 

출 줄을 모르는 시즈의 검에 보를레스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 

다. 

〈동방 검법!〉 

서방에서 해적들이 성행하면서 그들과 싸우기 위해 만들어졌던 

검술을 〈서해검격〉이라고 한다. 흔들리는 배 안에서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해서 강한 일격을 중요시하던 서해검격은 곧 육지 

에서도 그 전통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강하게 검을 내려치고, 

방패로 막는 단순하기 그지없는 검술이 널리 퍼지면서 대륙에서 

검은 둔탁하고, 무거운 형태로 발전했다. 그리고 용병검술의 원 

조라고 불리는 〈동방검법〉이 약 540년 전 이 서방대륙을 밞았 

다. 술을 넘어 법을, 법을 넘어 도를 추구한다는 동방의 검은 서 

방의 검과는 달리 끝으로 갈수록 굵고 휘어진, 서방 대륙에 있 

어 이질적인 검이었다. 그들의 기세는 한 마디로 파죽지세, 끊이 

지 않는 빠름을 가진 그들의 검은 강하기만 한 서해검격을 철저 

하게 유린했다. 그리고 그들이 떠나고 남긴 공포의 여운은 서방 

의 검사들로 하여금 연구라는 과제로 몰아넣었다. 샴쉐르, 혹자 

는 만곡도라는 하나의 금속물체는 인간에게만 영향을 끼친 게 

아니었다. 만곡도를 이루는 금속의 믿을 수 없는 탄력에 놀란 

드워프는 축복이라는 이름의 미스릴과, 가장 완벽한 보석인 오 

리하르콘을 발견할 200 년 후까지 땅 속에서 침묵을 지켰다. 그 

러나 검술은 드워프들이 금속의 차이를 극복한 이후로도 아직까 

지 진전이 없었다. 다만 자신들이 가진 오답해결로 이루어진 검 

술이 발전하여 일가를 이룰 뿐이었다. 500년이라는 시간 속에 

이미 소수의 머릿속에 남아있던 동방 검법은 사라져버렸고 어중 

간한 검술은 갑옷으로 둘러싼 서해검격을 능가하지 못했다. 그 

리고 현재는 마지막 명백만이 남아 용병들에게 전해지는 하급 

검술로 전락한 상태였다. 

「이만 하도록 하죠.」 

결국 한번의 공격도 못한 보를레스에게 코웃음을 치며 시즈는 

예도를 검집에 넣었다. 보를레스의 이가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도대체 뭐지? 네가 어떻게 동방 검법을 알고 있는 거냐?」 

「동방 검술이라… 그런 건 모릅니다. 보를레스, 당신에게는 공 

격을 한번도 못했다는 것보다 검술의 이름이 중요한 모양이지 

요? 어떻습니까? 당신의 검술에서의 약점을 발견하셨습니까?」 

「…… 한번 더 상대해주겠나?」 

진중한 그 말에 시즈는 고개를 저으며 손을 들었다. 손바닥이 

물집이 터져 피가 후줄근했다. 허탈하게 웃는 그의 숨이 헐떡이 

고 있다는 걸 보를레스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안 되겠는 걸요. 무리를 좀 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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