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1화 (71/200)

                            -71- 장점도 단점을 만드는 조건이 될 수 있다.

천천히 봄의 기운이 새싹과 꽃봉오리로 들뜨기 시작하는 오후, 

세이서스가의 사람들은 분주하기 그지없었다. 그 이유는 이들의 

대화를 들어보면서 생각하도록 하자. 

「준비는 다 끝났나? 치플 집사.」 

「죄송합니다, 주인님. 도련님께서 막 도착하셔서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아아 너무 신경쓰지 말게.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 아직 점심 

때가 아닌가. 연회는 저녁이네. 천천히 하라고들 이르게.」 

「예.」 

「그나저나 시즈 녀석이 웬일로 연회에 참석하겠다고 하는지 알 

수가 없군.」 

「허허허! 왕자님의 탄신일이 아니십니까. 중요한 날인만큼 참석 

하지 않으면 주인님께 누가 된다고 생각하신 걸 겁니다.」 

「그러면 좋겠지만, 워낙에 싫어해서야 말이지. 도대체 나도 무 

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니까.」 

「헛허허! 어련히 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주인님, 도련님께 

서 오시면 의논할 게 있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아아! 이번에 새로 개발한 마법에 대한 연구서! 잊고 있었어. 

나도 나이는 못 속인다니까. 고맙네, 집사.」 

한동안 못 보았던 아들을 보아서인지 헤트라임크는 정신이 없 

는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그의 흥분은 귀족들이 모이는 연회에 

함께 참석하기에 더했다. 얼마나 자랑하고 싶었던 아들녀석인가. 

때문에 중요한 행사가 아니면 나가지 않던 궁중행사에 요근래에 

들어서 빠지지 않고 참여하여 자랑할 인파를 넉넉히 확보해둔 

아버지였다. 콧노래를 부르며 윗층으로 올라가는 그를 보며 치 

플은 다 빠지고 뒤쪽에 약간 남아있는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불만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저보다 두 살 어리시지 않습니까.」 

헤트라임크가 연구문서를 가지러 2층 방으로 향하고 있을 시 

간, 3층의 또 다른 방에서는 시즈 일행이 낑낑대고 있었다. 

「아니! 난 연회에 별로 참석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수행원으 

로 연회장 앞까지만 같이 갈 뿐인데 왜 귀찮은 옷을 입히는 거 

야!?」 

「보를레스 님, 연회 때는 수행원도 정장을 착용하셔야 되요. 그 

렇지 않으면 주인님께서 눈총을 받으신다고요.」 

「아니, 난 궁전 안에……」 

「주인님께 직접 말씀드리세요.」 

「…….」 

시녀의 마지막 한 마디는 멧돼지같이 발광을 하던 보를레스를 

얌전한 두더지처럼 만들었다. 일찌감치 준비를 끝낸 시즈는 키 

득거리며 그윽한 향이 은은히 피어나는 차를 마시고 있었다. 검 

은 색깔을 좋아하는 그였지만 역시 왜소해 보이는 것은 싫었나 

보다. 어지간히 싫어하던 흰색으로 온몸을 치장한 걸 보면 쉽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취향과는 달리 밝은 빛깔은 유난히 흰 그 

의 피부와 깨끗한 외모에 꼭 들어맞아 멀찍이 서서 시녀에게 몸 

을 맡기고 있던 레소니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녀도 역시 남자의 정장을 입고 있었는데 평소에 입던 옷과는 

달리 몸에 꼭맞게 입히는지라 여성특유의 유려한 몸매는 알듯말 

듯 드러났다. 준비를 도와주는 시녀는 그녀보다 3살 많았는데 

레소니와 성격이 맞는 활발한 여인으로 안절부절못하는 동생을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레소니에게만 들리는 아주 작은 목소 

리였다. 

「남자 정장이라니, 아직도 시즈 님은 알아채시지 못한 모양이 

네.」 

「으…응.」 

「이 기회에 정체가 밝혀지도록 입혀줄까?」 

「시, 싫어! 그만둬.」 

「어머! 애는 장난이었어. 과민반응 보이기는……. 그나저나 시 

즈 님은 세상을 많이 아신다는 학자신데 이런 방면으로는 왜 그 

렇게 눈치가 없으실까? 우리 귀여운 레소니랑 같이 사는데 내가 

시즈 님 같으면 콱!」 

「어, 언니…….」 

호들갑을 떠는 시녀와는 달리 레소니는 혹시 들은 사람이 있나 

하여 주위를 힐끔거렸다. 그러다가 마주쳤다. 시즈의 눈과……. 

들으셨을까? 주위에 서있는 사람들도 듣지 못하고 자신의 일만 

하고 있었다. 들렸을 리가 없어. 하지만 주인님의 표정이 들리신 

것 같아! 발을 동동 구르던 그녀에게 시즈는 고개를 갸우뚱하더 

니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덕분에 레소니는 품고있던 생각은 

모두 날려버리고 새빨개진 얼굴을 숙여 감추어야 했다. 

〈내가 뭘 잘못했나?〉 

아니면 내 차림에 뭐가 잘못된 점이라도? 몸수색을 해보던 시 

즈는 어느 부분에 이르러서 잠시 눈을 멈췄다. 그의 손이 은밀 

하게 아래에서 위로 움직였다. 

〈아래가 열렸었군.〉 

갑자기 아래층에서 기다리고 계실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 

다. 

「시즈. 여기 있느냐?」 

「예.」 

「잘 되었구나. 여기 이걸 좀 보거라. 요즘 들어 각광을 받기 시 

작한 공간계 주문인데… 시전해보니 아무래도 결계가 불안한 것 

같구나.」 

「일종의 필드 결계로군요. 재미있는 마법인데요!? 점점 범위를 

확장시키는 개방식이라…….」 

아들의 칭찬에 헤트라임크는 기분이 좋았다. 냉정한 성품과는 

다른 함박웃음을 헤벌죽하게 입가에 들이고는 손가락으로 요목 

조목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그래. 게다가 이 부분을 보라고. 3클래스의 마법사가 3명 

만 있으면 펼칠 수 있어. 하지만 적은 동원인원과 이 결계의 위 

력은 정반대라고! 처음에는 1 써클의 마력구로도 종이장처럼 뚫 

리지만 일단 안정기에 들어가면 3, 4서클의 파이어볼은 마법사 

단이 오지 않는 한 문제도 아니야!」 

「안정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게 탈이지만 말이죠?」 

「그래. 정확하게 찝어내는군. 역시 내 아들이라니까. 무려 10시 

간이라는 시간이 걸리지. 아마 전쟁용이나 대규모 전투용으로 

쓰이면 맞을 거야. 제플론의 결계에 비하면 별 필요없지만 마법 

사가 적은 변방의 성을 수비할 때는 아주 유용한 거지.」 

시즈는 〈흠…〉하는 소리와 함께 눈에 이채를 띄고 헤트라임 

크의 연구서를 살펴보았다. 나이차가 심하기는 했지만 흰색의 

정장을 입은 아들과 역시 백색의 법의를 입은 아버지가 함께 사 

이좋게 앉아 한권의 책을 서로의 무릎 사이에 놓고 있는 모습은 

꽤나 보기 좋았다. 평화롭게 느껴지는 그들만의 풍경에 미소를 

짓고 있던 레소니는 문득 억울해졌다. 저토록 총명하신 주인님 

인데… 왜 그렇게 눈치가 없으실까? 그녀는 그것에 안심하면서 

도 마음 한켠으로는 섭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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