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3화 (7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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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왕조나 마찬가지 듯 엘시크의 왕가도 자손들이 풍성했다. 

시종의 신호를 기점으로 국왕과 함께 들어서기 시작한 왕족들 

은 가히 마법사단 1개 소대를 만들 수 있을 정도였다. 양 옆에 

늘어선 왕자들의 눈동자는 빛나지 않는 게 없어 충실한 영재교 

육의 흔적을 알 수 있었다. 

좌중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국왕 로타우노가 앞으로 나섰 

다. 

「오늘은 이 찬란한 왕국의 4 번째 왕자가 이 세상에 나온 기쁜 

날입니다. 이 기쁨을 그대들과 나누고자 하니 즐겁게 즐기도록 

합시다.」 

「끝없는 은혜에 감사하나이다.」 

「제 4 왕자, 미젠 전하께서는 앞으로 나오시어 뭍 귀족들의 축 

하와 축복을 받으십시오.」 

미젠 왕자는 12살쯤 되어 소년이었으나 걸음걸이는 자부심과 

오만으로 뭉쳐있는 게 느껴졌다. 그의 레이모하의 대사제의 축 

복을 필두로 귀족들의 선물이 이어졌다. 모든 귀족들이 축하의 

말을 끝내고 자리로 들어가자 마지막으로 왕이 물었다. 

「왕자여, 너의 생일을 맞이하니 나 역시 네가 태어나던 날의 

감동이 떠올라 기쁨을 금할 수가 없다. 귀족들의 축복과 축하를 

받았으니 이제 나만 남았구나. 내게 원하는 게 있느냐?」 

「예, 있습니다. 아바마마」 

앳된 티가 새싹처럼 피어나는 음성이었지만 소년의 어조는 훈 

련이 잘된 군인처럼 곧고 딱딱했다. 무릎을 꿇은 아들을 자애롭 

게 내려보던 로타우노가 손을 들었다. 

「일어서거라. 원하는 게 무엇이냐? 금은보화를 원하느냐?」 

소년이 저었다. 

「아닙니다.」 

「그렇다면 검과 갑옷을 원하느냐?」 

「황공하옵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예술품이렸다?」 

「아닙니다, 아바마마. 저의 바램은 저를 보좌하고 이끌어줄 모 

사를 소개받는 것입니다.」 

귀족과 왕자들의 얼굴이 기묘하게 변했다. 저마다 독특한 표정 

을 지었으며 특히 리페른의 표정은 화난 오거를 연상시킬만큼 

일그러졌다. 

「그야말로 통렬한 일격이라고 해야겠군.」 

로길드는 커튼 뒤에서 쓴웃음을 지었다. 어린 왕자가 말하는 

모사가 누굴 뜻하는지 홀 안의 사람들은 거의 짐작하고 있었다. 

「호오! 모사를? 왕자가 점찍어둔 사람이 있는 모양이구나.」 

「그러합니다, 아바마마. 제가 얼마 전 한 권의 책을 보았는데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새로운 세계의 구성물 하나하 

나에까지 뻗여있는 작가의 손길과 곳곳에 배어있는 지식. 실제 

로 그 세계를 사는 듯한 고뇌는 인간의 본질적인 물음에까지 걸 

어가고 있었으며 독특한 철학이 담겨있었습니다. 게다가 현재까 

지의 소설의 형식을 뒤바꿔놓는 일기형식은 마치 다른 세상의 

일기장이 세일피어론아드에 떡하고 떨어진 느낌이었습니다.」 

「오오……. 나 역시 미젠 왕자가 책을 좋아한다는 거 익히 알 

고 있었다. 그래, 네게 그토록 감동을 주었다는 책의 작가는 누 

구인고?」 

이쯤 했는데 당황하지 않으면 시즈는 사람도 아니었다. 콧노래 

를 부르며 길을 가던 중 갑자기 뒤통수를 맞는 기분이랄까. 아 

까 녹새 레이스 셔츠의 귀족에 이은 두 번째 크리티컬 데미지였 

다. 왕자의 손가락은 포물선을 이루며 움직이고 있었고 귀족들 

은 시선은 그보다 먼저 시즈의 어이없는 얼굴에 도착해 있었다. 

