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2화 (7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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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안파운 백작가의 로안파운 부부십니다.」 

연회는 시작하지도 않았지만 연회장은 기다리는 사람들의 기대와 

호기심으로 웅성거렸다. 화려하게 차려입은 사람들, 군데군데 모 

여있는 이들의 관심사는 오늘의 축하대상인 네 번째 왕자이 아닌 

전혀 다른 대상에게 쏠려있었다. 원로 귀족에서부터… 

「그의 인지도는 글을 읽는다는 사람들에게 있어 대마법사 세이서 

스 후작을 훨씬 능가하더군요.」 

「그것 참 대단한 일이오. 어서 보고 싶구료.」 

귀족 영양과 부인들… 

「매우 매력적인 청년이라는 소문 들었지요?」 

「젊은 나이에 아스틴 네글로드의 원탁으로 초청되었다잖아요. 

언변과 문장이 아주 매혹적이겠죠?」 

「말을 마세요. 제 남편이 그 사람 책을 읽고는 완전히 신도가 

되어버렸다니까요!」 

「그런데 지금 어디 계시죠?」 

그 질문에 붉은 레이스의 여인은 골치아픈 표정을 지었다. 

「너무 흥분해서 화장실에서 식히고 있을 걸요.」 

연회장 사이사이로 여인들의 꺄르륵 웃는 소리가 간간이 맴돌 

고 연회는 막을 열었다. 여느 때와는 다르게 중앙, 지방할 것없 

이 모여든 이들은 이제껏 없었던 성대한 연회와 무도회가 될 것 

을 예상케 했다. 

「정말 대단해. 그 한 사람의 이름이 왕명을 능가하는 군. 저 사 

람은 케진 자작이 아닌가. 아바마마가 불러도 오지 않더니만…… 

. 맞지? 로길드.」 

「예, 전하. 몸이 너무나 병약하여 년간에 한번 열리는 무도회에 

도 불참하시는 분입니다.」 

「이렇게 보니 아주 건장하시구만.」 

왕좌의 커튼 뒤에서 보고 있던 두 소년은 과연 이 인파가 아침 

에 만났던 시골촌뜨기 같았던 청년의 이름에서 비롯된 사태라는 

데 동의를 표하기가 쉽지 않았다. 왕의 위엄을 능가하는 위명, 

〈마땅찮은 시즈〉라는 이름은 그 〈위명〉을 대신하고도 남음 

이 있었다. 

「조심해야 합니다, 리페른 전하. 〈마땅찮은 시즈〉를 노리려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그렇겠지. 그의 지지를 얻는다는 건 현재 이 나라를 얻는다는 

말과 비교해서 동일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니까…….」 

「문제는 왕자들이 아닙니다. 바로 시즈 님이죠.」 

「무슨 뜻이지?」 

「제가 보기에 시즈 님이 전하께 접근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 

니다. 하지만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그가 먼저 접근했다는 것은 

뭔가 원하는 게 있기 때문일 겁니다.」 

「정치에 관심이 생겼는지도 모르잖아?」 

「아닙니다. 그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자신의 이름만으로 국정 

을 참여할 수 있을 겁니다. 분명히 다른 뭔가가 있습니다. 분명 

다른 왕자분들은 그에게 이용당할 겁니다. 어쩌면 전하를 이용 

하기 위해 그들은 먼저 이용하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어쨌 

든 조심하십시오.」 

리페른이 고개를 끄덕이며 어깨를 토닥여주었지만 로기드는 그 

리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그의 이름이 보이는 위력만으로도 이 

미 겁을 집어먹었는지 모른다. 과연 속셈이 뭐지? 시즈 세이서 

스! 마땅찮은 이여……. 

그 때였다. 방명록을 작성하는 시종의 음성이 벼락처럼 들려온 

것은……. 

「세이서스 후작가의 헤트라임크 후작 각하와 시즈 세이서스 후 

작 공자이십니다.」 

우둑! 우둑! 우두두둑! 

여기저기서 목돌아가는 마찰음이 요란스럽게 울려퍼지는 가운 

데 대전의 문이 서서히 열리며 몇몇의 사람들이 들어섰다. 그야 

말로 천차만별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인물들이었는데, 좌측부터 

온통 날카로운 인상의 노인, 약간 나사가 빠져보이는 듯한 청년, 

여인들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미소년과, 2m에 달하는 신장을 

가진 청년이었다. 그들이 들어오자 홀 안은 싸늘한 기류가 흐르 

는 게 느껴질 정도로 고요해졌고 귀족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며 

소근거렸다. 

「아니! 이게 누구신가? 시즈 세이서스 공자, 괴팍하기 그지 없 

는 친구의 둘도 없는 아들이 아니야. 아스틴에 처음보고 다시 

보기게 이렇게 어렵다니 몸값 좀 올른 모양이네?」 

「그게 무슨 소리야? 자네의 주름진 몸보다야 원래부터 비쌌지! 

허허… 오랜만이네. 시즈 군.」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없이 말을 걸어온 이들은 궁정마법원의 

원로 마법사들이었다. 어딘가 어색한 웃음을 띄우면서 다가온 

그들 덕에 웃음이 터지자 홀 안은 금새 다시 시끌벅적해졌다. 

홀 안의 사람들은 시즈가 동안을 간직한 청년이라는 것에 놀람 

을 금치 못했다. 

「〈마땅찮은 시즈〉이십니까?」 

조심스럽게 물어오는 사내는 녹색의 화려한 레이스 셔츠에 금 

실과 홍실로 멋지게 장식한 옷차림을 한 30대 중반의 귀족이었 

다. 그는 나이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시즈를 만났다는 것에 감격 

했는지 존대를 하고 있었다. 

「당신의 글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난 신세계를 보았소이다. 신 

세계를! 존경합니다. 〈영광스런 이〉여…….」 

난데없는 격찬과 신봉적인 눈빛. 시즈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노골적인 신도가 있었다니… 멀리에서 붉은 레이스의 드 

레스를 입은 여인이 당황하는 게 보였다. 보를레스와 헤트라임크 

도 뒤통수를 맞은 표정으로 가만히 서있었다. 시즈가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을 때, 구세주처럼 우렁찬 음성이 대전이 울려퍼졌 

다. 

「국왕 폐하와 왕비 전하! 그리고 왕자 전하분들께서 드십니 

다!」 

대전의 양 옆에 서둘러 가지런히 정열하는 귀족들. 걸음을 옮 

기며 시즈는 고맙다는 미소를 시종에게 씨익 하고 지어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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