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장점도 단점을 만드는 조건이 될 수 있다.
한 소년이 궁정 도서관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계단에 놓아둔
서적들은 그가 들기에는 힘겨워 보일 정도로 많았다. 이른 봄
만큼이나 도서관원이 이른 시간에 오는 게 아니었기에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푸른빛으로 흘러내린 머리칼이 등까지 내려
소년은 예전부터 천재라는 칭송을 받았다. 머리는 총명하고 영
특했으며 운동신경과 반사신경 또한 놀라워 못하는 일이 없었
다. 기사들을 뛰어넘는 검술 실력에 뭍 학자들의 입을 벌려놓는
학식, 마음은 넓고 겸손하여 예법에 충실하니 〈천재 이상의 천
재〉- 천재들은 보통 오만한 성격을 가진다고 알려져 있다. -라
는 소문에 어긋하지 않았다. 둔재마저도 영재로 만들어버리는
왕실의 혹독한 교육 탓이 한 몫 했겠지만 어쨌든 그는 왕가의
자랑이었다.
「전하, 아직 새벽바람이 차갑습니다. 책이야 후에 시종에게 건
네서 전해주면 되지 않습니까?」
그의 옆에는 또 다른 소년이 있었다. 약간 키가 작고 병약해
보이는 그도 역시 푸른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는데 입은 복장
또한 남색 학사의(衣)라 매우 어울렸다.
「괜찮아. 어제 밤에는 봄비도 내렸는걸. 곧 봄이 오는데 밤이
차갑다니 엄살로밖에는 보이지 않아. 겨울동안 이 시원한 새벽
공기도 쐬지 못했어. 로길드, 넌 그만 쉬어도 돼. 몸이 좋지 않
잖아. 예전부터……. 어렸을 적부터 친구라는 미명아래 신나게
부려먹고 있으니 이 정도는 봐줘야지.」
너울대는 두 푸른 머리는 가장자리가 새어오는 하늘을 물결인
양 착각토록 만들었다. 로길드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니 함께 있어주었으면 바라시는 군
요. 뭐, 할 수 없지요. 어릴 적 친구라는 이유로 이렇게 전하를
따라왔는데 몇 걸음 더 걷고 몇 시간 더 같이 있는다고 달라질
일이 있겠습니까?」
「아하하핫! 내가 어찌 로길드를 당하겠어.」
금실로 사자의 문양이 수놓아진 화려한 복장부터 웃음을 짓는
소년의 신분을 말해주고 있었다. 어깨를 으쓱하며 못 당하겠다
는 제스처를 취하자 로길드는 학의(衣)의 넓은 소매로 입을 가
리며 눈으로 미소를 지었다. 마치 여인에게나 어울릴 행동이었
지만 그는 묘하게 어울렸다.
「언제나 네 입심에는 두 손을 들고 마는 군. 과연 페노스톨멘
가의 후계자야. 나는 언제나 너의 지식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묻기보다는 한탄하는 어조였다. 그에 로길드는 어이없다는 듯
눈썹을 찡그리며 항의했다.
「학문을 제외하면 무엇하나 전하께서 제게 양보하시는 게 없지
않습니까? 그러시면서 제 유일한 밑천까지 넘보시겠다니 참으로
염치도 없으시군요.」
억울한 듯 돌려서 말하기는 했지만, 직설적으로 해석하면 〈어
림없으니 꿈 깨시지.〉나 다를 바 없었다. 그 의미를 모를 리 없
는 왕자이지만 또한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었기에 당연하다는 듯
웃기만 했다.
「농담이야. 설마 로길드만한 인재가 또 세상에 있을 리 없잖
아?」
「칭찬이 과하시군요. 아스틴 네글로드의 명성은 절대로 허명이
아닙니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도 세상을 움직이는 현
자들이 많고도 많습니다.」
「너처럼 말이지?」
「대상이 명확치 않으니 비교할 수는 없겠지요.」
「그렇다면 그 사람은 어때? 〈마땅찮은 시즈〉라는 재미있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잖아!? 갑자기 유명해지기 시작하더니, 이
제는 아예 대륙을 뒤흔드는 인사가 된 사람…….」
「시즈 세이서스 후작 공자를 말씀하시는 모양이군요. 저도 그
의 글을 보았습니다. 〈또 다른 고향〉이라고 했죠. 감탄밖에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페노스톨멘 가(家)는 엘시크의 건국 때부터 에도린 가(家)를 보
필해온 암흑의 책략가문이었다. 무슨 이유인지 언제부터인가 사
라져버렸고 현재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게 되었지만 로길드에게
는 페노스톨멘이라는 이름이 주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런 그였
기에 자만이라고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인정할 줄 모르는 로길
드를 놀라게 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네가 그렇게 격찬하는 경우는 처음 보는 걸.」
「어쩌면 제 예상보다 더 특출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확실하게
말해드릴 수 있는 것은 세일피어론아드에 아무리 많은 은자들이
있다해도 그 만한 인물은 한 시대에 둘 이상이 나타나지는 않을
겁니다. 갖고 싶으십니까?」
설명을 계속 이어하듯이 그는 질문했다. 열심히 듣고 있던 왕
자는 무심결에,
「응.」
망설임도 없이 말해버렸다. 잠깐 새벽 안개 속으로 침묵의 강
이 흘렀다.
「솔직히 말씀해보세요. 오늘 친히 도서관에 오신 이유는 〈마
땅찮은 시즈〉를 만나보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아, 아니야. 시종들이 피곤해하는 아침에 일을 시키는 게 왠지
미안해서…….」
「호오……. 시간날 때마다 모여서 팔굽혀펴기 대회를 여는 건
강하기 그지 없는 시종들은 아침에 피곤해 보이고 팔굽혀펴기는
최대 3개의 병약하기 짝이 없는 이 로길드는 별로 피곤해 보이
지 않더란 말입니까?」
은근한 어조 속에는 〈빨리 진실을 토로하시지.〉라는 협박성
짙은 메시지가 고농축으로 함축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