「〈마땅찮은 시즈〉, 시즈 세이서스 후작 공자입니다.」 

침음성이 홀 안을 맴돌았다. 국왕으로서는 아들의 요구가 매우 

마음에 들었는지 껄걸 웃다가 벌떡 일어서서 크게 외쳤다. 

「시즈 세이서스 후작 공자는 앞으로 나오도록!」 

「예, 폐하. 시즈 세이서스 대령했습니다.」 

국왕과 미젠 왕자의 흐뭇한 시선이 시즈의 온몸을 위아래로 훑 

어 내렸다. 시즈는 껍질이 발랑까져 튀겨지기를 기다리는 생닭 

마냥 몸을 움추렸다. 

「그대를 미젠의 국사- 왕자의 스승 -로 임명하려 한다. 작위도 

없는 그대에게 매우 파격적인 인사가 아닐 수 없다. 혹시 이견 

이 있는가?」 

국왕이 이견을 물은 이유는 시즈가 눈썹을 찡그리고 있는 게 

그가 곤혹스러워하고 있다는 걸 자세하게 대변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의 이름을 생각해보라. 〈마땅찮은 영광〉. 이 대륙을 

움직이는 젊은 현자는 왕실의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음을 이름 

으로 미리 밝히고 있는지도 몰랐기에 국왕은 조심스러웠다. 

시즈는 절대로 정치판에 끼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특히 나이 

20에 매일같이 누군가를 가르쳐야 한다는 건 생각만 해도 소름 

끼치는 일이었다. 게다가 현재 그는 중립에 서있지 않으면 안될 

입장이었다. 머릿 속의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라도 말이 

다. 

시즈가 망설이고 있자 리페른이 앞으로 나섰다. 

「아바마마, 오늘이 미젠의 생일이기는 하나, 작위도 없는 젊은 

학자를 스승으로 삼는다는 것은 왕실의 법도에 어긋나는 일입니 

다. 하오며 궁정 학사원을 무시하는 처사이니 삼가 재선을 간합 

니다.」 

로타우노가 머리를 헤집어보니 그 말 또한 틀리지 않았다. 전 

통의 격식에 심취한 엘시크의 노학자들이 아니던가. 자신들도 

겨우 오를 자리에 이제 고작 20살 청년이 어깨를 같이 하여 앉 

는다? 반발이 심하지 않을까 국왕은 고심했다. 그가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자 셋째 왕자가 나서서 미젠을 옹호하려 했다. 하지 

만 그를 첫째 왕자가 막았다. 의아한 표정으로 올려다보는 동생 

에게 트헨리 왕자는 미소를 지으며 속삭였다. 

「궁정 학사원은 이미 〈시즈 세이서스〉의 손안에 있다. 궁정 

학사들을 존중하여 말했으나 그는 시즈를 무시하였기에 궁중학 

사들은 지지의 미소보다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릴 것이다. 

하며, 시즈 또한 마음이 돌아설테니 리페른의 언사는 득은 없는, 

실이다. 우리가 리페른을 두려워하여 힘을 모았지만 시즈는 한 

사람에게 끌어주기에는 너무 큰 존재가 아닌가. 리페른의 말로 

인하여 우리는 부담없이 그를 뒤로 밀쳐낼 수 있다.」 

트헨리의 분석은 틀림이 없었다. 시즈가 궁정 학사원에 등록되 

어 있지는 않았고, 학사원에는 자존심 강한 노학사들이 사원의 

흐름을 잡고 있었지만 그들 역시 시즈의 글에 매료된 상태였고, 

젊은 학사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리페른은 늑대를 피하려다가 

호랑이를 만난 격이었다. 

로길드가 숨어있는 검은 커튼이 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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