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7화 (67/200)

                                    -67- 사람을 움직이는 법 (1)

하루가 지나자 보슬거리던 빗줄기는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고 

요했던 하늘은 천적을 눈앞에 둔 사자처럼 포효를 멈추지 않았 

다. 

바로 이런 날을 일컬어 동방에서는 용이 현신하여 구름 속에서 

춤을 추는 날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천지가 진동하는 소리와 

어둠으로 눈빛과 속삭임을 감춘 이들이 거대한 모략을 꾸미고 

세상을 바꿔놓기 때문이다. 그 때문일까? 한 떼의 사람들이 저 

택 안에서 음산스런(?) 모임을 갖고 있었다. 

「이보게. 로플레! 좀 조용히 식기를 사용하라고! 그리고 곧 회 

의를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먹어대면 엘프 님들께 실례잖 

소.」 

「촌장 님도 참 기회를 모르십니다. 이렇게 맛좋은 요리를 접할 

수 있는 건 평생이 오늘 한번일지도 모른단 말입니다. 작년 몰 

케진 축제날의 축제도 이처럼 마을 여성들의 정성이 들어가지는 

않았을 걸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인기절정의 마을스타인 상냥하고 부드러 

운 청년과 소년이 함께 부탁하는 일에 어떤 여성이 거부하겠는 

가. 심지어는 나이 70의 할머니도 나서서 숨기고 있던 전통쿠키 

제조법까지 늘어놓았던 것이다. 

「그래서 마을의 체면을 자네의 입을 만족시키기 위해 내다버리 

라는 뜻인가!!!?」 

「아, 아닙니다. 그만 먹지요, 그만 먹는다고요.」 

〈도이키 할아버지〉라는 이름이 촌장이라는 말을 대신 할만큼 

자상한 노인이었지만 이 순간만은 그 평가를 정정해야 했다. 그 

들의 모습을 모고 있던 엘프의 족장이 너털웃음을 떠뜨렸다. 

「세이탄의 촌장 님께서는 우리 존재에 적잖이 신경을 써주시는 

군요. 감사합니다. 허허헛. 하지만 괜찮습니다. 인간의 음식에 익 

숙치 않은 이 늙은 엘프의 눈으로 보기에도 이 음식들은 매우 

맛깔스러운 빛깔을 자아내고 있으니까……. 돌아갈 때 좀 얹혀 

줬으면 싶을 정도외다.」 

「그렇지요? 아! 역시 인간의 세월을 넘어서 사신 분답게 세대 

의 격차 또한 뛰어넘으시는 군요. 이런 자리에서 너무 격식을 

차려봤자 뭐가 좋겠습니까? 함께 분위기 흐트러뜨리고 좋게 이 

야기하면 되지.」 

「로플레!!」 

「예예! 알았다고요. 조용히 할게요. 촌장 님은 저와 겨우 30년 

차인데 200년 차도 더된 타종족보다도 절 이해못하시는 군요.」 

골치가 아픈지 도이키 촌장은 머리를 감싸쥐고는 냅킨에 잔에 

담겨있던 물을 붓고 이마에 얹었다. 

「엘프 족장님, 음식이라면 시즈가 달라는 대로 줄테니 얼마든 

지 가져가시구려.」 

「허헛! 그럴까? 이 기회에 넉넉히 가져가야 겠군.」 

그렇게 숲의 엘프와 인간들이 시즈의 재산을 갉아먹기 위한 모 

의를 세우고 있을 때 방문이 천천히 열리며 두 명의 건장 체격 

을 가진 남자가 걸어나왔다. 등에 바스타드 소드를 멘 용병과 

세제복을 입은 자들이었는데, 사제의 키는 2m를 훌쩍 넘는 거대 

한 신장이었고, 용병차림의 사내는 그보다는 작았지만 무사할 

수 없는 체형이었다. 두 사내는 보를레스와 헤모로 먼저 그들을 

들여보낸 것은 들뜬 분위기를 가라앉히기 위한 시즈의 의도가 

담겨있었다. 거인이나 다름없는 이들의 눈째림은 순식간에 테이 

블 위를 조용하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왔다. 하윌은 코웃음을 쳤 

지만……. 

다시 한번 사람들의 이목이 두 남자가 들어온 문으로 쏠렸다. 

레소니의 부축을 받으며 시즈가 걸어들어온 것이다. 갓난 아이 

처럼 몸도 제대로 못가누고 비틀거리며 다가와 시즈는 의자에 

앉았다. 

「모두들 오랜만에 뵙는 군요. 그 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그의 미소는 오랜만에 봐도 여전히 편안해보였다. 몸은 그리 

편안해보이지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이는 대부분의 사람과는 다 

르게 베이란트는 키득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중에 제대로 지내지 못한 사람은 시즈 그대밖에 없는 것 

같은데!」 

「하하하하핫!」 

「하윌 씨, 베이란트가 의자에서 떨어지지 않게 잘 보호해주세 

요. 죄송하게도 베이란트의 다리에 맞는 의자를 준비하지 못했 

답니다. 제가 보기에 떨어지면 최소 골절상은 입을 것 같아 보 

이는 군요.」 

한치의 양보도 없는 공방전에 주위 사람들만 배꼽을 잡을 뿐이 

었다. 하지만 자신들이 무엇을 위해 모였는지를 아는 이들이기 

에 소란은 곧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여기 모이신 이유는 모두들 알고 있으실 겁니다. 멜라누 숲에 

새로 이주한 엘프들의 지역을 국가보호차원에서 인간 통제구역 

으로 만들고자 해서입니다. 하지만 해달라고 왕족들이 해줄 리 

가 없기 때문에 세이탄 주민들의 힘을 빌리기로 했고 촌장님께 

서도 요청을 받아주셨습니다.」 

「이런 일을 돕는 거야 당연하지요.」 

「허허헛, 고맙구려.」 

「두 분 친목도모는 그만하시고 얘기를 잘 들어주세요. 이제부 

터가 중요합니다. 어떻게 하여 멜라누 숲의 깊숙한 지역을 인간 

통제구역으로 만들어놓을 것인가 하는 음모의 전반을 설명하겠 

습니다.」 

「음모라…허허헛.」 

「예! 음모입니다. 우선…… ………………」 

4 시간 후, 

「다 돌아갔군.」 

「그렇네요.」 

테이블에 남아있는 건 2 명의 남자뿐이었다. 열심히 접시를 나 

르던 보를레스가 테이블을 광나게 닦고 있던 시즈에게 물었다. 

「헤모도 돌아갔나?」 

「아니요.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을 거에요.」 

「정정해줘. 난 지금 다 끝냈으니까.」 

시즈와 보를레스의 부러운 시선을 손에 묻은 물 털 듯 외면하 

면 의자에 털썩 앉은 헤모는 샹들리에를 멍하니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시즈,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야. 아까처럼 복잡한 일을 꾸밀 

수 있는 자네라면 이 마을 사람들을 끌어드리지 않고도 일을 처 

리할 수 있지?」 

헤모는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시즈는 곤란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왜 세이탄 주민들을 끌여드렸는지 묻고 싶은 모양이군요. 간 

단합니다. 엘프들의 마을을 인간에게서 법으로 격리시킨다고 해 

도, 세이탄의 주민과 마찰이 없을 수는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이왕 시작할 때 둘의 관계를 암묵적으로 단절이 아니라 교 

류의 관계로 형성하여 혹시 마찰이 일어났을 시에는 분쟁이 아 

니라 지금처럼 협력하여 풀어가도록 주민들을 끌어드린 겁니 

다.」 

번쩍! 콰르르릉! 

음모의 밤(?)은 그렇게 지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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